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의 기억들 중 가장 소중한 것은
어딘가에다 기록 해두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소중하고 안타까운 것이라면
그것을 차마 어딘가에 기록하거나 누구에게 말하지 못하고
그냥 가슴 속에 묻어두었다가 조금씩 꺼내 보곤하지요
그것을 기록하거나 얘길 해버리면 그 순간 햇빛을 본 고문서처럼
파스라져서 먼지가되어 날아가버릴 것 같은 예감??
그런 것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 강에 관련한 이야기 하나입니다.
내겐 애틋하게 그립기도하고 즐거웠던 추억이어서
어쩌다가 이야기 끝에 슬쩍 끄집어내봐도
다들 흥미없어하는 눈치라
내 소중한 기억이 남들에게 천덕구러기가 되느니
그냥 혼자 간직해 둔 것입니다.
이야기는 매우 길어서 몇회에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처럼 쓸려고 합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사실의 바탕 위에 픽션을 쌓아올린 것입니다.
1. 197x 년 장진주라 불린 친구들
<장진주> 라는 묘한 이름의 모임이 있다
여자 이름 같기도 하고 술집이름 비슷하기도 하지만
그 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부산 영도다리를 건너 방값이 싼 곳으로 밀려오다보니
일본식 적산가옥 2층 다다미방을 하나 세를 얻어 친구 둘과
합숙을 하고 있었다.
한 친구는 장씨 성을 가진
경북 영덕에서 유학 온 부유한 어부의 고명아들.
전공은 <경제학> 1년을 재수하여 나보다 나이가 두살 위.
키는 183 몸무게는 58키로
뼈에 껍질과 약간의 진흙을 바른. 조금 과장하면 거의 미이라 수준이다
그런데도 술을 밥보다 더 많이 먹는다. 좋아하니까...
또 한명의 장씨가 나오므로 우리는 그를 <대장>이라 부른다
그가 무슨 특별한 리더십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한명의 <장씨>보다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짐작 하였으리라 여겨 지는데
나머지 한 친구는 (장씨 성의) 마산에서 온 수재형 유학생
강한 리더십과 놀라운 친화력 어디에 갖다놔도 살아남을 만한
능청스러움과 뻔뻔함을 모두 가진 <국문학도>
그는 2학년에 이미 교지 편집장의 직함을 얻었다.
우리는 그를 단지 키가 작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장> 이라 불렀다
이 친구 역시 술을 밥 먹듯 하는 친구라
주변에서 우리를 보고 <장진주>멤버라고 불렀다
이것은 매우 명예로우며 남들로부터 관심과 존경을 받기에 충분한 칭호였다.
<장진주>의 어원은?
그것은 <송강 정 철>의 시가이다. (고등학교 고문 교과서에 나온다.)
'한잔 먹세 또 한잔 먹세 그려
곳노아 수 놓고 무진 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매여가나
꽃상여에 만인이 울어 에나
아욱새 백양숲에 곧 가면(?)
..... 뉘 한잔 먹자 할고...
그제서야 뉘운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내용의 사설시조
<장진주사> 제목을 붙여 준 것이었다.
물론 그 당시 학교 안에 만도 <장진주>라고 불리는 작당이
적어도 다섯은 되었던 걸로 기억하니까
지금와서 어느것이 원조라고 우기긴 어려운 노릇이다
매년 <장진주 클럽>은 생겨났고 또 사라져 갔으니 말이다(술병으로)
나는 그런 기사의 작위를 받을 만한 주량이 안되지만
단지 그 두녀석들과 같은 방에 있으며
같이 어울려 다닌다는 이유 만으로 그렇게 불리우게 되어 좀 억울한 면이있다
무턱대고 따라 마시는 주량이 막걸리 몇되 정도....
이 정도는 두 <장씨>의 신들메를 묶을 자격도 없는 셈이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다른 한 친구는 소주 1병을 겨우 먹을 수 있는 형편없는 주량으로
우리 멤버에 끼여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내 고향 친구이자 부산에 집을 둔 어엿한 정상적인 인간이었다.
자취방을 전전하거나 아침을 라면으로 점심은 막걸리로
그리고 저녁은 안주 나부랑이와 순대 같은 걸로 때울 이유가 없는
정상적인 환경에 처한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고락을 같이 한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변>이란 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축산학>을 공부하는... 농학도... 가 아니라
점수에 맞는 과를 선택하다보니 그 쪽으로 간것인데
이건 나만 아는 것으로 절대로 비밀을 누설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모두들 비밀로 해주기 바란다.
끝으로 <구>라는 성의 친구가 있다
그는 목사님의 아들인데도 술을 잘 마셨다
술을 마실 때 가끔은 기도를 하고 마신다.
여럿이 있으면 <구>는 '잠간만' 하고는 '방황하는 어린양들을 굽어 살피시고
..... 성부와 성자와.... 이름으로 ... 아멘. ' 그러면 우리도 큰소리로 아멘을 따라했다.
그렇게 스무살의 여름은 스물스물 다가오고 있었다.
음흉한 미소를 띠고 음산하게 때로는 폭풍처럼 과격하게
그리고 때로는 깨지 않은 숙취처럼 메슥메슥하게
스무살의 그해 여름 ...
우리는 강을 이야기 했다
바다는 아니다 <강>이라야만 한다
왜냐면 바다는 내게 너무 익숙했으니까
그리고 <대장> 그친구에게도..
- 그 친구의 방 문틈으로는 동해와 일출과 수평선이 한눈에 보이고
나는 집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냅다 달려서 바다에 빠지기까지
10초정도가 걸렸을 뿐이니까.
우리는 거의 일주일 동안 밤을 새다시피 모여서 여름을 계획했다
결론은 뗏목을 만들어서 타고 낙동강을 떠내려 오는 것 이었다.
'낙동강 700리를 뗏목을 타고 내려온다'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