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소리로 염불하면 마군들이 물러나 흩어지느니 / 법선 선사
[보적경寶積經]에 이르시기를,
“큰 소리로 염불하면 마군들이 물러나 흩어지느니라.”
산란심을 없애는 중요한 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성에 존재한다.
음성이 분기시켜 격려하지 않는다면
심념心念은 곧 속으로 아는 채,
우쭐거려서 산란심이 가라앉지 않는다.
음성을 분기시켜 격려할 수 있다면,
잡초를 뽑아내고 다른 풀을 뽑아 한 줄에 꿰어서
뒤에 지팡이를 타고 목숨을 마친다는 마음으로 상대하여
영원히 그 산란의 우환을 끊어 없애는 것이
바로 그 첫 번째 의의이다.
음성 및 정념의 광명이 비추어 미치면
모든 악념이 일으킨 재난과 화가
곧 얼음과 서리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갖가지 공덕의 총림이 수많은 산의 소나무처럼
무성하여 시들지 않음이 그 두 번째 의의이다.
나아가 염불하여 정토에 왕생한 후
아미타부처님의 자마금빛깔 용안을 뵘은
곧 광명이 번쩍이고 온갖 색채 서광을 놓으며,
설법하실 때 칠보의 하늘 꽃이 부슬부슬 비 내리듯
허공에서 떨어져서 이러한 갖가지 수승함이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가리키는 것처럼 쉬운데
이것들 모두가 고성염불로 인한 까닭이니,
이것이 바로 세 번째 의의이다.
또한 큰 나무 큰 돌을 운반할 때, 너무 무거워서
실어 나르지 않을 수 없듯이 우렁찬 소리로
동시에 구호를 외치기만 하면, 소리를 따라
나무와 돌을 표연히 가볍게 들 수 있으니,
이것이 네 번째 의의이다.
외도와 마군 등, 적의 대중과 서로 전쟁할 때,
정면에 깃발과 북을 만날 때
만약 음성과 선율을 차와 말로 군대가 이동할 때 쓰면
굳건하고 가지런한 마음으로 강한 적을 공격해 무찌르니
이것이 다섯째 의의이다.
음성은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의의를 이미 갖추고 있으니,
싫어할 이유가 있겠는가?
이 때문에 시끄러운 소리와 고요함 양자 모두 중시하고
모두 갖추며, 나아가 지관을 동시에 운영하여
부처님의 뜻에 합하면 매우 좋지 않겠는가?
선정과 지혜를 만약 균등히 할 수 있다면
동시에 마음과 부처가 서로 사라지니,
이는 당신이 묻는 문제와 같다.
이런 까닭에 여산廬山 혜원대사慧遠大師께서는
[염불삼매서念佛三昧序]에서 이르시기를,
“공덕이 높고 넓어 정진수행하기 용이하여
염불만큼 우선 삼을 것이 없다.
나는 언제나 부처님 명호의 불가사의한 소리를 알아차리고
매번 마음의 현을 퉁길 때마다 마음 속 부처님 명호를
잘 듣기만 하면, 언제나 나를 얽매는 번뇌를 곧 녹여버릴 수 있다.
나를 가로막는 집착의 정(執情)도
막힘없이 서로 통하고 탁 트여 밝아지기 시작한다.
만약 천하 사이에 지극히 심묘한 염불법문이 아니라면
또 누가 있어 이처럼 현묘할수 있겠는가?” 하셨다.
만약 어떤 증명이 있는가 말하라고 하면,
[화엄경]의 게송에서 하신 말씀만한 것이 없다.
“차라리 무량한 괴로움 받으리니, [寧受無量苦]
부처님 음성 들을 수 있다면, [得聞佛音聲]
일체 즐거움을 받지 않으리니, [不受一切樂]
부처님 명호 듣지 못한다면 [而不聞佛名]
진실로 이와 같아서 부처님 명호의 음성이
시방에 멀리 떨쳐 중생의 선근을 일으키고
보리심의 싹을 움트게 함이
대지를 울리는 봄날 우레 소리에 놀라고 쏘여
온갖 풀이 진동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염불소리를 경시하고 헐뜯는가?
나무 아미타불!
- [염불삼매보왕론念佛三昧寶王論],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