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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향기있는 좋은글 원문보기 글쓴이: 망실봉1
러셀의 고백
1924년 어느 여름 날, 영국 철학가 버트런드 러셀은 중국 쓰촨성에 도착했다.
쓰촨성의 자랑인 아미산을 구경하기로 한 그는 일행과 함께 각각 가마를 타고 산에 올랐다.
하지만 아름다운 산세를 감상하는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신이 탄 가마를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가파른 산길을 걸어가는 가마꾼 두 명을 보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가마꾼들은 가마를 탄 내가 얼마나 미울까? 아마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게 틀림없어.’
산허리에 마련된 전망대에 이르렀을 때 러셀은 가마꾼에게 잠시 쉬어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가마에서 내려 그들을 관찰했다. 가마꾼들은 나란히 앉아 담배를 꺼내 물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러셀은 그들이 무더운 날씨나 가마를 탄 사람, 혹은 자신의 고단한 운명을 원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가마꾼들은 깔깔거리며 앞다퉈 자기 고향에서 유행하는 농담을 늘어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러셀에게 나라 밖 사정을 묻기도 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후 러셀은 <중국인의 성격>이라는 글에서 이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판단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 옮긴 글 -
혼자가 되는 게 두렵다면 지드를 만나라
내 침대 머리맡에는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 놓여 있다. 잠들기 전 한두 문장을 읽다 보면 이토록 좋은 글을 쓴 작가도 완벽한 생을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깨를 토닥인다.
이 책이 출판된 후 10년간 겨우 500부만 팔렸다는 것, 2000부도 못 되던 초판이 다 팔리기까지 거의 20년이나 걸렸다는 슬픔도 내 등을 쓰다듬는다.
1947년, 78세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를 안 건 중학생 때였다. 당시 학교는 일주일에 한 권씩 세계 문학 작품을 읽도록 했는데 그의 소설 '좁은 문'과 '전원 교향곡'도 그때 만났다. 심리나 종교적 해석은 고사하고 사촌 간 사랑이나 목사의 세속적 욕망조차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열네댓 살 소녀의 감성은 소설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산문집 '지상의 양식'을 읽은 건 한참 뒤였다. '너 자신만의 모습을 찾으라'는 목소리가 곳곳에 배어 있는 문장들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별처럼 멀고 눈부신 것이었다.
하지만 소설들을 통해 작가가 말하려 했던 것이 세상이라는 사슬에 묶여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애틋함, 그 속박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삶에 대한 희망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가 된다는 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 완전한 혼자가 된다는 뜻이다.
그게 두려운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맛집에서 밥을 먹고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며 타인의 공감을 바란다.
그 초조한 기다림 속에서 지드의 책을 만난다면 진실한 친구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나는 오직 남들과 다른 면 때문에 흥미를 느낄 뿐. 공감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해."
너 자신만의 모습을 찾아라. 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하지 마라.
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도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말하지 말고,
남도 쓸 수 있는 것이라면 글로 쓰지 마라.
초조하게 아니 참을성을 가지고 아! 모든 존재들 중에서 결코 다른 무엇으로도 대치될 수 없는 너라는 존재를 스스로 창조하라.
ㅡ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중에서. 조선일보 김규나 소설가 Can Can Piano Duet 캉캉 피아노 듀엣 - Jacques Offenbach 오펜바흐.mp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