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 신달자
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였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 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게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한 줌 흘리고 불을 켜 보니
처음엔 당혹한 듯 눈을 가리다가
이내
발끝까지 저린 황홀한 불빛
아 불을 당기면
불이 켜지는
아직은 여자인 그 몸.
—시집 『아버지의 빛』(문학세계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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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아침마당에 나온 어떤 분의 인생고민은 팔순을 앞둔 노모의 동거 이야기였습니다
비슷한 또래의 남자분과 동거를 시작했는데 상대가 자식들 보기에 영 마뜩찮았던 모양입니다
문득 몇년전에 돌아가신 종숙이 생각났습니다
종숙모가 사고로 돌아가신 뒤 욕망과 외로움을 억제하지 못하시고 방황하실 때
어떤 연상의 여자분을 만나서 십여년 같이 여생을 보내시다가 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겸연쩍어하시면서도 여자는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역시 여자라고만 하셨었는데....
'등잔'을 생각하면서 노년의 '성'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감패널이나 전문가들은 반대와 용인으로 편이 갈렸습니다만...
과거는 과거일 뿐, 여생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그 분들이 행복하다면 누가 무슨 잣대를 갖다대어도 옳은 판단이 되지는 못할 듯합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그들 역시 사람인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