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5가해1-1-1.zip
머 리 말
불교는 깨달음에 의해 스스로 대 자비심이 발로케 되어 행함을 指示해 주는 종교인 것이다.
번역이나 교정이나 강설의 의의는 독경하는 이들의 이해를 도우는데 그 목적이 있는 바라 원문인 중국어로는 그 뜻이 모두 한문가운데 포함되어 있어 어조사(토씨)는 본래 따로 붙일 필요가 없어 중복되는 것이나 우리 불자들의 이해를 도우기 위해 덧붙여 쓴 바라 고어 방식의 어조사가 오히려 어려움을 더 하는지라 고쳐 쓰고 띄어쓰기 또한 그렇게 교정하였다.
석가 세존께서 설하신 8만 4천의 방대한 一大示敎 가운데 “금강경”은 그 모두를 집약 함축한 요체인 심경인 것이다. 금강경은 세존이 21년 강설하신 6백부 대반야경 4처[왕사성 취봉산, 기수급고독원, 타화자재천궁 마니보장전, 왕사성 죽림원(精舍) 백로지변] 16회 설법 가운데 제9회 577권에 해당되는 진공무아의 공사상을 열어 보이신 것이다. 소승사상인 유, 아, 법집(有我法執)을 타파하고 무소입 무소주 무소득으로, 금강무구의 청정불심을 깨우쳐 대승의 일성 원통의 도리를 증득하여 자리이타, 각행원만의 보살도를 원만 성취하게 한 교시인 것이다. 그러나 금강경이 교전임이 분명하지만 禪의 소의(所依) 경전으로 삼는 까닭은 반야는 모든 법의 근원이 되고 역대 현성의 불심이며 중생의 근본 마음바탕인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금강경은 작은 법을 버리고 큰 도에 들어가는 관문이 되고 삿된 법을 등지고 바른 도에 나아가는 길이며, 일체 고해를 건너고 세상을 구하는 배가되며 魔를 물리치고 法徒를 부르는 신비한 진언이 되는 심지법문이기 때문에 무상의 理를 체인하며 무주행을 실천케 하는 경전인 것이다. 여기 이 五家解는 다섯 분 대덕(규봉종밀선사의 찬요, 육조혜능선사의 구결(口訣:要義), 쌍림부대사의 제강송, 야부도천선사의 착어송, 예장종경선사의 제강)의 주해와 우리나라 함허당 득통선사의 설의와 이 산승(淸峯)의 강설과 착어를 포함 7가해가 된다.
종밀선사의 찬요는 교학적인 측면을 포함 4상을 청소하고 3공혜를 들어 그 종지를 들어냈으며, 6조선사의 解義인 구결은 선적 실천과 체험을 중심으로 하여 금강경의 자아구현과 창조의 구현을 지시해 진리를 드러내셨다.
부대사의 송은 선의 일체를 노래(偈頌) 가운데 드러냈으며 야부대사의 송 가운데는 활구선 조사선의 응현무방 묘방자재함이 내포돼 있다.
종경선사 제강은 이론적 교의 뜻을 벗어나 선적 체험의 세계에서 문자로써 실상반야를 시현한 것이며 함허당 득통선사의 설의는 마음바탕에 의한 제시이다.
끝으로 여섯 선지식의 경륜을 살펴보면
쌍림 傅大士(497~569)는 양 나라 사람으로 속성은 傅씨이고 이름은 翕, 자는 현풍이며 16세에 결혼해서 24세 때 인도 스님 嵩頭陀를 만나 불교에 귀의했다. 낮에는 품을 팔고 밤에는 처(묘광)와 함께 정진하여 속가에 있으면서 크게 깨우치신 분이다. 양무제가 지공화상에게 금강경 강설을 청하자 부대사를 추천, 부대사는 법좌에 올라 법상을 들어 한바퀴 돌리고(49송을 唱頌)나서 문득 가버리자 지공은 무제에게 이 사람은 미륵의 분신이라 한 일화로 유명한 분이다. (이 금강경에는 70송이 있다)
육조 혜능선사(638~713)는 당나라 남해 신흥인으로 속성은 盧씨이고 황매산 5조 홍인대사로부터 인가와 의발을 전수 받은 분이며, 금강경을 읽고 있는 객승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란 소리에 홀연히 마음이 열려 황매산 5조를 찾아 깊이 깨달은 뒤 5조로부터 금강경 강설함을 듣고 확철히 깨친 분이다.
규봉 종밀선사(780~841)는 당나라 사람으로 속성은 何씨이고 27세 때 수주도원에서 참선 수행하여 징관(澄觀)국사의 제자가 되었으며 시호는 정혜선사이고,
예장 종경선사(904~975)는 북송인으로 속성은 왕씨이며 덕소국사에게 법을 얻어 법안종 제3조가 되었고,
야부 도천선사(생몰연대미상)는 송나라 사람으로 속성은 秋씨며 이름은 三이고 군대의 궁수인 집방이라는 직에 있다가 동제 염수좌에게 법화되어 도천이라는 법호를 받고 정인 계성선사의 법을 이은 임제 6세손이 된 분이다.
함허당 득통선사(1376~1433)는 조선 초 충북 충주 태생이며 당호가 함허당이며 법호는 득통이다. 속성은 劉씨이고 속명은 守伊이며 호는 無準이다.
무학대사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법을 이은 분이다.
금강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구마라집(343~413)은 인도인으로 7세에 출가하여 대승경론에 밝아 후진의 장안으로 초빙되어 국빈으로 머무르며 13년 동안 경, 율, 논 등 3백8십 여권을 한역하였다. 이 금강경은 그가 가장 먼저 번역한 경으로 이 경을 번역해 마친 뒤 어느 날 병이 들었을 때 내 번역에 오류가 없으면 분신 후에 혀가 타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 뒤 세수 70세로 장안에서 입적하여 다비를 했더니 혀만 타지 않았다고 한다.
이토록 금강경 5가해는 선과 교의 불법대의이므로 불자라면 깊이 수지 독송하여 깨칠 지침서로서 경전 가운데의 백미(白眉)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참고로 무착 보살이 일광정에 들어 도솔천에 올라 미륵보살에게 금강경의 뜻을 물으니 80수의 게송으로 해석해주었다. 무착은 그것으로 무착론 2권을 지었는데 금강경을 18주로 나누어 해석했고, 그의 제자인 천친 보살이 다시 이것을 바탕으로 천친론 3권을 지어 27의단(27가지 의심을 끊어줌)으로 나누어 설명하였으며 양무제의 소명태자가 32분으로 나누어 해설한 것이 오늘의 금강경 32분이니 본래 나누어 세존이 설법하신 것이 아님을 알아둠이 좋을 것이다.
德崇山 惠菴門人 淸峯 淸韻 合掌.
金剛般若波羅蜜經五家解 序說
涵虛得通禪師 序說
涵虛序:有一物於此하니
說 誼:一物이 何物인가 ○祇這一着子는 希夷焉하여 絶情하면 謂??焉하여 看似有하며 ?忽然하여 難可追하며 恍惚然하여 難可測이니 非迷非悟라 不可以凡聖으로 稱이며 無我無人이라 不可以自他로 名이니 故로 但云一物이니라 六祖가 云有一物하되 無頭無尾하며 無名無字로되 上柱天下柱地하고 明如日黑似漆하도다 常在動用中하되 動用中에 收不得者가 是니라 然이나 雖如是나 一物之言도 亦强稱之而已라 故로 南嶽讓和尙이 道하시되 說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라 有一物於此者는 不離當處常湛然故로 云爾니라
함허서:여기에 한 물건(一物)이 있으니
설 의:한 물건이 무슨 물건인가?
○. 다만 이 하나는
신묘하여 생각으로 미치지 못하고
그럴듯하여 보면 있는 듯 하나
아득해서 미칠 수 없으며
미묘하여 측량할 수가 없으니
미혹함도 아니고 슬기로움도 아니라 범부나 성인이라고 일컬을 수 없으며 나도 없고 사람도 없음이라. 상대적으로 이름할 수 없음이니 그러므로 다만 한 물건이라 하시니라. 六祖 스님이 이르시길 “한 물건이 있으되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문자로 이를 수 없으나 위로는 하늘에 닿고 아래로는 땅에 꽉 차 있으며 밝기는 태양과 같으며 검기로는 옻칠과 같도다. 항상 움직이고 쓰는 가운데 있으되 움직이고 쓰는 가운데서 거둘래야 거두지 못하는 것이 이것이니라” 하셨느니라. 비록 그러함이 이와 같으나 한 물건이라는 말도 역시 억지로 말했을 따름이라. 그러므로 남악 회양화상(육조스님 제자)이 이르시되 “설사 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맞지 않다” 하시니 ‘한 물건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當處(바로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항상 湛然(없이 있는 깨끗한 그대로의 고요함)한 까닭으로 그렇게 말씀 하셨음이니라.
금강경5가해는 청봉선사님께서
서울 정릉동 삼보정사에서 선원장으로 계시면서
2004년 12월부터 2006년 12월 19일까지 매주 화요일저녁에
법회법문 자료로 강설해 주신 100회분의 내용입니다.
삼가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은
번역이나 교정이나 강설의 의의는 독경하는 이들의 이해를 도우는데 그 목적이 있는바라
이 경 강설내용을 다른곳에 옮기시거나 인쇄하실 때에는 원문의 출처를 남겨
뒤에 참학인이 의혹을 갖지 않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청봉스님의 장군죽비"
수발상좌 명심스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