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080년.
용감왕 볼레수아프 1세가 죽은지 55년.
회복왕 카지미에슈 1세가 죽은지 22년.
후에 관대왕 또는 용담왕이라고 불리워진 볼레슬라우(볼레수아프) 2세가 천수를 누리고도 1년을 더 연장하고 있었다.1)
비스와강을 껴있는 기름진 옥토. 그 위에 자리잡은 왕도 크라코프. 카지미에슈 1세는 크라코프를 보고 "왕의 자리이다" 라고 감탄했다고 한다.2) 그리고 수도를 그니에즈노에서 크라코프로 옮겼다고 한다. 그때의 어수선함은 이제 가라앉았고, 한창때에는 여러 군데로 원정을 나가던 볼레수아프2세 역시 안정을 취하기 시작하면서, 크라코프는 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저는 슬라브민족3)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라코프 궁전에 위치한 한 서재. 그 곳에서 한 수사가 일왕자 비그니오에게 강의를 하고 있었다. 비그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갈 아노님4), 결국 국왕전하의 팽창정책이 호족들의 강성화를 낳았다는 말인가?5)"
"네, 그렇습니다. 우리 폴란드도 이제는 명실공히 동유럽의 강자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용감왕 전하와 회복왕 전하의 치적이죠. 하지만 지금의 통치자이신 볼레수아푸2세 전하는 팽창기 이후에는 안정기를 맞이하여 회복을 도모해야하는데 무리한 원정을 계속하셨습니다. 물론 적들에게 관대하셨고, 여러 용기있는 행동을 보여주시긴 하셨지만, 중앙의 군사력은 약화되고 따라서 지방의 호족들은 그 곳에서 왕이나 다름없이, 그야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탈리아에 위치한 프로방스지방에서 여기로 오다보니 참으로 위세가 대단했었지요."
비그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갈 아노님은 대답을 원하는듯 그를 설득시키기 위해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 국왕전하께서 대외정벌을 멈추신 것은 잘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또 원정을 하시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을 색출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비그니오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아무 증거도 없지 않은가? 이대로 군사를 움직여서 그냥 말을 안들으니 죽어라, 이러면 백성들이 우리 폴란드 왕실을 뭐라고 생각하겠느냔 말이야. 아노님 자네의 말이 맞는것 같긴 한데, 색출할 방법이 없어. 지방 호족들은 우리 왕실의 말을 잘 듣고 납세도 잘하고 있단 말이지. 더군다나... 이탈리아인인 자네가 어째서 이 외지까지 왔는지도 이해가 안된단 말이지."
이번에는 아노님이 끄덕였다.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온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곳의 이질적인 환경에 매료되었고, 슬라브인들의 활기참과 패기에 매료되었습니다. 저는 지금은 이탈리아인이 아닌, 진심으로 조국을 걱정하는 폴란드인들 중 한명입니다."
"흐음..."
비그니오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며 약간 자라있는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좀 과격하지만... 전쟁을 벌이겠다고 하면 반대하는 호족들이 나올테고, 그러면 그자들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워 숙청하는 방법도 있겠군그래. 물론 진심으로 백성들을 걱정하는 호족들도 있겠지만 그거야 조사해보면 다 나오는걸테고... 그럼 아바마마께 건의해볼까."
지방호족들이 대거 숙청되고 중앙집권이 된 것은 이후 몇년이 지난 후였다. 그리고 폴란드는 다시 몇년간의 안정 후 일왕자 비그니오와 이왕자 볼레슬라우에 의해 적극적인 팽창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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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위기간이 79년까지인데 버젓이 살아있습니다.
2) 네, 픽션입니다.
3) 폴란드인은 서부슬라브계열입니다. 후에는 '폴란드민족'이라고 할 정도로 폴란드 슬라브인들의 결속이 굳어졌지만.
4)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폴란드연대기(年代記, 1112∼16)》의 저자.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의 사람으로 그의 경력에 관한 사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이름마저도 불분명한 상태이다. <갈 아노님>은 편의상, 16세기에 사용된 <무명(無名)의 프랑스인>을 의미하는 라틴어 <갈루스 아노님스>를 폴란드식으로 바꿔 부른 것이다. 다만 《연대기》의 내용에서 프로방스 지방에 있었던 베네딕토파의 산지르 수도원의 수사(修士)였다고 추정된다. 《연대기》는 볼레스와프 3세 곡순왕(曲脣王)의 위업(偉業)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볼레스와프 1세 용감왕(勇敢王)과 볼레스와프 2세 호기후(豪氣侯)의 위업도 찬양할 목적으로 씌어졌다. 18세기 후반까지 이 시기의 일을 알기 위한 유일한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
5) 볼레스와프2세의 뒤를 이은 부아디수아프 1세 헤르만(1079~1102 재위)의 치세에 폴란드는 쇠퇴기를 맞이했고 피아스트 왕조의 군주들은 왕의 칭호를 잃었다(볼레수아프 2세는 1076~79년 잠시 왕의 칭호를 보유했음). 이들은 중앙 정부의 권한이 줄어들고 지방 귀족의 권력이 강해지는 것을 방치했으며, 나라를 수많은 전쟁에 끌어들여 영토를 잃었다.
첫댓글 오 연재안하시는 줄로 알고 급좌절했다가 ^^ 이번엔 폴란드시네요^^
네 ㅎㅎ
다시 시작하시는군요..언제나 그랬듯이 담편도 기대기대 ^^
감사합니다. ㅜㅜ
잘 읽었어요. ^^
감사합니다. ㅜㅜ
근데 아쉽네요 ㅠㅠ 개인적으로 비잔티움으로 연재하시길 바랫는데 ㅋㅋ 건필하세요 ㅋㅋ
오오 비잔티움 오오 ㅜㅜ
오오 현재 제가 플레이 하고 있는 폴란드로군요, 그래서 더더욱 기대가 됩니다. 그나저나 팍스님의 그 백그라운드 지식은 정말 방대하군요 소인 감탄했습니다. 오오
오오 폴란드 오오
오 청천님 ㅋ 전에 비잔틴 어떻게 된거에요? ^^; 서두가 진짜 재밌었는데... 폴란드 다시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비잔틴은... 내공 부족을 느끼고 접었습니다. ㅜㅜ
잘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굽신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