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iens
사피엔스
유발하라리
김영사
14쪽
예를들어, 제1차 세계대전을 떠올려보자.
독일과 영국은 왜 전쟁을 벌였는가?
영토나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1914년 독일과 영국 모두 집을 짓기에 충분한 영토가 있었고, 국민들이 먹고 살기에 충분한 식량도 있었다.
하지만 양측이 함께 믿을 수 있는 공통의 이야기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전쟁을 벌였다.
오늘날 영국과 독일간에 평화가 유지되는 이유는 더 많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두나라 국민 대부분이 믿는 공통의 이야기가 현존하기 때문이다.
21쪽
바이오기술의 혁신 덕분에 인간의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지고, 가난한자와 부자간에 진정한 생물학적 격차가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는 모든 인간이 직시할 필요가 있는 질문이며, 이를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22쪽
한국이 가르쳐 주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기술은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고, 마침내 사람들이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1945년 한반도 남쪽과 북쪽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기술은 똑같았다.
하지만 오늘닐 기술격차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동일한 언어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동일한 민족의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기술을 사용해서 완전히 다른 사회를 건설한 것이다.
52쪽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네안데르탈인을 전멸시킨 이유가 바로 이것인지 모른다.
그들이 우리가 무시하기에는 너무 친숙하고 관용하기에는 너무 달랐다는 것
79쪽
일대일, 십대십으로 보면 우리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침팬지와 비슷하다.
심각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개체수 150명이라는 임계치를 초과할 때부터다.
숫자가 1천~2천명이 되면,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진다.
만일 수천마리의 침팬지를 텐안먼 광장이나 월스트리트, 바티칸, 국회의사당에 몰아넣으려 한다면, 그 결과는 아수라장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장소에 정기적으로 수천명씩 모인다.
인간은 교역망이나 대중적 축하행사, 정치제도 등의 질서있는 패턴을 함께 창조한다.
혼자서는 결고 만들 수 없었던 것들을 말이다.
우리와 침팬지의 진정한 차이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과 집단을 결속하는 가공의 접착제에 있다.
이 접착제는 인간을 창조의 대가로 만들었다.
79쪽
물론 우리에게는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능력같은 다른 기술도 필요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협력 하는 능력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도구 제작 그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79쪽
고대의 창촉은 고대인 한명이 친한 친구 몇명에게서 조언과 도움을 얻어 몇분내지 몇십분만에 만들어낸 것이었다.
오늘날 핵탄두를 제조하려면, 전 세계의 서로 모르는 수백명의 사람들이협력해야 한다.
97쪽
모든 시기 대부분의 장소에서 수렵채집은 가장 이상적인 영양소를 제공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이런 식단을 수십만년동안 먹어왔고, 신체 역시 여기에 잘 적응했다.
고대 수렵채집인은 후손인 농부들보다 굶어 죽거나 영양실조에 걸리는 일이 적었으며, 화석뼈에 나타난 증거가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키가 더 크고, 신체도 건강했을 가능성이 많다.
136쪽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137쪽
약 1만년 전까지 이 유인원은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상당히 편하게 살고 있었으나, 이후 밀을 재배하는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2천년도 채 지나지않아 전 세계. 많은 지역의 인간은 동이 틀 때부터 해가질 때까지 밀을 돌보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않게 되었다.
154쪽
불행하게도 진화적 관점은 성공의 척도로서는 불완전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할뿐, 개체의 고통이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축이 된 닭이나 소는 아마도 진화적 성공의 사례겠지만,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물인 것도 사실이다.
동물의 가축화는 일련의 야만적 관행을 기반으로 이뤄졌고, 관행은 수백 수천년이 흐르면서 더욱 잔인해졌다.
야생닭의 자연 수명은 7~12년이고, 소는 20~25년이다.
대부분의 야생닭과 소는 그 이전에 죽었지만, 상당히 오래 살 가능성도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가축화된 닭과 소는 몇주내지 몇개월만에 도살당한다.
그것이 경제적 관점에서 가장 적절한 도살연령이기 때문이다.
158쪽
산업적 육류 농장의 송아지
출생직후 어미와 분리되어 자기 몸보다 그리 크지않은 우리에 가둬진다.
송아지는 여기서 일생을 보낸다.
평균 약 4개월이다.
결코 우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며 다른 송아지와 놀지도 못하고 심지어 걸을 수조차 없다.
이 모두가 근육이 강해지는 것을 막기위한 조치다.
근육이 약해야 부드럽고 즙이 많은 스테이크가 된다.
이 송아지가 처음으로 걷고 근육을 뻗으며 다른 송아지들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도살장으로 가는 길에서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소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종 가운데 하나다.
이와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동물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