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의 꿈
가을바람에 황금물결이 춤을 춘다. 들판 위에 펼쳐진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살랑이며 맴돌던 고추잠자리가 내 팔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하얀 바지에 파란색 조끼를 입고 밀짚모자를 쓴 내 이름은 ‘허수아비’다. 비록 주인님의 헌옷을 걸쳤지만, 멋진 모습으로 금빛 들판의 중심에 서있는 내가 자랑스럽다. 마을 소식과 풍경을 나만큼 잘 아는 이도 드물 것이다. 산에서 일어난 일은 가끔 날아오는 새들이나 곤충들이 전해준다. 사실 참새들도 나를 피하기보다 내 곁에 모여서 수다를 떨곤 한다.
사람들은 왜 부정적인 의미로 ‘허수아비’란 이름을 쓰는지 모르겠다. 별로 쓰임이 없고 힘없는 이들을 그렇게 부른다. 내가 ‘무위도식’하는 줄 알지만 종일 서있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모를 것이다. 새벽녘의 이슬이 햇볕에 사라지고, 산그늘이 내려앉을 때까지 계속 자리를 지킨다. 아니,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에도 눈을 부릅뜨고 서있다.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밤새 서있어도 난 상관없다.
나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들은 남을 위해서 뭘 얼마나 할 수 있다고.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가뭄으로 논밭이 쩍쩍 갈라질 때, 농민들의 깊은 한숨 소리를 들은 적 있는가. 농민들의 고된 땀과 노고를 매일 보고 듣는 나만큼 그들의 애환을 아는 자가 있을까. 내가 말은 못 하지만, 이래 봬도 세상 밖의 이야기를 잘 아는 편이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바깥세상 이야기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저 멀리 서있는 허수아비를 발견했다. 처음엔 십자가 모양으로 두 팔 벌린 모양이더니, 어느새 노랑 저고리에 초록의 치마를 입고 서있다. 아마 주인마님의 것이리라. 수북한 털실로 길게 늘어진 머리 모양에 마음이 설렌다. 적막한 들에서 혼자 서있을 때보다 훨씬 덜 외로울 것이다. 양 볼이 발갛게 물든 모습이 마님의 모습과 닮았으니 ‘그녀’라고 부르고 싶다.
나와 비슷한 그녀를 볼 수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다. 멀리서 바라볼 뿐, 정담을 나눌 수 없는 처지란 걸 잘 안다. 먼 산을 바라보다가 때때로 새침해지는 그녀 모습이 귀엽다. 가까이 있다면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데.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슬퍼지는 건 처음이다. 그래도 그녀를 매일 볼 수 있다니 어디인가. 참새들과 고추잠자리들이 곁에 있어도 마음은 자꾸 그녀에게 향한다.
나는 주인 내외를 좋아한다. 옷을 새롭게 단장해주고 많은 얘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주로 자녀들 얘기인데 손주의 탄생이나 입학 소식 등 기쁜 소식을 들을 때는 내 일처럼 즐겁다. 한숨소리가 들릴 때는 내 마음도 무겁게 내려앉는다. 오래전, IMF를 겪을 때, 공장에 다니던 아들이 갑자기 실업자가 되어서 작은 식당을 열어줬다고 한다. 그때 상당한 부지의 논과 밭을 팔아서 지금은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땅만 남은 것이다.
땀 흘려 수확한 쌀을 아들네, 딸네 양식으로 보내고 남은 건 팔아서 생활비로 쓴다고 한다. 내가 한 알의 곡식이라도 손실되지 않게 온종일 보초를 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인님이 나를 보살피듯이 나도 그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다. 단, 멀리 있는 그녀와 나란히 설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아들 내외가 드나드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 날, 집안에서 두문불출하던 아들이 내 앞에 불쑥 나타났다. 갑자기 그늘이 드리워져서 올려다보니 주인 아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사십대인 그가 달라졌다면 수척해진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님이라면 내게도 마스크를 씌어줬을 텐데…, 마스크 위로 보이는 그의 눈이 슬퍼 보였다.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다. “내가 바로 너처럼 허수아비 신세로구나.”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내 신세가 어떻다고, 왜 날 보며 한탄조로 말하는 거야.’ 내심 불만이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서있는 이 논도 곧 누군가의 손에 넘어갈 것이란 것을. 한동안 잘되던 아들네 식당이,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소문이 퍼지자 손님이 끊기고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허수아비 신세가 된 것이다. 식당 문을 닫게 된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언제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더니, 지금은 행여 뭉칠세라 흩어지라고 난리다. 사람들은 정말 변덕이 심하다.
바람이 전해준 말에 의하면,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꼼짝 못 하고 얼어붙었다니 그야말로 ‘난센스’다. 만물의 영장이니 과학문명의 눈부신 발달을 이뤘다느니, 잘난 척하던 인간들이 두 손 벌린 채 서있는 나와 뭐가 다른가. 그렇게 좋은 머리로 하찮은 병도 물리치지 못하다니, 날아가는 참새도 웃겠다.
슬픈 얘기를 안 하려 했는데, 내 아버지인 ‘허수아비’는 아들을 위해 주인님이 논을 팔 때 하직하셨다고 한다. 사람들이 다 잘못한 탓이다. 주인님의 웃는 모습을 본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마스크를 벗고 웃을 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사람들이 예전처럼 활기찬 모습으로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남의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우리 주인님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논이 팔리면 나도 이곳에 서있을 수 없고, 먼발치에 선 그녀도 못 볼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허수아비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녀와 나란히 서있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는데. 그냥 이 자리에서 그녀를 계속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첫댓글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를 통해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을 우의적으로 잘 서술해 주셨군요, 뜻하지 않은 코로나 환난을 빨리 극복하여 허수아비가 주인을 걱정하지 않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있는 시기가 빨리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나는 또 다른 누구의 허수아비인듯 싶습니다. 그래도 누굴 위해 쓰임이 되었다가 간다면 그것을나마 만족해야 되겠지요? 섬세한 표현과 정감있는 글에 박수를 보냅니다!
들판에 허허롭게 서 있는 허수아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모든 걸 초탈한 허수아비가 허둥거리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깊은 한숨과 함께 측은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군요. 그를 한갓 허수아비라고 깔보는 가련한 사람들의 모습을 안타까워 하면서요.
마치 해바라기 같은 인간이라고 해바라기를 업신여기는 잘난 인간을 한결같이 응시하는 해바라기처럼이요.
초등학교 시절 누이와 함께 논 한구석에 허수아비를 세워 놓고 새를 쫓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해가 뉘엇해지며 새들이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면 새를 쫓으며 잡았던 메뚜기가 든 병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저녁 풍경도 떠오르구요.
아주 재밋게 읽었습니다~
어렸을 때 허수아비와 나는 친구였습니다. 종일 그와 함께 참새를 쫓아야했거든요. 그는 서있는 보초였고 나는 움직이는 동초였지요. 그 때가 그리워집니다. 힘은 들었지만...
허수아비를 통해 요즘 서민들의 실상을 상징화해서 섬세한 감성을 잘 서술해 주셨네요.황금들력이라는 첫 구절부터가 왠지 심상치 않다
고 생각하고 심각하기도 하고 측은한 심정으로 잘 읽었네요.저는 우리 막내처제가 식당을 해서 식당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잘 알지요.
광교 저희 아파트 근처에서 쭈꾸미와 등촌칼국수를 했는데, 아파트 지역이라 광교맛집으로 소문은 났는데도 버티지 못하고,전전하다가
옛 종업원이 병점에서 크게 돈을 벌어 잘되자, 자기는 동탄으로 옮기고 물려줬는데 지금은 어려운 시기인데도 잘되고 있어요.
이 지역에서 식당이 코로나시대에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 참 마음이 아파요.어서빨리 이 사태가 지나가 서민과 농민들의 허수아비가
뽑혀지지 않는 시기가 왔으면 좋겠네요.志松님의 적극적 참여가 활기를 주네요.감사해요.
사람들은 허수아비를 평가절하
하지만 어쩌면 허수아비보다
못한 삶이 우리들 삶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허수아비를 우리들 삶에 적절하게
비유했네요.
부족한 글에 댓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수아비를 의인화 해서 어려운 세태를 풍자했어요. 결혼도 포기하는 청년 실업자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그렸습니다. 제 글들을 공유하지만 문우회의 글쓰기 의도와 부합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민폐가 될지 염려도 됩니다.
송구영신~~~
무슨 말씀이세요!
문우회 글쓰기 의도라니요?
우리 문우회가 특정 분야나 주제, 또는 어떤 형식의 글을 쓰도록 규정을 하거나 제한을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송님 글 제겐 아주 좋고 재밋습니다~
유년 시절에 본 허수아비는 퍽 정겨운 광대 같은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농부들도 허수아비가 참새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 같지는 않았지요. 물론 저도 믿지 않았고요. 지송님 말씀대로 참새는 허수아비를 허수아비로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허수아비는 유년 시절 언저리에 자리한 추억의 풍경이며, 제 마음 속에 그리운 존재 중 하나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나 봅니다. 오랜만에 그리움 하나를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송님의 글, 즐겁고 재미 있고 ㅡ 애틋한 마음이 새록새록 나네요. 이처럼 멋진 글을 구상하여 엮어내다니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허수아비를 통해 본 세상사를 다시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