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한국의 대학교수들은 불쌍하다. 대학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논문을 써야
하는데, 논문을 쓰자면 연구를 해야 하고, 연구를 하자면
대학원생이 있어야 하고, 대학원생을 두자면 연구비를 받아야 하고, 연구비를
받자면 연구과제를 따야 한다. 4대강사업과 관련이 있는 환경, 토목
분야 연구비는 대부분 4대강사업을 찬성해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대운하 반대 교수모임에 들어온 교수들을 보면, 관련 분야인 토목, 환경
분야 교수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극소수이고 대부분 이와 관련 없는 분야의 교수들이었다.
(13)
이명박 정보가 굳이 댐을 보라고 부르는 이유는 보와 댐의 설계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는 적당히 아무 데나 세워도 되지만, 댐은 물이 새거나 지반이
내려앉지 않고 물을 안전하게 담아둘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저수 지역의 지표지질 조사를 해야 하고, 또
댐 구조물이 들어설 자리에 댐을 안전하게 앉힐 수 있는 암반이 있는지 정밀 지반 조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4대강에 들어선 댐들은 수위 6m를 맞추기 위해서 설치 위치를 잡았을
뿐, 댐 설계기준을 따르지 않았다. 지금껏 댐의 물이 새고
강바닥이 파이고 끊임없이 콘크리트를 쏟아부으면서 보강 공사를 하는 이유가, 댐들을 모래 위에 짓고 옆구리를
흙더미에 걸쳐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댐들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1996년과 1999년에 두 번이나 무너진 연천댐도 흙더미에 걸쳐놓은 옆구리가 터져서 무너졌다.(이 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만든 댐인데, 무너지면 보상해주겠다고
각서에 도장을 콱 찍었지만 보상을 해주지 않아서 주민들이 소송을 하는 데 무려 9년이나 걸렸다.)
(33)
처벌을 보복으로 보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일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보복은 민주사회에서 절대로 행해져서는 안된다. 처벌과
보복은 같은 편이 아니다. 사적인 보복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처벌이 필수적이다. 만화 <26년>은
공적인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에서 사적인 보복의 정당성이라는 심각한 철학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권문제, 특히 국가범죄에는 시효가 있을 수 없다. 독일에서는 2016년 초에도 아우슈비츠에 근무했던 94세의 나치 친위대원 라인홀트
한닝을 기소하여 5년형이 선고되었다. 독일은 종전 70년을 넘겨서도 나치 인권탄압의 말단에 섰던 사람들까지도 단죄하는데, 한국은
불과 30년 전의 인권탄압도, 광주에서의 발포명령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는 구속되자마자 사면 얘기가 나오고 있다.
(86)
오늘날 가정이 자본주의체제의 가치에 삼켜질 위험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가정이
전통적으로 담당하던 역할은 점점 축소되고, 가정의 대부분의 시간이 직접적인 생산과 직접적인 활동 대신, 돈을 벌고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일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섬김에서 나옵니다. 국가와 기업이 우리를
위해 해주는 일이 많아질수록 국가와 기업의 힘은 강력해시고 가정의 힘은 축소되고 무력해집니다. 우리가
그동안 친숙하게 상품과 서비스 형태로 소비했던 것들을 직접적인 활동과 사랑의 수고로 바꾸어낸다면, 하나님의
통치가 경험되는 영토는 그만큼 넓어지겠지요. 우리가 가정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수고를 자발적 사랑으로
감당하고, 그러한 가정들의 인격적인 사랑의 역량과 지혜가 모인다면, 언젠가
함께 가정다운 학교를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119)
유럽 같으면 혁명과 소련에 대한 긍정적 관심은, 아인슈타인과 비트겐슈타인, 벤야민 그리고 로맹 롤링이나 리온 포이히트방거 등의 기라성 같은 비판적 지성인들의 공통분모였다. 아인슈타인 같은 당대의 양식과 양심의 화신은, 볼셰비티들의 반대파에
대한 탄압책을 비판적으로 언급하면서도 레닌에 대해서는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그와 같은 사람들은 확실히 인류 양심을 수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산주의와 관계없는 인도주의자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의 10월혁명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공산주의의 ‘폭력성’에 대해 명확히 비판적이었던 간디는 왜 레닌과 볼세비키들의 ‘숭고한
자기희생정신’을 흠모했을까? 인도주의적 세계주의자인 타고르는
왜 1930년 소련 방문 이후 소련을 “이 세상에서 비길
바 없이 흠모할 나라”라고 규정했을까?
(125)
완벽한 정답을 찾기는 어렵지만, 궁극적으로는 바로 10월혁명의 복합적 성격이 혁명이 만든 사회의 민주성을 제한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혁명이면서도, 10월혁명은 동시에 아직도 근대적
공업국가나 대중사회가 존재하지 않았던 러시아에서 산업화 등의 종합적 근대화 과제까지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근대화 담지 기관으로서의 신생국가가 대대적인 인민 총동원, 철저한 명령과 복종 위주의 서열체계를 요구하며, 그 성질상 소비에트 민주주의 발전의 장애가 된 셈이었다. 소비에트
개발국가의 가시적인 성과들이 특히 제3세계 지식인 지도자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영감을 주곤 했지만, 구미권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실질적 참정권, 즉 사회운영에서늬 참여
권한이 사실상 제한된 소련 노동자들의 입장은 꼭 부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결국 개발이 얻어진 반면에
민초의 자율성과 민주성이 상실된 것은 1917년 10월혁명
후속 과정의 가장 큰 한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134)
1917년의 상황에서 후진적이고 반(半)봉건적이며 민중의 대다수가 문맹이었던 러시아사회는 혁명을 통해서 현대적이고 발전된 경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소련의 과학자는 세계 전체 과학자 중 4분의 1을 차지하고, 건강 및 교육 제도는 서구 국가들의 그것에 필적하거나
우월한 것이 되고, 소련은 우주공간에 최초로 위성을 발사하고 최초로 인간을 내보낸 나라가 되었다. 1980년대에 소련에는 미국, 일본, 영국, 독일의 과학자들을 합친 것보다 많은 과학자들이 존재했다. 오직 최근에 와서야 서구세계는 소련의 우주계획이 미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구 국가들이 여전히 우주공간으로 남자와 여자들을 내보내기 위해서 러시아 로켓들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은 이 점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되고 있다.
(135)
10월혁명은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기록했다. 그 이전 차르 치하에서는 여성들은 가정의 단순한 부속물로 간주되었다. 차르의
법률은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허용했다. 몇몇 시골지역에서는 여성들을 베일을
쓰도록 강요받았고, 글을 읽는 법도 쓰는 법도 배우는 게 금지되었다.
1917년에서 1927년 사이에 여성들이 남성들과 공식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 일련의 법률들이 통과되었다. 1919년에 작성된 공산당의 한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이 대담하게
선포했다. “여성들의 형식적인 평등에 국한하지 않고, 당(黨)은 여성들을 낡은 가사(家事)의 부담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공동주택, 공공식당, 중앙세탁소, 보육소 등등을 제공하도록 노력한다.”
(142)
러시아에서 자본주의가 부활할 가능성, 그리고 그에 따른 여파를 트로츠키는
놀랄 정도의 선견지명으로 1936년에 이미 내다보았다.
“소비에트체제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계획경제의 붕괴, 그리하여 국유재산의 철폐로 이어질 것이다. 트러스트들과 공장들 사이에
유대는 무너질 것이다. 보다 성공적인 기업들은 독립의 길에 나설 것이다. 그들은 주식회사로 변모하거나 그 밖의 다른 전환기적 형태 – 예를
들어, 노동자들이 이윤을 분점하는 – 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집단농장들은 훨씬 더 쉽게 해체될 것이다. 현재의 관료제적 독재가
새로운 사회주의권력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부활로 이어지고, 그에 따라 산업과 문화는 파국적 쇠퇴에 직면할 것이다.”
(167)
그래서 내가 찾아낸 한 가지 교훈은, 책이라는 것은 좋은 책/나쁜 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맞는 책과 내게 맞지 않는 책이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사실 내가 알고 싶어 하고 내가 궁금해 하는 내용을 내가 아는 용어로 전해주는 책이 내게 맞는 책인데, 이러한 책들이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이러한 책들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지만, 일단 찾아내기만 하면 커다란 도움을 얻었던 것이 또한 사실이다.
(230)
이명박 전 대통령의 ‘뻔뻔함’, ‘명랑함’의 캐릭터 분석은 압권이다. 조금의 회한적인 얼굴빛도 없이 “5년간 행복한 대통령이었다”는 그에게는 염려, 성찰, 자책 등 지도자의 필수 덕목은 없었다. 그는 대통령 역할에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캐릭터의 소유자이다(<행복한
권력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은 그 자체로 그를 안하무인의 정치이탈자, 타인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권력을 가진 자로 정의할 근거가 된다.(<유체 이탈, 정치
이탈>) 뻔뻔함과 안하무인, 너무도 부적격한 전직 리더들의
캐릭터는 희극적이고 절망적이다. 사과도,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절대 불감증의 두 사람이 통치했던 기간의 불행을 슬프도록 절감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