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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부불가탈지야(匹夫不可奪志也)
보통 사람의 뜻을 빼앗을 수 없다는 뜻으로, 빼앗을 수 있는 것은 뜻(志)이 아니라는 말이다.
匹 : 짝 필(匸/2)
夫 : 사내 부(大/1)
不 : 아닐 불(一/3)
可 : 옳을 가(口/2)
奪 : 빼앗을 탈(大/11)
志 : 뜻 지(心/3)
也 : 어조사 야(乙/2)
출전 :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
공자는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 26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공자가 말했다. "삼군 대장의 권한을 빼앗을 수 있지만, 일개 보통사람의 의지는 빼앗을 수 없다."
사서집주(四書集注)에서 후씨가 말했다. "삼군(三軍)의 용맹스러움은 타인에게 있으나, 한 사내의 뜻(志)은 자기 몸에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장수는 앗아 올 수 있어도 (한 사내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 빼앗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면 이는 역시 뜻(志)이라 부르기에는 족하지 않다."
侯氏曰: 三軍之勇在人, 匹夫之志在己. 故帥可奪而志不可奪, 如可奪, 則亦不足謂之志矣.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에, "뜻을 뺏을 수 없다는 것은 부귀가 그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며, 빈천이 그 절개를 옮겨놓지 못하며, 어떠한 위무도 그 뜻을 굳히게 할 수 없는 것을 이른다."
不可奪志, 謂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 三軍은 可奪帥也어니와 匹夫는 不可奪志也니라.
삼군에서는 그 대장을 빼앗을 수 있어도, 한 사내에게서는 그 뜻을 빼앗을 수가 없다.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의 이 장(章)은 인간의 지(志)를 강조했다. 지(志)는 흔히 뜻이라고 번역하는데 본래는 마음이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일을 말하여 인간 의지의 주체적 측면을 가리킨다.
다만 의(意)와 지(志)를 대비시켜 말할 때는 의(意)가 마음의 발동처(發動處), 지(志)가 마음의 존주처(存主處)를 뜻한다.
삼군(三軍)은 대군을 말하는데 대개 제후가 지닐 수 있는 군세(軍勢)를 말한다. 일군(一軍)은 1만2500명의 군사로 편성됐다. 삼군(三軍) 가운데 중군(中軍)의 대장(大將)을 수(帥)라 하며 이 수(帥)가 삼군 전체를 통솔했다.
三軍可奪帥也에서 三軍은 주어가 아니라 대상을 한정해서 제시하는 말이다. 곧 '삼군에서는' 이라는 말이다. 전체 문장의 주어는 생략됐다.
匹夫不可奪志也도 같은 짜임이다. 匹夫는 한 남자라는 뜻이다. 본래 필부필부(匹夫匹婦)라고 하면 일부일처(一夫一妻)로 가족을 이루는 평민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신분상의 개념이 아니다.
三軍은 아무리 수가 많아도 군사의 마음이 합치해 있지 않으면 그 대장을 붙들어 올 수 있다. 또 三軍의 용맹함은 개별적 주체에게 있지 않고 남들의 집합에 있으므로 그 대장을 붙들어 올 수가 있다.
하지만 지(志)는 나에게 있는 것이기에 남이 빼앗아갈 수가 없다. 지(志)를 지닌 인간은 부귀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빈천하다고 해서 절개를 바꾸지 않으며 위세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맹자는 "지(志)는 氣(기)의 장수이다"라 했고, 또 "선비는 지(志)를 숭상한다(士尙志)"고 했다.
이황은 맹자의 말에서 발단하여 선비가 무엇을 숭상하는가에 따라 한 시대가 융성하기도 하고 타락하기도 한다고 지적하고 당시의 선비들이 무엇을 숭상하고 있는지 '책문'에서 물었다.
지금 우리는 과연 지(志)를 숭상하는가? 지(志)를 훼손시키는 다른 무엇을 숭상하는가?
⏹ 필부불가탈지야(匹夫不可奪志也)
필부에게서 그 뜻을 빼앗을 수 없다
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군(三軍)에서는 그 장수를 빼앗을 수는 있어도, 필부에게는 그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외압에 맞서서 자신의 올곧음을 굽히지 않으려고 할 때 쓴다.
논어집주(論語集注)에서는 이 구절을 삼군의 용맹은 남에게 달려 있고, 필부의 뜻은 자기한테 달려 있으므로, 장수는 빼앗을 수 있지만 뜻은 빼앗을 수 없다고 하면서, 만약 빼앗긴다면 뜻이라고 이를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이 맞는다면, 뜻이란 한 사람의 고유함(개별성)을 이룩하는 '마음의 정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조 없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정체는 마음속에 어떤 뜻이 품었느냐에 따라서 정해진다. 공자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 맹자는 선비는 뜻을 숭상한다(尙志)고 말했다. 과연 나는 어디에 뜻을 두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 삼군가탈수야(三軍可奪帥也)
형병에 따르면 삼군(三軍)이란 대국(大國; 제후국 중에서 규모가 큰 나라)의 군대를 말한다. 주나라 때 1군은 1만 2500명으로 이루어졌다. 천자는 6군을 통솔했고, 제후들은 나라 크기에 따라 각각 3군, 2군, 1군을 거느렸다.
춘추시대에는 삼군이 아주 큰 규모의 군대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군대가 아무리 크더라도 군사들의 사기가 꺾인다면 작은 공격에도 저절로 무너지는 법이다.
따라서 삼군한테서 그 장수를 빼앗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수(帥)는 삼군 중 중군(中軍)을 이끄는 장군을 말한다. 가장 깊숙한 곳에 있으면서 전체를 통솔했다.
◼ 필부불가탈지야(匹夫不可奪志也)
필부(匹夫)는 평민 또는 서민을 말한다. 김도련에 따르면, 옛날에 사대부 이상의 신분을 가진 이들은 아내 외에 첩을 둘 수 있었으나, 평민은 오직 처만으로 배필을 이루었기에 필부라고 한 것이다.
한낱 평민이라 할지라도 정의롭고 올곧게 다져진 마음은 단단해서 목숨보다도 빼앗기 어려운 법이다. 사람의 몸은 결코 운명을 거스를 수 없으나, 사람의 마음은 운명에 굽히지 않을 수 있다.
항우(項羽)는 장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도 한 수 시로써 뜻을 드러내어 비장한 아름다움을 남겼다.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수 있네. 시절이 이롭지 않으니, 추(騶)가 나아가지 않는구나. 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할 수 있으리. 우(虞)여, 우(虞)여, 너를 어찌할 것인가."
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騶不逝.
騶不逝兮可奈何.
虞兮虞兮奈若何.
자신은 여전히 나아가 싸우고 싶으나, 시절의 불리함을 알았는지 애마인 추가 앞으로 가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다고 읊는 것, 이것이 바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장부의 뜻이 아니겠는가.
⏹ 論語 子罕 25章
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삼군의 거대병력으로부터도 우리는 그 장수를 빼앗을 수 있다. 그러나 초라한 필부에게서도 그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
삼군의 장수를 빼앗는 것은 내가 하고 못하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삼군의 용맹에 달렸다.
삼군의 용맹이 강하면 내가 아무리 강해도 빼앗고자 하나 불가능하다. 반대로 삼군의 용맹이 약하면 내가 비록 강하지 않아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빼앗을 수 있다.
그러나 필부의 뜻은 빼앗고 빼앗지 않고 여하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렸다. 내 뜻이 강하면 빼앗을 수 없다. 만약 빼앗을 수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뜻이라고 할 수 없다.
지자심지지야(志者心之之也)라는 말이 있다. 뜻은 마음이 움직여 가는 것을 뜻한다는 말이다. 필부(匹夫)라도 확고하게 지향(志向)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었다면 누가 감히 그 마음속에서 빼앗을 수 있으랴. 본인이 풀어 내 놓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군기(軍紀)가 와해(瓦解)되면 삼군(三軍)이 아니라 천군만마(千軍萬馬)도 물거품 같이 무너진다. 필부(匹夫)의 뜻이 확고하면 죽음도 불사(不辭)한다.
고구려를 공격해 온 당 태종이 이끈 수십만의 군사가 한 변방의 작은 성인 안시성(安市城) 군민(軍民)이 결사(決死) 항전(抗戰)함을 이기지 못했다.
신라의 박제상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왕자를 구하고 자신은 차마 견딜 수 없는 악형을 받다가 죽기까지 조국 신라에 대한 충성심을 굽히지 않았다.
신라의 화랑관창이나 백제의 성충이나 고려의 강조 정몽주 같은 이들이 모두 이와 같다.
임진왜란 때 동래성 싸움에서 비록 관군(官軍)은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왜군의 총칼에 함락 당했으나 동래부사 송상현은 온몸을 적에게 난도질당해 죽어가면서도 끝내 뜻을 빼앗기지 않았다.
⏹ 마음을 얻는 자가 진정한 리더
필부불가탈지야匹夫不可奪志也)
한 사나이의 강한 의지는 빼앗을 수 없다
공자는 평생동안 인(仁)의 실천을 위해 헌신해왔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있기에 가능했다.
공자는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고 특히 마음을 얻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공자의 인간존중 사상을 잘 나타내는 구절이 있다.
삼군가탈수야(三軍可奪帥也)
필부불가탈지야(匹夫不可奪志也)
삼군이나 되는 대군을 통솔하는 장수를 빼앗을 수는 있어도, 한 사나이의 강한 의지는 빼앗을 수 없다.
공자 당시에 삼군(三軍)은 제후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많은 군대의 규모였다. 일군(一軍)이 1만2,500명이었으니 삼군(三軍)은 3만7,500명이다.
이처럼 막강한 군대를 호령하는 총사령관을 빼앗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평범한 소시민인 한 사나이의 마음을 빼앗을 수는 없다.
공자는 그만큼 인간을 존귀하게 여겼고 남의 인격과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힘 없는 한 사나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힘 있는 총사령관을 빼앗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공자는 이와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했다. 삼군(三軍)의 총사령관이라는 인간이 준 지위보다는 개인이 각자 마음 속에 지니고 있는 굳은 의지가 보다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진정한 사랑의 실천은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할 때 이루어진다. 힘과 권력으로 사람을 굴복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마음까지야 빼앗을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의 마음은 들풀과 같다. 들풀은 바람이 불면 고개를 숙인 채 바닥에 엎드릴 뿐이다. 그러나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고개를 내민다. 이와 같이 아무리 힘 없는 존재일지라도 그 마음을 억지로 뺏기란 어려운 일이다.
匹夫不可奪志也의 좋은 사례를 세계적인 명저 '죽음의 수용소'의 저자인 빅터 프랭클 박사가 보여주고 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로서 의사로 활약하다가 2차 대전 중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부모, 아내, 두 자녀와 함께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 처참한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가족 모두 수용소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한다.
이러한 시련을 통하여 그는 생사의 문턱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자신이 반드시 살아남아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목표가 서자 강한 생존 의지가 생겼다.
그는 결국 살아남아 자신의 경험을 책에다 담았다. 이 책 속에서 저자는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에 대하여 실감나게 기록하고 있다.
체력이 좋은 사람들이나 민첩한 사람들이 먼저 무너지고 오히려 허약해 보이는 사람들이 끈질기게 버티어 나갔다. 처음에는 이런 현상을 이상하게만 여기다가 점차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수용소의 처참한 조건에서 꿋꿋하게 견디어 나가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고난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 삶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자기 자신은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이웃과 동료들을 돕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끈질기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된 것이다.
반면에 아무리 인간적인 수단이 탁월하고 체력 조건이 좋아도 삶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쉽사리 무너짐을 보게 되었다.
그는 언제 끌려가 죽을지 모르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을,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아무리 억압적이고 혹독할지라도 외부 상황에 대한 나의 태도만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로고쎄라피(Logotheraphy)라는 의미요법을 개발하여 심리치료에 활용했다.
어떤 억압 속에서도 마음을 빼앗을 수 없다는 匹夫不可奪志也의 생생한 사례를 프랭클박사가 증언하고 있다.
그러면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마음을 얻는 것이다. 인간은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면 감동한 나머지 닫힌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이솝 우화에 나오듯이 사나운 바람은 나그네의 겉옷을 벗길 수 없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볕만이 길가는 나그네의 두터운 외투를 벗길 수 있다.
주말 사극으로 '대왕 세종'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하늘이 내린 천민(天民)으로 생각하고 항상 백성의 안정과 행복을 염두에 두고 의사결정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왕의 권력을 가지고 칼을 휘두르지 않고 반대파라도 설득하는 장면에서 민주적 리더인 세종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세종대왕이 노비 장영실을 등용하는 과정에서 필부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장영실은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비천한 출신이었지만 그의 재능을 높이 산 세종의 배려로 중국에서 공부하고 노비에서 벗어나 관직에 등용되었다.
이 때 신분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양반 세력의 반대가 무척 심했지만 세종은 단호하게 밀고나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
장영실은 세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신명을 바쳐 각종 과학기계를 발명하여 조선시대의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게 만든다. 그가 제작한 대표적인 발명품만 봐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천문의(天文儀), 금속활자 갑인자(甲寅字)의 주조, 우리나라 최초의 물시계인 자격루, 해시계인 현주일귀 등을 만들었다.
또 천체관측용 대·소간의(大小簡儀), 휴대용 해시계, 태양의 고도와 출몰을 측정하는 규표(圭表), 세계 최초의 측우기 등을 발명하였다.
세종대왕이 그의 마음을 얻게 되자 놀라운 천재성을 발휘하여 과학기술의 수준을 높였고 농사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세종은 장영실의 능력을 인정하고 칭찬함으로써 그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최근 섬김 리더십이 강조되는 이유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때 구성원들이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데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업의 경영자들도 직원들의 소리를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기적이 일어나는 법이다.
경청은 직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진정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갈 때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고는 필부의 마음을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다.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지름길은 그들을 고귀한 존재로 여기고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갈 때 가능하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匹夫不可奪志也라고 외친 공자의 참뜻을 이해하고 가슴으로 다가가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