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모께서 힘에 부치는 일은 못하십니다.
콩을 뽑아 밭에 모아두고 내가 오기만 기다립니다.
벼를 베고 볏단을 묶는 일을 못하십니다.
화목거리 통나무를 자르고 쌓지를 못하십니다.
주렁주렁 열린 감을 보고도 따지를 못하십니다.
연세로 치자면 아직 젊은 노인이신데 두 분 허리가 좋질 않아 그렇습니다.
요즘은 일손을 돕기 위해서라도 주말만 되면 고향에 갑니다.
부모께서 건강하실 적엔 신경도 쓰지 않던 일인데 이젠 데면데면한 일에 일일이 신경이 쓰입니다.
몇 번인가 농삿일을 그만두시라고 말씀 드렸더니 얼굴표정이 이내 어두워지십니다.
아, 그래서 담부턴 그 말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대신 내가 도와드려야겠단 생각을 했지요.
어제는 내년에 심을 감자씨를 땅 속에 묻었습니다.
올 해로 5 년 째 구덩이 파고 무우, 감자를 묻는 일은 제 몫입니다.
공병대 출신이 삽질 하면 그만 아닙니까^^
후다닥 구덩이 완성하고 내년에 심을 감자씨 세 부대(반 씩 담음)를 가지런히 놓고 후다닥 묻었습니다.
봉긋하게 흙더미를 만들고 우천을 대비해 물길을 만들고서야 목줄기에 흘러내린 땀을 쓸어내렸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머리 위로 붉게 물든 감이파리가 살랑거리며 내려 앉습니다.
잘 익은 홍시가 햇살을 받아 더욱 새빨개져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보는 족족 따먹었는데 이젠 식욕도 변하는지 아니면 게을러서 그런지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부모님만 나이가 드는 게 아닌가 봅니다.
아랫도리가 예전만 못합니다.
그깐 일 했다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보면 말입니다.
그래도 아직 멀었습니다.
외발 수레에 화목을 나르고, 콩밭에 쌓인 방콩 묶음 나르고
개집 수리하고, 언제부터 거기에 쌓아놓았는지 모를 오래된 기와를 치우고, 창고 벽에 함석 붙이고
겨울동안 토끼가 먹을 콩깍지 부대 들여놓고... 지게질에 외발수레 끌기에 에고에고~ 허리야 다리야 팔이야~
컴컴한 밤중 쯤 감, 무우, 감자, 고춧가루, 얻어 온 배 몇 개, 선인장 열매 백초(?) 바리바리 싸주시는 비닐 봉지를
차에 싣고 다시 내 집으로 갑니다.
고향도 부모 살아계실 적에나 소용있다고 하던데 비로소 그 소리가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첫댓글 실감 나는 이일을 요즈음 많많이 하고 있어요......수확량이 얼마많큼인지 몰라도 계속 메주도 만들어야 하고 또? 글을 보고 웃음이 나옵니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쪽지로 주소라도 남겨 주시면 한 번 찾아가 뵙고 싶네요.
집전화 그대로이고요 먼저 살던집에서 물어보면 되고.....사정리 451-1이되네요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