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빵 말리기
유지인
그가 내게 젖은 빵을 보여줬다
아직은 빵의 내부를 열어볼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윗입술을 달싹이다 만다
한 번도 제대로 확 부풀어본 적 없는
찬물 속 누룩 같은 얼굴들에게
빵은 자잘한 인사말 정도는 건네야한다는 건지
툭 하면 짓물러진 귀퉁이로 짧게 인사한다
안녕! 그대의 빵은 안녕하신가?
구름의 빵틀을 벗어난 빵은
차마 돌아볼 수 없을 때에 잘 가란 인사도 없이 사라졌고
필요 없어질 때에 다시 오려는 건지
하루 종일 뒤가 가려운 때가 있다
그가 갔다 어디든 막일이라도 찾아봐야 한다고
한 바구니에 담겨져 덩달아 시큼해져가는
빵의 내부가 끊임없이 싸움을 걸어왔다는 걸
그의 의식이 관통한 너덜해진 운동화를 보다 눈치챈다
우린 이제 따뜻한 공기층이 집을 짓는
발효의 한 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주사위처럼 던져진 물음의 시간들이 움직일 줄 모른다
안부 인사 묻지 않는 사람들이 낮게 등 구부리고 사는
고시촌에서도 젖은 빵은 내부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찢어 먹다만 책갈피가 빵이 되는 거 봤니?”
누가 아무데나 낙서해 놓았다
훔쳐지지 않는 생의 모든 것은 젖은 빵 속에 있다고
짓다만 미분양 아파트 위를 위태하게 건너던 빗줄기가
안 그래도 시큼해지는 빵의 내부를 충동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