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화를 봐도 생각의 깊이가 이렇게 다르다니~!!
놀라운 마음으로 동부산지방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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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2 리로디드에 대한 영화평입니다!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1999년도 5월에 개봉했다. 그리고 액션영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말이 나돌았다. 이는 곧 TV CF나 각종 다른 영화에 도용되었다. 사실 이 영화는 일본 재패니메이션에서 많은 부분 아이디어와 장면을 따왔다. 만화가 아니라 실제 연기를 하는 영화라는 것이 달랐다. 공각기동대, 아키라 등의 일본 만화 영화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인간과 기계라는 설정에서 블레이드 러너, 그리고 터미네이터에 이르기까지의 영화를 따오고 있다. 한편으로 컴퓨터와 연관된 사이버상에서 사는 인간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트루먼 쇼의 확장팩 같기도 하다.
각 인물의 이름을 해석하는 것으로 시작할까 싶다. 네오는 헬라어로 새로운 것(neo)이라는 뜻이다. 이는 또한 하나(one)의 애니어램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The One)의 상징이다. 모피어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꿈의 신이다. 이는 그리스어로 어둠을 뜻한다. 그래서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지도... 트리니티란 삼위일체라는 뜻이다. 세 사람이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듯 하다. 베인은 나쁜 사람, 필요없다라는 뜻이다. 사이퍼는 루시퍼에서 따온 말이다. 토마스 앤더슨은 평범한 이름 앤더, 앤드류의 아들 앤더슨이라는 말로 인간의 아들(ander's son)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토마스는 트윈스 곧 쌍둥이란 뜻을 나타낸다. 이는 인간의 아들과 쌍둥이인 존재를 말하는 것으로 네오의 초월성을 상정해두고 있는 것이다.
매트릭스 1편이 나오고 4년이 지난 2003년에 2편과 3편이 같은 해에 개봉하게 되었다. 일단 매트릭스 2편까지는 공개되었고, 또한 1.5편격인 애니매트릭스와 컴퓨터 게임용으로 출시된 엔터 더 매트릭스까지 드러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매트릭스는 마치 거대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듯 하다. 이는 스타워즈 에피소드의 버금가는 일이라고까지 여겨진다. 그러나 오래도록 구상하던 스타워즈와는 달리 이 영화는 순식간에 한 아이디어로부터 이루어진 영화라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의 혼성모방을 통해서 새로운 원본을 만들어내었다.
감독인 래리 워쇼스키, 앤디 워쇼스키 형제는 각본 작업으로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들은 {어쌔신}이라는 선배 킬러와 후배 킬러간의 경쟁극을 그린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리고 이어 {바운드}라는 독특한 여성 동성 연애적 버디 무비를 만들어내었다. 그 내용은 조직 두목의 여자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여자가 그를 속이고 돈을 훔치려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다. 두 영화 다 배신과 관련된 내용을 그리고 있다. 또한 형식적으로 장르의 혼합을 깨하고 있다. 그 이후에 만든 영화가 {매트릭스}라는 영화이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스타워즈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고 큰 세대답게 영화의 많은 부분이 만화적 기법으로 이루어져있다. 불릿 쇼트라고 하는 장면은 총알 속도를 나타내는 새로운 영화 용어인데 일본 애니메이션에 한번씩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이는 인간이 볼 수 없는 속도를 영화에 실현시킨 컴퓨터 작업의 결과이다. 이는 120대의 카메라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우리가 보는 속도로 본다면 다 볼 수 없는 것을 그 사이에 120대의 카메라가 찍은 장면들을 삽입하여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영화편집에 신기원을 이루었다. 이후 슈렉에서도 등장하는 장면이 이것이다. 이들은 제2의 코엔형제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독특성을 창조해내고 있다. 팀버튼, 타란티노, 로드리게즈 등 영화광들이라고 일컬어지는 감독들의 새로운 계보를 잇는 인물이 되고 있다. 이들이 철학책을 만화책 보듯이 좋아한다는 것도 참 특이하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생각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를 찍을 때 주인공에게 그 책을 읽을 것을 권했다고 한다.
1편으로부터 이야기를 한다면 토마스 엔더슨이라는 회사원은 밤에는 네오라는 이름을 쓰는 해커이다. 어느 날 그의 컴퓨터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문구(흰토끼를 좇아와라)가 찍히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때는 2199년 인간들은 기계의 지배아래 배양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배양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폐허가 된 현실이 아닌 1999년의 사이버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를 알고있는 인간 무리들이 시온이라는 도시를 지하에 건설하여 살고 있다. 이들 무리 중에 한 팀인 모피어스와 트리니티 일행은 예언자 오라클의 계시를 따라 네오를 찾아나선 것이다. 네오는 사이버 상의 편안함을 주는 파란 알약과 현실을 알게해주는 빨간 알약의 선택 사이에 빨간 알약을 택한다. 그리고 이 땅의 현실에 대해 알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면서 자신이 모두들 기다려왔던 그라는 것을 서서히 알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매트릭스 내 요원들을 이기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는 여러 가지 기독교적인 상징을 잔뜩 함의하고 있다. 그래서 선교영화로까지 쓰였다. 네오는 모두가 기다리는 그, 곧 예수의 상징인 셈이다. 그리고 모피어스는 세례요한, 오라클은 예레미야, 트리니티는 마리아, 사이퍼는 가룟 유다로 상징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또한 전체적인 내용에서 실제 현실과 매트릭스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이 세상과 그 이면에 있는 영적인 실체에 대한 알레고리로도 읽혀진다. 그래서 네오의 정체성 찾기는 메시아니즘을 드러내는 영적 각성으로 읽혀진다.
반면에 2편에 들어서면서 훨씬 복잡해진다. 이야기의 폭이 넓어지고 자가 증식을 시작했다. 새로운 세계를 하나 만들어낸 셈이다. 2편에서는 네오가 느부갓네살호를 타고 궁지에 몰린 시온을 구하기 위한 일대 작전을 펼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꿈에 사랑하는 여인인 트리니티가 죽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리고 각 군함들은 하나의 함대만 남겨두고 모두 시온으로 귀환한다. 함대를 한 대 남겨둔 것은 오라클의 지시를 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는 시온의 총지휘자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 그 명령까지 어기면서 그러는 이유는 전쟁이 임박했음을 알고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시온의 의원은 모피어스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도록 하고 시온은 광란의 축제가 펼쳐진다. 이 장면에서 네오와 트리니티는 성적 연합을 이룬다. 감독이 왜 이런 장면을 5분이상되는 제법 긴장면으로 넣었는지 의문이 든다(혹 제 2세가 태어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터미네이터처럼 말이다). 의원은 느부갓네살 호의 출항을 허락하고 다른 함대들은 시온에 대기한다. 센티널이라고 하는 오징어모양의 정찰로봇들이 시온이 있는 곳을 향해 땅을 파고 있는 시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총지휘자는 모든 전함이 남아서 이를 막아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모피어스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네오는 오라클을 찾아나서고 그녀를 통해 자신이 '그(The One)'라는 확신과 함께 키 메이커를 만나서 매트릭스의 근원으로 가라는 명령을 듣는다. 바이러스가 된 요원 스미스는 자가증식을 하고, 이는 매트릭스내에 자유로운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아버린다. 네오 일행은 키 메이커를 찾아나서서 한바탕 한 프로그래머 일행과 싸움을 치루고 키 메이커를 통해 매트릭스의 근원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네오는 매트릭스의 설계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중요한 선택을 한다. 시온을 살리기 위해 갈 것인지, 아니면 여인을 살리기 위해 갈 것 인지의 선택 앞에 네오는 트리니티를 살리기 위해 불타오르게(?) 날아간다. 그는 여인을 구하지만 곧 느부갓네살호도 센티널에 의해 공격을 받는다. 한데 네오는 이제 센티널에 대한 제어력까지 생기게 되었다. 영적인 실체를 분별하고 드디어 영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가시적인 세상에서 믿음의 삶을 사는 정도가 아니라 귀신들에게 힘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시온은 붕괴되었고, 그 가운데 살아남은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베인이며, 네오를 죽이려고 했었고, 스미스 요원의 변형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면서 2편은 끝이 난다.
2편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물음이 있다. 그것은 인과율의 법칙 대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세상은 인과율의 법칙에 따른다고 믿는 이들과 그렇지 않고 선택의 문제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 인과율의 법칙을 믿는 이들은 매트릭스에서 그 인과율의 법칙을 따라서 통제되며 산다. 반면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이 네오 일행이다. 이는 죄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과율의 법칙에 대해 불규칙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보자면 네오는 인과율의 법칙을 어긴 사람인 것이다. 인간이 당연히 반응할 것이라고 여겼던 원인과 결과,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어긴 사람이다. 이는 다르게 말하자면 죄성에 의해서 당연히 반응할 것이라고 여겼던 반응에서 벗어나는 불규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불규칙성의 근원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는 다르게 보자면 예수의 상징으로 보여진다. 인간 죄성의 인과율의 법칙을 철저하게 불규칙성으로 깨어 버린 사람이 예수인 것이다. 예수가 보이신 것은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가 아닌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는 기존의 체계를 깨면서 불규칙성을 말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같은 의미를 지닌 여러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소명, 역할, 할 일, 운명, 목적이라는 말이다. 모피어스로부터 키 메이커, 스미스 요원, 오라클에 이르기까지 다들 같은 의미를 가진 말을 한다. 곧 각자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키 메이커의 역할은 키를 만드는 것이다. 만약에 키 메이커가 모피어스가 되려고 한다면 어떨까? 그의 삶은 너무도 힘들 것이다. 그는 모피어스가 될 수 없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소명이 있다. 우리는 그 소명을 우리의 할 일로 알고 살아야할 것이다. 우리의 소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궁금한 것이 있다. 그것은 매트릭스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매트릭스란 인간을 통제하는 메인 시스템일 수 있다. 또한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가상의 세계이기도 하다. 이 매트릭스는 사이버이고 가짜이며, 겉으로 보이는 가시적인 세계를 말한다. 곧 매트릭스는 시뮬레이션이며, 우리가 소비하는 기호이며 이미지이다. 그것이 주는 그럴 듯함이 사실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얼마든지 우리를 속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연 실제와 허상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실제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보고 먹고 느끼는 현실을 현실이라고 느낄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현실과 가상의 차이는 무엇인가? 무엇인 진정 현실이란 말인가? 이는 이 영화를 보고 났을 때 삶이 허무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컨텍스트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결국 모든 것이 가짜같기에 삶은 허무하다는 것이다. 너무 애써서 살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상당히 위험하다. 3편에서 어떻게 결론을 맺을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2편에서까지는 실체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네오가 센티널을 막아낼 때 우려되는 것은 그것도 현실이 아니라 매트릭스 안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결국 어쩔 수 없는 논리로 빠져든다면 답은 없다. 이렇게 산다는 것, 곧 속고 사는 것이 삶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삶의 의욕과 실상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삶은 실상이 있다. 그 실상을 볼 줄 알아야한다. 매트릭스란 조작된 세계, 인과율의 법칙만 허용하는 세계를 말한다. 이는 다르게 말하자면 형식의 세계인 것이다. 신비를 허용하지 않는 세계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신비가 일어난다. 기적이 일어난다. 왜일까? 그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삶 가운데 개입하시고 간섭하시기 때문이다. 이 땅은 매트릭스가 아니다. 이 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실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눈에 보이는 현실인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세상을 주도하는 세력이 신학인 때가 있었다. 그리고 철학인 때, 음악인 때, 미술인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세상을 주도하는 것은 영화를 위시한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문화 중에서도 영화가 이 세대를 주도하고 있다. 원래 세상을 주도하는 곳에 천재가 모이며, 돈이 모이는 곳에 걸출한 사람이 모여든다. 지금은 영화에 천재들이 모여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영화가 세계를 변화시키고 주도하고 있다. 영화 감독이 세계를 주도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이제 영화가 철학보다 신학보다 음악과 미술보다 더 앞서는 것 같다. 앞서가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 영화의 3편은 어떻게 연결될까? 첫째 우려했던 것처럼 다중 매트릭스 이론으로 종결될 수 있다. 허무하고 황당한 끝이지만 끝으로서 매력은 있다. 무한대라는 점에서 알 수 없다는 허무주의적 결말이다. 두 번째는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휴머니즘적 종결이다. 네오가 기계들을 넘어뜨리고 같이 사는 세상을 건립한다는 종결이다. 이는 스필버그 감독류의 공존의 휴머니즘, 사랑의 힘을 제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맺지 않은 채 각자에게 맡겨두고 끝날 수도 있다. 알 수 없다는 면에서 첫 번째와 비슷하다. 그러나 조금 다르다. 이는 불가지론에 가깝다.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그 기변에 무엇일 흐르는지 알려고 하지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한다는 것이다.
매트릭스는 볼수록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 감독은 매트릭스 같은 세상이 사실은 지금의 세상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가짜같고 정신을 못차리게 만드는 세상. 그 가운데 우리가 해야할 일은 깨어지내는 것일게다!
재밌어요!! 간사님은 영화를 많이 좋아하시는가봐요!=ㅁ= 센티널을 막아낸 세계가 가짜일 수도 있다는 말에 간담이 서늘하더군요 그리구요 성적 연합과 관능적인 춤은 SF영화답지(?) 않은 장면같기도 하지만 가장 생명력 넘치고 역동적이어서 기계에 의해 배양되어 매트릭스 안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과 대비를 이루죠
첫댓글 매트릭스 투 보면서 고민했던 많은 부분들이 해결되는군요...!! ^^
처음엔 양을 보고 어떻게 읽을까?했는데, 읽으니 재밌네요^^글고 생각도 되고 영화를 보는 자세에 대해서도 잘 생각해봐야겠네요..
재밌어요!! 간사님은 영화를 많이 좋아하시는가봐요!=ㅁ= 센티널을 막아낸 세계가 가짜일 수도 있다는 말에 간담이 서늘하더군요 그리구요 성적 연합과 관능적인 춤은 SF영화답지(?) 않은 장면같기도 하지만 가장 생명력 넘치고 역동적이어서 기계에 의해 배양되어 매트릭스 안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과 대비를 이루죠
매트릭스 안과 밖을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구분시켜준다고 생각해요 그 장면이 사라질 때 니오랑 트리니티는 자궁안에 있는 듯한 모습으로 점점 멀어지면서 작아지죠 아무튼 매트릭스 재밌구 간사님의 영화평도 심오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