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현님께서 올려주신 '고려관문 흑산도와 송나라 서긍의 고려도경'이란 글에 대한 반론을 하고자 합니다.
고려도경의 내용을 보면
※ 봉경
고려는, 남쪽은 요해로 막히고 서쪽은 요수와 맞닿았고 북쪽은 옛 거란땅과 연속되고 동쪽은 금 나라와 맞다았고 또 일본. 유구.담라.흑수.모인 등 나라와 견아상제의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직 신라와 백제가 스스로 그 국경을 견고히 하지 못하여 고려 사람들에게 병합되니, 지금의 나주도와 광주도가 이것이다.
그 나라는 경사의 동북쪽에 있는데 연산도로부터 육로로 가다가 요수를 건너 동쪽으로 그나라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릇 3천 7백 90리이다.
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경동.회남.양절.광남.복건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내주.빈주.체주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중략
옛적에는 봉경이 동서는 2천여리, 남북은 1천 5백여리었는데, 지금은 이미 신라와 백제를 합병하여 동북쪽은 조금 넓어졌지만 그 서북쪽은 거란과 연속되었다.
->고려도경 내용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강역 부분입니다. 그리고 고려가 후백제 후신라를 병합하여 동북쪽이 넓어졌습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는 아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왜 후백제와 신라를 병합햇는데 동북이 넓어졌는가.... 그리고 그 동북쪽은 나주도와 광주도인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고려도경 중 이 부분은 강역에 대한 핵심내용입니다.
※ 항해경로
서긍은 5월 24일 배를 타고 출발하지만 정식적인 출발은 5월 28일 매잠을 떠나면서부터입니다.
자 5월 28일 아침 일찍 매잠을 떠난 서긍은 봉래산을 지나게 되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28일 아침일찍 출발을 햇는데 봉래산을
지난 시간대가 오전입니다. 이게 가능한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목포에서 제주도까지 4시간인가 다섯시간인가 걸렷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리 바람을 잘 탓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서울 부산보다 먼 거리이니 약 600 km로 잡고 아침 6시에 떠나 12시쯤 봉래산을 지났다고 한다면 6시간인데 세상에 어떤 배가 시속 100km로 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윤복현님이 올려놓은 항해경로를 보면서 28일 아침부터 6월 2일 아침까지 3일만에 저 거리를 배가 갈 수 있는지도 의구심이 드는군요. 혹시 배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 답변좀 부탁 드립니다.
윤복현님께서 올려놓으신 글을 읽다보니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어 예전에 읽었던 원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윤복현님은 참 중요한 부분을 빼셨더군요. 자 항해 일지를 보면......
매잠(28일아침) -> 봉래산(오전) ->반양초(오전)->백수양(29일)->황수양(29일) ->흑수양(29일) ->협개산(6월 1일) -> 흑산도(6월 2일)
위의 내용을 보면 서긍은 윤복현님께서 말하는 현 제주도인 봉래산을 지나 백수양과 황수양 흑수양을 거처 협개산으로 들어오는데 이 내용을 누락시키셧더군요.
-> 서긍은" 봉래산을 지난 후에는 물이 깊고 푸른색이 유리같으며 물결의 기세가 더욱 터진다"라는 표현을 썻으며 이 말은 곧 봉래산을 지나기 전에는 물이 깊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 백수양에 대한 기록 중" 그 근원이 말갈에서 나왔기 때문에 흰색이 된 것이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제주도에서 흑산도까지 가는 도중
어디가 백수양인지.... 애매한 부분이라 누락? 시키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 황수양 "황수양은 모래톱이다. 그 물은 흐리고 얕다. 그 모래는 서남쪽에서부터 와서 큰 바다 가운데 1천여리에 가로 놓인 것으로 곧 황하가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라한다" 중략 "중국에서 구려로 가는 데에는 오직 명주의 길만이 이곳을 지나가는데 등주의 판교에서부터 건나가면 이곳을 피할 수가 있다" 중략 "따라서 자주 납추를 사용하여 때때로 그 깊이를 알아보는 것을 조심스럽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제주도에서 흑산도 가기 전에 황하에서 내려온 모래때문에 물이 얕아 납추로 확인해야 할만한 장소가 있나요?
서긍의 항해경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날짜와 지나간 곳이며 그곳에 대한 설명입니다. 봉래산과 협개산 사이의 지명들은 다 빼버리고 아주 중요한 부분까지 빼버리시고 어떻게 결론을 내리실 수 있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의도적으로 누락시켯다고밖에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고려도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봉경입니다. 이곳이 고려 강역을 설명하는 키 이지요... 고려 도경을 인용하여 흑산도를 증명하신다 하면서 그 핵심 내용을 어떻게 빼버리실 수 있으신지....
매잠에서 제주도까지 반나절이면 갈수 있는 거리이며, 제주도부터 흑산도 중간에 거란에서 나오는 흑수양이 있으며, 현재 수십만톤급 배들도 다니는 해역에 황하에서 쏟아져나온 모래로인하여 수면이 얕아져 그때 당시의 배들도 가기 힘든 모래톱이 있나요?
윤복현님께서 어떤 일들을 하시고 계신지 아시는지.... 복현님은 입맛에 맞추어 사료를 난도질하였습니다.
첫댓글 고려가 병합했다는 광주에 대해 세종 지리지를 보면........
경덕왕(景德王) 15년 정유에【곧 당나라 숙종(肅宗) 지덕(至德) 2년.】 한주(漢州)로 고쳤고,【신라가 이미 고구려와 백제를 병합하매, 신문왕(神文王)이 비로소 신라 경내(境內)의 사벌(沙伐)·삽량(歃良)·거열(居列)의 3주(州)와 백제의 옛땅 웅천(熊川)·완산(完山)·무진(武珍)의 3주와 고구려의 옛땅 한산(漢山)·우수(牛首)·하서(河西)의 3주로써 구주(九州)의 수를 갖추었는데, 경덕왕 때에 이르러 구주(九州) 및 모든 군현(郡縣)의 이름을 모두 고치었으므로, 뒤에 대개 신라가 고쳐서 모모(某某)로 하였다고 한 것은 모두 이 해의 일이다.】
고려 태조(太祖) 23년 경자에【곧 진(晉)나라 고조(高祖) 천복(天福) 5년.】 광주(廣州)로 고치고, 성종(成宗) 2년 계미에【곧 송(宋)나라 태종(太宗) 태평흥국(太平興國) 8년.】 처음으로 12주·목(州牧)을 두니, 〈광주가〉 곧 그의 하나이다. 〈성종〉 14년 을미에【곧 송나라 지도(至道) 원년.】 12절도사(節度使)를 두고 광주 봉국군 절도사(廣州奉國軍節度使)라 하였다가, 현종(顯宗) 3년 임자에 절도사를 폐하여 안무사(按撫使)로 고치고, 9년 무오에【곧 송나라 진종(眞宗) 천희(天禧) 3년.】 8목(牧)을 정해 둠에 따라, 광주목(廣州牧)이 되었다. 본조(本朝)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별호(別號)는 회안(淮安)이다.
성종(成宗) 10년 신묘에 주군(州郡)의 별호(別號)를 정하였는데, 광주를 회안(淮安)이라 하니, 곧 송나라 태종(太宗) 순화(淳化) 원년이다. 뒤에 순화(淳化)에 정한 바라 한 것은 모두 이를 말함이다.】
요사기록을 인용하여......
한주(韓州) 동평군(東平軍)은 본디 고리국(藁離國)의 옛 치소인 유하현(柳河縣)으로, 고구려 때에는 막힐부를 두어 막주(鄚州), 힐주(頡州)를 도독(都督)하였으며, 발해 때에는 그대로 답습하였다.
발해가 현 광주까지 내려왔다고 해석해야 하나.......?
팩트는... 서긍이 송에서 고려로 가기 위해서 바다를 건넜다는 것이다... 그 바다가 서해인가? 남지나해인가? 아니면 태평양인가를 알아내면 간단한 일을 미주알 고주알... 그 바다가 어디건 간에... 고려대국설은 허무맹랑한 요설이 아닌가? 아니라면... 같은 대륙에 존재해야 맞는 송과 고려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또하나... 사서에 등장하는 방향성 단어... 즉 동 서 남 북을...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오늘의 잣대로 고집하다보면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남지나해와 동중국해가 다른 바다가 아니라... 같은 곳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현실을 증거로 제시한다.
당신이 말하는 팩트는 단지 '서긍이 고려를 갔다'와 '바다를 건넛다' 이 두가지 인가?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팩트가 아닌 소설인가? 그리고 백제가 서해를 11~12일에서 건넛으니 맞는 말이다고 쓴 댓글은 뭔가... 서긍이 3일만에 건넛는데 그런 확인도 없이 어떤 댓글이 달릴지 궁금하다고..? 역사는 글자하나 토씨하나까지도 중요하다고 말한게 당신 아니었나? 그새 입장이 바뀌어 이제 그런건 아무 상관 없어졌는가? 그런걸 말할만한 양심이나 있는지 모르겠군. 하긴 대한민국의 역사는 신라와 조선뿐이라는 인식을 가진분이니 더이상 이야기하고싶은 생각도 없어져버렸다.
확인된 팩트는... 님이 말하는 두개이고... 나머지는 이견이 있으니... 팩트라고 하기 곤란하고... 송의 본토인 정해원에서 출발하여... 옛 백제 영토인 군산에 도착하는 데... 11~12일이 걸렸으니... 백제인들도 그 정도 기간에... 대륙을 왕래할 수 있었을 것이다가... 내 글의 요지요...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이요?
글을 눈으로 읽지않고 코구멍으로 읽는가? 내가 언제 대한민국의 역사는 신라와 조선뿐이라고 했는가? 역사를 공부한다는 자의 자세 중에 가장 나쁜 짓이... 남의 글을 왜곡. 호도하는 자이다...이런 자들은 이병도를 욕할 자격조차 없다.
ㅎㅎ 조선사 편수회에서 만들어준 역사서를 기준으로하면 안 되지요 조작과 왜곡이 너무심한 위서 이니 얼마 만큼 조작이 되어 있는지 수준을 어느정도 알아 보고 정의를 내려야지 그것도 없이 반도설을 옹호 한다면 참 그러내요
이견이 있으니 팩트라 말하기 어렵다...? 어떻게 매잠에서 반나절만에 봉래산을 지나갔는데 이걸 팩트라 말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오. 위에 말한것은 모두 팩트이고 난 모두 팩트라 말하고 있고 당신은 당신의 뜻과 다르다하여 팩트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소. 서로다른 팩트가 존재할때 왜 다른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연구해야 할 사람이 자신의 뜻과 부합하지 않는다하여 사실에서 지워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소. 그리고 당신은 분명 수도가 곧 국가라 햇소. 현 남한과 북한은 분명 엄연한 국가이고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우리 역사는 신라와 조선뿐이오.. 아 백제가 빠졋군...
백제만 빠졌습니까? 가야는 대륙에 있었으니 일부러 뺀 것인가요?
위 내용을 부정하시겟다면 분명한거 하나 말해볼까요? 부여와 발해는 우리 역사이냐 아니냐가 관건이 되지요...? 사비성을 논할때의 그 당당함은 어디가고 이병도보다 못한 발언을 일삼는지가 궁금하군....
이제 더이상 당신과 논쟁하고싶진 않군.... 서로다른 논지를 편다고 해서 의견이 좁혀질 것 같지도 않고 서로 마음에 상처만 깊어지고 비난만 하니 더이상의 주장은 서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소.
아 미안하오 가야도 빠졋군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였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