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의 인도체류기>는 인도 첸나이 SRM 대학 교환학생인 김영(대전 한남대학교)이 쓴 글입니다. 아래 글은 2011년 7월19일 인도도착일부터 쓴 글 가운데 일부를 발췌하여 싣습니다. -카페운영자
김영의 인도 체류기 26- 다름과 이해, 존중(음식편)
2012. 4.14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아주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흰 쌀밥을 한 주걱 더 주셨고, 난 ‘아, 배부른데 또 주셨네’ 하며 배부름의 고통을 눈웃음으로 승화시켜 아주머니께 ‘정말 이번까지예요’라는 신호를 슬쩍 보냈다. 어차피 못 먹을 정도로 배가 찬 것은 아니니 인내할 수 있었고. 다시 시선은 쌀밥으로 자연스레 흘러갔다. 하지만 시선이 김이 올라오는 쌀밥에 갔다 한들 맨손으로 모양 잡으며 먹을 수 있는 쌀밥 온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뜨거워 먹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을까 눈앞의 쌀밥을 살짝살짝 손으로 찔러가며 반으로 나눠 식힌다. 어떤 반찬(커리)과 같이 먹을까 고민을 3초 했을까, 김이 올라오는 흰 쌀밥에 차가운 요거트가 부어졌고 내 정신상태는 공황이 되었다. 아주머니가 예고 없이 밥에 요거트(아무 맛 없는 요플레, 요구르트)를 끼얹어주신 것이다. 뒤쪽에서 퍼주셔서 방어도, 마음의 준비도 못 한 상태였다. 화들짝 뒤를 돌아보니 아주머니는 눈웃음을 덤으로 던지셨다.
이렇게 첫 요거트밥(Curd Rice=Yogurt Rice, 남인도에서 매우 인기 있다)을 억지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안타깝게도 ‘오 의외로 맛있다’,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이런 밥에 대한 예의 없는 조합이 있을까’만 생각했다. 내 눈웃음은 어느새 썩소(썩은 미소)가 되었지만, 친구와 가족들은 내 고통을 즐기는 듯 웃음만으로 방안을 메꿨다. 인도인 친구 집에 간지 20분 만에 일어난 첫 음식조합의 충격이었다.
또 다른 충격은, 요거트밥 사건 이후로 시간이 꽤 지난 후 일어났다. 날이 더 더워지자 입맛은 땅을 쳤다(지금은 땅 아래, 지하가 있다는 것을 깨우쳤다). 아무튼, 기숙사 메뉴도 지겨워진 터라, 그냥 찬물에 밥을 말아 먹기로 했는데 아니 글쎄, 예상치 못하게 주위는 혼돈의 늪에 빠져들었다. 주위 인도 친구들 뿐만이 아니라 지나가던 기숙사 관리자 할아버지께서도 왜, 어떻게, 이렇게 먹느냐고 물었다.
아니 그냥 더운 날, 밥에 찬물 말아 먹으면 먹는 거지 왜 이리 호들갑일까 싶어, 한국의 전통적이고 트래디셔널한 레시피, 마더’s 레시피라고 우스개로 말해줬다. 다들 웃으며 날 이상한 녀석 취급했지만, 이번에는 뜻하지 않게 내가 인도인들에게 음식 조합의 충격을 준 것이다. 이후 인도친구들의 표정이 우스워 여러 번 말아 먹었다.
우리는 동서양, 남북 지역간 할 것 없이 다름을 보면 놀라 하고 호기심을 가지며 혹은 혐오까지도 한다. 또한, 누군가는 선민의식에 빠져 남들을 가르치려 들려고도 한다. 고백하자면 요거트밥의 충격에서는 약간의 혐오와 조롱심을 가졌다. 혐오라고 하기엔 좀 약하지만 바로 그 아래 단계였고 그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난 그저 거절을 잘 못 하는 사람이라 먹을 수 있었던 것일 뿐이었다. 내가 누구를 먹인 건 아니지만, 인도 친구들도 내 물밥을 보며 같은 느낌을 받았을지 모른다.
사실 이 글의 마무리는 새롭거나 다름을 혐오하지 말고 존중하자고 마무리 지으려 했지만, 글을 쓰다 보니 혐오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은 매우 터프한 일임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우리 일단 한번 서로 알려고 노력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물밥을 먹는 이유는 여름 한 무더위에 부엌에서 뜨거운 요리하기 힘든 부인을 배려하려는 배려심과 더운 여름의 수분 보충, 간편함, 딱딱해진 밥을 불려 먹기 위함이었고, 겨울에는 부뚜막에서 차가워진 밥을 더운물에 말아 따듯하게 먹으려는 지혜였다. 학교에서는 추운 겨울날 언 도시락을 녹여 먹으려고 난로 위 주전자의 끓는 물을 넣어서 물밥을 먹었다 한다.
그렇다면 인도에서는 왜 물밥을 먹지 않을까? 내 추론이지만 일단, 인도에 겨울은 없다. 그리고 인도의 물은 대부분이 석회수다. 생물을 밥에 말아 먹었다가는 바로 탈 난다. 덥든 춥든 그냥 음식의 기본적인 조건이 안 된다. 거기에 물밥은 손으로 먹기 아주 불편하다. 이러한 간단한 이유들 때문에 생각조차도 못해 봤나 보다.
인도에서는 요거트밥을 어떻게 먹게 된 것일까? 일단 인도에서 요거트밥은 식사의 마무리 단계에서 먹은 것처럼, 점심, 저녁의 디저트로 먹는데, 이는 요거트의 유산균이 소화를 돕기 때문이고,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인도인들의 속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기 때문이다(위키피디아). 한국같이 유산균을 많이 섭취 못 하는 인도인들에게는 요거트는 좋은 음식이다.
아직도 왜 굳이 요거트를 밥에 비벼 먹어야 하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요거트밥을 참 좋아한다. 그럼 된 것 아닌가? 취향 존중, 공존은 서로의 알려는 노력과 이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자신과의 다름을 맞이할 때 혐오감은 잠깐 접어두고 적극 물어보고, 알아보고, 이해해주는 것이 어떨까? 요즘 위키피디아가 참 잘 되어 있다. 그리고 잘 관찰해보면 우리가 물밥에 김치를 찢어 얹어 먹듯, 이들도 요거트밥에 매실 장아찌나, 라임 장아찌를 조금씩 찢어 먹어주는 공통점도 있다. 이렇게 알고 보면 그렇게까지 다르지 않다. 서로에게서 눈과 귀, 입과 코를 닫지 않았으면 좋겠다.
Ps. 요거트밥은, 플레인 요플레(요거트)를 사서 밥에 비벼먹으면 된다. 물밥은 냉수에 밥을 말아 먹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