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요가원 갔다 몸만 좀 풀고 나와,
지하철 세 번 갈아타고 수원으로 갔다.
시간도 꽤 늦어진데다 비도 뿌리고,
그래 수원역에서 택시 잡아탔다.
팔달문이요. 그리고 조금 가다가 아저씨한테,
근처 대승원 아냐고 물었다.
(웬만하면 팔달문에 내려 걸어올라갈라 했는데
손에 든 짐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고..)
보살집이에요? 비아냥 섞인 아저씨 말투..
아니요, 절이에요.
그러곤, 나는 무교이지만.. 하고 말 시작한 아저씨,
내내 종교에 대해 욕을 한다..
라기보다 교회, 절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싸잡아 흉을 본다.
특히 절 불사(기와)니 교회 증축이니.. 결국 돈 문제로 흐른다.
적당히 대꾸해 주다 말았다.
(불교사상연구회) 대승원..
작은이모 친구분이 하시는 절이다.
그곳에서 두 아들 내외, 손주들하고 함께 산다.
큰아들은 스님이고, 작은아들은 총무일을 본다.
연암스님은 그러니까 대처승이다.
이모한테 들은 바로는, 한번 결혼에 실패했고,
동국대 불교학과 다니다, 지금은 입적하신
큰스님 만나 결혼도 하고(그러니까 큰스님은
조계종 비구승이었다가 대처승이 된거다),
큰스님 돌아가시기 직전에 머리도 깎고 계 받으셨다던가..
하여튼 파란만장, 평탄한 생은 아니었다 한다.
법당 안은 꽉 찼고, 열어놓은 문으로 들여다보니
비구니스님 두 분이 바라춤을 추고 있다. 쳉쳉쳉--
오늘 무슨 행사가 있다더니, 딴데서 오신 스님들인가 보다.
그분들 말고도 비구승 두 분이 더 계셨다.
옆문으로 들어가서 통로 한구석에 비집고 앉았다.
미륵불 개금불사 회향하는 날이라 이모한테 들었는데,
그것말고도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다.
나중에 들어보니, 큰스님 아들이신 수산스님이
호 받는 날이라 한다(삼인당이라는 새 이름을 받으셨다).
그 호란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호와는 달리
법통을 이어받는 거라고..
그래 아마 널리 알리고 축하하는 행사 같은 건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천수경을 욀 때도
목탁소리만이 아니라, 북, 징, 요령 들도 함께한다.
경 외는 소리보다 이런 악기들 소리가 더 가슴에 울린다.
이모를 찾아 둘러보았지만 안 보인다.
특별행사 끝나고, 영가한테 잔 올리고 절하는 시간이다.
뒤로 물러나 문지방에 서서 둘러보니 이모가 눈에 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내가 앉아 있던 바로 옆에 옆에 있었네..
근데, 이모 얼굴이 말라서 그런지, 갑자기 많이 늙어 보인다.
이모는 나를 못 보고 있어, 몇 번이나 한참 쳐다보는데
자꾸 마음이 무지근해 온다. 몸에 조금 이상 있단 소리도 들어..
작은이모..
...
곁으로 다가갔다. 이모..
아, 그래. 인자 왔나?
아뇨. 좀 됐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차례로
이모도 영가 제단 앞에 가서 절을 한다. 이모는 이곳에
이모부뿐 아니라 외할머니 위패도 모셔 놓았다.
오늘은 행사가 길어져 1시가 넘어 점심공양을 했다.
간단히 나물 반찬 세 가지와 김치, 무국이다.
보살님들이 도와 준다 해도 두 며느리가 부엌일이며
행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준비 하려면 꽤 힘들 거다.
나올 때 시루떡들 하나씩 받아가는데 북새통이다.
절 마당에서 연암 큰스님 마주쳤다.
이모가 인사를 하고, 나도 인사했다.
반갑게 껴안아 주신다. 고맙다며..
큰스님은 엄마 돌아가시기 전핸가 전전핸가
이모님 따라가 처음 뵈었다. 많이 힘들어할 때
이모가 상담이나 하라며 데리고 가주었지.
그때 얘기 좀 나누고, 언제든 힘들면 오라 그랬는데,
혼자서는 거의 안 갔고, 가끔 이모 절에 다니러 오시거나 할 때
이모 만날 겸 절에 들렀다 뵙기도 하고 못 뵙기도 하고..
이모와 같이 언덕을 내려온다.
비는 계속 뿌리고 있다.
오늘 이모 짐이 많다. 작지 않은 가방이 두 개나 된다.
무겁기도 하다. 게다가 우산까지 들어야 한다.
둘 다 빼앗다시피 내가 들었더니, 집에 돌아올 때까지
내내 달라 해서 둘이서 실강이를 하며 왔다.
하나는 한복 보따리라 했다.
토요일날 서울에서 결혼잔치 있어 싸가지고 오신 것이다.
올땐 단체로 버스 타고 왔으니 괜찮았을 테고,
수지에 있는 둘째아들 집에 있다 오셨는데,
절에서 잠깐 만나 얘기하자는 거, 내가 우리 집에서
하루라도 자고 가시라고 졸라대서, 짐 다 챙겨들고
내려갈 채비 해서 나오신 것이다.
괜히 번거롭게 해드린 거 같지만 할 수 없다..
팔달문 앞에서 버스 타고 수원역에서 내려
이제 전철만 타면 된다. 우리 집까지 한번만 갈아타면
되니까 괜찮은 편이다. 시간은 꽤 걸리지만..
어제 계속 통화중이라 전화로 차표 예약 못했다 해서
수원역에서 바로 낼 대구 내려갈 차표 끊어놓기로 했다.
국철 타고 금정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인덕원쯤 오자
전화가 울린다. 윤경이다. 어디냐고.. 다 와 간다고..
나올 수 있댄다. 다행이다. 이모하고 짐 땜에 또
실갱이하며 집까지 걸어올라갈 판인데..
이수역에 내리니 비는 더 온다.
윤경이 차에 올라탔다. 딴때 같으면 학원 갔을
시간이라 생각도 안 했는데, 늦추고 이렇게 나와
주니 고맙다.
윤경이 떡도시락 싸서 직장 보내고 나서 보니,
이몬 벌써 소파에 누워 낮잠 주무신다.
작은이모는 큰이모와 달리 아무데서나 잘 주무시고.
쉽게 잠드신다. 짤막짤막 자주자주..
밤에는 깊은 잠 주무시고..
금세 20분도 안 되어 일어나신다.
절에서 싸온 떡, 내가 따로 산 떡에,
음료수 뭐 드릴까나 하다가, 차 마시기로 했다.
먼저 녹차부터 마시다, 보이차, 나중엔 오룡차(?)도 마셨다.
보이차는 처음이라 하여, 녹차하고 다른 점을 얘기해주었다.
재미있어한다. 이모는 이래서 좋다. 통한다.
먼저 남의 얘기를 귀담아 들으려고 하신다.
차 마시며 여러 얘기가 이어진다.
이모 몸은 어떤지, 전화로 간단히 들었지만
병원 갔다온 결과를 물었다.
요즘 계속 빈혈이 심해 내과에 갔단다.
대소변 검사에서 피가 보였단다.
그래서 다시 위, 장 내시경 검사..
결과에서는 별 이상 없었다고.. 장에 뭐 조그만 게
하나 있어 보호자 허락 얻어(이모는 수면 상태라)
떼어낸 거 말고는..
그래서 결론은, 이모 드시는 심장약(그 가운데 어떤 성분)
때문일지도 모른다며, 다음 약 받는 날 가서 그쪽 의사한테
물어보라 했단다. 빈혈약만 지어주면서..
검사 받으랴, 신경쓰니 스트레스 받아 밥맛도 없고 하더니
이번에 4킬로나 빠졌다고..
나도 그렇던데, 나이든 사람 그런 거 한번
검사하고 나면 힘이 쭉 빠질 거라.
요즘은 수면 내시경이니 손쉬운 게 나왔대지만,
그건 또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 겁나는 일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편리한 걸 쫓겠지..)
우선은 다행이다. 큰 병은 나타나지 않았다니..
근데 어떤 처방이 내려질지, 10년 드셨다는 심장약
안 먹을 수도 없고, 빈혈약까지 보태 지어줄래나..
큰이모는 벌써부터 협심증, 고혈압 때문에 늘 조심하시고,
그런 줄 알고 있지만, 요즘들어 작은이모가 자꾸 병원을
자주 들락이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병원이 병을 낫게도 하지만 더 병 나게도 하니까.
그래도 이제 입맛도 돌아왔고 훨씬 낫단다.
그리고 친척 아주머니 누구 수술받는데
전날 병원 하루 가서 자주기로 했다고,
그래 낼 내려가야 된다고..
요즘엔 복지관에서 뭐하시냐고 물으니,
스포츠댄스, 택견, 수지침, 그리고 또 무엇(서예든가..)
4가지나 된다고, 월요일 토요일 빼고는 맨날 나가신다고..
스포츠댄스는 이번에 빈혈 때문에도 좀 힘들다며
그만두려 한단다. 내 생각에도 그게 좋겠다고 했다.
경쾌하여 기분은 업될지 몰라도, 심한 운동은 안 하는 게..
새벽마다 가던 집 뒷산은 요즘은 안 간다고,
대신 일요일마다 가신단다.
여행도 요즘은 별 생각 없다신다.
친구들하고 일년에 한차례 정도 가는 것 말고는..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모 이야기 듣고,
우리 집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 보니 두 시간 이상 차를 마셨다.
저녁밥이 많이 늦어지겠다.
장보고 오니 7시도 넘었는데, 언니가 와 있다.
못 올 줄 알았는데, 퇴근길에 들렀나 보다.
내일 큰집 제사도 있고, 시댁 식구들도 온다고 해
김치도 담가야 하고, 해서 그냥 이모 얼굴만 보고 갈려고
들렀단다. 형부는 못 오신대고.
둘이서 후다닥 준비했는데도 8시도 한참 넘었다.
언닌 밥먹자마자 간다고 일어선다.
배도 꺼트릴 겸 배웅하러 지하철역까지 따라갔다.
밥도 좀 많이 먹은데다, 꼭꼭 씹지도 않고, 게다가
오랜만에 고기 몇 점 먹어 그런가 속이 거북하다.
고맙지 뭐, 이렇게라도 표를 내니. 알아차릴 수 있게..
돌아오니 이모는 다 씻고, 지압봉을 가지고 만지작거리고 있다.
요가원 안나님한테 받은 건데, 좀 특이한 모양이라..
난 잘 쓰지도 않고, 이모 훨씬 요긴하게 쓰실 것 같아
쓰시라고 드렸다. 지난번 경침도 잘 쓰시고 있다니 좋다.
아까 얘기하다가 나온 말,
안 쓰고 내버려두었던 오래된 커피포트, 다시 쓰게 되면서
제 기능을 찾게 되었다는.. 이 좋은 걸 와 안 썼노 하면서..
그게 어디 물건뿐이겠나. 사람도 그럴 것이다..
끄는 기능이 없어 단점인 줄 알았던 커피포트가
오히려 스스로 껐다 켰다 자동 조절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듯이..
이모는 이내 잠드시고..
나도 잠이 쏟아질 때 빨리 자야지.
오늘 참 많이도 떠들었다.
그런데도 피곤하진 않다.
주고받는 말이 통하니 즐거워
오히려 막혔던 게 풀리는 게지.
(5월 4일)
5시 조금 넘은 것 같다. 해뜨기 전이다.
이모도 일어났지만 조용히 누운 자리에서
몸 움직여 주며 운동하고 있다.
다리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내가 먼저 씻고 와서, 엊저녁에 안 하고 잤길래
다시 누운 채 경침을 목에 베고 고개를 이쪽저쪽 돌렸다.
이모도 이어서 하신다. 집에서는 티비 보면서
하는 시간이 있단다. 맨날맨날 해주니까
처음에는 많이 아프더니 요즘엔 순환이 좀 되는지
덜 아프단다. 꾸준히 하시라고 했다. 그럼 풍도 안 온다고..
아침밥은 윤경이 깨면 셋이서 같이 먹기로 했다.
윤경이 밤늦게 들어와 늦게 자니 아침도 늦어지겠다.
엊저녁에 이어..
두시간 정도 있어야 될 거 같아
어제 남은 떡과 함께, 또 차 시간을 가졌다.
집안 구석구석 고치고 때우고 치우고 버릴 부분이 많은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그전부터도) 손도 안 대고 있으니
더 엉망이 되어 있다. 귀찮기도 하고, 이사갈 궁리를 하고 있으니
더욱이나 거들떠보기도 싫다. 정도 안 들고..
이모도 다 보였겠지만 잔소리처럼 들릴까 봐 암말 않다가
내가 먼저 말 꺼내니 이런 말 저런 말 해주신다.
집이 언제 팔릴지도 모르고, 있을 동안에는 그래도 조금씩
손봐가면서 살아야지 않겠나.. 나도 요사인 그런 생각 하고 있다.
힘들다고 팽개칠 문젠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아직은 이 집에 살고 있고, 싫든 좋든 또 집주인이기도 하니까
내가 처리해야 할 문제들 많다. (아니, 집주인은 나만이 아니지만
상황이 그렇다.)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이다.
내가 참 싫어하는 일, 위치에 내가 서 있다.
가장 싫어한다는 건, 가장 모자라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짊어져야 할,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지혜롭게 풀어나가야는데, 꽤 힘들 거다. 특히 나한테는..
그동안 이해 못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집 하나 남기고 암말 없이 가셨는지도..
잘 안 되는 거, 못하는 거, 피하고 싶은 거, 과제처럼 남겨주고.
피할 수 없게..
고마워해야지. 아니 고맙지. 한평생 자식 여섯 키우며
곧이곧대로 힘들게 살아, 그래도 빚 안 떠넘기고
골칫거리 집이지만 비바람 막아주는 집 한칸..
남기고 가셨으니..
얘기가, 생각이 길어졌다.
각설하고..
이모는 내가 보여준 책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어제부터
틈틈이 읽으시더니 재미있단다.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 가져가도 된다고, 가서 읽으시라 했다.
어제오늘 차는 엄청 마신다. 나는 술마시듯이 술술 마시고,
이모는 조금씩 마신다. 난 역시 물이 필요한가 보다고,
물이 들어가면 기분이 참 좋다고.. 예전에 누구한텐가 들은
사주 얘기까지 하면서... 내가 큰나문데 물이 모자란대나 어쨌대나..
차 마시며 얘기하다 보니
이모가 보는 아침 드라마 시간이 지났단다.
찔레꽃이던가? 조금 지났다. 놓칠 뻔했단다.
이모는 티비 보고, 난 아침밥 준비한다.
윤경이 깨워 셋이서 한상에 앉았다.
찬도 별로 없고 맛도 그저 그럴 테지만
이모는 늘 맛나게 먹어주신다. 또 언제 어디서건
밥상 받으면 잊지 않고 기도하듯, 잘 먹겠습니다 하신다.
아마 혼자서도 그러실 것이다.
윤경이는 후다닥 밥먹고 일어난다.
운동하러 동네 와이엠시에이에 가면서
이모한테 잘 가시라고 인사한다.
이모도 윤경이한테 살 좀 찌우라고 그런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비쩍 마른 윤경이가
또 마음에 걸리시나 보다.
나는 설거지하고, 이모는 화장한다.
이모는 짐 챙기고, 난 과일 깎아낸 뒤
이모 가면서 드실 물, 떡, 음료수 챙긴다.
삼태형네 잔치집에서 챙겨온 쌍화탕 팩도
몇 개 가방에 넣어 드렸다. 아까 그 책하고..
차시간에 넉넉히 대게 나선다.
갈아타진 않아도 되지만
이수역까지 걸어내려가야 되니까.
근데 아차, 지하철 타고 나서 보니
따로 물이랑 음료수 담아놓았던 비닐봉지를
집에 그냥 놔 두고 가방 두 개만 들고 왔다.
아이구.. 자꾸 아쉬워하니까 이모가 농담으로,
(깜빡깜빡한다고 어제도 건망증에 대해 얘기했지.
복지관에서 간단한 치매 검진 받은 얘기 하면서..)
내가 위안이 된다..^^
하신다.
지하철 서울역에서 내려 기차역으로 갔다.
시간은 조금 남았다.
내리면 너무 늦은 시간일 것 같고,
점심 겸 간식으로 싸놓은 떡은 안 가져왔고,
국수라도 한그릇 드시고 가야 된다고 내가 우겼다.
한그릇 시켜 같이 먹기로 하고 식당에 들어갔다.
늦은 아침 먹은 참에, 이른 점심이긴 하지만..
기차 안까지 들어가 이모 자리 앉는 거 보고 나왔다.
기차 떠날 때까지 플랫폼에 서 있었다.
역무원 아저씨가 농담을 던진다.
왜 울어요?
아니 어떻게 속까지 들여다보세요..
나도 맞받아 줬다.
새로 단장한 서울역 건물..
지하철로 곧장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
곁에 두고 계단으로 내려간다.
바깥바람 쐬러 어슬렁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