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만 남았거늘
열왕기상 19 : 9 - 18
엘리야는 능력의 선지자였습니다. 불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기도하므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웠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하여 삼년 육 개월 동안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기도하여 비를 내리게 했을 정도로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19장에 엘리야답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 죽기를 원했습니다(4). 그런가 하면 ‘오직 나만 남았다’(10,14)라고 말했습니다.
고통 중에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에 빠져들면 살고 싶은 의욕이 없어집니다. 병들어도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실패해도 반겨주는 자녀가 있으면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을 때 병들면 더 외롭고 실패하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습니다. 가장 힘든 고통은 외로움입니다. 불의 선지자도 ‘오직 나만 남았나이다’라는 고독에 빠져 죽기를 원했습니다.
외로움의 유형을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육체적인 외로움입니다. 부모가 없는 고아나 자녀가 없는 부모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외롭습니다. 부부간에도 누군가 먼저 죽으면 남은 사람은 외로움에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형제가 없거나, 친구가 없는 사람들은 외롭습니다. 나이가 들고 병들면 점점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멀어집니다. 나에게 관심을 주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나고 결국 혼자 남게 될 때 아무도 없는 외로움의 고통을 당합니다.
다음으로 영혼의 고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다고 느껴질 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떠나신 것 같을 때가 영혼의 고독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 심각한 외로움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다 도망가고 떠난다 해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과 함께 하던 사람들이 다 떠나고 혼자 남았을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을 때 외롭지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님마저 나를 버리셨다고 느껴질 때 심각한 영적 고독으로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엘리야는 ‘나 혼자 남았다’고 하며 살 의욕을 잃고 죽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가 이와 같이 살 의욕을 잃고 죽기를 원했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살고 싶지 않을 정도의 외로움에 고통을 당 할 때가 있습니다. 깊은 외로움의 고통으로 죽기를 원하는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찾아주시고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과 이세벨에게 핍박을 받아 쫓겨 3년이나 숨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얻어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대결하였습니다. 갈멜산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바알이 참 신인지 여호와가 참 신인지 대결을 하였습니다. 바알의 선지자 아세라 목상의 선지자 850명은 열심히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 때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므로 응답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에 제물을 태웠으므로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보여주므로 대 승리를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주저하지 않고 바알의 선지자들과 아세라 목상의 선지자 850명을 끌어다 기손 강에서 죽였습니다. 대단한 용깁니다. 대단한 승리였습니다. 이만하면 승리의 통쾌감에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통쾌하고 기뻐하기 보다는 죽기를 원했습니다. 고독에 엘리야는 울어야만 했습니다. 엘리야가 승리를 한 후에 이처럼 고독에 빠져 죽기를 원했던 원인이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그 원인을 뚜렷하게 이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추측하기는 엘리야는 승리의 여세를 몰아 우상 숭배를 완전히 제거하고 다시 여호와 신앙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벅찬 기대감에 차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이세벨의 반격이 컸습니다. 오히려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신들의 이름으로 명세를 하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19:2).
바알과 아세라가 거짓 신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졌다면 백성들이 거짓 신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숨었던 주의 종들이 뛰어 나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찬송하며 영광을 돌릴 줄 알았는데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18:4절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멸할 때에 아합 왕궁을 맡은 오바다가 백 명을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백 명이라도 뛰쳐나와 엘리야와 함께 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도 엘리야와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겠다고 하니 엘리야는 더 이상 살 의욕을 잃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세벨이 두려워 도망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공한 사람이 자신이 바라는 기대감에 미치지 못할 때에 오는 외로움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계획하고 노력해서 성공을 했을 때 더 큰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라고 기대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때 자신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 성공한 사람이 자살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아예 이세벨의 영역이 미치지 못하는 유다 지역으로 도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나아가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4)라고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울며 하나님께 호소를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10,14)라고 두 번이나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모든 선지자가 다 멸절되었고 우상 숭배자들과 싸웠던 사람은 오직 자기 하나뿐이었다고 는 엘리야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열심히 특심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고독은 ‘나 혼자’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나 혼자 남았습니다’. ‘나 혼자 뿐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자기 능력의 한계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도망해야만 하는 자신의 한계를 느꼈을 때 그래서 ‘나만 혼자 남았다’라는 고독에 빠졌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를 받고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심각한 허탈감에 빠져 하나님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호렙의 한 굴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지금 그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냉철하게 돌아보도록 하기 위하여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 라고 묻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자신은 여호와를 사랑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서 힘을 다해 바알 선지자들과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은 아무도 이세벨과 싸우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목숨만 노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하여 이 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탄식 섞인 변명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나가서 여호와의 산에 서라고 하시고 엘리야 앞을 지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람, 지진, 불과 같은 외적인 현상이나 방법이 아닌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에게 임하셨습니다. 이것은 엘리야의 생각을 바꾸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사실 엘리야는 놀라운 이적을 행함으로 우상 숭배를 척결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늘로부터 비와 불을 내리는 이적을 행하고도 결코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심한 좌절과 무력감에 빠져 호렙 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과 같은 이적이나 표징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단번에 우상 숭배자들을 심판하여 척결하실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그냥 놔두셨습니다. 이것은 바람, 지진, 불과 같은 것이 모두 지나간 뒤에 비로소 세미한 음성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앞으로의 구체적인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만 남았다’라고 말하는 엘리야에게 아직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이 남아 있다고 하셨습니다(18). 엘리야의 실수는 자기만이 의롭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만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외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오늘의 교회안에도 자기만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독은 독선입니다. 교만입니다. 자기만이 진실한 줄로 압니다. 자기만이 의를 위해 사는 줄로 생각하고 자기만이 참되게 사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을 정죄합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더 이상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삼년 육 개월 동안 가물었던 땅에 비를 오게 하는 일을 했음에도 돌아오는 것은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 뿐 이였을 때,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무리 해 봐도 돌아오는 것은 자기 생명을 죽이려고 하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외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외로움에 빠져 죽기를 원하는 사람을 회복시키는 일은 쉽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삶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을 회복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원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보냈습니다. 천사는 잠든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숯불에 구원 떡과 한 병의 물을 주어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였습니다(6).
엘리야는 천사가 주는 떡과 물을 먹고 마셨지만 일어나지를 못하고 다시 누었습니다. 천사는 다시 와서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느라’고 했습니다(7).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는 천사의 이 말에서 엘리야에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요즘 노령인구가 많습니다. 노인들 대부분이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더욱 외로움에 빠져 괴로워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도 자신이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연세 많은 분들에게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자신은 더 이상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고독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사람은 고독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사명감을 느끼고 그 일을 할 때 외로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고독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할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도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15,16)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에게 할 일이 많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죽기를 바라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을 때 죽기를 바라던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도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외롭지 않습니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면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일어나 그 일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으면 외로움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곧 바로 일어나 소를 몰고 밭을 가는 엘리사에게 가서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그에게 겉옷을 던져 후계자로 세웠습니다. 엘리사는 밭 갈던 소를 잡아 온 동네 사람들에게 먹이고 그 멍에와 보습 쟁기를 다 불태워버리고 엘리야를 따라 수종 들었습니다(19-21).
엘리야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았을 때 외롭지 않았습니다. 아직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죽기를 원했던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엘리야는 일어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하였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회오리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왕하2:11).
우리 모두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 일을 하므로 외로움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할 일을 다 한 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천국으로 올라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