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첫해, 판로 못 찾아 꽃 폐기 태풍에 비닐하우스 무너졌지만 발품 팔며 판로 확보에 매진
화훼장식기능사 등 자격증 따고 원예작품 만들기 강의도 진행
“힘들었던 적이요? 주저앉아서 펑펑 운 게 한두번이 아니지요.”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서 꽃농사를 짓고 있는 정유경씨(31). 해맑던 그의 얼굴에 순간 그늘이 드리워졌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던 지난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농사 첫해에 팬지 10만본을 키웠는데 판로를 찾지 못해서 4만본을 폐기해야 했어요. 이듬해엔 태풍 ‘볼라벤’에 비닐하우스까지 무너졌지요. 정말 힘들었지만 농사가 아닌 다른 일을 했어도 시련이 닥쳤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더라고요.”
몇번의 실패를 꿋꿋이 견뎌내고 이제는 어엿한 농장 주인이 됐지만 사실 그는 ‘다른 일’을 할 뻔했다. 일단 농사를 짓지 않는 집안에서 자라 농업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연히 임상병리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피’를 봐야 하는 일이 영 적성에 맞지 않아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서울 노량진으로 가 재수 공부를 했다.
꽃을 만난 건 바로 이맘때였다. 서울 양재동에서 화훼농사를 짓는 외삼촌 집에 머물며 틈틈이 농사일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외삼촌으로부터 꽃을 키우는 보람과 농업에 대한 비전을 들으면서 화훼농사에 강한 매력을 느꼈고, 결국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꿈을 향해 직진하기로 한 그는 차근차근 농업을 익혀나갔다. 3년간 한국농수산대학 화훼학과에서 이론과 실습을 배우고 졸업 후에도 농장 실습으로 실전 연습을 계속했다. 1년간 충남도농업기술원에서 청년 인턴으로 활동하며 농업 경영을 보고 배우기도 했다.
이렇게 꽤 오랜 기간 준비를 거쳐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한 때가 2011년이다. 아버지가 갖고 있던 1983㎡(600평) 규모의 논을 빌려 땅부터 다졌다. 그리고 4-H의 영농정착지원사업으로 비닐하우스 건립자금의 절반을 지원받았다. 나머지 반은 준비기간 동안 모은 돈을 모두 쏟아부어 충당했다.
이제 장밋빛 꿈이 펼쳐질 것 같았던 농사 첫해, 오로지 꽃 키우기에만 열중했던 그에게 판로문제가 들이닥쳤다. 자식 같은 꽃들을 팔지 못해 버려야 하는 그때의 참담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그 후부터 그의 발이 바빠졌다. 예산은 물론 홍성·서산 등 다른 지역의 관공서까지 돌아다니며 판로뚫기에 열을 올렸다. 그 덕에 서서히 판매처가 늘기 시작했다. 지금은 팬지·베고니아·국화·꽃양배추처럼 계절별로 키운 다양한 작목을 관공서와 조경업체 등에 안정적으로 납품하고 있다. 농장에 심심찮게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직거래 판매장과 체험농장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생산부터 배달까지 도맡아 해야 해 바쁜 와중에도 그는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식물보호산업기사·조경산업기사·화훼장식기능사 등 자격증과 수료한 교육과정이 한두개가 아니다. 그 재능을 살려 최근에는 학생 등을 대상으로 원예작품 만들기 강의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젊은 세대답게 스마트폰 시설제어나 자동 적정 온습도 유지시스템을 선도적으로 도입하는 등 농업 기술력을 높이는 데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메리골드나 한련화 같은 식용꽃 농사를 지어서 식용꽃 차·디저트를 개발해보고 싶어요. 식용꽃 먹거리와 함께 꽃을 즐길 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도 만들면 더욱 좋겠지요. 저는 평온한 농촌에서 좋아하는 꽃을 재배하며 사는 삶이 참 행복해요. 지역 길 곳곳에 심겨 있는 우리 농원의 꽃을 보고 사람들이 잠시라도 기뻐할 때 정말 뿌듯하고요.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큰돈을 버는 건 아니겠지만 꽃과 함께 마음만은 부자인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