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단정한 머리를 한 건장한 사람들이 단체로 모여 있다. 이들의 신분은? 정체를 유추하는 데 범위는 그렇게 넓지 않을 것이다. 군인, 운동선수, 경찰 …. 대략 몇몇 분야로 국한될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군복을 입고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다. 바로 군인이라는 답이 나온다. 짧은 머리와 군복은 군인의 외양적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데 호기심이 솟는다. 군인은 왜 머리가 짧아야 할까?
시대에 따라 변화…고대~근대 긴 머리 선호 소속과 그에 대한 복종 서약, 패기·열정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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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훈련 중인 해병대 장병들. 해병대는 이른바 ‘상륙돌격형’이라는 특유의 머리 모양을 고수한다. 이는 해병대의 이미지 에도 들어맞는 강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전투 시에도 많은 이점이 있다. 정의훈 기자 |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군인들도 처음부터 짧은 머리는 아니었다.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는 긴 머리를 하면, “미남은 더욱 잘 생겨 보이고, 추남도 더욱 무섭게 보인다”라며 병사들에게 긴 머리로 기를 것을 강요했다. 그리하여 스파르타 병사들은 흔히들 결전을 앞두고 무기와 전술 점검은 물론 머리를 가꾸는 데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해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알렉산더 대왕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긴 머리는 백병전에서 머리채를 잡힐 수 있으므로 불리하다’고 해 병사들에게 가급적 짧은 머리를 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그 후 로마시대나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각 부대의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 특색 있고 다양한, 주로 긴 헤어스타일이 유행했다. 특히 카드네트(cadnettes)라는 독특한 형태의 옆으로 땋은 헤어스타일을 많은 국가에서 공유했다. 18~19세기 영국군은 장발을 규정화했는데 긴 머리를 뒤로 묶는 독특한 꽁지머리 헤어스타일인 큐(queue)를 고집했다. 하지만 이러한 장발은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어 많은 질병을 유발함으로써 1820년대에는 장발 규정이 사라졌다. 이후 유럽의 왕권이 강화되고 근대·국민국가가 되면서 국민들에게 복종심을 유발하고 획일적인 통일성을 주기 위해 짧은 머리가 보편화됐다.
우리 군은 어떨까? 당연히 짧은 머리다. 머리가 길어지면 머리에서 나는 냄새도 심해질 뿐만 아니라, 관리도 힘들어진다. 전쟁이 벌어진다거나 전쟁지역에 투입된다면 자주 씻을 겨를도 없고, 씻을 만한 장소도 없다. 머리가 길다면 머리에 더 신경이 가고 스타일을 꾸미려고 할 것이다.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쓰는 군용 헬멧 등을 착용할 때도 불편함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적군과의 직접적인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백병전에서 군인이 서로 머리를 잡아당기고 싸우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생각만으로도 너무 어이없는 일 아닌가.
또한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다는 것은 어떤 집단에의 소속감과 그에 대한 복종을 서약하는 것이다. 머리카락은 인간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부위이기 때문이다. 스님들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도 마찬가지 의미다. 다시 말해 머리를 짧게 자른다는 것은 통일성과 소속감을 주기 위해 군복을 입는 것과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 동일한 스타일은 아니다. 각 군의 특성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다.
육군은 머리를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운 전시에 긴 머리카락으로 말미암아 전방 주시나 사격에 방해되는 것을 방지하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백병전 때 적군에게 머리카락이 잡히는 걸 방지하는 데 큰 이점이 있다.
해군은 앞머리 7cm, 옆머리는 귀에 닿지 않을 정도, 뒷머리는 옷깃에 닿지 않을 정도로 한다. 이는 바다에 빠졌을 대 머리카락을 잡아 쉽게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해병대다. 앞머리와 윗머리만 조금 남겨두고 모두 잘라버리는 이른바 ‘상륙돌격형’이라는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적의 진영에 상륙해 고지를 점령하는 상륙작전을 하는 해병대의 특성상 전투 시 수많은 부상은 피할 수 없다. 이때 해병대의 상륙돌격형 헤어스타일은 응급조치를 해야 하는 머리 부분의 부상 시 빠른 치료를 가능케 한다. 상처 부위의 머리카락을 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진흙이 머리에 붙지 않는다는 군사적 장점도 있다.
시대에 따라 때로는 머리카락이 긴 것을, 때로는 짧은 것을 선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인들의 머리 스타일은 멋스러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언제나 전장에서 실용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이유에 따라 결정돼 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군인으로서의 패기와 열정을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