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에 만나는 대선
올해는 해방된 지 80년, 나라와 개인의 역사가 떠오릅니다. 광복의 기쁨도 잠깐, 소련의 지원과 중공군이 개입한 북한의 6.25남침으로 우리 가족은 전 재산을 날리고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만의 비극이 아니었죠.
주문 제작한 세발자전거를 타고 넓은 마루를 돌던 행복 대신에 "언제 배불리 먹나"가 소원이 됐습니다. 국민학교 통신부에는 늘 ‘신장, 흉위(가슴둘레) 미달’이라고 적혔죠. 이런 어릴 적 영양실조의 포한이 자기암시가 되어 식물 재배를 좋아하고 식량을 만드는 텃밭 농사를 짓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5월 9일 옥수수 모종을 심었습니다. 한 칸에 두 알씩 50칸에 키운 착한 단골 모종 상에서 포트 모종을 샀죠. 7월 말쯤 나의 점심이 됩니다. 한 자루를 반으로 잘라 전기포트에 넣고 마냥 끓여 자일리톨의 일종인 자일로스의 단내가 날 때 뚜껑을 열고 식혀서 알알을 깨물며 고난의 시절을 떠올립니다.
어릴 때 학교에서는 매일 점심시간에 팥빵을 각 학급에 배당하는 당번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강추위에도 러닝셔츠와 ‘도쿠리(호리병 모양의 스웨터)’와 검정 교복을 입었죠. 신발은 낡을 대로 낡았고 어수선한 시대라서 여기저기 공사판이 많아 골목길로 동아일보를 돌리다 보면 못에 발바닥이 찔리거나 사나운 개에게 물리기도 했습니다. 개를 매우 좋아하는데도 덩치 큰 놈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다리를 무는 데는 어쩔 수 없었죠. 당시 신문 배달은 많은 친구들의 첫 직업이었습니다.
1961년 2월 조총련의 자금 지원 루머 속에 창간해 거의 무료로 뿌렸다던 민족일보가 있었는데 대북 강경책을 비판하다 석 달 만에 폐간되었고 조용수 발행인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2008년 재심에서 무죄 선고되었습니다. 하루는 신문을 돌리고 귀가하는데 극장 앞에서 어떤 신사가 내게 극장표를 주었습니다.
제목은 이범선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든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이었습니다. 실성한 어머니가 이북인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듯 끊임없이 “가자”고 외치고 주인공의 동생은 권총으로 은행을 털려는, 판자촌 월남 가족들의 총체적 난국이 그려진 영화였습니다. 어머니가 소리 지를 때마다 하나뿐인 낮은 촉수의 전등이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1961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혁명공약을 조회 시간에 복창하던 나는 “절망과 기아선상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라는 대목이 좋았습니다. 고등실업자가 넘치던 시대였습니다. 7,000여 명의 광부와 1만여 명의 간호사가 서독으로 떠났습니다.
1964년 6월 3일 대학가와 시민들이 주장하는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 반대를 억누르기 위해 서울에 계엄령이 내려졌고 이명박, 손학규, 이재오 씨 등이 체포되었습니다. 계엄령은 7월 29일 해제되었고 1965년 12월 한일기본조약이 발효되었습니다. 6.3사태는 졸속 굴욕외교를 막으려고 저항하여 유리한 협상 조건으로의 압박을 가했을 테지만 한일관계 회복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었습니다. 1964년 1월 로버트 케네디 미 법무장관은 박정희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일관계의 정상화가 동북아의 안정과 공산주의 억제에 필수”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4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은 390만 8,900명인데 한국인이 72만 1,600명으로 중국의 76만 5,100명에 이어 2위를 기록해 높은 호감도를 드러냈습니다. 한미일 안보협력은 북·중·러 위협에 대응하는 지렛대가 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1차 탄핵소추안에 들어 있던 “북·중·러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하며… 전쟁의 위기를 촉발시켜…”운운한 내용에 미 국무부를 대변하는 미국의 소리(VOA)가 우려를 표시하자 민주당은 이를 2차 탄핵안에서 삭제했습니다.
국교정상화의 청구권 자금으로 한국은 일본에서 8억 달러의 유·무상 원조와 5억 달러의 기업 직접투자를 유치했습니다. 포항제철(포스코)과 경부고속도로가 청구권자금으로 건설한 대표적인 기간 산업시설이었죠. 8억 달러는 우리나라의 약 2년 반치 예산에 해당하는 거액이었습니다.
1965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5달러로 싱가포르 516달러, 홍콩 667달러, 자유중국 대만 229달러에 한참 처졌습니다. 작년 국민소득은 3만 6,624달러로, 일본의 3만 2,859달러를 앞질렀습니다. 내가 아는 일본 중소기업인은 일본의 원조가 ‘한강의 기적’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자랑스레 말합니다.
“경부고속도로를 왜 만드냐? 부자들이 첩을 데리고 놀러 다닐 것.” 저명한 경제학자의 주장에 야당이 맞장구쳤죠. “자동차를 누가 타냐? 공장 만들지 말고 수입하라”며 중화학 경제 정책을 반박했습니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0%라고 합니다. 30여 공직자를 줄줄이 탄핵했으니 몸보신 풍토에서 정책이 제대로 집행될까요. 재벌의 총수를 가두고 최고급 반도체나 인공지능(AI)을 발전시킬 수 없죠. 미국의 구글이나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목표"라는 X의 AI는 추론하는 능력이 놀랍습니다. 주어진 팩트를 대입하여 논란 중인 공직선거법 위반의 ‘거짓말’ 재판이나 암 진단 의료 등에도 이용해보면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최근에 프린터를 샀더니 태국제였습니다. 이제 텔레비전도 태국산이나 베트남산이 쉽게 보입니다. 인도네시아는 풍부한 인구와 지하자원으로 한국을 따라가자고 열을 올린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너무 한눈을 파는 게 아닌가요. 5월 초 긴 연휴에도 카드매출 건수는 작년보다 11퍼센트 줄었고 해외 사용은 급증했답니다.
돌아가면서 놀자고요. 나는 늘 항공기와 열차, 버스 등 대중교통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한꺼번에 8시간씩 5일만 근무하고 전체가 쉰다면 사회가 돌아갈까요. 병원이나 의원도 마찬가지예요. 개인은 놀더라도 전체가 놀지는 않는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겁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개선할 난제가 산적한데 자신이 감옥에 안 가려고 기기묘묘한 방탄 입법과 탄핵으로 유례없는 국정공백입니다. 지금 국군통수권자는 누구입니까?
언론인 출신의 이낙연 전 국무총리(전 민주당 대표)가 특강에서 대법원장을 탄핵하고 대법관 수를 13명에서 30명으로 늘려 자파를 심으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독재 정권과 뭐가 다르냐고 했죠. 서울대 법대 출신인 이 전 총리는 법률이 무너지면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고 말했습니다. 방탄 입법으로 장기 독재정권이 들어설 수 있다고 경고헀습니다. 헌법은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사회적 계약이라고 강조했죠.
192석으로 입법부를 장악하고, 판검사 고발과 탄핵 등으로 사법부와 헌재를 장악하고, 이제 대선에서 마지막 행정부를 장악하면 3권 분립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죠. 지금은 의회 독재인데 널린 법조 출신 정치인들은 뭘 생각하나요?
이번 대선은 진짜 체제 전쟁입니다. 문재인 정권이 연성독재로 비판받았지만 지금부터는 강성독재의 문제입니다. 자유민주주의냐, 사회주의 전체주의냐. 독재 치하에서라도 코인과 주식, 부동산으로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나요, 태평한 40, 50대는?
탈북자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외칩니다. 쌀도 석유도 줄을 지어 배급 타던 시절이 끔찍합니다. 세상이 다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었죠. 나는 후손을 위해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일조하렵니다.
나는 공직선거법이 명시하고 있는 투표관리관의 사인(私印, 개인 도장) 날인이 없는 사전투표는 안 할 것입니다.
투표자의 종이 명부를 만들지 않는 사전투표는 안 할 겁니다.
투표함을 뜯으면 흔적이 남는 파쇄 잔류형 봉인지를 붙이지 않는 사전투표는 안 할 겁니다.
당일 투표와 현장 개표, 모든 음모를 원천봉쇄하는 타이완의 직설적인 자유민주주의가 마냥 부럽습니다. 한국의 민도가 타이완보다 떨어져 퇴행하고, 시행을 못하나요? 대졸 국민이 1,600만~1,800만 명이라는데요.
국운이 남아 있다면 풍부한 손짓과 현란한 언변의 리스크 쪽일까요, 청백한 삶 자체가 공감인 '스토리텔링' 쪽일까요? 나라 운명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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