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두벌식의 큰 단점 중 하나는 윗글쇠(시프트) 사용입니다. 문득 "두벌식 순아래"를 검색해 보니 이미 잘 알려진 꼬마집오리https://tinyduck.tistory.com/ 님의 두벌식 순아래 자판 (이하 "두벌식 순아래 자판"이라 부르겠습니다)이 있는 겁니다. 그 특징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표준 두벌식과 완전히 호환됩니다. 이것은, 표준 두벌식의 입력 방법으로 입력해도 같은 글자가 입력된다는 뜻입니다.
- (조합 글자가 아닌 된소리 낱자ㄲㄸㅃㅆㅉ를 입력할 때 외에는) 윗글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두벌식 순아래 자판이 윗글쇠를 피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된소리 받침 ㄲ, ㅆ은 연타하여 입력합니다. 즉 ㄲ=ㄱㄱ, ㅆ=ㅅㅅ
- ㅖ, ㅐ는 각각 다음처럼 조합하여 입력합니다. ㅖ=ㅕㅣ, ㅒ=ㅑㅣ
- 된소리 초성 입력을 위해서는 다음에 나오는 중성을 연타합니다. 예를 들면 뜻=ㄷㅡㅡㅅ, 꽥=ㄱㅗㅗㅐㄱ
3번째 항목이 두벌식 순아래 자판의 핵심 아이디어입니다. 표준 두벌식에서 윗글쇠가 강제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음절 구분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있소"는 된소리를 연타하여 입력하는 자판이라면 ㅇㅣㅅㅅㅅㅗ 가 될 것인데, 있소 인지 잇쏘 인지 모호합니다. 두벌식 순아래 자판은 이런 문제를 깔끔히 해결하였으며, 순아래 입력을 위해 조합 중지 글쇠나 타이머(구글 단모음 키보드 등)를 도입한 다른 두벌식 자판들보다 우월합니다. 다만 이 자판의 문제 아닌 문제라면 된소리 초성 입력 방식이 그리 직관적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인데, 위키백과 두벌식 페이지 (별도의 출처를 제시하지 못함은 죄송합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91%90%EB%B2%8C%EC%8B%9D_%EC%9E%90%ED%8C%90 의 "국규 9256 자판: 북한 표준" 항목을 보시면 '처음 1991년 26키에 치환방식(예, ㄱ+ㅏㅏ=까, ㄱ+ㅓㅓ=꺼)을 국제표준 시안으로 제출했으나 어문생활과의 정합성 결여로 사용될 수 없었고 결국 1993년 표준으로 결정하였다.'라고 되어 있어, 꼬마집오리님의 아이디어와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글 제목에 왜 신세벌식도 들어가 있는지 의아해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신세벌식에서 조합 전용 ㅗ, ㅜ가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많이들 잘 아시겠지만 예를 들면 박경남 수정 신세벌식 자판
에서는 모음 ㅏ 자리에 받침 ㅆ도 같이 있는데, 따라서 조합용 ㅗ가 아닌 V 위치에 있는 ㅗ를 써서 "와"를 입력하고자 하면 "와"가 아닌 "옸"이 입력되고 맙니다. 따라서 어떤 모음을 입력하고자 하더라도 신세벌식에서는 왼손 모음은 단 한 번만 입력해야 합니다. 즉 신세벌식에서 한글 글자의 조합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루어집니다.
1. 오른손 초성 조합 (조합용 ㅗ, ㅜ 포함)
2. 왼손 모음 1개
3. 왼손 받침 조합
즉, 오른손 조합을 모두 입력한 후 왼손을 입력하게 되는데, 왼손 조합 중 처음의 1개만 모음이 되고 나머지는 모두 받침이 되는 것이 신세벌식의 원리입니다. 한편 두벌식 자판에서는 앞애서 언급한 것과 같이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바로 앞 글자의 받침 조합과 뒷글자의 초성 조합에서입니다. 이 때 자음 조합들이 죽 나오다가 모음이 처음 나오는 순간, 그 모음의 직전 자음만 초성이 되고 그 전 자음들은 받침 조합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두벌식 순아래 자판에서 ㅇㅣㅅㅅㅅㅗ를 입력하면 ㅗ 직전의 ㅅ만 초성, 그 전의 ㅅㅅ은 받침 조합이 되어 "있소"가 입력되는 것입니다. ㅇㅣㅅㅅㅗㅗ 를 입력하면 "잇쏘" 가 되는데, ㅗ 직전의 ㅅ은 초성, 그 앞의 ㅅ은 받침이 되고, ㅅㅗㅗ 가 쏘 로 조합되는 것은 그 후의 일입니다. 따라서 신세벌식과 두벌식 (순아래)은 이론적으로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이 방법이 "어문생활과의 정합성 결여로 사용될 수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모음 연타가 앞의 초성을 된소리로 만든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모음 글쇠를 지정해 그것이 "초성 된소리 변환" 기능도 맡도록 하면 됩니다. 가령 ㅔ 글쇠에 그 역할을 준다면, ㅔ 글쇠는 다음의 두 역할을 수행합니다.
1. 자음+ㅔ 나 자음+ㅔ+자음 의 경우 ㅔ가 되고, 앞의 자음을 초성으로 하여 결합합니다. 예: ㄱㅔㅅㅅ = 겠
2. 자음(ㅂㅈㄷㄱㅅ)+ㅔ+모음 의 경우 앞의 자음을 된소리로 만듭니다. 예: ㅂㅔㅏㅇ = 빵
이것은 신세벌식에서 일부 초성 글쇠가 조합용 ㅗ, ㅜ를 겸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입니다.
사실은, 두벌식 자판에서 "초성과 받침을 분리"하면 바로 세벌식 자판이 됩니다. 두벌식은 물리적 글쇠 하나가 같은 모양의 초성과 받침을 모두 맡는데, 두벌식 순아래 자판에서 받침 글쇠를 초성과 다른 배치로 왼손에 두면 신세벌식과 완전히 같은 원리에 의하여 문제 없는 세벌식 자판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신세벌식에서는 첫가끝 조합에서 처음 나오는 왼손 글쇠가 모음이 되고, 이 새로운(?) 방식의 세벌식에서는 마지막(=모음 직전)에 나오는 자음 글쇠가 초성이 되니, 이런 종류의 자판을 "거꾸로 신세벌식"이라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이 카페 어딘가에 이것과 비슷한 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세벌식 자판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만 지금 찾아보는 것은 만만치 않네요.
두벌식이건 거꾸로 신세벌식이건 도깨비불 현상은 피할 수 없습니다. 모음 직전에 입력되는 자음 글쇠가 초성이 되어야 하는데 자판이 미래를 예측하여 어디에서 모음이 입력될지 미리 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도깨비불 현상을 논외로 하면, 거꾸로 신세벌식 자판의 장단점과 효율은 많은 부분 신세벌식과 대동소이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굳이 그런 자판을 써야 할까 싶긴 합니다만...
지금까지의 내용에서 유추해 보면 두벌식 순아래 자판의 효율은 꽤 나쁘게 배치된 신세벌식 수준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약 3일간 써 보며 받은 느낌도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받침과 초성이 연달아 나올 때 나쁜 종류의 손가락 연타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표준 두벌식과 같지만, 완전한 순아래이기 때문에 상당히 편하게 느껴집니다. 아마 두벌식 자판을 쓰면서 최소한의 수정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방법이라 봅니다.
이 글은 두벌식 순아래 자판으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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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국가표준 웹사이트 https://www.standard.go.kr/KSCI/standardIntro/getStandardSearchView.do?menuId=503&topMenuId=502&ksNo=KSX5002&tmprKsNo=KSX5002&reformNo=00 에서 보면, "주 적용 대상이 자체 부호 합성기능을 가진 정보처리 기기 입력 장치이며, 내부 처리 방식의 다양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소 자모음만을 배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기본자모음의 배열 위치만을 확정하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된소리나 ㅖ, ㅒ의 지금 위치에의 배치도 권장사항일 뿐이네요. 즉 규정하고 있는 것은 자판 배열(그나마 된소리 배치도 권장 사항)일 뿐 조합 방법이 아니므로, 두벌식 순아래 자판이 딱히 표준과 벗어나는 것도 아닌가 봅니다. 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요.
첫댓글 국가표준 웹사이트 링크 클릭해 들어가니 404 Not Found 나옵니다.
저는 접속이 됩니다. 무슨 문제일까요? 세벌님의 글 "5년 후 회의에 참가해 보실 분?"에 있는 링크입니다.
@명랑소녀 아. 지금은 되네요. 일시적 문제였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ㅔ를 겹닿소리 조합에 쓰는 데에 옛한글의 겹홀소리 조합이 걸림돌이 되지도 않는군요.
저는 아직 필요를 못 느끼고 있지만,
특정 홀소리 글쇠를 겹닿소리 조합하는 데에 쓸 수 있는 것은 어딘가에 쓸모 있을 데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옛한글에 ㅔ로 시작하는 모음 조합이 없다면 말씀하신 것이 맞는 듯합니다. 하지만 가령 ㅔㅔ=ㅖ 등의 조합은 쓸 수 없습니다. ㄱㅔㅔ 의 경우 께인지 계인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한글 입력에는 문외한인지라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