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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의 「석가탑」에 수록된 가사 고찰
맹문재
1. 들어가는 말
신동엽 시인이 대본으로 쓴 오페레타(operetta) <석가탑>은 1968년 5월 10일∼11일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되었다. 명성여자중고등학교가 주최한 학생들 행사였지만, 한국일보사가 후원했을 뿐만 아니라 백병동 작곡, 문오장 연출, 임주택 지휘, 공군교향악단 협연으로 참여했을 정도로 그 면면이 주목할 만하다. 비록 학생들의 공연이었지만 “한국 음악의 발전에 한 자취를 남길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할 정도로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
신동엽 시인이 “학교장님의 분부에 의해 작년 여름방학과 가을을 서재 속에 묻혀 살았습니다.”라고 밝혔듯이 <석가탑> 공연은 명성여자중고등학교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그와 같은 면은 심태진 학교장이 “중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예술 행사가 비단 학교 내의 발표회에만 그칠 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에까지 영향력을 넓혀 민족의 문화 향상에 이바지”하려고 공연을 추진했다고 밝힌 데서도 확인된다. 그렇다고 신동엽 시인이 수동적으로 <석가탑> 대본을 썼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비록 학교장의 제안에 의해 시작한 일이지만, 신동엽 시인은 이미 『삼국유사』에 나오는 아사녀와 아사달 신화를 문학 작품으로 재구성해보고 싶어 했을 뿐만 아니라 현진건의 장편소설 『무영탑』과 달리 그 나름대로 아사녀와 아사달의 전설을 해석해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동엽 시인은 1967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석가탑>의 대본을 창작 의식을 가지고 집중했던 것이다.
오페레타는 ‘작은 규모의 오페라’로 곧 경가극(輕歌劇)으로 부를 수 있다.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서구에서는 뮤지컬이나 코미디 극에 영향을 줄 정도로 활발하게 공연되는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장르이다. 더욱이 당시에는 서구에서 수입한 작품에만 의존할 뿐 창작 오페라 자체가 전무한 형편이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시인이 대본을 쓰고 우리나라 음악가가 작곡한 <석가탑>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큰 것이다.
「석가탑」은 신라 헌강왕 때 경주의 불국사를 증축하면서 백제의 석공인 아사달을 불러 다보탑과 석가탑을 세우는 서사를 담고 있다. 아사달은 다보탑을 세울 때와는 달리 석가탑의 공사를 진척시키지 못한다. 고향에 두고 온 아사녀에 대한 그리움과 수리공주의 구애 또한 심리적인 갈등을 일으킨다.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 아사달을 찾아 아사녀는 백제의 부여를 떠나 불국사에 도착하지만 만나지 못한다. 석가탑 공사에 여성이 들면 부정 탄다는 이유로 불국사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 출입의 금지는 수리공주를 짝사랑하는 도미장군이 아사달을 찾아다니는 수리공주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사녀는 석가탑의 공사가 끝나면 만나게 해주겠다는 불국사 문지기의 약속을 믿고 아랫마을로 가 머무른다. 석가탑이 완성되면 아사달이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그 그림자가 연못에 나타난다는 말도 전해 듣는다. 아사달을 그리워하는 아사녀는 연못에 비친 석가탑을 발견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사달은 석가탑을 완성한 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슬퍼하며 사랑하는 아사녀를 위해 평생 동안 아내의 얼굴을 돌에 새길 것을 결심한다.
<석가탑>의 서사는 5경(景)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19편의 노래가 불려진다. 1경에 4곡, 제2경에 5곡, 제3경에 2곡, 제4경에 5곡, 제5경에 3곡 등이다. 이 글에서는 그 노랫말의 내용과 의의를 불국사에서 다보탑과 석가탑을 만들고 있는 아사달을 보려고 아사녀가 서라벌에 도착한 제3경을 분기점으로 삼고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2. 제1경∼2경의 가사
제1경의 무대는 불국사 경내로 완성된 다보탑과 공사 중인 석가탑이 보인다. 막이 오르면서 맑고 명랑하고 장중한 여승들의 합창이 울려나온다. “서해 바다 노을 지니/동해 바다 달이 뜨네/서역 만리 석가님 가시니/우리 서라벌 목탁 소리 일어나네/어와 부처님이시여/우리 마을마다 부처님 웃음 피어나네”(「새 성인 나시네」2연). 불국사 경전 내에 다보탑과 석가탑을 세우는 공사가 인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이 아니라 부처님의 뜻이 반영된 숭고한 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다보탑과 석가탑을 만드는 아사달이 하찮은 석공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뜻을 새기는 인물로 ‘성인’에 가깝다고 여기는 것이다.
두 번째 노래는 불국사를 방문한 왕, 왕비, 수리공주, 도미장군 등과 주지가 아사달이 다보탑을 세운 일을 찬양하는 것이다. 여승이 독창하고 일동이 합창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렇습니다 신들린 사람처럼
밤이나 낮이나 세 이레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입 한번 열지 않고 세 이레.
불꽃 튀는 기쁨처럼
그 입가엔 미소가 스며 배고
마치 소리 정 소리만
불꽃 튀는 슬기처럼
울려 퍼지더니.
그렇습니다 온몸에선
땀이 흘러내려 강을 이루고
마치 소리 정 소리만
불꽃 튀는 슬기처럼
서라벌 하늘에 울려 퍼지더니.
네 귀에 버티고 앉은
네 마리 사자
사자 등 너머론
천상에 이르는
어여쁜 돌층계.
―「그렇습니다」 전문
위의 가사에서는 아사달이 다보탑을 만든 장면이 여실하게 소개되고 있다. “신들린 사람처럼/밤이나 낮이나 세 이레/물 한 모금 안 마시고/입 한번 열지 않고 세 이레”라고 노래한 데서 볼 수 있듯이 아사달은 21일 동안 신들린 사람처럼 다보탑의 제작에 몰두했다. “온몸에선/땀이 흘러내려 강을 이루”었지만 지치지 않았고 오히려 “불꽃 튀는 기쁨처럼/그 입가엔 미소가 스”미었다. “마치 소리 정 소리만/불꽃 튀는 슬기처럼/서라벌 하늘에 울려 퍼”져 “네 귀에 버티고 앉은/네 마리 사자”며 “사자 등 너머론/천상에 이르는/어여쁜 돌층계”를 만든 것이다.
노래가 끝난 뒤 불국사의 주지는 왕에게 다보탑의 형상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 돌층계를 더듬어 올라가면 편편한 벌판이 나오고 그 벌판 한복판에 위층을 떠받드는 듯한 중심 기둥이 뚝 찍은 듯 버티고서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 층에는 난간의 돌들도 팔모로 깎이고 기둥도 여덟 개로 분산되어 그 여덟 개의 돌기둥들이 마치 하늘을 떠받들 듯이, 너그러운 연꽃 꽃잎 모양의 돌지붕을 떠받들고 있습니다.”라고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주지의 설명을 들은 왕은 다보탑의 아름다움에 거듭 감탄하고 석가탑의 공사가 중단되고 있는 상황을 궁금해 한다. 주지는 아사달이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2년째 참선을 하고 있다고 알린다.
도미장군은 왕에게 애당초 일 년 동안 두 개의 탑을 깎겠다고 약속하고 온 아사달이 3년이 지나도록 성과를 못 내고 있으니 석공을 교체하자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주지는 아름답고 신묘한 다보탑을 가리키며 아사달은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반대한다. 수리공주 역시 서라벌에 아사달같이 훌륭한 석공이 없다고 주지의 의견을 옹호한다. 도미장군이 그렇지 않다고 다시 항변하자 수리공주는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노래 부른다. “무슨 곡절이 있겠죠/무슨 곡절이 있겠죠/강물도 흐르다 멎으면/까닭이 있는 법/멎었다 흘러도/곡절이 있는 법/무슨 곡절이 있겠죠”(「무슨 곡절이 있겠지」 1연). 수리공주는 아사달이 석가탑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수리공주를 짝사랑하는 도미장군은 아사달을 감싸는 수리공주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아사달을 야유한다. “나하고 있을 땐 생기가 없더니/저 아름다운 눈에 빛나는 저 새론 광채/어제 그 석공 놈을 보고 난 뒤부터/갑자기 빛나기 시작하는 저 팔팔한 생명./꺾을 수 있을까 꺾을 수 있을까./도끼로 꺾을까 창으로 꺾을까.”(「도끼로 꺾을까」 1연)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도미장군의 몸종인 맹꽁이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꺾을 수 없다고 야유하는데, 오페레타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오페레타는 음악과 연극을 합친 구성이라는 면에서 오페라와 유사하지만 낭만적인 줄거리와 노래, 풍자적인 대사, 춤 등이 어우러져 오페라와는 다른 특성이 있는 것이다.
제2경은 수리공주가 아사달을 향한 짝사랑이 점점 깊어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사달이 석가탑 제작을 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숨어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는 것이 그 모습이다. 그리하여 “내 생전 처음 보았네/가슴 아픈 그 눈동자/하늘이 열리듯 산이 우는 듯/내 가슴 젖어드는 서러운 눈동자여!//내 생전 처음 보았네/가슴 아픈 그 눈동자/말씀이 계실 듯 계실 듯/서럽게 체념하는 가슴 아픈 눈동자여.//내 생전 처음 보았네/가슴 아픈 그 눈동자/눈물 넘칠 듯 기쁨 넘칠 듯/서늘하게 굽어보는 가슴 아픈 눈동자여.”(「가슴 아픈 눈동자」 전문)라고 노래한다. 수리공주는 아사달의 무겁고 아프고 서러운 눈빛에 마음을 종잡지 못한다.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물론 함께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아사달이 고뇌하는 것은 석가탑을 잘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날 같은 그 영감이 왜 오지 않을까. 내 머릿속이 왜 이렇게 텅텅 비어만 있을까. 벌써 3년. 저 다보탑을 쪼을 때는 하늘을 쪼개는 듯, 내 가슴 두 쪽 나는 듯, 그 무서운 번갯불이 세 이레나 계속 되더니”라며 다보탑처럼 집중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아사달이 석가탑을 쉽게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우주를 새기는 것으로 인식할 정도로 심오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어데 가서 돌아오지 않는가
우주를 다듬고 싶은 섬광이여
사랑을 새기고 싶은 불꽃이여
어데 가서 돌아오지 않는가.
어데 가서 돌아오지 않는가
하늘을 쪼개는 듯, 내 가슴 두 쪽 내듯
설레이던 번갯불이여
어데 가서 돌아오지 않는가.
이제 고만 돌아와 다오
기다림에 지친 헤매는 이 마음
하늘 사를 불길 속 던지고 싶어라
이제 고만 돌아와 다오.
―「어데 가서 돌아오지 않는가」 전문
위의 가사에서 아사달은 “우주를 다듬고 싶은 섬광이여/사랑을 새기고 싶은 불꽃이여”라고 노래하고 있듯이 석가탑을 통해 우주를 다듬고 사랑을 새기려고 한다. 예술과 사랑 두 가지를 모두 성취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늘을 쪼개는 듯, 내 가슴 두 쪽 내듯/설레이던 번갯불” 같은 집중력으로 석가탑을 세우려고 한다.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작업에 매진하기를 다짐하는 것이다. 고향에 두고 온 아내인 아사녀를 하루 빨리 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사달의 아사녀에 대한 그리움은 수리공주가 다가왔을 때 아사녀로 착각할 정도로 깊다. “하루에도 열두 때/한 달도 서른 날/가랑잎 소리에도 놀래요/행여 당신 오시나 하고.”(「가랑잎 소리에도 놀래요」 1∼2연) 부르는 노래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석가탑 작업만 끝내면 “그까짓 천리길/닷새면” 갈 수 있다고 약속한다.
아사달과 수리공주가 함께 있는 모습을 발견한 도미장군은 보통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분을 삭이지 못한다. 그리하여 수리공주를 짝사랑하는 도미장군은 아사달을 책망한다. “이제야 알겠군/이제야 알겠군/탑 공사 왜 더딘가 했더니/까닭이 있었군./딴 수작 했었군/딴 수작 했었군/탑 공사가 왜 안되나 했더니/딴 수작 했었군.//염불엔 맘 없고/잿밥만 보였군/탑 공사 왜 안되나 했더니/잿밥만 보였군.”(「이제야 알겠군」 전문)이라고 아사달을 꾸짖는 것이다.
도미장군은 아사달이 석가탑을 만들지 않고 석수쟁이 신분으로 수리공주를 유혹하려는 음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야단친다. 나아가 아사달이 제작한 다보탑이 뒤틀어지고 짜부라져 볼품이 없다고 폄하한다. 수리공주는 다보탑은 서라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가장 아름다운 탑이라고 맞선다. “저기 탑의 선 하나 하나에 인간의 가장 높은 꿈이 서리어 있어요. 부처님의 미소가 어리어 있어요. 열반의 바람결이 서리어 있어요. 그 멀고 먼 인간의 고뇌가 새겨져 있어요.”라고 다보탑의 의미를 고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보듯이 아사달이 석가탑을 제작하는 데 집중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수리공주 때문이다. 우주적인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것과 고향에 두고 온 아사녀에 대한 그리움에 더해 짝사랑하는 수리공주의 등장으로 인해 아사달의 마음은 복잡한 것이다. 그리하여 곁에서 지켜보는 여승과 시녀들은 아사달을 위해 노래한다. “구름은 가세요/어둡고 그늘진 구름은 가세요/아사달님 마음은 석가탑 마음/구름은 가세요./맑고 드높은 백제 땅의 슬기/괴롭히지 말고 어서 흘러가세요./”(「구름은 가세요」 1연)라고 아사달이 석가탑을 잘 만들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이다.
3. 제3경∼5경의 가사
제3경의 무대는 이전까지 불국사였던 것에서 벗어나 서라벌 산골 마을의 산길이다. 산골 아가씨들은 뽕잎을 따러 가면서 합창으로 노래한다. “뽕잎 따러 가요/뽕잎 따러 가요/뽕잎 따다 누에 먹여/고치집 짓거든/구름 같은 비단실 뽑아/비단옷 기워 입고/내년 가을 추석날엔/우리도 좀 이뻐져야죠.”(「뽕잎따기 노래」 1연). 젊은 아가씨들이 부르는 노래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답다.
아사녀는 시녀인 마래와 나리를 데리고 서라벌로 향하다가 뽕잎 따러가는 아가씨들을 만나 서라벌이 냇물 한 번 건너고 고개 두 개만 넘으면 된다는 말을 듣고 힘이 난다. 또한 아사달이 서라벌 생긴 이래 가장 아름다운 돌탑인 다보탑을 불국사에 세웠다는 것도, 석가탑은 아직 못 깎고 산에 올라가 날마다 기도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아사녀는 아사달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한다. 그리하여 곧 아사달을 만나게 될 기쁨에 들떠 “꿈일까 생시일까/저 고개만 넘으면/그대 계시다니/이게 정말 꿈일까 생시일까./가슴은 터져요/만나뵈올 이 기쁨에/가슴은 터져요/하루 한날 잊지 못해/울던 눈물이/삼년 동안 흘러내려/내 얼굴 씻어줬으니/거울 보지 않아도 내 얼굴 아름다울 거야/어서 어서 가요.”(「만나뵈올 이 기쁨」 1연)라고 노래한다. 마래와 나리도 함께 부른다.
제4경의 무대는 다시 불국사이다. 아사달이 석가탑 공사를 하고 있는 불국사 밖에서는 문지기들이 수리공주를 짝사랑하는 도미장군과 아사달을 연모하는 수리공주를 희화해서 말을 주고받는다. 도미장군은 수리공주가 아사달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여자의 불국사 출입은 석가탑 공사에 부정이 탄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수리공주는 돈으로 문지기들을 매수해 불국사를 몰래 드나든다. 그만큼 아사달을 향한 사랑이 깊어진 것이다.
아사달은 마음을 다잡고 물도 안 마시고 잠도 안 자고 석가탑을 깎아 마침내 완성을 앞두고 있다. 석가탑의 공사가 마무리될 날이 다가오자 수리공주의 마음은 불안하다. 그리하여 공사가 끝나면 곧바로 부여로 떠나는지 아사달에게 묻기까지 한다. 아사달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수리공주는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하소연한다. 아무리 뿌리쳐도 따라가겠다며 “하늘이 두 쪽 나도/난 따라 갈래요/내 손 뿌리치고 혼자서 달아나셔도/이젠 늦었어요/당신께서 아무리 이 몸 미워하셔도/이젠 안 돼요.”(「하늘이 두 쪽 나도」 1연)라고 매달리는 것이다.
수리공주의 애정은 제어하기 힘들 정도이다. 아사달이 3년째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가 고향에 있다는 말을 해도 수리공주는 물러서지 않는다. 아사달에게 부인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므로 아무 상관없고 아사달의 곁에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사달은 부귀영화를 왜 버리느냐고 안타까워하며 수리공주에게 마음을 돌리기를 간청한다. 수리공주는 부귀영화는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물러서지 않는다. 그리고 “돌 위에 자고 흙 위에 쓰러져도/이별보단 행복해요./나무껍질 풀뿌리 뜯어도/생이별보단 천번 나아요./죽음보다 괴로운 건 그대 이별/노을 지고 달이 뜨는 저녁/그 허구헌 나날/어떻게 저 혼자 멀리 떨어져 살아요./돌 위에 자고 흙 위에 쓰러져도/생이별보단 행복해요./뿌리치지 마셔요.”(「돌 위에 자고 흙 위에 쓰러져도」 전문)라고 노래한다.
아사달을 향한 수리공주의 사랑은 일부일처제라는 결혼 제도뿐만 아니라 신분을 뛰어넘는 것이다. 사회의 금기 체계를 깨트리는 파격적인 행동으로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리공주의 적극적인 구애를 오페레타의 서사에 삽입한 것은 사랑은 신분을 뛰어넘을 정도로 위대한 것이라는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또한 그와 같은 조건 속에서도 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정도로 지고지순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아사달은 수리공주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아사녀를 향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내일 밤 석가탑 공사를 끝내고 모레 새벽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면서 아사달은 다보탑은 너그러운 여자, 즉 아사녀라고 밝히고, 석가탑은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고행하는 남자, 즉 자신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그까짓 천리길/닷새면 가오/맨발로 밤낮 걸으면/닷새면 가오./내일 밤 끝내면/닷새면 갈게/그까짓 강이나 산 고개/단숨에 갈게.”(「그까짓 천리길」 전문)라며 고향에 돌아갈 것을 확신한다. 아울러 수리공주에게는 “제 몸이 어데 가 있드래도 공주님의 그 따뜻하신 마음씨 잊어버릴 수 없을 겁니다. 같이 가지 않드래도 제 가슴속에 공주님의 그림잔 영원히 살아 있을 거예요.”라고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또한 “이 세상은 한 가지 세상이에요. 어디 가나, 마음과 마음은 바람결처럼 울타리 없이 흘러다니고 있어요.”라고 인연의 소중함을 전한다.
부여에서 출발한 아사녀가 마침내 불국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지기들은 “개미 새끼 한 마리도/못 들어간다, 이 문으론./못 들어간다, 탑 공사 끝날 때까진./개미 새끼 한 마리도/못 들어간다. 이 문으론./개미 새끼 한 마리도/개미 새끼 한 마리도/개미 새끼 한 마리도/못 들어간다/못 들어간다/하물며 치마저고리 입은/다 큰 여자야?/어림도 없지/어림도 없지.”(「문지기들의 노래」 전문)라며 막아선다. 석가탑 공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여자는 불국사의 출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사녀는 자신이 아사달의 아내라고 소개하지만 문지기는 인정하지 않는다.
문지기는 수리공주에게 뇌물을 받고 문을 들여보내준 사실이 발각될까봐 걱정도 되고, 아사녀의 딱한 사정에 안쓰러움이 들어 석가탑 공사가 끝날 때까지 아랫마을에 내려가 기다려 달라고 제안한다. 며칠 안으로 석가탑이 완성될 것이라고 안심도 시킨다. 그러면서 아랫마을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큰 연못이 있는데 석가탑이 완성되면 탑의 그림자가 그 연못에 비칠 것이라는 점쟁이의 예언을, 즉 아사달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만 비칠 것이라는 단서와 함께 전해준다. 그 연못에 석가탑의 그림자가 나타나면 아사달을 만나게 해줄 것이니 다시 찾아오라고 말한다.
문지기와 아사녀가 이와 같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불국사 안에서는 주지와 여승들이 모여 완성되어 가는 석가탑을 보며 경탄한다. 평화롭고 너그러운 선이며 흘러넘치는 정열이며 푸른 공간을 도려낸 직선 등을 바라보며 석가탑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승들은 다음과 같이 노래 부른다.
다보탑은 아사녀, 연꽃 같은
모습이라면. 석가탑은 아사달,
수도하는 그림자.
수도자는 서쪽에서
동녘 뜨는 해 맞이하고
연꽃은 동쪽에서
서녘 지는 달 보내네.
어와 자비여,
일곱 하늘 품에 품은
넓고 넓은 자비여.
다보탑은 아사녀 달 뜨는 밤
우주 속 신비 살피고 다니는
멀고 먼 바람 소리.
석가탑은 아사달, 고해에 쏟아지는 고뇌
온몸으로 견디는
높고 높은 영원.
어와 연민이여
일곱 하늘 품에 품은
넓고 넓은 연민이여.
―「멀고 먼 바람소리」 전문
위의 가사에서 볼 수 있듯이 “다보탑은 아사녀, 연꽃 같은/모습이라면. 석가탑은 아사달, 수도하는 그림자”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 “다보탑은 아사녀 달 뜨는 밤/우주 속 신비 살피고 다니는/멀고 먼 바람 소리”이고, “석가탑은 아사달, 고해에 쏟아지는 고뇌/온몸으로 견디는/높고 높은 영원”의 상징이다. 이렇듯 다보탑과 석가탑은 아사달이 아사녀와의 사랑을 예술로 형상화한 것이다. 사랑과 예술을 모두 이루려고 노력한 아사달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경건하면서도 아름다운 산물인 것이다.
아사달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한 아사녀는 섭섭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아랫마을로 내려가 기다린다. 석가탑의 완성이 눈앞에 다가왔기에 훌륭한 일을 한 아사달이 자랑스러워 자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기다리지요 천 날이라도/오백 년이라도 기다리지요/해가 지고 달이 뜨는 삼 년/일편단심 무거운 바윗덩이만/다듬어온 당신 수고에 비기면/제 기다림은/짧은 여름밤, 뜬잠의 하룻밤 독수공방만도 못하군요./기다리지요 천 날이라도/오백 년이라도 기다리지요./제 걱정 말고 훌륭한 큰 업적 이룩하셔요./당신의 깊고 높은 빛나는 뜻/우주에 새기셔요./제 걱정 마시고.”(「기다리지요 천 날이라도」 1연)라고 노래한다. 아사달의 대업을 기뻐하며 응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사달은 석가탑의 완성을 앞두고 번뇌하고 있다. 목숨 걸고 시작한 공사가 마무리 직전인데 가슴이 왜 답답한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고향 땅 부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아사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갖는다. 삼 년 만에 대업을 마치려고 하자 긴장감이 고조되고 아사녀에 대한 그리움이 극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제5경의 무대는 석가탑이 완성되면 탑의 그림자가 비칠 것이라는 연못가이다. 마을 아가씨들은 “달마중 가세 달마중 가세./연지 곤지 고까 입고/치렁 치렁 댕기 늘여/오이씨 보선발로 달마중 가세.”(「달맞이 노래」 1연)라고 달맞이 노래를 부른다.
아사녀는 마을 아가씨들이 노래하는 그 연못가를 돌며 석가탑의 그림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긴장감으로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연못가를 돌다보니 나무 그림자도 하늘을 날아가는 새 그림자도 석가탑의 그림자로 보이기까지 한다. 더욱이 달맞이 노래를 부르는 마을 아가씨들이 연못에 비칠 석가탑의 그림자는 수리공주만 볼 수 있다는 얘기를 엿듣고는 충격을 받는다. 아사녀는 수리공주를 되뇌며 연못 속을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연못 속에 떠오른 석가탑의 그림자를 발견하고는 뛰어든다.
한편 수리공주는 부여에서 아사달의 부인이 불국사에 찾아왔다가 문지기한테 쫓겨났다는 소문을 듣고, 몸종 비녀에게 아랫마을에 가 아사녀를 찾아보라고 이른다. 깨끗한 옷, 맛있는 음식,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라고 돈도 보낸다. 그렇지만 아사녀가 연못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고 다녀온 비녀가 전한다.
석가탑 공사를 끝낸 아사달은 아사녀가 서라벌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갑게 달려나오지만 아사녀의 사건을 전해듣고는 실성한 사람이 된다. 그와 같은 아사달 앞에 아사녀의 환영이 선녀들에 둘러싸여 나타난다. 아사녀는 미소 띤 얼굴로 “아사달님! 살아 있음과 죽음. 이승과 저승. 낮과 밤, 어둠과 밝음. 영원과 찰나. 이런 것끼리 사이엔 서로 큰 거리가 없음을 이제 알겠어요. 그 세상 버리고 여기 와 보니 이제 알겠군요.”라고 말한다. 아사달은 공사가 끝나는 나흘을 기다리지 못했느냐고 원망하며 연못에 들어가는 순간 얼마나 아팠느냐고 위로한다. 아사녀는 “제 마지막 괴로움도, 마지막 찰나의 제 아픔도, 아사달님 생각에, 쪽 쪽 빨려 들어가버려, 뛰어드는 순간 그저 행복하기만 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헤어진 게 아녜요/우리들은 나뉘인 게 아녜요/우리들은 딴 세상 본 게 아녜요/우리들은 한 우주, 한 천지, 한 바람 속에,/같은 시간 먹으며/영원을 살아요./잠시, 눈 깜박 사이 모습은 다르지만/결국은 같은 공간 속에 살아요./꼭 같은 노래 부르며/같은 허무 속에/영원을 살아요.”(「달이 뜨거든」 3연)라고 선녀들에 둘러싸여 노래를 부른다. 아사녀가 연못 속으로 든 것이 절망이 아니라 환희였음을, 환각이 아니라 법열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수리공주는 아사달에게 합장하며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죄송함을 표한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사달에게 마지막 사랑을 나타낸다. 아사달은 수리공주에게 그동안의 따스한 사랑을 잊을 수 없다고 답하면서 “나 때문에 이 세상에 나와 배고픔, 가난, 고생, 미움, 눈물, 이별, 기다림, 가슴아픔, 모멸, 이런 것들을 실컷 맛보다 비명에 돌아간 한 떨기의 가련한 목숨을 위해서, 전 남은 제 여생을 속죄해보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삼천리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돌과 바위에 아사녀의 모습을 새기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조각하련다 너를 새기련다./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이 하늘 다하는 끝 끝까지./찾아다니며 너를 새기련다./바위면 바위, 돌이면 돌 몸마다,/미소 띠워 살다 돌아간 네 입모습,/눈물져 살다 돌아간 네 눈모습,/너를 새기련다./나는 조각하련다 너를 새기련다./이 목숨 다하는 날까지./정이 닳아서 마치가 되고/마치가 닳아서 손톱이 될지라도./심산유곡 바위마다 돌마다/네 마음씨 새기련다.”(「너를 새기련다」 1연)라고 노래 부르는 것이다.
4. <석가탑> 가사의 의의
신동엽 시인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입선되어 문단에 나온 뒤 평론, 시극, 라디오 방송, 오페레타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 활동을 했는데, 「석가탑」의 대본을 쓴 것이 한 예이다. 신동엽은 1968년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명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석가탑」을 공연할 정도로 오페레타의 대본 창작에 열정을 보였다.
「석가탑」은 신라 헌강왕 때 불국사를 증축하면서 백제 부여에서 불러온 아사달이 다보탑과 석가탑을 세우는 과정의 서사를 담고 있다. 연극과 음악을 결합시킨 오페라의 특성을, 다시 말해 익살 및 과장된 몸짓과 춤을 활용한 민중극의 성격을 잘 나타내었다. 수록된 19편의 노래 역시 서사를 전개시키는 것은 물론 장면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신동엽 시인은 「석가탑」에서 아사달과 아사녀를 등장시켜 지고지순한 사랑을 추구했다. 아사달을 짝사랑하는 수리공주가 등장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가르지 못한다. 아사달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못에 빠져 목숨을 잃은 아사녀의 모습이나, 살아 있는 동안 아사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돌에 새기려는 아사달의 모습은 극진한 사랑의 본보기이다. 신동엽 시인에게 그 사랑은 “이승을 담아 버린/그리고 이승을 뚫어 버린/오, 인간 정신 미(美)의/지고(至高)한 빛”(「빛나는 눈동자」)이다.
「석가탑」에서 주목할 또 다른 면은 예술 정신이다. 아사달은 다보탑을 완성한 뒤 석가탑을 3년이 되도록 만들지 못한다. 그 이유는 우주를 다듬을 수 있는 영감과 사랑을 새길 수 있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사달에게 다보탑이나 석가탑을 만드는 일은 단순히 돌을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추구하는 사랑과 이 세상의 고통 및 번뇌로부터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기는 것이다.
신동엽 시인은 「석가탑」의 아사달과 아사녀를 통해 결국 시인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시인은 산문 「시인정신론」에서 현대사회에는 정치가나 이발사나 작가가 있지만 대지 위에 뿌리박은 전경인적(全耕人的)인 시인과 철인이 없다고 비판한다. 시는 언어라고 하는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어낸 공예품에 지나지 않을 뿐이어서 시인 정신보다 글자를 다루는 기술에만 관심이 있다고 본 것이다. 신동엽 시인에게 시는 인식의 전부이고 생명의 발현이며 침투이다. 그리하여 시는 궁극적으로 종교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신동엽 시인은 이와 같은 시인 정신을 「석가탑」의 가사들을 통해 구체적이면서도 입체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맹문재
시인, 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