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방영 당시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영화화 버전은 30대 여성의 삶과 (여성)노인문제라는 화두를 그대로 유지한 채 시트콤 드라마의 정수를 스크린 위에 고스란히 뽑아낸다. 이 모든 미덕을 가능케 한 김석윤 감독과 예지원, 지현우 두 배우를 한자리에 불렀다.
FILM2.0 | 솔직히 놀랐다. 야심 없는 척하면서 식상한 코미디로 빠지지 않고 사정없이 웃기다 급기야 인생을 관조하고 나선다. 이 정도면 '드라마를 뛰어 넘는다'는 말이 허명이 아니다. 예지원 | 정말? 정말인가? 기자들이 이런 얘길 할 땐 눈을 잘 봐야 해. 눈을. 지현우 | 방금 목소리가 잠시 떨렸던 것 같은데. 괜한 소리가 아닐까. 김석윤 감독 | 허풍이라도 좋다. 고맙다. 예지원 | 우리가 너무 쉽게 좋아해버리면 나중에 정작 싫은 소리 나올 때 적응하기 힘들다. 조심하자. 지현우 | 맞다. 페이스 유지해야 한다.(웃음)
FILM2.0 | 아니, 정말이다. 영화화 제의가 언제부터 있었나? 예지원 | 드라마 종방 하자마자. 감독님과 함께 들었다. 김석윤 감독 | 처음에는 제의 자체가 의외였다. 한국에서 드라마를 극장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흔한 건 아니지 않나. 한편으로 이게 시트콤일 때 재미있었던 거지, 영화 매체로 옮겨갔을 때 그 재미가 여전히 유효할까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고. 하지만 워낙에 연기자들이 드라마 종방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올드 미스 다이어리>(이하 <올미다>)의 세계를 일단락 하는 의미도 있을 것 같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그래도 TV 시트콤 <올미다>를 연출했던 내가 영화까지 감독하게 될 줄은 몰랐다.
FILM2.0 | 그럼 처음엔 연출을 생각하지 못했던 건가? 김석윤 감독 | 영화사에서 원작 드라마의 PD와 작가, 배우들이 그대로 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작가와 배우들의 경우는 이미 그 자체로 익숙하기도 하거니와 그 캐릭터에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돼버렸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연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망설여졌다. 방송사에서 영화로의 외도를 인정해줄지도 미지수였고. 다행히 발령사항은 아니지만 암묵적인 파견근무식으로 돼서 영화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도 후반작업을 할 때는 낮에 <개그콘서트> PD 업무를 보면서 밤에 영화 일을 하는 고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예지원 | 서로 익숙한 사람들이 모여 영화를 만들다보니 좋은 점이 많았다. 연기자들은 TV 당시 1년 동안 맞춘 호흡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가족 이상의 유대감이 흘렀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했다. 두 달 동안 25회차에 촬영을 모두 마칠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김석윤 감독 | 그런데 그게 짧은 게 아니라 느긋하게 쉬면서 찍은 거다. 영화사에선 너무 빨리 찍는 거 아니냐고 불안해 할 정도로.
FILM2.0 | 한 신 촬영에 네 번 이상 테이크를 가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고 들었다. 김석윤 감독 | 꼭 그런 건 아니다. 필요한 장면이 나오지 않으면 계속해서 다시 부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작업 같은 경우는 배우끼리도 잘 알지만 내가 그들의 연기를 잘 이해하고 있다 보니 한두 번에 좋은 그림을 얻을 수 있었다. OK컷이 4개 이상 넘어가면 그중에 뭘 선택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저비용 고효율로 좋은 연기와 그림이 뽑아져 나왔다고나 할까. 지현우 | KBS 건물에서 찍은 녹음실 시퀀스, 옥상 시퀀스 촬영 때는 뭐랄까,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아침부터 다음 날 동 틀 때까지 찍었는데, 솔직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컷이 90개 정도로 워낙 많이 쪼개지는 촬영이고 인물도 워낙 많이 걸리는 촬영이라. 또 방송사에서 찍는 거라 장소의 한계가 있지 않나. 그런데 결국 다 찍어버렸지. 예지원 | 옥상에서 ‘빠로레 빠로레’(‘달콤한 속삭임’이라는 번안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달리다와 알랭 들롱이 불렀던 샹송) 부를 때는 목소리가 다 갈라져 "이거 나중에 후시녹음 해야겠는 걸" 했었는데, 웬걸 찍힌 걸 보니 그럴듯하더라. 진짜 술 취해 노래 부르면 저렇지 않겠어?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술 마셔놓고 정작 노래를 기똥차게 불러봐, 그런 게 어딨어. 김석윤 감독 | 맞다. 그때 옥상 시퀀스는 너무 시간이 촉박해 숨 쉴 틈도 없이 촬영한 건데 나중에 보니 다시 해도 더 잘 찍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FILM2.0 | 이 중에선 예지원 씨가 영화 현장 경험이 제일 풍부하지 않나. 특별한 조언을 해줬나? 예지원 | 조언을 해준 건 없고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았다. 너무 편하게 작업했으니까. 드라마 때도 그랬다. 드라마 하면서 좋은 작품 만나기 힘든데, 심지어 대중에게 사랑까지 받았단 말이야. 출연진과 연출진은 모두 가족 같았고. 좀 힘들어 다운돼 있을 때도 모여서 대본연습하다 보면 금방 마음이 풀어지고 그랬다. 주말마다 회식하는 것도 너무 좋았고. 지현우 | 사실은 회식이 제일 좋았던 게 아닐까.(웃음) 예지원 | 그래서 촬영이 끝나갈수록 너무 슬펐다. 더 많은 회식을 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에.(웃음) 정말 일하는 게 아니라 놀러가는 기분이었다. 많은 배우들이 “놀이터 가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술회하는데, 정말 내게 있어 <올미다>야말로 진정한 놀이터였거든.
FILM2.0 | 한 작품 같이 한 사람들이 이렇게 친하게 남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예지원 | 정말 그렇다. 힘든 일이다. 김석윤 감독 | 웬만하면 그렇게 가지 않나? 우리처럼 많이 친해지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맨송맨송하게라도. 예지원 | <올미다>의 힘이 각별한 것 같다. 다른 시청자들처럼 우리도 <올미다>를 찍으면서 이런 저런 개인적 대화를 많이 나눴다. 처음에는 창피하니까 제 친구가요, 누구가요, 이러다 나중에는 사실은 내가, 이러면서 솔직하게 터놓고 대화를 하는 거지. 그런데 솔직히 이 바닥에서 그러기 힘들다. 김석윤 감독 | 딱히 <올미다>의 제작 시스템이 달라서라기보다는, 이야기와 캐릭터 자체에 시청자와 교감할 수 있게 하는 요소가 풍부했던 것 아닐까. 그런 게 암암리에 쌓이다보니 출연자나 스탭들 사이도 격의가 없어지고.
FILM2.0 | TV 시트콤에서 연출, 연기를 하다 영화를 하면서 달라진 건 없나? 지현우 | 그런 질문에 답하기가 가장 어렵다. 기본적으로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이 즐기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줬기 때문에 영화 쪽이 조금 더 고맙긴 하다. 예지원 | 촬영할 때마다 슬레이트를 치니까 이게 영화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연기하는 입장에서 시트콤 할 때와 크게 다른 건 없다. 김석윤 감독 | 방송사 쪽 스탭들을 데리고 하는 작업이 아니다보니 연출자 입장에선 차이를 좀 느꼈다. 난 여유 있게 찍는 건데, 영화 쪽 스탭들은 굉장히 당황하고 회의적으로 반응하더라. 물론 내 방법이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고 방송사 시스템이 맞는 것도 아니다.
FILM2.0 | 시나리오 처음 받아보고 어땠나? 지현우 | 재밌었다. FILM2.0 | 지현우 씨, 인간적으로 너무 과묵한 거 아닌가? 예지원 | 평소에도 그렇다. 너무 그러지 마라. 얼핏 싸가지 없어 보여도 모든 사람에게 공히 싸가지 없기 때문에 공평무사하다는 점에서 좋은 사람이다.(웃음) 한마디로 겉으로 무뚝뚝한 게 성격이다. 속으론 안 그러면서. 우린 이미지 캐스팅이다. 나는 미자, 지현우는 지 PD와 닮았다. 김석윤 감독 | 정말 그렇다. 거의 흡사하다. 특히 예지원은 미자보다 더 심하다.(웃음) 예지원 | 사실은 내가 미자에게 빙의된 거다. 김석윤 감독 | 그래서 밖에서 만나더라도 미자라고 먼저 부르게 되지 지원 씨라는 말은 잘 안 나온다. 지현우는 <윤도현의 러브레터> PD를 할 때 처음 만났다. 그때 ‘더 너츠’라는 신인그룹이 나왔는데, 기타 세션이 리허설에 안 나오는 거다. 신인인데. 알고 보니 그 기타 치는 아이가 이번 탤런트 공채에 뽑혀 <알게 될거야>라는 드라마를 하게 됐다고 하더라. 나중에 만나 한 번 따끔하게 혼내려고 했는데, 웬걸 만나보니 멀끔하고 이미지가 꽤 좋은 거야. 그래서 그냥 “열심히 해”하고 말았다. 그게 지현우였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고. 그런데 얘는 내가 PD인 줄 몰랐단다. 지현우 | (웃음)<윤도현의 러브레터> PD인 줄은 전혀 몰랐고, 그냥 현장 진행요원인 줄 알았다. 김석윤 감독 | <올미다>를 시작하려고 캐스팅을 하는데, 이게 기본적으로 여자들의 이야기다보니 딱히 떠오르는 남자 탤런트도 없고 이미지도 없었다. 그때 현우가 딱 떠오른 거다. 현우가 할 캐릭터는 나이가 딱히 나와 있지 않았고, 그래서 지원과 연상연하 커플이 된 거다. 다른 나이 많은 연기자가 캐스팅됐다면 연하 설정은 없었을 거다.
FILM2.0 | 남성 PD가 여성들의 이야기를 어찌 그리 잘 다루냐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김석윤 감독 | 남성과 여성은 분명히 다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그런 말이 다 진짜다. 하지만 난 <올미다>를 하면서 지구 위에 남자 반, 여자 반 이런 개념이 아니라 '거기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정서로 접근했다. 그래서 여성의 이야기가 딱히 더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여성들의 이야기다보니 “남자 PD가 만들어서 여성들이 공감하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그림 좋고 재밌어도 여성들이, 할머니들이 공감하지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어머니, 누나들과 나눈 대화가 큰 도움이 됐다.
FILM2.0 | <올미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팬클럽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건 어불성설인 것 같다. 작년에 며느리에게 뺨 맞은 시어머니 장면이 보수 언론으로부터 공격받았을 때도 ‘올미다 사랑방’에서 촛불시위를 하며 끝까지 지지해주지 않았나. 예지원 |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아본 건 처음인 것 같다. 그런 분들이 있으니까 영화사에서 관심을 갖고 이런 작업이 가능해진 것 아니겠나. 지현우 | 그분들 힘이 정말 일당백이다. 우리 작품만 가지고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주시기도 하고.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연기를 하면서도 굉장히 실질적인 응원으로 다가온다. 예지원 | ‘올미다 사랑방’의 글을 묶은 책이 있다. 그걸 읽는데 구구절절 마음을 담아 썼다는 게 눈에 보이는 거다. 엉엉 울면서 볼 정도로 감동받았다. 그런가하면 깔깔대고 웃은 적도 많은데, ‘할머니는 여자의 미래다’는 글을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김석윤 감독 | 관객 입장에서 동일시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았던 것 같다. 미자는 물론이거니와 할머니 캐릭터들만 해도 그렇다. 최근에 한 설문조사를 보니 20대 여성들 가운데 자신이 안 늙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과반수를 넘었다. 말이 안 되지만, 또 말이 된다. 매체를 통해 보여지는 노인들의 모습이 주로 고답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좀처럼 자신을 투영해볼 수 없는 캐릭터들이기 때문이 심리적 단절현상이 심화되는 거다. 사실 할머니들은 예뻐지고 싶은 마음 그대로 몸만 늙는 건데. 지 PD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 경우는 동일시한다기보다 일종의 판타지라서 좋아한다. 너무나 만만하고 이상적인 캐릭터잖아. 지현우 | 하지만 지 PD 캐릭터가 완전무결한 건 아니다. 주변에 친구가 없잖아. 김석윤 감독 | 그러고 보니 그러네. 예지원 | 아니, 진짜로 주변에 친구가 없다고? 지현우 | 아니, <올미다>에서. 예지원 | 그렇지, 그러니까 포용력이 좋은 미자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다. 미자 못 만났으면 평생 혼자 살다가 쓸쓸하게 죽었을걸! 그 성격에! 김석윤 감독 | 배우들 팬클럽에 가보면 재밌다. 특히 지현우의 ‘누나본능’ 같은 곳은 지현우보다 나이가 적으면 가입이 안 된다.(83년 생) FILM2.0 | 남자라도 안 되고? 김석윤 감독 | (지현우 바라보며) 안 되는 거 맞지? 나도 가입하려다 한 번 까인 것 같은데. 여기 보면 50년대 생들도 있다. 정말 엄청난 판타지인 거지.
FILM2.0 | 영화 얘기로 돌아가보자. 사실 난 이 영화가 미자를 시집보내기 위한 가족들의 소동극으로 점철된 코미디일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각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욕망에 충실하면서 유기적인 맥락과 성격을 띤다. 30대 여성의 삶과 노인문제라는 두 가지 큰 축도 여전하다. 김석윤 감독 | 처음에는 그런 소동극 컨셉도 생각된 적이 있다. 코미디로 가다 마지막에 감동 코드를 집어넣는. 하지만 <올미다>는 기본적으로 자기 목소리 못 내고 주눅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매우 일상적인 드라마의 연속인 거다. 도대체 영화적이라는 게 무얼까, 하고 고민하다 결국 가장 올미다스럽게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고, 영화사에서도 동의해줘서 지금의 모습을 찾게 됐다. 현실적인 것, 일상적인 모습이 <개그콘서트>보다 훨씬 더 웃기고 조폭영화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며 최루성 멜로영화보다 훨씬 더 슬프다. 그냥 나만의 생각이었다면 관철시키거나 진행하기 힘들었겠지만, 이미 같은 컨셉의 시트콤이 성공한 마당에 주저할 이유가 없지 않나. 현실을 그리면서도 그 안에서 슬픔과 웃음, 감동, 비정함을 그려보고자 했다.
FILM2.0 | 그런데 유독 미자의 아버지 캐릭터는 개인적 욕망이 거세된 것 같은 느낌으로 그려진다. 김석윤 감독 | 그 사람의 욕망이 바로 가족의 행복인 거다. 미자가 연애한다고, 할머니들 봄바람 들어서, 우현이 적립식 펀드 잘 돼서 희희낙락할 때는 부록인 아버지도 역시 행복해한다. 그런데 종반에 경찰서에 모인 가족들을 보며 가장 괴로워하는 게 또한 부록이다. 애초 이게 여성들의 이야기라서 아버지 캐릭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 안에 함축적으로 그의 내면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래서 종반에 부록이 가족을 위해 국수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 거다.
FILM2.0 | 경찰서에서 모든 가족이 각자의 일로 만났다가, 우현의 무죄가 입증되면서 갈등이 최고조로 치솟는 부분의 호흡이 흥미롭다. 전체 맥락에서 튀는 것 같으면서도, 거꾸로 극의 무게감을 살리고 있다. 미자의 사랑이 이뤄지는 순간보다 이 부분이 클라이맥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석윤 감독 | 우현은 나이 많은 남자 미자다. 자기 목소리를 쉽게 내지 못하는 전형적인 사회적 루저다. 온갖 억압으로부터 억눌려온 그가 단 한 번 울컥하는 순간이 바로 그 시퀀스인데, 겨우 잠시 잠깐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가 그렇게 경찰서를 떠나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반항의 전부다. 미니멀하게 표현할수록 더 좋다고 생각했다. 현실의 비정한 측면을 우현의 이야기 흐름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예지원 | 시트콤 에피소드 중에 우현 선배가 투명인간으로 나오는 게 있었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고 사라져도 존재감을 깨닫지 못하는. 그런 슬픈 존재가 우현 캐릭터다.
FILM2.0 | <올미다>의 가장 큰 강점은 예지원의 슬랩스틱 연기다. 자칫 과잉과 개인기 나열에 빠질 수 있는 연기인데, 적절한 시점에서 끊어주고 이어주는 호흡과 재치가 놀랍다. 예지원 | 감독님이 조절을 잘 해준다. 연기하다보면 앞뒤 연결도 생각하지만 그때 당시에 충실해 오버해버릴 때가 많거든. 그런데 감독님이 그렇게 하면 오버다, 라고 확실하게 정리해주니까 연기하는 입장에서 편하기 그지없다. 김석윤 감독 | 기본적으로 한국에 슬랩스틱이 가능한 배우가 많지 않다. 개그맨 중에서도 기껏해야 심형래와 이병진 정도다. 여배우 중에서는 거의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드물고. 물론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와전된 느낌의 슬랩스틱을 하는 과잉 연기자들은 많지만 진짜 몸동작으로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이는 찾을 수 없다. 예지원의 슬랩스틱은 천부적이라 할 만큼 자연스럽다. 이 탁월한 힘은 연출의 몫이 아니라 온전히 배우의 능력에서 나오는 거다. 게다가 예지원이 현장에서 하도 사고를 많이 치다보니,(웃음) 그게 그대로 아이디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젠 그냥 '이때쯤 되면 쟤가 무슨 사고를 칠거야' 싶어 기대하고 있을 정도다. 내 역할은 그냥 수위조절이다. 이 정도는 좋아, 이 정도는 머리 핀 꼽은 애 같은데? 이렇게.
FILM2.0 | 귀신 사다코 흉내는 압권이다. 예지원 | 그건 감독님이 낸 아이디어다. 난 지 PD가 침 뱉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제일 재밌었다.(웃음) 지현우 | 나 같은 경우는 모두가 웃기는 상황인데 나만 웃지 않는 데서 오는 해학의 코드가 강하다. 촬영장에서 모두 다 키득거리는데 나만 못 웃다보니 가끔 웃음이 터질 때가 있기도 했다. 김석윤 감독 | 그러니까 지 PD와 지현우가 닮았다고 하는 거다. 속으론 어딘가 덜떨어진 데도 있고 약한 구석도 많은데 겉으론 완전무결해 보이잖아.
FILM2.0 | 영화촬영 중에 둘째 할머니 역할의 한영숙 선생님이 갑작스레 타계하셨다. 김석윤 감독 | 제일 좋아했던 분이다. 할머니 세 분 가운데 가장 소녀 같았거든.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그런 유쾌한 역할을 해본 적이 없었다며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하고 연기해주셨다. 수술 이틀 전에도 같이 농담하고 그랬는데, 이렇게 황망하게 가실 줄 몰랐다. 서승현 선배님이 그 역을 맡아주지 않았다면 시나리오를 전부 뜯어 고쳐야 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고사하셨다가, 찾아가 말씀드렸더니 “이게 운명인가보다”라며 맡아주셨다. 예지원 | 한영숙 선생님 얘기가 나오면 말을 잘 못하겠다. 당시 충격을 이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영화촬영을 끝까지 해야 한다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FILM2.0 | TV 시트콤 시즌 2에 대한 루머는 아직도 여전하다. 김석윤 감독 | 시즌 2는 없다. 만약 시즌 2가 나오면 두 사람이 부부가 된 상태에서 극이 진행돼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올드미스가 아닐뿐더러 애초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서 궤도가 벗어난다. 이미 233회 에피소드로 할 이야기를 다 마쳤다고 생각하고, 이번 영화는 <올미다>의 모든 매력을 집대성하고 마무리 짓자는 느낌으로 간 거다. 지현우와 예지원 두 배우에게도 전혀 좋은 게 아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지 PD와 미자 캐릭터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예지원 | 배우 입장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하면서 끝을 향해 가는 게 아쉽고 하루라도 더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경우는 <올미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지현우 | <올미다>는 가볍지 않아 좋았다. 웃고 떠들고 그렇게 끝나는 게 아니라 따뜻함과 삶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언제까지나 후회 없는 선택으로 남을 것 같다. 예지원 | 이 자리가 끝나면 현우와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부를 노래연습을 하러 간다. 내일 녹화를 하는데, 미자의 타이틀곡인 ‘빠로레 빠로레’를 부르기로 했다. 언제나 무대에서 그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원곡에서 알랭 들롱이 불렀던 부분을 맡아줄 남자가 없어 고민이었다. <올미다>의 커플이었던 지현우가 함께해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웃음)
사진 이상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