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광주로
똘남이네 식구가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낸 지 두 해가 다 되었다. 똘남이 부모가 뭔가 먹고 살 일거리를 찾아보겠다고 광주 일곡동으로 다시 이사를 갔다.
똘남이가 만 네 살, 똘란이가 만 두 살이 다 되어가던 초여름이었다.
할미는 집이 갑자기 넓어지고 조용해져서 좋다고 말했지만 내가 어찌 그 속을 모를 것인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었다. 똘남이 똘란이가 떠나간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었다.
재미나게 그네를 타고 놀다가 갑자기 줄이 툭 끊어져버린 느낌이었다.
절간처럼 조용한 거실에서는 아직도 똘남이 똘란이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묻어나올 것만 같았다. 할아비 할미는 말수가 적어졌다.
재회
버스 타고 광주에 내려서 일곡동 똘남이네 아파트로 갔다. 비좁은 전세 아파트에서 할아비 할미의 품을 떠나 저희들끼리만 노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가슴 한 귀퉁이가 허전한 할아비 할미의 마음을 똘남이 아비가 아는가 보았다. 토요일이면 가끔 똘남이 아비가 운전하는 차로 온 가족이 목포로 내려왔다.
올 때에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기쁘지만 하룻밤 자고 떠날 때에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만나고 헤어짐이 이렇게 할아비 할미의 애간장을 태울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해를 봐도 달을 봐도
옥상에 올라 해만 바라보아도, “해, 해!” 어눌한 목소리로 외치던 똘남이가 생각났다.
예쁘게 휘어진 초승달만 바라보아도, “달, 다르!” 더듬거리며 손가락질하던 똘남이가 그리워졌다.
화분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에 고춧잎만 흔들려도, 바람의 존재에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고개를 귀엽게 갸우뚱거리던 똘남이 생각이 간절하였다.
골목길에서 아이 울음소리만 들려도 혹시 똘남이 아닌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화
해가 서산으로 꼴딱 기울고 온 누리에 어둠과 외로움이 내리는 밤이 되면 똘남이 아비는 내게 전화를 걸어 똘남이를 바꿔준다. 특별히 바쁠 때가 아니면 거의 하루 한 번 의무방어전이다.
“할아버지!”
“어, 우리 똘남이냐?”
“예.”
“오늘도 어린이집 갔어?”
“예.”
“뭐 먹었어?”
“김치하고요, 김밥.”
“그래? 똘란이도 잘 있니?”
“예. 지금 엄마랑 샤워 하고 있어요.”
“노래 불러봐, 곰 세 마리.”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잘 했어. 할아버지한테 인사 해 봐.”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똘남이도 안녕히 주무세요, 빠이빠이.”
“빠이빠이.”
곁에 할미가 있으면 바꿔준다. 또 전화기 속에서 똘남이가 뭐라고 뭐라고 고함을 지른다. 가끔은 똘란이도 바꿔준다. 아직 말을 제대로 못한다. 웅얼웅얼 어눌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안녕,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언젠가는 똘남이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할미가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전화 빨리 끊어!”
“왜?”
“지금 컴퓨터 게임 하고 있단 말야.”
“?????”
뭐 하러 태어났니?
코미디언 서세원이 딸을 데리고 텔레비전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 딸과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가 통화를 하는데 할아버지 왈,
“뭐 하러 태어났니?”
그러자 손녀딸이,
“할아버지 갖고 노시라고요.”
그 대목에서 나는 박장대소했다.
이제 나는 똘남이와 전화할 때 이렇게 대답하라고 가르쳐줄 셈이다.
“뭐 하러 태어났니?”
“할아버지 행복하시라고요.”
로또 당첨
내가 아직 할아버지가 되지 못했을 때, 내 손위 처남은 가족들이 모일 적마다 손녀딸을 무릎에 앉히고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가히 꼴불견이라 한 만큼 눈꼴이 시렸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나도 할아비가 되었다. 하루는 처남한테 정중하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뭐가?”
“사실 전에는 처남이 손녀딸 귀여워하는 게 눈꼴 시렸거든요. 손자 태어나고 보니 이제는 내가 얼간이 다 되었어요.”
“하하하.”
뿐만 아니라 이제는 동생들에게도 마구 떠벌인다.
“빨리빨리 아들딸 여워서 손자 손녀들 보시게나. 인생의 오묘한 재미가 새로 생긴단마시.”
로또 당첨되기가 일생에 벼락 두 번 맞기보다 어렵다던가. 그러나 이미 우리들은 로또보다 훨씬 더 어려운 뽑기에서 당첨한 셈이다. 몰라서 그렇지 인간으로 태어나기란 벼락을 열 번 맞기보다 더 어려운 기적이었다.
게다가 손자 손녀까지 품에 안았으니 로또에 곱빼기로 당첨한 셈이다. 하느님! 감사하옵나이다. 저에게 꽃보다 향기롭고 다이아몬드보다 눈부신 선물을 보내주셔서 황공무지로소이다. 쌩유 쌩유, 에이민.
다시 어린이집
만 세 살이 되었을까 못 되었을까. 똘남이는 목포 우리 집에 있을 때 억지로 어린이집에 보냈다가 폐렴에 걸려서 일주일 만에 그만두었다.
광주로 이사 간 뒤 다시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만 네 살 될 무렵이었다.
똘란이도 오빠한테 딸려 덤으로 보냈다. 만 두 살. 똘란이는 그래도 오빠가 있으니까 그럭저럭 다닌다고 한다.
똘남이도 이제는 투정 안 부리고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는 편이고.
월화수목금토
거의 하루 한 번씩 꼬박꼬박 광주에서 전화가 오거나 가끔은 내 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 똘남이의 안부를 확인한다. 날마다 전화를 하다 보니 해야 할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아 고민인데 하루는 똘남이 쪽에서 단조로운 이야기 틀을 깼다.
“할아버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알아?”
“응, 화요일.”
“내일이 무슨 요일인지 나 안다.”
“무슨 요일인데?”
“수요일.”
“야, 벌써 요일 공부했니? 수요일 다음은 무슨 요일이지?”
“음, 목요일.”
“목요일 다음은?”
“그, 그, 금요일.”
“와하하하, 정말 요일 알구나. 누가 가르쳐줬어?”
“어린이집에서.”
“박수, 박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