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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고산초등학교 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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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및 나의 여행기 스크랩 ♣ 너무나 황홀한 추자도(鄒子島) 의 경관♣
강찬우 추천 0 조회 7 08.12.19 17: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너무나 황홀한

 

그러나 너무나 덜 알려진

 

자도

                  

 

멀지만 가까운 섬-추자도

추자도는 너무 멀어 범접하기 힘든 섬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추자도는 '멀지만 가까운 섬'이다. 광주공항서 제주공항까지

45분이면 족하고 다시 제주항으로 달려가 9시 30분발 쾌속선

핑크돌핀호에 몸을 실으면 10시 40분에 추자도에 닿는다.  

 

시간만 잘 맞추면 관주서 2~3시간 내에  추자도에 닿을 수 있으니

완도 만큼이나 가깝다. 추자도에서 참돔, 감성돔, 돌돔을

낚아 살아있는 채로 아이스박스에 넣고 비행기 타고 관주로 돌아오면

숙성이 된 찰진 추자도 회를 먹을 수 있으니

멀지만 가까운 섬임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뱃고동 소리에 추자도가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게 된다.

뿌연 해무 속에서 파릇한 섬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두 팔을 벌린

 방파제 품에 안기면서 배는 사쁜히 항구에 들어섰다.  

큼직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하추자 민박'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번진다. 가수 하춘화와 김추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섬에 발을 딛기도 전도 전에  열정과 기교 그리고

편안한 가락의 트롯트 같은 섬임을 알아차렸다. 이모의 손바닥

마냥 두툼하고 어머니의 손끝에 묻어 있는 멸치액젖의 섬

추자도에서 벌써부터 살가운 정이 전해온다.

 

 

바닷가 아낙의 얼굴

추자도까지는 두 대의 배가 운행한다. 1시간에 주파하는

핑크돌핀호가 있는 반면 한일 카훼리 3호는 추자도까지

그 2배인 2시간이 걸린다. 돗자리를 깔아 놓고 눈을 붙이는

젊은이, 제주항 등대가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얼굴이 벌건히

 취한 어르신, 갑판에서 007 게임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배 역시 늘씬한 몸매의 유람선도

아니고 깔끔을 떤 부잣집 딸의 모습도 아니었다.  

 

뭉뚝하게 생긴 선두와 펑퍼짐한 자태는 거친 풍상에 얽고 __鰕__

 바닷가 아낙의 얼굴 같았다. 어쩌면 이런 느림과 덤덤함이

추자도 여행의 매력일지 모른다.

 

 

추자도민은 '2008년 추자 방문의 해' 임을 선포했다. 

 면사무소 직원이 도열해 환한 미소를 보내며 배에서 내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자체 제작한 지도를 나눠주는데 지도도 자세하고 

내용 또한 충실하다. 낚시의 섬이 아닌 관광의 섬으로 거듭나려는

추자도민에게 박수를 보낸다.

 

제주도 사람들 95%가 추자도를 한번도 찾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특별자치도의 보조를 받아 편도 1만원이면

추자도에 들어 올 수 있다.

 

 

하추자항 전경. 여느섬 처럼 울긋불긋한 지붕이 파란 하늘과

바다에 잘 어울린다. 조용했던 포구가 배가 들어오자 분주해졌다.

 

 

섬사람의 발인 마을 순환버스...

아침 7시부터 21시까지 섬을 순환한다. 성인 900원, 학생 450원 

(064-742-3595)

 

섬에는 버스가 2대가 있기 때문에 단체여행객이 오면 1대를 활용할

수 있다. 트레킹을 하고 나면 반대편에 기다리고 있다. 당일이면

아래 일정대로 하면 좋다. 그런데 추자도의 진면목을 느끼려면

최소한 1박을 하는 것이 좋다.

 

제주항 출발(09:30)-추자항도착(10:40)-등대산공원 산책-

최영상군사당-점심-버스를 이용한 차량일주(추자교량, 묵리고개,

모진이해수욕장, 황경헌묘)-추자등대전망대 또는 돈대산 산책로

(60분 소요) -추자항 여객선터미널(16:25)-제주항 도착(17:20)

 

 

황홀한 풍경에 눈이 멀 뻔했던 추자도 육로 관광

나바론 민박집 사장님 차를 이용해 하추자의 신양항에서 상추자로

넘어간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상향의 풍경들이 좌우

연타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차멀미가 아닌 눈멀미 때문에

도무지 갈 수 없었다.

"사장님 차 좀 세워주세요."

파도가 몽돌밭으로 밀려들고 섬생이 섬으로 해무가 들락날락 거린다.

사자섬은 포효하고 수상여는 안개로 완전히 뒤덮혔다.

 

 

묵리고개에 이르자 차의 시동을 꺼 버렸다. 추자도 앞바다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추자도를 감싸안은 40개의 섬들의 운무에

숨바꼭질하면서 신비감을 더한다.  날이 활짝 개자 본섬을

기준으로 초록색 보석들이 윤기로 반짝이고 있으며

아담한 집들이 머리를 맞대고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대충 찍어도 엽서 사진 한 장은 건질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추자도 풍경이 최고라고 했더니 민박집 사장님은 임도를 따라

 돈대산까지 올라가 버렸다.

 

 

추자도 담수정수장. 섬에서 가장 불편한 것이 물이다.

추자도는 빗물 의존도가 높아 가뭄이 되면 타는 목마름으로

고생을 했다. 그러나 이런 담수 정화시설이 건립됨으로써

식수 걱정을 덜게 되었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미세한

막을 이용해 염분을 제거하는 시설이다.

 

 

 

담수정수장에서 바라본 북동쪽 바다는 보석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본섬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보였다. 수령섬, 악생이, 염섬,

추포도, 횡간도, 검은가리 등 이름마저도 생소하다.

하롱베이의 바다풍경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쪽제비가 엎드려 물을 마시는 모양이다.

 

 

머나먼 유배길

북쪽으로는 보길도가 아스라이 보이고 남쪽 섬너머로 한라산이

눈에 잡힌다. 어쩌면 추자도는 제주 설문대 할망이 육지와

제주도를 건너는 징검다리였는지 모른다.

 

제주도로 유배의 형을 받았던 죄인들은 머나만 유랑의 길을 떠나야만

했다. 서울-수원-천안-공주-논산-익산-전주-정읍-광주-나주-

강진에서 제주도행 배를 타고 가거나 완도에서 배를 타게 된다.

 

남쪽 해안까지 다리병으로 죽도록 고생하고 바다에서는 멀미와

풍토병에 시달려야 한다. 강진마량 포구를 출발해 바람에 의지하여

망망대해를 떠다니가 닿은 곳이 바로 추자도다.

 

후회와 한숨 그리고 눈물이 범벅이 되어 또다시 제주행 배에 올라타야 한다. 관탈섬 근처 아스라히 한라산이 보이면서 선비는 드디어

목적지에 닿았기에 관을 벗고 고쳐썼다고 하여 관탈섬이 되었다.

관타섬은 추자와 제주의 또다른 징검다리다.

 

제주도 애월에 닿은 죄인은 그곳이 마지막 안식처인줄 알았더니

또다시 걸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차라리 칼을 받았으면 더

편했을 것을....죽음을 무릎쓰고 수천리 길을 걸어왔건만 그들의

보금자리는 머나먼 대정땅...초가도 아닌 가시밭으로

둘려 쳐 있는 위리안치.

 

광해군의 패륜을 직언하고 청나라의 굴복에 반대한 동계 정온선생은

이런 가시밭길을 기꺼이 받아 들였다. 생명과 정의를 바꿀 수 없다는

선비정신은 제주도 민초들에게 뿌리내렸고 훗날 귀양온

추사 김정희도 동계선생의 의에 덕에 반해 유배가 풀린 후

거창의 동계 고택을 찾았던 일화도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추자도 역시 악명 높은 유배지다. 하긴 골육상쟁의 조정보다는

마음편한 이 곳이 그들의 천국이 아닐까싶다. 유배가 풀린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말뚝을 박아 버린 선비가 그걸 증명한다.

그런면에서 추자도는 선비들의 이상향일지 모른다.

 

 

하추자에서 돈대산에서 바라본 상추자

 

 

(사진:비행기에서 바라본 추자도.아래가 하추자 위가 상추자.

맨 아래 사자섬이 보인다.)

 

40개의 섬으로 둘러 싸여 있는 추자도

추자도는 한반도와 제주 본섬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상, 하추자, 추포도,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를 합쳐

42개의 군도로 형성되어 있다.

 

고려때부터 전남 영암군에 소속되었고, 조선때는 추자나무 숲이

무성하여 추자도로 불리게 되었고, 1869년에는 다시 완도로

편입되었고 1910년에는 제주도롤 편입되었으니 추자도 사람들의

문화는 전라권으로 보면 된다.  

 

하긴 제주도처럼 화산돌도 없다. 오히려 청산도와 완도와 가깝고

고기도 육지로 내다판다.  일제때부터 목포로 유학가는 학생이 많다.

제사, 장례, 세시풍속은 물론 말씨도 전라도 사투리다.

 

그러나 70년대를 깃점으로 제주로 생활권이 바뀌어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주민은 전라도 사람이고 공무원은 제주사람이다.

 

 

추자 등대는 제주해협 그리고 부산, 완도, 진도, 목포 등 내륙을

오가는 여객선과 화물선 , 태평양으로 향하는 선박들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추자항 등대

 

 

상추자 전경. 인구가 밀집된 행정의 중심지다. 이 작은 섬에

 3천명이 어업을 통해 살아간다.

 

 

추자도 해안 절경-나바론 절벽

낚시배를 타고 둘러보는 바다풍경 또한 놓칠 수 없다. 동남쪽은

깍아지는 기암절벽이고 물살이 세서 참돔,감성돔, 돌돔등

고급어종이 서석한다. 우리나라 낚시꾼들의 꼽는

꿈의 섬은 바로 추자도와 거문도다.

 

 

천연요새인 나바론 요새를 닮았다고 하여 상추자소쪽 해안을

나바론 해안이라고 부른다. 이곳이야말로

추자도 최고의 낚시 포인트다.

 

 

용등봉 너머 절벽은 대머리에 턱이 긴 달마대사가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툭 튀어난 눈도 붙어 있고 큼직한 귀도 걸려 있다.

 

 

바위마다 전설과 설화가 깃들여지지 않은 곳이 없다.

일몰이 아름다운 직구도의 촛대바위가 추자열도의 돛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아래 참선하고 있는

사람형상의 바위가 보인다.

 

황홀한 낚시체험

 

 

직구도에 내려 낚시체험에 나섰다.

 

낚시라기 보다는 수족관에 갇혀 있는 물고기를 꺼내는 것이라고 할까.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추자도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고 42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물살이

 세기 때문에 고급어종이 많이 서식한다.

 

 

넣기만 하면 고기가 문다

 

 

 

 

 

 

 

 

나는 이런 맛 때문에 섬을 가는데.....추자도는 양식이 없다.

다른 곳에서 고기를 가져오는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즉시 잡아 즉시 먹기 때문에 싱싱하고 달다.

 

선상 회파티. 잡은 뽈락을 뼈 채 썰어 내었다.

정면으로는 직구도 낙조,

뒤에는 한라산을 바라보며 한라산 소주를 연신 들이킨다.

 

이 짜릿한 행복은 추자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귀한 선물이다.

"제가 건배 제의를 하겠습니다.

당나귀-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

 

 

직구도 촛대바위.

오른쪽 바위는 사람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

육지를 향한 슬픈 사연이 담겨 있을 터인데...

 

 

수령섬과 악생이섬이 지나친다.

노을이 살짝 물든 하늘은 복분자술처럼 보인다.

 

 

운무를 헤치고 항구로 들어간다.

 

 

자연 조명 받은 절벽. 여수의 백도를 닮았다.

 

 

구름이 엿가락 처럼 휘어 있다.

소주 한잔 들이키고 안주로 구름 한점 뽑아 입에 물었다.

왼쪽에 있는 섬은 햇살을 맞아 황금덩어리로 돌변했다.~

 

 

노을로 물들여진 등대

 

 

면사무소 뒷 산을 오르면 항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포인트가 나온다.  

오른쪽에 등대 전망대도 보인다.

 

 

추자 10경 중에 하나인 직구낙조.

 

 

그 아름다운 풍경에 흠뻑 반해서

 

 

해지고 난 후의 직구도 노을

 

 

 

자귀꽃이 활짝

 

 

추자항 야경

 

 

소주잔에 노을을 담아 한 잔 들이키고 ,

추자 바다물 한 웅쿰 담아 그대에게 건낸다. 

돌돔, 손치, 우럭, 뽈락 등 추자 앞바다의 대표 선수들이 식탁에

올라왔으니 자꾸만 술병만 비워간다. . 송치로 우려낸

지리 국물이 가슴을 적시니... 주거니 받거니...?

 

"한잔 받으세요....부라보... 왜 섬에서는 술이 취하지 않나요?'

입은 그렇게 내 ?었어도 몸은 병든 병아리마냥 꾸벅꾸벅 졸다가

꼬꾸라졌다. 달빛에 젖은 추자항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

혹시 내가 조는 동안 누군가 다 마셔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꿈같은 상상속에 허우적거리다 닭울음 소리에

외딴섬 항구의 아침을 맞이한다.

 

 

해무에 덮힌 추자도 아침산책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 물을 들이키고  부시시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더니 분무기를 뿌려 놓은 듯한 해무가 온 섬을 감싸고 있었다.

 

벌써 멸치잡이에 나서야 할 어선들은 스크럼을 짠 채 항구에

뒹굴고 있었다. 기름값이 폭등해 출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추자도는 일제때부터 삼치 파시로 유명한 섬이다. 어린아이

몸통만한 삼치가 덤탱이로 일본에 수출했기에 이곳은

늘 돈으로 넘쳐 흘렀다. 지금도 여관과 다방의 흔적이

당시의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당포가 있던 자리다.

예나 지금이나 해상요충지인 당포는 육지 곡식을 제주로

수송하는 수참이 있었던 자리다.

 

이곳을 기준으로  북쪽을 육지, 혹은 육지사람이라 부르고

남쪽을 제주 혹은 제주사람이라고 부른다. 그 옛날 추자를

주자(舟子)라고 부른 이유는 배가 많았기 때문이다.  

 

육지와 제주를 이어주는 뱃길은

첫째, 진도를 거쳐 영왕군의 화무지와 와도,

무안의 대굴포를 거쳐 나주로,

둘째, 추자에서 삼내섬,거요량,삼촌포를 거쳐 진도로,

셋째, 삼남섬, 노슬섬, 황이, 고자, 군영포를 가쳐 강진으로

통하는 3개 항로가 있었다.

 

제주와는 당포을 출발 사서도,대소 화탈을 거쳐 애월포 혹은

조천포로 들어갔다. 고려때부터 왜구의 노략질로 충혜왕 2년에

추자백성을 전부 제주의 도근천으로 옮겼으나 추자군도

해역은 황금 어장이라 계속 입주하였다.

 

 

돈을 긁어 모으겠다는 얘기인가...머니다방과 스쿠터가 이채롭다.

 

 

일제 적산가옥 흔적이 보인다.

 

 

등대산 공원.

한때 이곳에 등대가 있었는데 더 높은 곳으로 옮겼다. 서울까지

 400.9km, 부산 284 km, 제주 53.3km라는 표식이 새겨져 있다.

 

 

1974년 북한 무장공비가 침입해 전투를 벌여 4명의 아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머나먼 섬에 반공탑이 우뚝 서 있다.

 

 

오랜 휴식이 이젠 지겨워졌어.

 

 

포구에 안개를 뚫고 오징어 배가 들어왔다. 살아 있는 놈은 즉시

상자에 담아 수족관으로 들어가고 죽은 놈은 선장의 가족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팔고 있다.

 

새벽 안개를 깨는 쩌렁한 목소리

"싱싱한 오징어 사세요."

 

 

아침 찬 준비를 위해 오징어를 산다. 2~3마리는 덤.

 

 

안개를 헤치며 등교하는 아이.

 

 

언니는 초등학교 교실로 들어갔고  이 아이는 바로 옆 유치원으로

향한다. 이 섬에 어린이가 많은 것이 신기하다.  

무럭무럭 자라거라. 이순신 장군이 보살펴 줄거야.

 

 

고단함과 애뜻함이 묻어 있다.

 

 

최영장군 사당

고려 공민왕때 탐라에서 원의 목호, 석질리가 난을 일으키자

정부에서 최영장군을 진압케 했다. 장군은 원정도중 심한 풍랑을

만나 이곳 추자도에서 바람이 잔잔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어민들에게

어망 손질법을 가르쳐주어 추자도 사람들의 생활이 획기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장군을 위한 사당을 세웠고,

매년 봄 가을에 최영장군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최영장군 사당 뒤의 고목이 운치있다.

 

 

최영장군이 몽고 반란군인 목호를 진압하기 위해 군사가 주둔했던 곳

 

 

충혼묘지. 북한 무장공비에 희생당한 분들을 모신 묘지

 

 

엄바위 장승

하추자에 들어서면 오지박 전망대가 있는데 안개 때문에 볼 수

없음을 아쉬워한다. 조금 지나면 집채만한 바위인 엄바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모양이다.  그 앞에 장승이 하나 서 있는데 천하 여장군은

도무지 어디 갔는지 찾아볼 수 없다. 장가도 못 간 장승은

추자도를 지키는 수문장이다.

 

 

갯바위에서 울던 두 살박이 아기 - 황사영 아들 황경한 묘

1801년 신유박해때 황사영백서로 조정을 발칵 뒤집혀 놓은 황사영.

그는 남인가문에서 태어나 16세대 진사에 합격할 만큼 천재였다.

그러나 주문모 신부에게 영세를 받은 후 세속적인 명리에서 벗어나

참 진리인 깨닫게 되었다. 박해를 받고 있는 조선을 위해 서양군인이

들어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북경 구베아 주교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만 발각되어 체포되고 황사영은 대역죄인으로 처형되었다.

황사영백서는 현재 로마 교황청에 있다.

 

그 가족들 역시 온전할 수 없었다. 어머니이 윤혜는 거제도로, 아내

정난주는 제주도의 관노로 두 살된 아들을 데리고 가게 된다. 정난주는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현의 딸이다. 결국 황사영 때문에 다산의 일가는 풍비박산이 났다.

정난주는 18세에 황사영(당시 16세)과 혼인하고 아들 경한을 낳았다.

1801년 두 살배기 아들을 가슴에 안고 귀양길에 오른 정난주는

추자도에 이르러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야 함을 걱정하여

젖내나는 어린 것을 예조리 바닷가 갯바위에 내려 놓고,

사공들에게는 아이가 죽어 수장했다고 말한다.

 

대정관노로 유배된 그녀는 38년간 풍부한 학식과 교양으로 주민들을

교화하였다. 그래서 노비의 신분이면서도 "서울 할머니'라는 칭송을

받으려 살아가다가 1838년에 선종하여 현재 대정성지에 묻혀 있다.

 

갯바위에 놓여진 황경한은 그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어부 오씨에

의해 키워졌으며, 성장한 뒤에 혼인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하추자도에 살고 있다. 그리고 추자도에서는

황씨와 오씨가 결혼하지 못하는 풍습이 있는데 바로

이런 가슴 아픈 사연 때문이다.

 

갯바위에서 울던 두 살 아기는 고향아닌 고향인 이곳 추자도에

묻여 한양에서 죽어간 아버지를 그리며, 제주도에서 아들을 위해

눈물로 지새운 어머니를 그리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추자도에서 가장 큰 모린이 해수욕장. 잘 다듬어진 몽돌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다. 화장실과 우물로 쓰여진 세면장이 마련되어있다.

해가 뜨면 평상위에 천막을 깐다고 한다.

 

 

영광굴비는 추자굴비를 가져다 쓴다고.....

국내 굴지 유통업체인 이마트에 납품되는 굴비가 바로 추자굴비다.

칠산앞바다의 조기가 사라지고 굴비는 추자 앞바다로 몰렸다. 조기가

잡히지 않으니 영광은 곳 추자도 조기를 가져다 말리거나 중국산을

쓰면서 영광굴비로 둔갑하게 된다. 이상기온 때문일게다.

제주도와 추자도 중간인 관탈섬에 조기어장이 형성되었다.

 

"추자도하면 멸치아닙니까?"

"멸치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서 요즘은 다 조기로 바꿨습니다."

 

 

추자도 수협 산지 가공공장에서는 노르스름한 조기가 굴비로

바뀌는 작업을 하고 있다. 생조기를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 천일염으로 간을 주고...끈으로 엮어 냉동건조시킨다.

그리고 급속동결하고 포장하여 다시 냉동보관한다.

 

 

상자에 포장하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대한민국 수많은 섬 중에 휴양하기 좋은섬 베스트 30에 선정되었다.

 관광으로 거듭나려는 추자도민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추자도는 참 깨끗하다. 청정해역을 만들기 위해

분리수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돔 낚씨하로 자주갑니다..
낚씨 좋아하신분은 꼭 한번 가볼만 합니다.

제주도에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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