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성탄 구유 안에 들어가는 조각상은 종류가 정해져 있나요?
[가톨릭 교리 상식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성탄 하면 반짝이는 전구로 장식된 성탄 트리가 떠오릅니다. 또 구유가 빠질 수 없죠. 성탄이 되기 전부터 성당 마당에 준비된 구유를 보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성탄 구유는 예수님의 탄생 장면을 전하는 루카복음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이 장면의 중심에는 예수님과 그분께서 누우신 구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태어나신 장소 위에 지었다는 베들레헴의 기념 성당을 찾아가 보면, 지금도 그 자리에 구유를 놓아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은 풍부한 상징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동물들에게 ‘먹히는’ 먹이를 놓아두는 곳에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먹히도록’ 내어주신 예수님께서 자리하신 셈이니까요.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는 이 상징을 묵상하시며 “구유에 누워 계신 그분께서 우리의 양식이 되셨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구유에서 태어나신 사건은 실제적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처음으로 구유를 꾸며 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을 재현한 이래, 교회는 복음의 풍부한 의미를 떠올리며 조각상들을 구유 안에 배치했습니다. 가령, 구유 옆에는 항상 소와 나귀가 놓여 있습니다. 이는 이사야서 1장 3절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준 구유를 알건만”이라는 말씀인데, 소는 유다인, 나귀는 이방인을 상징합니다.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는 “유다인들에게서 나온 소와 이방인들에게서 나온 나귀가 모두 같은 구유에 나와 말씀의 먹이를 발견했습니다.”라고 하신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비치했던 조각상들 이외 다른 것들은 성탄 구유에 넣으면 안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 2019년에 성탄 구유의 의미와 가치에 관한 교황 교서 〈놀라운 표징〉을 통해 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부유함만 챙기는 사람이나 거지 등 우리가 구유에 다른 상징적인 인물들을 추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누가 됐든 그들도 다 아기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갈 권리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그들이 구유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막거나 쫓아낼 수 없다고도 하셨지요. 오히려 구유에 추가된 더 많은 조각상들은 온 세상을 향해 누구에게나 선포되는 복음의 기쁨을 잘 표현한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구유는 우리에게 겸손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오신 창조주의 겸손함이야말로 우리의 모범입니다.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 장소 위에 지은 성당의 정문은 참으로 높이가 낮습니다. 허리를 숙이지 않고서는 성당 안에 들어갈 수 없죠. 겸손한 모습으로 나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아기 예수님을 제대로 찾아뵐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우리는 성탄 구유에 아기 예수님까지 모셨고, 이제는 저 멀리서 별을 보고 달려올 동방 박사들의 자리만 남겨놓았습니다. 하지만, 아시죠? 그 곁에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 꿇고 앉아야 할 우리의 자리 또한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요.
[2024년 12월 29일(다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가정 성화 주간) 서울주보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