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비(張飛)의 분노(憤怒)와 유비(劉備)의 결심(決心) -
한편, 동오(東吳)의 손권(孫權)은 따듯한 봄날을 맞아 무술(武術)을 연마(硏磨)하고 있었다.
이때 제갈공명(諸葛孔明)의 형(兄)인 동오(東吳)의 책사(策士) 제갈근(諸葛瑾)이 손권의 등 뒤로 다가와,
"주공!" 하고, 부르니, 손권(孫權)은 그 목소리를 알아 듣고,
"무슨 일이오?" 하고, 무술(武術) 연습(練習)을 계속(繼續)하며 물었다.
그러자 제갈근(諸葛瑾)은 손권(孫權)의 뒤에서 이렇게 아뢴다.
"소식(消息)에 따르면 유비(劉備)가 성도(成都)에서 황제(皇帝)로 등극(登極)하면서 처음 내린 조서(詔書)가 동오(東吳) 토벌(討伐)이랍니다."
손권(孫權)이 이 말을 듣고, 순간(瞬間)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하여 검술(劍術) 연습(練習을 멈추고 칼을 거두며 칼집에 다시 넣는데, 몸이 떨려 한번에 넣지 못하였다. 그만큼 유비(劉備)의 동오(東吳) 공격(攻擊)의 계획(計劃)은 손권(孫權)으로서는 감당(堪當)하기 어려운 버거운 일이었다.
잠시(暫時) 머뭇거리던 손권이 긴장(緊張)한 채로 명(命) 한다.
"명을 전하시오. 내일 진시(辰時 : 오전 7시~9시)에 전 문무백관(文武百官)들은 조회(朝會)에 빠짐없이 참석하라."
"예!"
다음날 문무백관들이 기다리는 가운데 손권(孫權)이 등장(登場) 하여 자리에 앉자, 제갈근(諸葛瑾)이 아뢴다.
"주공(主公, 새로운 소식(消息)이 들어왔습니다."
"왜? 유비(劉備)가 출정(出征)했다고 하오?" 손권(孫權)은 긴장(緊張)하며 물었다.
그러나 제갈근(諸葛瑾)이,
"아닙니다. 공명(孔明)이 출정(出征)을 막았다고 합니다." 하고 아뢰자,
순간(瞬間), 손권(孫權)의 얼굴이 펴지면서,
"하하하하!.. 역시(亦是) 그대의 아우는 현명(賢明)한 사람이오. 그렇다면 곧 오촉(吳蜀) 동맹(同盟)이 회복(回復)되지 않겠나?" 하고 말하면서 크게 기뻐하였다.
.................
한편, 그동안 장비(張飛)는 어찌하며 지내고 있는지 알아보자.
멀리서 낭중(郎中)을 지키고 있던 장비(張飛)는 관운장(關雲長)이 손권(孫權)의 손에 죽었다는 소식(消息)을 듣자, 상복(喪服)을 입고 주야(晝夜)를 가리지 아니하고 날마다 땅을 치며 대성통곡(大聲痛哭)하였다. 식음(食飮)을 전폐(全閉) 하다시피 하고 열흘, 보름을 계속해 울어도 그의 슬픔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러니 제아무리 천하(天下)의 장비(張飛)라 할지라도 음식(飮食)을 먹지 않고, 날마다 슬픔에 잠겨있어서는 몸이 견뎌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그의 머리는 온통 하얗게 세어버렸다.
부하(部下)들은 근심을 하다못해 그에게 술을 권(勸)하였다.
장비(張飛)는 워낙 술을 좋아하는지라 날마다 술을 고래처럼 마시고 나서는 또다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니, 오로지 관운장(關雲長) 생각뿐이었다.
"손권(孫權) 이놈! 어디 두고 보자. 네 목은 기필(期必)코 내 손으로 베어 우리 형님의 원수(怨讐)를 갚고야 말겠다!" 장비(張飛)는 술이 곤죽이 되어서도 동녘 하늘을 노려보며 이를 <북북> 갈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유비(劉備)가 제위(帝位)에 올랐음을 알리면서 장비(張飛)에게는 거기 장군(車騎 將軍) 서 향후(西鄕侯)의 벼슬을 내린다는 조서(詔書)를 가지고 성도(成都)에서 사자(使者)가 달려왔다.
사자(使者)가 장비(張飛)의 군막(軍幕)에 들어서며 보니, 장수(將帥)를 비롯해 모든 군사(軍士)들은 상복(喪服)을 입고 조상(弔喪)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사자(使者)를 맞이하는 장수(將帥)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아, 선생!... 상장군(上將軍)의 명(命)에 의해 관우(關羽) 장군(將軍)의 조상(弔喪)을 아직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상장군의 신경(神經)이 날카로워 병사(兵士)들이 조금이라도 잘못하게 되면 관장군(關將軍)의 영정(影幀)을 열흘간이나 지키게 하는 벌(罰)을 내리고 있습니다." 장수(將帥)는 낙심천만(落心千萬)한 어조(語調)로 말하였다.
"장군(將軍)은 지금 어디 계시나?"
"안에 계십니다."
장수(將帥)의 안내로 장비(詔書)의 군막(軍幕)에 들어선 사자(使者)가 장비에게 천자(天子) 유비(劉備)의 조서(詔書)를 바치자, 이를 읽어본 장비(張飛)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친다.
"형님께서 즉위(卽位) 하신지가 벌서 한 달이 되었고, 나는 여기서 공격(攻擊) 명령(命令)만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형님께선 왜 아직도 동오(東吳) 토벌(討伐)의 출동(出動) 명령(命令)을 내리지 않는 건가?"
장비(張飛)의 불같은 성격(性格)을 잘 알고 있는 사자(使者)는 손을 모아 올리며 즉각(卽刻) 대답한다.
"폐하(陛下)께서 공격(攻擊) 시기(時機)를 늦추셨습니다."
"늦춰?..." 장비(張飛)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자(使者) 앞으로 다가가서 재차(再次) 묻는다.
"이유(理由)가 뭔가?"
"문무(文武) 대신(大臣)들이 폐하(陛下)께 아뢰길, 우리의 숙적(宿敵)은 동오(東吳)가 아닌 조위(曺魏)라 하며 일단(一旦)은 위(魏)를 먼저 멸(滅)한 후, 오(吳)를 치자고 건의(建議) 했습죠."
"그게 뭔 소리야?" 장비(張飛)가 손을 휘저으며 불만(不滿) 가득한 소리를 내질렀다.
"어,엇?" 사자(使者)는 장비의 호통에 순간, 깜짝 놀라며 몸을 움추렸다.
그러나 장비의 말은 계속되었다.
"우리 삼 형제(三兄弟)는 도원결의(桃園結義)로 한날한시에 죽기로 맹세(盟誓) 한 사이다! 이제 둘째 형님이 해(害)를 당(當) 하셨는데, 어찌 복수(復讐)를 미룬단 말인가? 누구냐? 어떤 자가 출병(出兵)을 반대(反對)한 것이냐? 말해!" 장비(張飛)는 사자(使者)를 몰아세우며 물었다.
"아.. 아!.. 승, 승상(丞相)이 반대(反對)하셨습니다." 하고, 몸을 떨며 대답하였다.
"또 그놈이 그랬단 말이지? 음!... 내 당장(當場) 성도(成都)로 가서 형님을 뵈어야겠다!" 장비(張飛)는 사자(使者)를 노려보며 말했다.
한편, 관운장(關雲長)의 원수(怨讐)를 갚기 위해 동오(東吳)를 즉각(卽刻) 공격(攻擊)하려던 유비(劉備)는 공명(孔明)과 조운(趙雲)의 반대(反對)에 부딪혀 원(願)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안타까운 마음이 되어, 관우(關羽) 장사(葬事) 후(後)에 자신(自身)의 침소(寢所)에 만들어 놓은 그의 제단(祭壇)에 촛불과 향(香)을 피워놓고 드나들 때마다 관운장을 조상(弔喪) 하였다.
이날 밤도 유비(劉備)는 관운장(關雲長)을 애통(哀痛)하게 잃은 슬픔으로 잠을 못 이루고 있었는데, 문밖에서 평소(平素)에 듣지 못하던 발소리가 나는 바람에 잠을 청(請)하려고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밖의 시종(侍從)을 불렀다.
그러자 시종(侍從)이 즉각(卽刻) 달려온다.
"폐하(陛下), 분부(分付) 하십시오."
"궁(宮)에서 못 듣던 발소리가 나는구나."
그러자 시종(侍從)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발소리가 아니고 바람소리인듯합니다."
"응? 들어봐라... 아, 셋째로구나!" 유비(劉備)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실을 나오며 독백(獨白)하듯 중얼거렸다.
"이건 셋째 발소리야, 소리가 남달랐어. 난 알 수가 있어... 셋째 발소리는 남들과 다르지..." 이렇게 내실(內室) 가운데로 나선 유비(劉備)는 입구(入口)에 대고 말한다.
"익덕(益德)!...셋째?... 자넨가? ..."
그러자 장비(張飛)가 불쑥 들어서며 소리를 지른다.
"형님~!..." 장비(張飛)는 상복(喪服)을 입은 채로 유비(劉備)의 발 앞에 주저앉았다.
"형님!.. 형~님!... 으흐흑!... 형님, 형님!... 어 흐흐흑!..." 장비(張飛)가 대뜸 유비(劉備)를 붙잡고 울부짖는데, 그의 울음소리에는 유비(劉備)에 대한 원망(怨望)과 갈등(葛藤)이 혼잡(混雜)하게 섞여 있었다.
유비(劉備)는 애타는 장비(張飛)의 심정(心情)을 모르지 않았다. 그도 역시(亦是) 장비(張飛)처럼 울부짖고 싶은 심정(心情) 이었다.
그러나 장비(張飛)와 맞잡고 울 수는 없는 일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유비(劉備)가 엎드려 울고 있는 장비(張飛)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애처로운 심정(心情)을 담아 물었다.
"셋째... 자넨 낭중(郎中)을 지키고 있질 않았나? 성도(成都)에는 웬일인가?
"형님! 낭중(郎中)에서는 하루가 여삼추(如三秋)였소.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동오(東吳) 출정(出征)의 그날만을 기다리다가, 내 눈이 빠져버릴 지경이오. 견디다 못해 한 걸음에 달려온 거요. 형님! 혹시 황제(皇帝)가 되더니 도원(桃園)의 그 맹세(盟誓)를 잊으신 건 아니오? 형님!" 장비(張飛)는 유비(劉備)를 붙잡고 따지듯 호소(呼訴) 하듯 말을 쏟아냈다.
그러자 유비(劉備)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셋째! 운장(雲長)의 원한(怨恨)을 내 어찌 잊겠나!... 보게," 유비(劉備)가 장비(張飛)에게 고개를 돌려 한쪽 벽(壁)을 보며 말하였다.
장비(張飛)가 유비(劉備)의 시선(視線)을 쫓아 바라보니, 그곳에는 관운장(關雲長)의 초상화(肖像畫)가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엇?..."
유비(劉備)는
"운장(雲長)이 여기 있잖나... 운장은 줄곧 내 곁에서 함께 먹고, 함께 잔다네."
장비(張飛)가 관운장(關雲長)의 초상화(肖像畫)가 있는 제단(祭壇) 앞으로 달려간다.
"형님~!... 둘째 형님!... 으흐흐흑!... 형님, 형님..." 장비의 오열(嗚咽)은 한참을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시종이 장비의 뒤에서 입을 열어 말한다.
"관 장군께서 별세(別世) 하신 후, 폐하(陛下)께서는 화공(畫工)을 불러 장군의 화상(畫像)을 그리게 한 후, 매일 같이 여기에 대고 대화(對話)를 나누곤 하셨습니다."
"그랬었군요. 한데, 왜 둘째 형님 원수(怨讐)를 갚기 위한 동오(東吳) 출병(出兵)의 명령(命令)을 내리지 않았소?" 장비(張飛)는 유비(劉備)를 돌아보며 말했다.
"탓하지 말게. 운장(雲長)의 전사(戰死) 소식(消息)을 듣고 나서 동오(東吳) 토벌(討伐)에 나서려고 했지만, 그때 아군(我軍)이 형주(荊州)에서 패전(敗戰)하고 난 뒤라, 모두가 권하기를... 삼군을 정비(整備) 하라 하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네. 즉위(卽位) 후에 바로 출정(出征)을 명했지만... 허!... 맹달(孟達), 그 역적(逆賊)놈이 조위(曺魏)에 투항(投降) 해서 군량(軍糧)이 바닥나 버렸네. 군량이 없으니 늦출 수밖에...
"형님, 늦추는 이유(理由)가 그게 아니잖소 ?" 장비(張飛)가 벌떡 일어나며 유비(劉備)를 향해 따지듯이 말했다.
그러자 유비(劉備)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장비(張飛)를 바라보며 반문(反問)한다.
"그럼, 뭐라고 생각하나?..."
"공명(孔明)의 반대(反對)가 두려워서 그러지 않소?" 장비(張飛)는 손을 치켜들며 말했다.
그러자 유비(劉備)가 퀭한 눈을 들어 장비(張飛)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여태껏 나는 자네가 거친 줄만 알았는데, 그런 생각까지 다 할 줄 알다니... 셋째! 무리(無理)한 출병(出兵)은 앞으로 못하네... 승상(丞相)이 조리(條理)를 들며 극구(極口) 말리는데 숙고(熟考)하지 않을 수 없었네."
"음!... 형님은 황제(皇帝)고, 그놈은 신하(臣下)인데 말을 들을 사람이 대체 누구란 말이오? 동오(東吳)와 싸움을 피하는 건, 그놈의 형인 제갈근(諸葛瑾)이란 작자가 손권(孫權) 밑에 있기 때문이 아니오?"
"그런 말 말게! 승상(丞相)과 나는 십수 년을 함께 의논(議論)하고 협력(協力)했어, 승상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어!"
"제갈량(諸葛亮)이 없다고 형님이 대업(大業)을 이루지 못하겠소? 직접(直接) 동오(東吳) 정벌(征伐)에 나서지 못하겠소? 천히(天下)를 거머쥐지 못하겠냔 말이오! 헹! 내가 보기에는 제갈량은 형님이 데려오지 않았다면 놈도 이런 호사(豪奢)를 못 누렸을 것이오! 제갈량(諸葛亮)이 보좌(補佐)한 것은 그리도 생각하면서 형님께서 그를 키운 것은 왜 모르시오!"
"듣고 보니, 그건 자네 생각이 아니야, 말해 보게! 누가 그러던가?"
"둘째 형님 생전(生前)에 둘이서 했던 말이오."
"아!... 그랬었군!... 그러나 이 일은 여기서 그만 끝내고 더 이상 아무 말 말게, 익덕(益德), 며칠 쉬다가 낭중(郎中)으로 돌아가 보게, 하시(何時)라도 나태(懶怠)하게 행하거나 군심(群心)을 흐려서는 안돼." 유비(劉備)가 그 말을 하고 장비(張飛)에게서 돌아섰다.
그러자 장비는 유비를 향해 돌아서며 말한다.
"그러면 둘째 형님의 목숨은 어쩜니까?"
"셋째... 전략(戰略)을 세울 시간이 필요(必要)해... 조금만 참고 기다리게..."
그러자 장비(張飛)는 다 틀렸다는 심정(心情)으로,
"에, 잇!" 하고, 팔을 털며 돌아섰다.
그리고 문밖으로 두, 세 걸음 발을 움직였다.
"잠깐!" 유비(劉備)가 밖으로 나가려는 장비(張飛)를 불러 세웠다. 불만(不滿) 가득한 얼굴의 장비가 돌아서지도 않은 채로 걸음을 멈추고 있으려니, 유비가 세워놓은 옷걸이에서 자신의 겉옷을 가지고 장비의 등 뒤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옷을 장비(張飛)의 어깨에 걸쳐주며,
"바람이 차니 걸치고 가라." 하고, 말하였다.
장비(張飛)가 그제서야 유비(劉備)에게 돌아서며 말한다.
"형님!"
유비(劉備)가 겉옷의 앞 매무새를 고쳐주며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셋째야, 또 한 가지... 운장(雲長)이 당(當)한 것은 성품(性品)하고도 관련(關聯)이 있어... 자네도 불같은 성질(性質)을 죽여야 하네, 응? 이제 병사(兵士)들 학대(虐待)는 하지 말고, 잘 대해 줘... 알았나?..."
장비(張飛)는 대답(對答)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면서 장비(張飛)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어조(語調)로 대답한다.
"알았소, 가 보겠소."
"으, 응..." 유비(劉備)가 야트막한 대답(對答)을 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윽고 <저벅저벅> 장비(張飛)가 문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밖으로 나가기 전에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 자신(自身)을 바라보는 유비(劉備)를 향해 돌아 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두 줄기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장비(張飛)가 다녀간 다음날, 천자(天子) 유비(劉備)는 촉군 태수(蜀郡 太守) 이엄(李嚴)을 불러들였다.
"폐하(陛下)! 불러계시오니까?" 이엄(李嚴)이 예(禮)를 표(表)하며 알현(謁見) 하였다.
유비(劉備)가 이엄(李嚴)을 보고 고요한 음성(音聲)으로 말한다.
"정방(正方 : 이엄의 字), 앉으시오."
"황공(惶恐) 하옵니다."
이엄(李嚴)이 단하에 꿇어앉자 유비(劉備)가 입을 열어 말한다.
"순식간(瞬息間)에 짐(朕)이 육순(六旬)이 되었소. 짐이 과연(果然) 한실(漢室) 재건(再建)의 순간(瞬間)을 볼 수가 있을지 모르겠소. 그뿐만 아니라 운장(雲長)의 원혼(冤魂)은 언제 갚을지도...."
"폐하(陛下), 상심(傷心) 하실 것 없습니다. 신이 뵙기엔 폐하께선 아직 젊고, 포부(抱負)가 깊으신 데다가 휘하(麾下)에 용맹(勇猛)한 장수(將帥)는 물론 백만(百萬)에 이르는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계시니, 천하의 그 누구라도 폐하와 겨룰 자가 없사옵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아뢰옵니다."
"정방(正方), 동오(東吳)의 손권(孫權)과 허창(許昌)의 조비(曹丕)는 모두 난적(難敵) 들이오. 솔직(率直)히 말해, 승상(丞相)과 자룡(子龍)이 동오(東吳) 토벌(討伐)을 말리고 있소. 두 사람이 뭘 걱정하는지 아시오? 동오까지는 천 리가 넘는 험한 여정(旅程)이니 군량(軍糧)과 전쟁(戰爭) 수행 물자(遂行物資) 조달(調達)이 어렵다고 하는 게지... 하나, 내 생각엔 조위(曺魏)에 비하면 동오(東吳)는 약(弱)한 편이라, 대업(大業)을 이루려면 동오를 먼저 멸(滅)하고 조위를 쳐야 한다고 생각하오. 우리 군사들은 최근에 한중(漢中) 대전(大戰)을 거쳐 사기가 높지만 손권(孫權)의 장수(將帥)들은 대부분(大部分) 노장(老將)이며, 적(適)의 철기 병(鐵器兵)과 보병(步兵)은 우리의 적수(敵手)가 못 되오.
이럴 때 사기(士氣) 높은 아군(我軍)이 남하(南下)를 한다면 조위 군(曺魏軍) 출병(出兵) 전에 동오를 격퇴(擊退) 할 수가 있소. 더구나 조비의 군세(軍勢)는 자체(自體)의 기반(基盤)보다는 그의 작고(作故) 한 부친(父親)으로부터 물려받은 데다가 그 스스로가 대규모(大規模) 실전(實戰)을 경험(經驗) 한 바가 없소. 즉(卽), 조조(曹操)가 살아 있을 전혀 다른 형편(形便)이란 것이지. 그래서 우리가 동오를 치는 순간이 오면 고작해야 허장성세(虛張聲勢)만 부리면서 위협할 뿐 섣불리 나서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우리가 신속(迅速) 하게 움직인다면 함부로 모험(冒險) 하지도 못할 것이오. 정방! 병법(兵法)을 잘 알고 있으니, 말해 보시오. 지금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이엄(李嚴)이 잠시 생각을 고르더니 대답한다.
"폐하(陛下)께서는 대세(大勢)를 읽는 눈이 심오(深奧) 하십니다. 신이 탄복(歎服)하는 바입니다."
"음!...." 그러나 유비가 바라는 이엄(李嚴)의 대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천자(天子) 유비(劉備)는 좀 더 핵심(核心)에 접근(接近) 해서 말한다.
"아무래도 관건(關鍵)은 군량(軍糧)과 무기(武器)요. 지난번 그대와 황권(黃權)에게 논의(論議) 하라고 했는데 무슨 해결책(解決策)이 있었소?"
"신(臣)과 태부(泰傅) 허정(許靖), 우장군(右將軍) 황권(黃權)이 사흘 밤낮을 상의(相議) 한끝에 얻어낸 결론(結論)은... 각 군(郡)에서 조세(租稅)를 더 걷고 징병인력(徵兵人力)도 좀 더 늘린다면, 예상(豫想) 컨데 금년 가을이 지나면 증가(增加) 하는 군량(軍糧)이 백오십 만석 정도이고 새로 편입(編入) 될 병사(兵士)들도 이십오만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유비(劉備)가 이엄(李嚴)의 말을 듣고 의문(疑問)의 눈길로 재차(再次) 묻는다.
"정말이오?"
"틀림없사옵니다."
유비(劉備)가 자리에서 일어나 단하(壇下)의 이엄(李嚴)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를 향해,
"좋소, 그대 말을 들으니 근심이 사라지는 듯 하오. 이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겠소." 하고, 말하면서 얼굴이 펴진다.
이엄이 다시 아뢴다.
"하나, 폐하(陛下). 승상(丞相)은 조세(租稅)와 징병인력(徵兵人力)을 늘리는 것에 대해 반대(反對)인 듯 합니다. 만약(萬若) 그리한다면 촉중(蜀中) 백성들의 부담(負擔)이 가중(加重) 되는지라..."
"음!...." 유비(劉備)가 그 말을 듣고 선듯 대답(對答)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한다.
그러던 순간 결심(決心) 어린 소리를 한다.
"중요(重要)한 시기(時機)이니 비상수단(非常手段)을 써야지... 짐(朕)이 당장(當場) 조서(詔書)를 내리겠소. 올 해 안까지 그대와 황권(黃權)은 군량(軍糧) 백오십 만석과 병사(兵士) 이십오 만을 확보(確保)해 놓도록 하시오. 조만간(早晩間) 동오(東吳)를 칠 수있도록,"
"예, 명(命)에 따르겠습니다." 이엄(李嚴)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유비(劉備)가 이엄(李嚴)의 대답을 듣자, 그의 손을 붙잡으며 말한다.
40
"정방(正方), 기분이 이렇게 좋은 것은 참 오랜만이오. 자, 한잔합시다!"
"황공(惶恐) 하옵니다!"
사가(私家)로 돌아온 이엄은 거실(居室)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그것은 자신(自身)이 황제(皇帝) 유비에게 너무 희망(希望) 어린 소리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중에 이엄(李嚴)의 아들 이풍(李豊)이 들어와 아버지께 묻는다.
"아버님, 황궁(皇宮)에 들어가셨을 때 폐하(陛下)께 동오(東吳) 토벌(討伐)에 찬성(贊成) 한다고 하셨나요?"
"그래!..." 이엄은 짧은 한숨과 함께 대답하였다.
"소자에게 말씀하실 땐 반대한다 하셨는데..."
이엄(李嚴)이 자리에 앉으며 아들에게 말한다.
"폐하(陛下)께서 결심(決心)을 굳히셨다. 풍(豊)아, 우리 신분(身分)을 잊지 말거라. 우린 투항(投降)을 했지만 공명(孔明)과 자룡(子龍)은 폐하를 다년간 모셔서 그 어떤 문제든 직언(直言)을 아뢸 수가 있지만 우린 아니다... 우린 폐하의 심중(心中)을 헤아려 행해야 한다. 더욱이 폐하가 공명과 의견(意見)이 분분할 때에는 더욱더 폐하의 입장에 서야만 하는 것이 처세(處世)에 이르는 길이다."
"군마(軍馬)와 군량(軍糧)을 모두 쏟아부어 천리 먼길의 정벌(征伐)을 갔다가 패하기라도 하면 어찌합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이엄(李嚴)이 눈꼬리를 치켜뜨면서 힐난(詰難) 하듯이 아들에게 물었다."
"위오(魏吳)가 손을 잡으면 어찌 감당(堪當) 하겠습니까?"
"꼭, 그러리란 법도 없다. 폐하께선 조위(曺魏)가 개입(介入) 하기 전에 동오(東吳)를 격퇴(擊退) 하실 생각이시다. 그럼, 조위(曺魏)도 경거망동(輕擧妄動) 못 하겠지."
"하!... 너무 위험(危險) 하지 않습니까?" 아들이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 보였다.
그러자
"풍(豊)아, 명심(銘心) 해라. 앞으로 그렇게 앞, 뒤 재는 말은 다시는 해서 안 된다 !"
이엄(李嚴)은 아들을 크게 꾸짖었다.
"전... 예, 알겠습니다."
다음날, 마속(馬謖)이 황제(皇帝) 유비(劉備)의 조서(詔書)를 가지고 공명(孔明)을 찾아왔다.
"승상(丞相), 폐하(陛下)께서 조세(租稅)를 더 걷고 징병(徵兵)을 늘리자는 이엄(李嚴), 황권(黃權)의 상주(上奏)를 윤허(允許) 하셨습니다." 하고, 말을 하면서 조서(詔書)를 올렸다.
천자(天子)의 조서(詔書)를 근심 어린 눈으로 읽어본 공명(孔明)이 입을 열어 말한다.
"그 일은 이미 알고 있네."
"승상(丞相), 그렇다면 왜 가만히 계십니까?"
"두 번씩이나 말렸네, 하나, 군세(郡稅)와 징병(徵兵)을 늘리라고 한 것은 폐하(陛下)께서 동오(東吳) 토벌(討伐)을 결심(決心)했다는 것이 아니겠나? 말려도 듣질 않으시니, 좋은 말도 한두번이지... 이제 더 이상은 안되네."
"승상,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최선(最善)을 다해 도와야지... 달리 방법(方法)이 있겠나 ?"
"승상(丞相),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마속(馬謖)이 공명(孔明)의 허락(許諾)을 구했다.
그러나 공명(孔明)은,
"아니야, 아무런 말도 하지 말게." 하고, 허락(許諾)하지 아니하며, 마속(馬謖)을 돌려보냈다.
공명(孔明)은 돌아서 나가는 마속(馬謖)을 보면서 생각했다.
("허!.. 폐하(陛下)께서 나를 거치지 않고 촉중(蜀中)의 대신(大臣)들에게 직접(直接) 동오(東吳) 토벌(討伐)의 의지를(意志) 밝힌 것은 그만큼 이 결정(決定)에 강(强)한 의지를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삼국지 - 314회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