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는 갈수록 부를수록 아프다
‘연분홍~’ 시작부터 목이 잠긴다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에서 슬픔이 올라오다가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에서 먹먹해진다
복사꽃 그늘에서 낮술에 취해 이 노랠 들어야 한다
1953년 백설희가 대구에서 취입하고 이듬해 선보였다
‘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노래
올해로 일흔 번 봄을 적셨다
절창絶唱이로다
한국전쟁 시절 너무 환해서 더욱 슬픈 봄날의 역설이
전쟁에 시달린 사람들의 한 맺힌 내면 풍경을 보여줬기에
이내 공감을 샀던 노래
어머니는 손로원이 방랑을 계속하자
결혼시키면 마음을 잡게 되지 않을까 싶어 혼인을 권하면서
‘네가 장가를 가면 나도 열아홉에 시집올 때 입었던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꺼내 입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는데
1945년 봄, 소식 한 줄 없는 아들을 그리다가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뒤늦게 객지에서 이 소식을 접한 손로원은
철원 산골짜기에 있는 어머니 묘소를 찾아 눈물을 쏟았다
그가 6.25 전쟁 때 피란살이 하던 부산 용두산 판잣집에는
연분홍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있는 어머니 사진을 걸어두었는데
판자촌에 불이 나면서 그 사진도 타버렸다
그때 황망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것이 바로
‘봄날은 간다’
2004년 계간 ‘시인세계’가 시인 100인에게 물었다
가장 좋아하고 흥얼거리는 노랫말이 무엇이냐고
반세기도 훨씬 더 지난, 그야말로 흘러간 노래
‘봄날은 간다’가 압도적 1위
2위 ‘킬리만자로의 표범’ 3위 ‘북한강에서’
4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5위 ‘한계령’
‘봄날은 간다’를 제대로 부르지 못하면 가수라고 할 수 없다
배호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 김정호 장사익 심수봉 최백호
한영애 이선희 린 말로 아이유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각각의 한과 애절함, 청승과 설움으로 노래했다
한국 가요 중 후대에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노래
음악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
‘봄날은 간다’는 노랫말이 절절하게
스며들 때는 이미 우리 삶은 봄날이 아니다
사랑도 우정도 정점을 지나가야 가슴에 절절함이 박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떠나보내고 떠나와야 한다
머물러 있는 것들은 언젠가 흐르기 마련
연분홍 치마, 옷고름, 산제비, 성황당도 우리 곁을 떠난 것들
‘알뜰한 그 맹세’만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고 있다
봄은 짧다
사계절 중에 가을도 있으나 봄만 짧다고 한다
그게 봄의 정서적 숙명이다
봄이 왔으면 이미 봄은 저만치 가고 있는 거다
세상 모든 아름답고 화사한 건
영원히 머물지 않고 스쳐 갈 뿐이라고
그걸 증거하려는 듯이 봄은 오는가 싶더니
어느결에 떠나간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었다 한들
정인情人은 떠나갔다
옷고름 씹고, 꽃편지 내던지고, 앙가슴 두드려도 돌아오지 않는다
봄은 문득 깨달음을 준다
그 얄궂은 각성
배반의 상처야말로 기실 살아가는 힘이다
결국은 혼자인 것이고 남는 건 추억과 회한뿐
그게 이 노래가 지닌 시적 미학이다
‘봄날은 간다’는 가는 봄을 노래하는 게 아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인생의 덧없음과 사랑의 유한함과
추억의 쓸쓸함을 조우한다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봄은 다른 ‘풍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