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1. 어린나무
    2. 킥돌이 공
    3. 계림
    4. 선구자
    5. 함환재
    1. 聖君 光海君
    2. 깜장고무신
  • 가입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대종교천부경학회
    2. 슬픈고양이
    3. buff
    4. 1학년
    5. 솜소밍
    1. 상앙
    2. 고니24
    3. 빨강머리앤
    4. SAC현욱
    5. 골체부지런
 
 
카페 게시글
조선과 근대 토론방 위화도 회군에 관한 짧은 질문.
고선지장군 추천 0 조회 312 05.08.24 15:27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05.08.22 22:15

    첫댓글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고려의 단독 작전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당시 기황후가 요청에 따라 겸사겸사해서 출병한 일인데 고려가 병력을 보내지 않았고, 패한 원나라, 고려 여인이던 기황후는 그런 고려를 원망하면서 죽었다고 합니다. 지금에 와서야 승산을 따져야 무슨 소용이겠냐만 충분이 승산이 있었을

  • 05.08.22 22:17

    거라고 봅니다. 헌데 역사상 자랑스럽다니요, 우리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런 식으로 올라가면 자주적인 성격 때문에 세조와 싸움을 벌이다 패하여 청나라 이전까지 나라없이 살았던 조상이 있어서인지 별로 조선은 자랑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사대와 서로 폄하하기만 일삼았던 멍청이들의 나라로만...

  • 우왕과 최영에 의해 추진된 요동정벌은 초기에는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이성계의 병력은 압록강을 넘어 요녕성을 일시 점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조정에 요동 정벌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강조했지만.. 조정에 의해 묵살되었습니다.

  • 또한 위화도 회군의 성격을 단순히 군사적인 성격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성계 집단의 정치적인 성격이 있었다는 것을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05.08.23 11:55

    자랑스럽다는 말은 반어법인 듯 합니다. 불멸에 이순신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없지요.

  • 05.08.23 13:40

    일단 소국이 대국을 친다는 명분을 만든 것 차체부터 유화적인 것이죠. 영류왕때 시피와 실리 카간과 연결했어도 쉽게 무너지지는 알았을 겁니다. (고구려) 이것으로 알 수 있다시피 정치적 성격이었죠.

  • 작성자 05.08.23 20:36

    자랑스럽다는 말은 제 개인적 견해일지 모르나, 조선역사 일부분을 가지고 평가한 내용은 아니였습니다.

  • 05.08.23 21:11

    4대불가론은 이성계에 변명에 불과합니다. 당시 원은 혼란이 거 듭 되었고.명은 건국초기이며 원과의 전쟁으로 요동에 집중하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선대 공민왕은 일시지만 요동까지 진출했던 적이 있지요. 국내(왜구) 문제때문에..

  • 05.08.26 16:31

    국내문제라고 하지만 고려는 결국 점령 후 퇴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당시에도 아직 왜구들이 완전히 토벌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기세가 꺽인긴 했지만 이들은 아직도 고려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 최영의 요동정벌은 영토획득이나 팽창주의에 기반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명나라와의 영토문제로 분쟁이 생기자 기존의 영유권을 확고히 하고 군사적 행동을 보임으로써 분쟁중점을 철령을 기준으로 한 한반도 서북부가 아닌 압록강 이북으로 확대코자 한것이죠

  • 요동을 점거하여 군현화하고자 한게 아니라 고려의 안보라인을 보다 확대하고자 한겁니다. 그럼으로써 예비전장 및 분쟁지역을 한반도 서북부가 아닌 요동으로 확대시켜 기존의 고려 영유권을 확보하기 위한 군사행동이지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