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다양함 속에서 주님 사랑 발견해야
지난 26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모처럼 고향인 정선을 찾아 등산을 하였습니다. 5월의 싱그러움과 아름다움이 마음을 더욱 기쁘게 하였고, 거기에 더해 참으로 오랜만에 갖는 여유로움이 행복한 기분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힘겹게 한발 한 발을 옮겨 놓으면서 산이 있음이 얼마만한 축복인지를 새삼스레 느껴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산이 축복이란 사실은 처음부터 느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선이란 고장이 산에 둘러 싸여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또 초등학교 시절의 경제 개발 시대의 교육 때문인지는 몰라도 산에 대해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때 교과서에는 잘 사는 외국의 사례가 소개 되곤 하였는데 그 당시 지금도 기억나는 사진들은 비행기로 농약을 뿌리는 끝없는 평야와 연기를 내 뿜는 굴뚝, 폐수를 쏟아내는 공장 등이 선진국의 모습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좁은 국토와 산, 그리고 너무나 맑은 공기와 물을 부정적으로 가르치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외국의 넓은 평야를 상상하면서 왜 우리는 이러한 평야를 가지지 못하고 쓸데없는 산을 가지고 있어 가난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넓은 평야를 그리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신부가 된지 7년 후 등산을 취미로 하면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산이 축복이요 감사임을 느끼고 산의 가치를 새삼스레 느끼면서 삶도 마찬가지라 생각해 봅니다. 사실 우리는 평탄한 평야의 삶만을 추구하지만 굴곡인 산의 삶이 있기에 인생은 더욱 더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러한 다양함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삼위일체의 신비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이 교리는 오늘 감사송에 나와 있듯,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느님이시며 한 주님이시나, 위로서 하나가 아니시고 삼위일체이신 본체로서 하나라는 것, 한 하느님이 세 위격으로서 존재하는데 이 위격들은 하나의 하느님 본성이고, 본질이며 실체라는 교리로 니케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를 거치면서 형성된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이 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위격 개념과 본체와 본질 본성이라는 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선 위격이라는 말은 개별적 존재라는 뜻입니다. 원래 이 말은 「가면」을 뜻하는 그리이스어에서 유래하여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인격」 혹은 「성격」이라는 말로도 사용되기도 하는 개념을 하느님께 적용하여 위격이라는 말로 쓰고 있습니다. 이 위격을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타 존재와 독립하여 그 자체로 존속하는 완전한 실체』라고.
그리고 본성과 본질 실체라는 말은 학자들에 의해서 약간씩 다르게 해석되지만 이 말들이 가지는 하나의 공통점은 「변화해 가는 사물의 근저에 있는 지속적이고 불변하는 것」, 「바탕을 이루는 것」, 「근본에 있는 존재」를 뜻합니다.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를 쉽게 이야기하면 하느님은 외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분으로 구별되지만 본체로서는 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교리가 어떤 이론적인 사색에서 나온 정의이기 보다는 초대교회가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을 체험한 후 삶에서 우러난 교리라는 점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다양한 모습을 통해 전달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초대교회가 인간의 짧은 언어로 드러낼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 앞에 느낀 느낌 그대로를 드러낸 교리입니다. 마치 도덕경 1 편에 나오는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도」를 「도」라 할 수 있으나 항상 도라고 할 필요는 없다)라는 자세와 같은 여유로움, 하느님을 인간의 언어로 완벽하게 규정하지 않으려는 관용입니다. 때문에 이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일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말하는 언어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면서 가져야 되는 태도는, 인간의 언어로 하느님을 규정하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멈추고 다양함 속에서 활동하시는 그분의 모습을 발견함이 바로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성자와 성령의 모습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체험하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삶의 여러 가지 사건 안에서 여전히 활동하시는 「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함, 바로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 홍금표 신부 3Dalbinos1@netian.com">albinos1@netian.com
- 홍금표(알비노 / 삼척 종합사회복지관 관장 및 삼척 자원봉사센터 소장)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