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 얘기 들었어? 이번에야 말로 대단했다던데?"
무심하게 짧은 자신의 단검을 닦고 있던 소년이 들뜬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쳐들었다.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걸은 녀석은 예상했듯이 옆마을에서 온 용병녀석이었다. 소란스러운 성격 때문에 전투에 지친 동료들은 항상 힘이 남아도는 이 녀석이 가까이 오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결국 이 녀석은 항상 마지막에는 소년에게 다가와 조잘조잘 거리기 마련이었다. 소년은 항상 묵묵하게 그의 말을 들어주는-척- 이유에서다.
"그 왜 있잖아, 네 녀석 마을에서 온 수도의 기사 말이야! 요즘 이 일대를 휩쓴다는 붉은 바람의 기사!!"
그 촌스러운 별명은 누가 지었냐며 반박해 주고 싶었지만 피로에 지친 소년의 머리는 조금 느려진 것 같았다. 단검을 닦는 것조차 많은 힘이 드는 일이었다. (지금 닦아 놓지 않으면 피가 굳기 때문에 다음 번에 더 힘들기 때문에 겨우겨우 이뤄지는 행동이었다.)
"근데 그 기사가 참 오싹한게 사람들을 벨 때 노래를 흥얼거린대. '빵집 어머니의 노래'였던가 '노비스 골목 아이의 외로운 노래'였던가 그럴꺼야. 좀 무섭지 않냐? 나는 처음 사람을 죽이고 삼일 밤낮 잠도 못 잤는데..."
소년이 이번에는 조금 관심이 간 모양이었다. 닦던 단검에서 눈을 떼 옆마을 용병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오, 이제야 관심이 좀 간 모양이지? 저기 저 옆에서 쉬고 있는 노병에게서 들었어. 그리고 저쪽 저어기 냇가에서 얼굴 씻고 있는 쪼만한 녀석도 그러더라구. 싸우는 도중에 어쩌다 등을 맞대고 싸우게 되었는데 검을 휘두를 때마다 흥얼거린다는거야. 흐으응~으으음~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구 쓰러지는데.."
"'저녁놀 카루의 노래'야."
"...뭐?"
"그 사람이 흥얼거리는거, '저녁놀 카루의 노래'라고."
소년의 확신에 찬 말에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옆마을 소년이 눈을 빛내며 얼굴을 들이댔지만 소년은 그저 닦던 단검을 계속해서 닦을 뿐이었다.
지금 그의 몸을 구석구석 닦는 저 물이 성수였어도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 성수로 몸을 닦고 그 물을 마셔 그의 몸속 그의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가득 찬 데도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에게? 과연 신은 있는가? 그의 존재가 깨어지고 삶의 이유가 송두리째 빼앗겨도 그는 신을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숨을 쉬듯 당연하게 사람들을 죽여 앞으로 나아가는 그는 더이상 누군가를 믿지 않는다.
물기를 닦고 편한 옷을 갈아입었다. 아무리 가벼운 옷을 입어도 그의 어깨에는 항상 무언가가 얹혀져 있다. 억누름. 그가 기사의 생활을 시작한 때부터 지속되오던 것들이다. 하지만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심장이 점점 부어올라 몸안 가득 차버리고 힘차게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몸둥이가 그의 심장을 옥죄어오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억지로 눈을 감아본다.
'부스럭'
조심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 보니 하녀가 세면도구를 정리하러 온 듯 했다. 그는 늘상하던 것처럼 눈을 감고 오늘의 일들을 곱씹어본다. 적들에게 허를 찔렸다. 어느 용병 하나가 불을 지피는 바람에 발각이 된 것이었다. 용병은 전쟁에 나서기 전에 하녀 하나를 안으려 한 듯 불을 지펴놓고 그 더러운 맨 몸뚱이로 습격을 받았다. 다행히 하녀가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출정준비 중이던 그들의 군대가 신속하게 나설 수 있었다. 맨 처음 달려갔을때 그를 보며 삶의 구원을 바라던 그 하녀의 눈빛, 눈빛. 그리고 그는 검을 휘둘렀고 적을 베어나갔다. 그는 자신의 움직임, 동작, 호흡, 하나하나 잊을 수 없이 생생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쓰러지는 적들의 눈빛, 눈빛.
주위가 조용하다. 그는 눈을 뜨고 슬쩍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곧 움직임을 멈추고야 만다. 문 앞에 수줍게 놓아져 있는 새하얀 들꽃 하나. 아니 자세히 보니 놓아져 있는게 아니라 심겨져 있었다. 세심하게 덮어놓은 흙이 꽃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는 꽃을 한참 바라보다 쓰러지듯 잠들었다.
오랜만에, 꿈을 꾸지 않았다.
첫댓글 조회수 0의 보는 느낌..ㅋㅋㅋ 마구 쓰세요...후훗...
완결나오기를 기다리고있습니다~ 다 올리시면 바로 고고싱~
퇴마록이랑 관계가 있나요???
아 말머리를 확실히 달았어야 했는데 ^^; 말머리 달게요~
꿈을 꾸지 않았군요. 음음.
엇 실망이라뇨. 하편을 기다립니다!
하편 왜 안나옵니까아 ㅠㅠ 목빠지겠으욜 ㅠ
ㅠ.ㅠ 매일 창작의 고뇌로 카페를 들어왔다 나왔다 썼다 지웠다합니당..흑
매일 꿈을 꾸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