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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 기황후 貢女 奇皇后
“모진 비바람에 쓸리고 할퀴어 마모된 돌멩이가 더욱 야물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39
정전에서는 기어이, 수태의 마저 소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재상들은 자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직접 은의 맥을 짚어 실제 태중에 황실의 혈맥이 자라고 있는지를 확인해야만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소환된 사람은 수태의, 그리고 이 일의 당사자로 떠오른 은까지 두 사람. 그 둘이 동시에 정전에 들어섰을 때, 그곳은 물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고요에 휩싸였다. 모두가 은을 아니, 은의 배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은은 갑자기 끼어들어 제가 차린 밥상에 수저를 얹으려는 고약한 암캐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폐하.”
나이든 수태의가 주섬주섬 옷섶에서 면포를 꺼내 은의 손목에 얹고는 그 위로 제 손을 갖다 댄다. 고 환관이 그런 모습들을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지난 사건동안, 황제의 혼절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굳이 명령하지 않고도 묵묵히 감춰주었던 수태의였지만 이 일에 관하여서는 아무것도 귀띔한 바가 없었다. 그가 다시 황제를 향한 어진 충성을 보여주기를 바랄 밖에 도리가 없었다.
수태의는 맥을 짚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 가만히 눈을 감았다. 손끝에 전해오는 일정한 박자의 미세한 떨림에만 모든 신경을 맞추었다. 하나 둘 하나 둘. 그 속에서 황실의 혈맥이 고동치는 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더욱 깊이 골몰한다. 그리고 수태의는 활기찬 은의 맥으로부터 진실을 전해 받았다. 그는 곧 감았던 눈을 뜨고 은의 손목을 덮었던 면포를 거두어 잘 정리해서는 옷섶으로 밀어 넣었다.
“어찌 되었는가.”
“말씀을 해 보시게..!”
안달 난 재상들이 머리 흰 수태의를 향해 보채고 나섰다. 만약 은이 정말로 황제의 혈손을 회임하였다면 이것은 입후의 자격 자체를 떠나, 황제의 즉위 근 10년 만에 맞이하는 커다란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수태의가 황제를 향해 정자세로 무릎을 꿇고는 흐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모든 이가 그의 입술이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은은 찰나의 시간, 우겸과 눈을 마주쳤다.
“폐하,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옵니다. 경하 드립니다.”
순간 정전 안, 많은 재상들의 입으로부터 갖가지 의미가 담긴 탄식이 새어나왔다.
“감축 드리옵니다, 폐하!”
황제의 앞에 가장 먼저 부복한 진 대인에 뒤이어 많은 재상들이 기쁜 얼굴로 이 경사를 축하했다. 고 환관 역시 웃으며 고개를 숙였지만, 진 대인의 웃음에는 다른 의미가 섞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웃음은, 여기까지 왔다면 한 발 물러서주겠다는 의미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부복했던 우겸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이 안에서 기뻐하지 않고 있는 단 한 사람을 발견했다. 정전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그는, 웃고 있지 않았다.
“잠시, 논의를 파한다.”
...
상상조차 못했던 기쁨에 도취된 재상들은 서둘러 정전을 빠져나가는 황제의 모습을, 감격을 이기지 못한 행동일 것이라 미루어 짐작하고 저들끼리의 축하해 여념이 없었다. 떠들썩한 정전을 나가버린 황제와 그 뒤를 따른 고 환관과 우겸.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은은 혼자 남겨져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다. 어느새 자리를 비운 수태의가, 나가기 전 저를 바라보던 의미심장한 눈길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은에게 먼저 다가와 선뜻 축하를 건넨 것은,
“감축 드립니다.”
소홍이었다.
“그간 폐하께서 가장 아끼시던 7귀들께서도 하지 못하신 일을 해내셨군요.”
조금의 거리낌도, 비아냥도 없는 순수한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그 얼굴을 은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여인이 진 대인의 막내딸, 소홍. 은은 제 대답을 기다리며 밝게 웃는 그 얼굴 앞에서 갑자기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실상 제게는 진심어린 축하를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유치하고 깨끗하지 못한 방법으로 황후의 자리를 노리는 제가, 마치 저급한 도둑고양이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시선을 피하며 표정이 어두워지는 은을 향해 소홍이 걱정스레 묻는다.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태의를 불러야 할까요?”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전,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 있기가 너무도 불편해 죄책감마저 들 지경이었다. 도망치듯 서둘러 돌아서려는 은의 양손을 덥석 잡아든 소홍이 인사를 건넸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몸조심하세요.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貢女 奇皇后//
황제는 곧장 황제궁으로 향했다. 정전에서부터 자신의 방에 이르기까지 잰걸음으로, 뒤따르는 고 환관과 우겸에게는 단 한 마디도 건네지 않은 채. 그리고 도착한 방으로 들어서는 그를 두 사람이 따라 들어갔다. 난감한 기색의 고 환관과 우겸이 시선을 교환했다.
“폐하-”
“설명하라.”
은이 자신을 속이고 다른 사내를 만난 것이 아니라면 회임이란 것은 천만부당한 일이며, 결국 오늘의 일은 태감의 계획 하에 원의 모든 재상들을 기만한 ‘거짓’이라는 것을 황제는 알고 있었다. 그가 기뻐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게 한 마디의 표시도 없이 이런 일들을 꾸미다니 태감답지 않군.”
“그렇지 않습니다. 노여움을 푸십시오, 폐하.”
“허면 은이 이런 일을 계획하고 부탁하던가.”
은이 정전의 저를 찾아와 후궁의 소용 이야기를 꺼냈을 때 물리치지 않은 것은 제 탓이었다. 그것을 기회로 이용한 것 역시 제 선택이었다. 은이 귀띔한 일이었다고 했다간 사단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게다가 황제는 소용이 회임중이라는 것도, 그것이 평부사의 아이라는 것 역시 모르고 있었다.
“아닙니다, 폐하. 모든 것은 신의 생각입니다.”
황제는 답답하다는 듯이 등을 돌려버렸다.
“신의 용렬함을 용서하십시오. 하오나, 그대로 있었다가는 은의 입후가 영영 불가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 아일 입후에 올릴 거였다면 무엇하러 그간의 고초를 거쳤겠나. 태감은 벌써 잊은 게로군.”
“..용서하십시오, 폐하.”
“이런 식으로 모든 일을 해결한다면 연제와 다를 바가 없지.”
우겸은 난처해하는 고 환관과, 냉정히 등을 돌린 황제를 번갈아 보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빨리 다음 일을 구상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했다.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폐하, 돌이킬 수 없는 일이오니 속히 다음을 상량하시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성급하긴 하였습니다만, 태감께서 실현 불가능한 일을 제시한 것도 아니라 사료되옵니다.”
황제가 뒤돌아서서는 우겸을 바라보았다.
“이것을 기회로 삼으십시오. 돌아가시어 파한 논의를 재개하시고 기쁨에 도취된 재상들에게 은을 입후에 올리시겠다 선언하십시오. 그 후에, 지금은 ‘거짓’인 은의 회임을 폐하께서 ‘사실’로 만드시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아니옵니까.”
“허면 정전을 버티고 앉아있는 좌승상과 소저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고 환관이 황제를 대신하여 묻는다. 우겸은 문득, 영원한 마음의 증거로 삼겠다던 머리장식을 하고 정전에 나타났던 은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여기서 진평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야.”
황제의 말이 옳았다. 이미 재상들의 전부가 진 대인 편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를 등진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는 것과도 같았다. 고 환관은 오늘 논의의 처음부터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마지막 보루를 조심스럽게 제안하려 하고 있었다.
“폐하, 좌승상은 은의 회임에 기껍게 축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 발 정도는 물러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니, 폐하께서도 모든 것을 끌어안으시고 양선하시겠다는 뜻을 보여주시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옵니다. 재상들도 거기선 더 이상 대항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되고야 마는군.”
원하지 않았던 일의 반복이라 생각하면서 황제는 쓰게 웃는다. 그리고 다시 정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방문을 나섰다. 은을 입후에 올릴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면 이렇게 할 수 밖에. 그의 걸음이 돌아올 때보다 한결 가벼웠다.
//貢女 奇皇后//
황제궁의 처소로 돌아왔던 은은, 논의를 파했던 황제가 다시 정전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다시 시작된 논의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궁금한 것 투성이인데 도무지 언주가 보이지 않았다. 처소를 나선 은이 황제궁 바깥으로 나와 효궁으로 향하는 길목 중간쯤을 지나치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궁인 둘이 대뜸 웃으며 그런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뭘 축하한다는 것인지. 혹은 일이 다 그르치게 되어 그런 저를 약 올리기 위한 비아냥거림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은은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언주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정전 근처로는 다가가지 못하고 그 주변을 헤매다, 저만치서 열댓쯤은 되보이는 공녀들 틈바구니에 선 언주를 발견했다. 부르기도 전에 먼저 은을 찾아낸 언주가 높이 손을 흔들었다.
“은아-!”
언주가 치마를 움키고는 은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고, 다른 공녀들이 그 뒤를 따라왔다. 그리고 은의 주변을 삽시간에 에워쌌다.
“축하드립니다!”
모두가 좀 전과 같은 인사를 건넸다. 어리둥절해서는 당황한 빛이 역력한 은의 손을, 언주가 마주 잡았다. 침착하려 애쓰며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전의 논의가 모두 끝났어. 드디어, 드디어 황후래-”
“..네?”
“니가 원의 안주인이 되는거라구.”
“그녀는요?”
기뻐하기보다, 소홍에 대해 먼저 묻는 은이었다. 언주의 얼굴에서도 밝은 기색이 조금 누그러지는가 싶더니 안쓰러운 눈으로, 그러나 다행이라는 의미가 담긴 시선으로 은의 양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그리고 마치 당부하듯, 완곡하게 말을 꺼냈다.
“두 사람, 모두.”
첫댓글 에궁. 두 사람 모두 황후의 자리에 오르는 것인가요- 앞으로 어찌 될까요 -
후안 님★ 앞으로의 모습도 지켜봐주세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두사람모두라니!!!ㄷㄷ
햇살따뜻한마루 님★ 두사람 모두! 입니다. 다음화도 지켜봐주세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거짓이 들통나면 끝일텐데..
푸히힝히 님★ 들통날 타이밍이 지금이 아니질 바래야겠죠, 꼬릿말 감사합니다^^
황후가 어떻게 두사람인가요 ㅠㅠㅠㅠㅠ
콩새2 님★ 푼수쟁이 님 말씀대로네요. 앞으로의 전개를 지켜봐주시길. 꼬릿말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사현- 님★ 반갑습니다, 앞으로 자주 뵙길 기대할게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은이만 황후에 오르길 바랐는데 소홍이까지...ㅠㅠㅠ 그래도 은이가 더 많은 총애를 받는 것은 확실한거겠죠?
유리별미곰 님★ 황제의 마음이 가볍지 않기를 바래야 할 것 같네요. 다음화에서 뵙겠습니다, 꼬릿말 감사해요^^
우하 ㅜㅜ 이 소홍이란 사람 괜히 진대인의 딸이 아니군요 얼굴에 철판을 까았어! 쩝 황궁에서 두 여자의 신경전이 또다시 일겠군요;; 다음편을 기대합니다.~ㅎㅎ
헤르티아 님★ 신경전이란 단어에 괜히 제가 흥분되는건 왜일까요ㅎ 다음화도 지켜봐주세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헐!!!!!!!!!!!!닌 소홍이라는 사람완전 시러 ㅠ ㅠ
안녕나의우주 님★ 다음화도 확인해주세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으아..소홍이도 만만찮은 상대일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Tiare★ 님★ 음, 소홍 만큼이나 은도 쉽게 다룰 상대는 아닐거예요ㅎ 서로가 호적수를 만났다고 하면 될까요, 다음화도 지켜봐주세요. 꼬릿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