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심에 대한 설명을 위해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죠. 지금 고슴도치 한마리를 공격한다고 쳐봅시다. 정공법으로 공격할 경우 공격하는 사람 손에는 웅크린 고슴도치의 가시가 파고들게됩니다. 고슴도치에 대한 힘을 더 줄수록 가시 역시 손에 파고들겠죠. 종심방어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즉 상대의 공격의 기세가 높아지고 침투의 정도가 깊을수록 감수해야 할 피해도 높아지게 만드는 방어전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펜스지기님이 올려주신 일본군 교리가 쉽고 무난하게 설명하고 있더군요. 너무 간단하기는하지만.) 쉬워보이는 저 말속에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종심작전은 방어전술로서 탄생하게 되는데 그 출발인 종심방어는 1차대전 중 독일과 치열한 참호전을 벌이던 프랑스 6군 사령관 구로이 장군의 작품이다. 당시 독일은 후티어 전술이라는, 보병과 포병의 합동작전에 의한 은밀하고 신속한 돌파전술로 프랑스군을 괴롭혔는데 이에 대해 구로이 장군은 본래 포병의 역량이 나폴레옹 시기부터 우수했던 프랑스군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는 전술을 착상하게되고 이것이 포병의 집중적 운용과 공세적 방어를 특징으로 하는 종심방어이다.
(이후 이는 프랑스군의 교리를 적극 수용한 미군에 의해 서방측의 중심교리-공세적 방어-로 자리잡게 된다.)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종심방어는 "깊이를 가진 방어(Defence in Depth)"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공격자가 진행하는 방향에 대해 인공적으로 "깊이"를 형성한다. 이에 따른 특징은 공격자가 침투의 깊이를 더해갈 수록 피해를 더 많이 강요받게 된다는데에 있다. 공격의 깊이가 더해가는데 따라서 적진의 혼란과 전투의지의 와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 감수할 수 없는 피해를 주어 공격을 단념케하는 것이 요체이며 따라서 후티어 전술과 같은, 적진으로의 깊숙한 침투에 첫째 목표를 둔 공격자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책이었다 하겠다.
종심방어는 이외에도 방어자로 하여금 다른 이점들을 갖게끔 한다. 우선 방어면을 좁게 가지고 비교적 좁은 영역에 포진하므로 통제와 상황파악에 있어 유리하다. 공격자에 대한 화력은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만약 엄폐호 방어가 수반된다면 전력보존 효과도 우수하다. 무형적인 면으로는 기동성을 스스로 위축시킴으로써 방어측 장병들로하여금 결연한 방어의지를 고취시킬 수 있다. (기동성을 희생함으로써 방어측이 얻는 또다른 사례로 배수진이 있다.)
종심공격은 풀러에 영향받은 소련 군사 이론가 투하체프스키에 의해 창안된 개념으로 역시 "깊이"에 의한 공격을 추구한다. 소련군 기갑교리의 하나인 제파공격이 일반적인 전선면에 적용될 수도 있는것인 반면 종심공격은 비교적 좁은 전선면에 대한 충격효과를 강조한다. 물리학 용어인 모멘텀(운동량 = 질량 X 속도)과 함께 종심공격의 주체인 전차부대는 화력과 질량으로 전선면의 특정부분의 균열을 강요하며 방어선의 일부를 찢고 세차게 돌진해들어간다.
이런 식의 공격에 대한 이론의 완성자는 영국 군사학자 풀러로서 당시 아직 전장의 주역은 아니었던 새로운 기술적 산물인 전차가 최대효용을 거두도록 운용하는데에 대한 숙고로 내놓는다. 승전국들이 자만으로 빠진 동안 독일 이론가 구데리안이 이를 적극 받아들이고 소련군에 의해 완성된다.
그러나 냉전시기 나토군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전략인 이 전략에 대한 방어는 역시 종심방어였다. 미영군은 베를린을 위시한 독일을 종심방어 지역으로 두고 대량의 기갑방어군을 포진, 바르샤바 조약군을 저지한다. 결과적으로 소련군이 완성시킨 종심공격은 입증이 되지 않은 채이다. 러시아 외에 세계에서 효과적인 종심공격을 수행할 만한 아시아 국가는 소련군의 군사교리를 받아들였으며 어느 정도 규모의 기갑군을 가진 중국과 북한이다.
서방세계의 교리는 대부분 종심방어를 중심으로 공격에 있어서는 공지합동 공격을 추구하는 미국의 모방을 추구해왔다. 이에 있어서는 헬기전력이 필수적인데 미국과 한국 두나라 정도가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
종심방어는 논의해볼 여지가 매우 많은 흥미로운 전술이다. 이를 살펴봄으로써 매우 추상적으로 변한 군사이론을 따라가는 것을 익혀보자. 우선 종심방어에 있어서 "깊이"가 형성되게끔 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과연 실제적인 의미에서 깊이여야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점차 살펴보겠지만 종심작전에 있어 많은 부분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일반화, 대치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보다 넓은 대상에 종심작전 개념은 확장될 수 있다.
우선 종심방어가 꼭 일직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최단거리가 곡선이라면 종심방어는 그 곡선을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종심방어 구축의 물리적, 기하학적 의미에서의 효율은 공자의 예상되는 진격경로를 따라야 한다. 현재 서울 북쪽에 도로를 따라 내려다보며 길게 구축된 대전차 진지들이 이렇게 형성된 종심방어 진지들이라 할 수 있다. 즉, 종심방어는 선형일 필요는 없다.
이제 종심방어의 본질적인 면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깊이"란 동일한 속도일때 시간이 더 걸려야 함을 의미한다. 즉 어떤 방자를 공격함에 있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면 그 방자는 종심역할을 하는 것이다. 배치상의 문제를 제외하고 방자가 공자에게 시간을 소비케하는 이런 상황은 1. 방자측이 지수적으로 높은 전투능력을 가질때 2. 환경 등 여건이 방어유지를 도울 때 2. 공자의 전력이 축차투입될 때 3. 그리고 다른 조건은 동일하면서 방자의 방어의지가 강렬할 때이다.
즉 여기서 우리는 종심방어의 핵심이 "공자의 시간을 뺐는 것"이라는 일반적 성질을 뽑아낼 수 있다. 공자에게 있어 시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소수의 방자가 공자에게 시간을 뺐음으로서 전체 전세에 영향을 주는 사례는 한국전쟁 시 북한국의 진격을 지연시켜 국군의 후퇴를 돕고 후방에서의 전열 재정비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심일 소령의 부대와, 2차대전 초기 독일 기갑군의 파죽지세와 같은 기세를 소수로 꺾어낸 유럽 본토주둔 영국 기갑여단의 예에서 볼 수 있다. 당시 영국은 이들의 작전을 통해 본토에 주둔해있던 영국군이 덩케르트를 통해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다.
우선 종심작전에 있어서의 앞으로의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그 심리적인 측면의 중요성을 먼저 말해두어야 하겠다. 전쟁은 심리적인 면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핵심적으로 위치로 자리잡고 있는 인간의 집단적 행위이다. 종심방어는 우리가 기억하는 드라마틱한 전쟁의 장면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기억이 우리 심리의 흔듦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종심작전의 심리적인 면의 비중을 미루어 짐작해보기 바란다.
종심방어는 그 구상/기획과 실현/성공이 별개이다. 즉 종심방어를 꾀하는 측은 그 종심방어가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종심방어는 공자가 그 종심을 공격해야만 성공한다. 따라서 종심방어의 기획자 측은 그러한 상황이 되게끔 하는데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나폴레옹과 한니발이 예상되는 진로를 우회해 알프스를 횡단한 것은 그들의 방자들로 하여금 종심방어를 기획은 했으되 성공시키지는 못 한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종심방어가 성공을 거두려면 종심은 공격자의 구미를 끄는 가치를 지녀야 하는데 오랜 역사를 살펴볼 때 그 가치는 대부분 심리적인 면에서 기인한다. 즉 실제적인 전력의 와해보다는 상대측 군 또는 상대 국가의 대항의지를 무너뜨리는 의도속에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종심방어 주체는 정예이거나 적어도 상징적인 의미를 상황속에서 갖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여전히 종심이 가지는 기하하적인 면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이상적인 방어종심은 공자의 어쩔 수 없는 진격경로가 자신 내지 무기의 공격거리가 미치는 단면을 통과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면이 넓다면 좁은 경우보다 화력의 밀도가 낮아질 것이므로 지형적인 지물을 이용해 좁은 관문에 포진하거나 또는 추상적인 의미에서 상대의 선택의 폭과 범위를 좁히는 다양한 작전을 수반한다. 즉 종심방어는 일견 기동성을 희생한 듯 보이지만 상대의 기동성(전개범위) 또한 희생시키도록 해야 성공적이 될 수 있다.
공격자 측이 종심을 공격, 와해를 노릴 수 밖에 없는 경우는 가장 단순한 경우로서 종심을 회피하고 지나갈 경우 후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우려가 있을 때이다. 대부분의 고대전투에 있어서 벌어진 공성전이 이러한 이해 속에 있던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공자가 훨씬 우세의 전투력이나 기동력을 가졌을 경우 그런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회피와 우회를 택하는 경우가 있겠는데 조선에 대한 청의 팔기군의 공격이 그러했다.
대부분의 경우 종심방어는 방어측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통상적인 선제공격을 포기하는 한미 연합군의 사례도 그러했다고 할 수 있다.) 공격자 역시 어쩔 수 없이 종심방어에 대한 공격을 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능동적인 종심방어의 사례는 종종 그 효율성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드라마틱한 사건들로 인해 기억되곤 한다.
서구역사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종심방어는 소수의 스파르타 군인이 페르시아의 대군을 테르모필라이에서 방어한 (-결국은 실패했지만) 사건일 것이다. 그리스로 진격하는 효율적인 진격경로 상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해 공자에 비해 극히 적은 소수로 종심을 구축한 이 경우는 페르시아의 대군으로 하여금 (전투의 결과로 빚어진) 많은 인명희생을 빚으면서도 정면돌파를 강요케 한 종심방어 기획의 아주 훌륭한 사례이다. 종심방어의 조건에 해당하는 이 사례는 비록 개별작전으로는 실패했지만 전 그리스인의 항전의지를 북돋움으로써 전체 전쟁기획에 있어서도 당시 그리스 전략가들의 뛰어난 역량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한국 역사에 있어서는 더욱 극적인 사례가 있으니 바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이다. 12척(혹은 13척)이었던 판옥선들로 133척(지금까지는 300여척으로 알려져왔다. 개인적으로 300척이었을 것으로 본다.)의 왜함선을 패퇴시킨 이 해전은 해전을 넘어 모든 종류의 전투에 있어 신화적인 사례라 하겠다. 해전의 진행을 간략히 살펴보자면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이후 전임자 원균이 망친 전력과 민심, 사기를 극히 위태로운 단독여행을 통해 미약하나마 일으켜세운다.
그러나 막상 전투에서 (이순신 함대에 대한 마지막 숨통끊음을 노린) 왜함선의 압도적 규모는 충성스럽던 이순신 장군의 부하장병들마저 전투를 두려워하게끔 만든다. 이순신은 적과 부하들의 실제적 전력과 심리, 지형과 장비에 대한 지식과 철저한 기획의 결과로 독전 끝에 그의 12척의 함대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심이 되게끔 하였다. 수군의 폐지가 당연해보였을 정도로 악화된 군대로 명실공히 일본의 최정예 함대로 꼽히던 왜수군의 전력을 손상입히고 그 자신은 두명이 전사만을 기록한 작전가 이순신 장군. 그의 이름은 인류가 지구에 생존하는 동안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종심방어의 세련된 형태는 은폐된 종심방어이다. 이의 좋은 사례를 우리는 한니발의 칸나에 전투에서 볼 수 있다. 일견 이 전투에서 한니발이 취한 전술은 종심방어에 반하는 것이다. 그는 전선을 넓게 형성시켰으며 이는 상대인 로마군이 그 결연한 의지를 반영하며 종심공격 대형을 이룬것과 비교해보지 않는다해도 그러했다. 감정에 휘둘리는 신뢰하기 힘든 군인인 갈리아군으로 이루어진 넓게 퍼진 전면의 뒤에는 전세가 불리해질 경우 종심방어군이 되며 자신의 원래 기획대로 될 경우 역습예비대가 될, 고락을 함께 한 정예 카르타고 보병이 있었다.
전투가 이루어짐에 따라 갈리아군은 로마군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로마군이 노리는 중앙부가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한니발은 로마군의 전진에 후퇴는 할지라도 전선면에 끊김은 없도록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았었나 싶은데 아무튼 갈리아군은 밀리면서도 끊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는 카르타고군이 뒤를 받쳐주는 위치에 대해 로마군의 집중을 해서 그런것이고 로마군이 다른면에 대해 다소 공격을 가했다면 전선면에 균열이 생기고 혼전양상이 되어 칸나에의 결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갈리아군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를 무렵 역습예비대이자 갈리아군의 뒤에서 모습을 숨기던 카르타고 보병대가 힘찬 기세로 전진해나왔고 때마침 우세인 전력의 집중운용에 따라 상대인 로마 기병부대를 꺾은 한니발의 리디아 기병대가 로마군의 측면을 치기 시작한다. 이 이후의 결과는 모두 아는 바와 같다.
유사한 전략 차원의 사례는 을지문덕의 수나라 군에 대한 기만적 후퇴와 역습예비의 운용 사례를 들 수 있다. 고구려가 위급한 수준의 외침에 대해서 사용했던 청야전술은 그 짧은 종심으로 인해 상대국가가 침공을 포기하고 돌아갈 것을 예상할 수는 없으며 그 후에 보여준 엄청난 수준의 반격으로 볼 때 수세적인 것이 아니라 극히 공세적인 의도를 담고 있다. 물론 중국군의 공격을 국경선에서 막을 경우 손실이 더 클 것이기는 할 것이나 역습전력을 극히 집중적으로 운용한 것이나 당시의 종심이라 할 성을 지킴으로서 상대의 전력을 소진시키는 방성전에 많은 앞섬이 있었던 점은 고구려가 종심방어의 개념을 중요하게 인식했었음을 보여준다.
이상의 두 사례는 종심방어의 주체를 은폐함으로써 상대가 승리의 마지막 고비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엄청난 기세의 역습에 당황하여 전투의지를 꺾는, 종심방어의 가장 성공적인 운용이라 하겠다.
종심방어에 있어 특별히 언급되어야 할 것은 시가전이다. 현대로 옮에 따라 도시는 명백히 종심으로서의 역할을 공자와 방자측에 갖는다. 스탈린그라드의 사례는 도시가 종심의 특징적인 면을 극명히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적의 공격의 그 단면으로의 흡수, 공자측에서 볼 때의 "깊이", 공자의 운용의 폭을 제한하는 환경 등.
도시는 그 건축물들로 인해 종심으로서의 성격을 뚜렷이 내보이며 특히 수도는 종종 최종 목표이자 스탈린그라드와 최근 바그다드에서 보듯 방자측의 멈추지 않는 저항의 장소로서 이용될 수 있다. 시가전의 비중의 간파한 미국은 4사단을 시가전에 대비한 사단으로 육성, 이번 전투에 있어 세계 어느 부대보다 발전된 시가전 역량을 쌓고 있다.
그러나 도시가 효과적인 종심인 반면 수도가 아닌 경우 종신방어의 기획이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 또한 가진다. 즉 공자측이 그 도시를 우회할 경우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리적으로 요충지에 위치한 도시는 종심의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더 가진다. 앞으로의 지상전의 승패는 시가전의 역량이 좌우할 것이며 이를 위해 로봇병기의 기능과 역할이 확대될 것이다.
종심방어는 그러나 위기를 맞기도 한다. 일단 시대를 초월한 위협요인은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공자가 종심방어에 대한 대응을 회피 또는 무시하는 경우이다. 즉 방자가 잘 준비한 종심방어군을 무시할 경우 방자는 규모에 따라서지만 공자를 막을 전력의 누수라는 잠재적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떤 경우에 나타나는가. 바로 두가지인데 하나는 공자의 전력이 방자에 비해 훨씬 약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훨씬 강한 경우이다. 그리고 이 두 경우 모두 실제 객관적인 것 뿐만 아니라 서로 각자가 인식하는 심리적인 차원이 영향을 미친다.
종심방어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 중 한가지는 공자측이 압도적인 전력을 가졌을 경우, 또는 , 그 자신의 역량에 대해 확신을 가졌을 경우, 또는 인명을 중시하는 경우 공자는 종심방어측에 대한 대결을 회피한다. 공자가 종심방어에 매력을 느끼는 경우 또는 회피할 수 없는 경우는 종심방어군이 가지는 (규모에 의한 것이든 그 부대의 성격에 의한 것이든) 상징적 의미에서 기인한다. 공자측 지휘관이 극히 실용적인 인물이 아닐 경우 그는 기대되는 심리적인 성취감에 이끌리게 되는데 이는 통상 공자측의 승리가 완전히 보장되지는 않는 상황과 겹치기 마련이므로 보다 이성적이 될 필요가 있다.
공자측이 객관적으로 압도적인 전력을 가졌을 경우이면서 종심방어를 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그런 경우 방자는 종심방어의 의의를 거의 갖지 못하므로 아예 기획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객관적 전력이 열세라 하더라도 공자가 피할 수 없게끔 만드는 사례들이 없지 않은데 테르모필라이를 위신상으로라도 통과해야만 했던 페르시아군이나 이순신이 이미 쌓은 전적과 왜군의 사기회복을 노린 왜수군 지휘관의 경우가 그러한 경우라 하겠다.
반면 이와는 반대로 자신과 자신의 부대에 대한 확신이 강하여 수세적으로 끌려가는 심리가 없이 회피하는 사례로는 알프스로 우회한 나폴레옹과 한니발이 있겠다. 그들이 그 정도로 탁월한, 본인도 알고 있을만한 역량의 전략가가 아니었다면 본인과 외부로부터 비겁한 모양새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물론 알프스를 넘는다는 것은 힘든 역경이므로 우회라는 것을 상쇄하는 의미를 지니기는 한다.) 아무튼 지휘관은 건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여기에서 비롯한다. 건강한 자신감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파악은 선택의 폭 뿐만 아니라 바른 판단을 내리는 판단력에도 도움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인명을 중시하는 사상을 가졌거나 그럴 수 밖에 없는 경우이다. 이러한 점과 앞서의 자신의 압도적인 전력에 대한 확신을 함께 가지고 작전을 수행한 경우가 일본에 대해 핵폭탄을 통한 종전을 택한 트루먼과 맥아더 등의 지휘부이다. 일견 비겁해보일 수 있는 무기수단의 사용으로 인한 비난이 자국군의 인명손실보다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미국의 전쟁에 대한 태도는 줄곧 이러한 점에서 출발하기때문에 항공전력 및 정밀유도무기의 발달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럼 이번엔 반대로, 열세인 전력의 공자가 종심방어에 대한 공격을 회피하는 경우를 보자.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국가에 대해 행해지는 테러로서 9.11 무역센터에 대한 여객기 충돌과 같은 경우이다. 보통 비대칭 전략이라고도 분류되는 이러한 전략은 방자가 보편적으로 구축한 종심을 그것이 크든 작든 회피해 전혀 예상치 못한 전선면에 대해 공격을 가한다. 이러한 테러의 경우 방자는 큰 곤란을 겪게되는데 그것은 공격의 목표가 일반 사회, 그 국민들이 됨에 따라 전선면이 급격히 넓어지는 한편 공격을 막을 수단은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테러의 중심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국가로 지리적으로 국한되어 있었다는 점이며 쇄국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부숴버리면서 그 본거지를 타격하고 공자들을 포획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하겠다. 이에 대해 알 카에다는 그 자신이 종심방어를 회피하는 전략을 구사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종심방어적인 전략을 택함으로서 조직의 상층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와해되는 피해를 감수했는데 이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는 것까지는 예상치 못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9. 11 수준의 테러에 대해 그런 상황이 필연적임을 예견했다면 정면대응 대신 완전한 잠적을 택했어야 했다.
이런 논리로 최근 북한의 상황을 볼 경우 북한은 미국에 대해 비대칭 전략(미국 본토를 노리지 못 하는 대신 자신들의 볼모로 간주하는 한국과 일본을 위협하는)을 구사하는 반면 그 자신을 종심으로 간주하고 최근에는 미본토의 공격가능성을 언급하는 종심공격 개념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떠나서 북한의 정보당국은 실질적인 종심 대신 추상적인 종심에 대한 공격으로 전환을 택해 큰 성과를 거두어오고 있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그런, 와해되어가고 취약해지는 무형의 종심이 처한 위기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종심으로 돌아가, 종심방어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종심방어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요인은 바로 발전된 기술이다. 현재에 있어서 예전의 공자들은 파악할 수 없었던 종심이 가지는 전력은 적어도 그 외형적 측면에 있어서는 은폐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 바로 그것은 우주항공기술에 의한 인공위성 관측때문이다. 이라크가 전력 자체로는 미군 기갑사단의 진격시간을 늦출만한(결과적으로, 전부 녹아없어지는 식이라해도) 능력이 있었음에도 미국은 인공위성을 통해 그 전력과 배치를 속속들이 알 수 있었고 과거라면 이런 종심방어군에 대한 공자였을 기갑군이 도달하기도 전에 항공전력만으로 완전히 와해시켜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적어도 미국, 또는 이라크에 있어서 미국의 상대적인 정보수집력에 준하는 위성관측 수단, 감청 수단, 그리고 효과적인 화력(이라크 기갑군을 끝장내버린 레이져 유도미사일과 폭탄들)을 가진 상대에게라면 종심방어도 방자측이 기대할 수단이 전혀 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요컨데 현대전의 전력의 살제적인 요체는 정밀유도무기의 수준과, 위성으로 대표되는 정보력이다. 한국도 지금까지와 같은 식의 투자를 변화시켜 빨리 이러한 분야에 대해 전력을 확충해야만 주변국으로부터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