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렁이
덕적군도 문갑도 당너머 영산인 당산 숲에서만 산다는 먹구렁이는 순하디순한 눈을 가졌네
한번은 버찌를 따 먹으려고 벚나무를 올려다보다 먼저 온 먹구렁이와 그만 눈빛이 마주쳤다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머리가 곤두서 당아래로 줄행랑을 쳤다네
먹구렁이도 난처했는지 벚나무에서 내려와 염천에 벌겋게 달아오른 돌무더기 메밀밭을 뱃가죽으로 기어 너럭바위에 숨어 버렸다네
원수지간도 아닌데 나나 먹구렁이나 서로 못난 구석이 있어서인지 오금이 저려 한걸음에 달아난 것도
나나 그 징그러운 놈이 숨이 차오르며 땅거죽을 박차고 뛰던 것도 다 제 살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드니 절로 웃음이 나왔네
너럭바위 밑 어두운 구렁에 납작 엎드려 검은 눈을 숨죽이며 똬리를 틀고 있던 것은 아마도 박박 기어 본 자만이 느끼는 설움을 먹구렁이도 느껴서지 않았을까?
너럭바위 구멍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세상이 싫어서 끙끙 앓고 있었는지 모를 일
지금도 어스름이 기어 오는 저녁 무렵 먹구렁이가 떠오를 때면 인연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가 많아졌네
첫댓글 나도 이젠 따리틀고 방에 잠잠하게 보내고있네요 늙어간다는건 슬픈일이네요. ㅋ
무더운 날씨예요.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쓰세요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