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의가 만난 전국 교육감
즐겁고 행복하고 꿈을 찾아가는 교실을 만들고 싶어요
-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최창의가 만난 세 번째 교육감은 강원도교육청 민병희 교육감이다. 2015년 3월 5일에 교육감 집무실에서 대담을 나누었다.
최창의 : 민병희 교육감이 교육청 직원들 사진을 직접 찍어 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여기 교육감실에 있는 이 사진들인가요?
민병희 : 네. 그렇습니다. 제가 교사로 근무할 때, 학생 앨범을 몇 권 만들었어요. 아이들 사진을 찍으면서 파인더로 얼굴 하나하나를 볼 때면, 아이들 마음이 보여요. 인물 사진을 찍다 보면 개성이 드러나고 내면이 엿보이거든요. 학기가 바뀌면 교육청으로 발령 난 직원들이 임명장을 받으러 오잖아요. 그날은 옷도 잘 차려입지요. 그때 제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직원들 사진을 다 찍어 줬어요. 제 탁자 위에도 올려놓고 보면서 얼굴도 익히고 그러지요.
최창의 : 교육감이 되기 전에는 오랫동안 교사 생활을 하셨는데, 아이들한테 어떤 교사로 기억되고 있나요?
민병희 : 교사일 때는 교실에 있는 시간이 가장 좋았어요. 아이들을 보면 편안하고 행복하지요. 교사가 아이들 편에 서 있는지 아닌지는 누구보다 아이들이 잘 알아요. 제가 전교조로 해직될 때 많이 울던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나중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더라고요. 그런데 일제고사 반대하다가 저처럼 해직되었어요. 제가 교육감 되고 나서 복직시켰지요. 아이들에 대한 진정성은 서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최창의 : 교육민주화운동을 하던 교사 시절에는 대형 운전면허자격증을 땄다고 들었는데요.
민병희 : 해직되었다가 교사로 복직될 때, 아내가 대형 운전면허시험을 봤어요. 혹시 제가 또 학교를 그만두면 관광버스라도 몰아야지 않겠느냐면서요. 그러면 부부가 함께 운전해야겠다 싶어 땄는데, 다행히도 써먹지는 않고 있어요. 그런데 올해부터 강원도에서 에듀버스를 시범 운영하는데, 첫 번째 운전자로 제가 나설까 합니다.
최창의 : 에듀버스는 무엇인가요?
민병희 : 통폐합된 학교에서 통학버스를 운행하는데, 그 버스가 학교 소속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근처에 있어도 다른 학교 학생들은 그 차를 못 타요. 또 낮에는 쉬기 때문에 체험 학습하러 갈 때도 이용을 못합니다. 그래서 통학버스를 교육청 소속으로 통합 운영하는 체제로 바꾸어서 융통성 있게 운영하려고 합니다. 올해 시범 운영해서 내후년까지, 모두 이런 방식으로 바꾸려고요.
최창의 : 교육위원을 거쳐 교육감이 된 뒤 첫 번째 임기를 마쳤는데요. 막상 교육감을 해 보니 어떠했는지요?
민병희 : 교육위원으로 8년 동안 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교육을 뿌리부터 바꾸는 데에는 한계를 느껴서 교육감에까지 나서게 되었지요. 다행히 당선이 되어 신이 났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바라던 교육의 이상을 조금씩이나마 실현할 수 있었거든요. 초등학교 일제고사를 없애고, 상시평가제를 실시하면서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해졌잖아요. 그런 일이 신났지요. 학부모님들이 처음에는 아이들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답답하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 표정이 달라진 걸 보면서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최창의 : 지난 교육감 임기 중에 역점을 둔 정책은 무엇이었으며, 성과는 어떤가요?
민병희 : 뭐니 뭐니 해도 고교 평준화를 이룬 것이지요. 춘천, 원주, 강릉 세 지역인데, 평준화하려고 20년 이상을 힘들게 싸워도 못한 걸 교육감 되고 나서 실현했습니다. 4년 전에 처음 교육감에 당선되고 ‘돈 안 드는 교육’ ‘고교 평준화’ 이 두 가지를 역점 사업으로 내걸었거든요. 돈 안 드는 교육 같은 경우도 인문계 고등학교 몇 군데 빼고는 초․중․고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어요. 학습 준비물비, 체험학습비 들을 지원해, 아이들이 돈 때문에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최창의 : 고등학교 입시가 평준화되면서 강원도 교육 흐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요?
민병희 : 학생들이 교복 색깔로 차별받지 않게 되었지요. 평준화를 실시한 뒤 여러 학교에 직접 가 봤어요. 예전에 선호하지 않던 학교일수록 신입생 안내 교육을 잘하더군요. 그리고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살펴 줘요. 아이들이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으니 다들 만족해하지 않겠어요. 이제는 강원도 내에 선호, 비선호 고등학교 구분이 거의 없어지고 있어요. 도내 고등학교들이 고르게 발전되는 이점이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새로 생긴 문제가 원거리 배정에 따른 불만인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부터는 원거리 배제 추첨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학생들이 사는 곳에서 거리가 너무 먼 학교를 빼고 추첨을 하는 방식이지요.
최창의 : 강원도는 혁신학교를 ‘행복더하기학교’라고 일컫지요. 그 학교가 중심이 되었겠지만 지난 4년 동안 학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나요?
민병희 : 우리는 이 사업을 ‘혁신학교’라 하지 않고 ‘학교 혁신’이라 말합니다. 특별한 학교만이 아닌 모든 학교를 혁신하겠다는 의지이지요. ‘행복더하기학교’ 수도 늘였지만 그 학교에서 나온 성과들 가운데 대표되는 두 가지를 모든 학교에 일반화시키고 있어요. ‘교사들끼리 토론’과 ‘수업의 질적 변화’인데, 이를 모든 학교에 적용시키려 합니다. 행복더하기학교는 수업 시간에 자는 애들이 없어요. 수업을 참여형으로 바꾸었거든요.
최창의 : 교육을 혁신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교육청의 권위주의를 걱정합니다. 교육 행정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떤 일들을 해왔고 그 결과는 어떤가요?
민병희 : 처음부터 일관되게 추진해 온 게 있어요. 학교를 방문할 때 미리 알리지 않고 갑니다. 청소하고 준비하느라 힘들이지 않게요. 학교에 가면 수능 성적결과 이런 거 안 봅니다. 아이들과 선생님 얼굴만 봅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지, 교사들은 보람과 긍지를 갖고 소신껏 일하는지, 표정만 보면 바로 알 수 있거든요. 또 하나는 인사 행정의 공정함을 지켰어요. 현장에서 교장으로 묵묵히 일하는 분 가운데 교사들 평이 좋으면 바로 교육장으로 발탁했습니다. 청탁이 들어오는 사람은 하나도 안 받았더니 인사 정책에 신뢰가 쌓이더라고요.
최창의 : 이제 혁신 교육의 흐름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육감들 임기 4년 동안 우리 교육의 희망을 만들 수 있을까요?
민병희 : 지난 6월 4일 지방선거에서 혁신 교육감들이 많이 당선된 것은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봅니다. 어느 교수가 ‘대통령이 바뀐 것보다 더 큰 사건’이라고 말했잖아요. 학교 교육을 바꾸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흔히 대학 입시, 대학 서열화, 사회 불평등 구조라고들 하지요. 초중등 교육이 이 문제에 종속되어서 무너질 것이라 여기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행복더하기학교를 운영해 봤더니 행복하게 공부하면서도 대학도 잘 가더라고요. 입시가 어떻다 해도 교육 본질대로 밀고 나가면 어떤 제도 속에서도 이길 수 있어요. 모든 지역 모든 학교를 그렇게 만들면 대학 입시 제도도 바뀌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우리 혁신교육감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업이라고 생각해요.
최창의 : 앞으로 강원도 교육에서 특별히 힘주어 이루겠다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민병희 : 교육 선진국을 강원도에서 시작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구체로는 선진국형 교실 복지를 만들겠다는 것이에요. 과거의 교실은 주입 암기식 수업을 했지요. 그런 교실을 즐겁고 행복하고 꿈을 찾아가는 교실로 바꿔야겠어요. 교실 복지를 통해, 공부가 즐거운 ‘수업 복지’, 감수성이 풍부하게 살아 있는 ‘시설 복지’, 자기 꿈을 찾아 키우는 ‘진로 복지’ 이렇게 세 가지 목표를 실현하려고 합니다.
최창의 : 강원도는 작은 학교가 다른 시도보다 많지요. 작은 학교 살리기도 잘 진행해야 할 텐데요.
민병희 : 정부가 그동안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그다지 효율성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학교 희망 만들기 사업을 줄곧 전개해 왔어요. 강원도는 학생수가 60명이 안 되는 학교가 40퍼센트가 넘어요. 정부 방침대로 한다면 절반 가까이를 없애라는 거잖아요. 지역주민들과 뜻을 모아 학교 통폐합을 막아 냈어요. 그 뒤로 조례를 만들고 작은 학교 희망 살리기 사업을 지원한 결과, 강원도 전체 초등학생 수는 줄었지만 작은 학교 학생수는 늘어났습니다. 공동학구제를 새로 만들어서 큰 학교에서는 얼마든지 작은 학교로 옮겨갈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작은 학교에서 큰 학교로는 전학하는 것은 어렵게 만들었지요.
최창의 : 이제 곧 어린이날이 다가옵니다. 평소에 어린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민병희 : 저는 한 살배기든 두 살배기든 어린이를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제이 바이다가 만든 영화 <코르착>을 보면 ‘아이들은 내일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사람이다’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가 이 말을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누군가한테서 진정으로 사랑받을 때 그걸 압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게 우리 어른들이 행동해야겠어요.
최창의 : 어린이날을 맞아 놀이헌장을 제정하여 공포한다는 계획을 들었는데요. 놀이헌장을 제정하게 된 특별한 까닭이 있나요?
민병희 : 놀이가 중요하다는 건 다 알잖아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노는 놈이 있다’고 하지요. 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미래 인재 조건 여섯 가지 가운데 하나가 놀이인데, 놀이를 빼면 나머지 다섯 가지도 다 안 됩니다. 어른들이 뺏은 놀이를 아이들한테 돌려주어야 하는데요. 지금 그럴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과 환경을 갖춘 곳이 학교입니다. 학교에는 같이 놀 동무도 있고, 공간도 있고, 시간을 만들어 줄 수도 있으니까요. 놀이헌장은, 어른들이 어린이들한테서 놀이를 빼앗은 게 왜 나쁜 건지, 왜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 모두가 인식하게 만드는 첫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창의 : 헌장만으로는 선언에 그칠 수도 있는데요. 조례나 법률로 제정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요?
민병희 : 그렇게 한다고 강제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자발성, 흥미성, 비정형성이지요.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놀 수 있게 학교에서 지도해 주면 되지 않겠어요. 1, 2교시 끝난 뒤 얼마 동안 시간을 주는 식으로, 일정한 시간을 학교에서 놀 수 있게 해 주면 됩니다.
최창의 : 마치면서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덧붙여 주세요.
민병희 :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면 좋겠어요. 상담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이 들어주고 끄덕여 주는 거예요. 아이들 생각을 소중하게 들어주고 공감해 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