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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감사절 찬송
해설 : 오소운 목사
이번 호에는 추수 감사절 찬송을 주제로 해설하려 한다.
우리 그리스도교회의 감사절은 흔히 미국의 청교도들에게서 그 유래를 찾고 있지만, 구약성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또 하나, 우리 민족이 감사절을 지킨 것이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만, 우리 민족은 고구려 때, 아니 고조선 시절부터 추수 감사절을 지켰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지면 관계로 이의 논증은 생략한다.
감사하는 성도여
(H. Alford 작사 ․ G. J. Elvey 작곡) ;
《통일 찬송가, 1983》306장 ; 《21세기 찬송가, 2007》587장
한국 북장로교회에서 발행하여 주로 서북지역에서 사용된《찬셩시, 1905》4장에 배위량 선교사 부인 안애리(安愛理, Annie L. A. Baird, 1864~1916) 여사의 번역으로 실린 이 찬송은 헨리 앨포드(Henry Alford, 1810~1871)가 1844년에 작사하여《시와 찬미》'Psalms and Hymns, 1844' 에 처음 발표한 것이다.
작사자 헨리 앨포드
이 찬송은 영국의 마을 추수 광경을 보고 영감을 받아 쓴 찬송으로서 예수님의 비유 둘을 원용하여 작사하였다. 곧 마가복음 4:26-29 「자라나는 씨의 비유」 말씀과 마태복음 13:24-30절의 「곡식과 가라지 비유」 말씀이다. 이 땅의 추수와 하늘나라의 추수를 동시에 노래하고 있다. 하늘나라의 추수 때가 가까웠다. 영광스런 알곡이 되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자만이 구원 받는다.
작사자 헨리 앨포드는 1810년, 영국 미들섹스(, Middlesex)의 블룸스버리(Bloomsbury)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살 때 자기 성경에 이런 글을 써 남겼다.
― 나는 오늘 하나님 앞에서 나의 영혼을 새롭게 하여,
내 몸과 영혼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
이제부터 내가 죽는 순간까지
오직 주의 일만을 하기로 맹세한다.
앨포드는 일민스터(Ilminster) 문법학교를 마치고, 케임브리지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1833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여러 교회에서 18년 동안 목회를 한 그는, 1853년에 런던에 있는 퀘벡교회(Quebec Chapel)에 부임했다. 1857년에 캔터베리 대성당의 수석 사제가 되었다. 그는 학자로서 호머전집을 출판하고, 영국시집과 헬라어 성경을 출판하였다.
작곡자 조지 앨비
이 가사에 이 곡조를 붙인 찬송은 영국의《고대와 현대 찬송가》'Hymns Ancient & Modern, 1861'로서, 382장에 처음으로 실렸다.
《고대와 현대 찬송가》'Hymns Ancient & Modern, 1861' 382장
미국의 공식찬송가로서 이 찬송이 실려 있는 것은《장로교 찬송가》'The Presbyterian Hymnal, 1874' 822장과《감리교 찬송가》'Hymnal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with Tunes, 1878' 1083장에 실려 있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민로아 선교사 작사 ․ H. B. Richards 작곡)
《통일 찬송가, 1983》307장 : 《21세기 찬송가, 2007》588장
한국 최초의 장․감 합동 찬송가인《찬숑가, 1908》편집자로서, 우리 찬송가에 지대한 공을 세운 장로교 선교사 민로아(閔老雅, Frederick S. Miller, 1866~1952) 목사가 한국어로 작사하여 203장에 처음으로 실린 한국교회 초대의 한국어 찬송이다.
캐나다 사람으로서 미국 선교사가 된 게일(奇一, James Scarth Gale, 1863~1937) 목사는 연동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광대 출신 임공진(林公鎭)을 주일예배 시간에 교회 앞에 세워, 장구와 북을 치며 민요「양산도」가락에 맞춰 이 찬송을 부르게 하였다.
<사진 설명> 게일 선교사의 아들 유아세례 기념;
앉은 이 ; 세례를 베푼 길선주 목사, 게일 부인과 아기, 뒤에 선 이가 임공진 장로.
1. 에에이에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천부가 저 새를 먹여 기르신다.
<후렴>
염려 말아라 의복 음식 염려 말아라
천부가 너에게 복을 내리신다.
2. 에에이에 들에 백합꽃을 보라
천부가 저 꽃을 귀히 입히신다. (후렴)
3. 에에이에 너희들은 낙심말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여라 (후렴)
4. 에에이에 내일 염려 내일 하라
오늘은 오늘에 고생 족하니라 (후렴)
연동교회가 자리 잡았던 연못골과, 그 이웃 찬우물골(현 효제동), 방아다리(충신동), 두 다리목 등은 조선시대 직업서열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제일 하층인 나막신 장수․배추장수․천민․갖바치․하급 병졸 등의 집단거주지였다. 그래서 초기 교인들의 대부분은 이 계층 출신이었다. 원산의 유명한 싸움꾼이었던 고찬익 장로도 원래 평안도 안주의 갖바치 출신이었다. 임공진은 비록 천민이었으나 신앙의 열의가 대단하여 게일 목사가 장로로 추대하였는데, 양반교인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특히 이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모인 1909년 6월 25일 연동교회 제직회에는 원두우․아펜셀라․헐버트 목사 등 장․감 양 교파의 선교사들까지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게일 목사는 단호하게 임공진은 신분을 막론하고 장로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이원긍․함우택․오경선 세 영수가 천민 출신의 장로 장립에 분노하여 마침내 1백여 명의 성도를 데리고 나아가 묘동교회를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게일은 임공진을 장로로 세웠으니, 그의 인권평등 사상과 국악사랑의 정성은 가히「매니아 급」이다. 임 장로는 게일의 격려에 힘입어 가야금 병창 등 전통국악에 바탕한 한국적 찬송가 개발에 나섰다. 1917년에는「조선음악연구회」를 조직, 3년간 찬송가 토착화작업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이 찬송의 곡명은 암스트롱(리차즈) 'ARMSTRONG(RICHARDS)‘이다. 암스트롱이란 이름의 곡조가 또 있기 때문에 작곡자 이름을 병기하는 개 관례다.
《찬숑가, 1908》203장
이 곡조는 일명「임멜라」'EMMELAR' 라고도 하는데, 우리 찬송가에는《신편 찬송가, 1935》때부터 임멜라 편곡(Arr. by Emmelar)이라고 잘못 기록되어 왔는데 'by'가 아니라 'from' 이라야 맞다. 외국 찬송가에는「임멜라에서 편곡」(Arranged from EMMELAR)라고 하여 임멜라가 사람 이름이 아닌 곡명(tune name)임을 명기하였다.
이 곡을 작곡한 헨리 B. 리차즈(Henry Brinley Richards, 1817~1885)는 1817년 11월 13일에 웨일스의 카르마덴(Carmarthen, Wales)에서, 사도 베드로교회의 오르가니스트인 헨리 리차즈(Henry Richards)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살에 영국 런던에 있는 황실음악아카데미(Royal Academy of Music)에 들어갔는데, 최초의 영국왕의 장학금 수혜자로 입학하였다. 졸업하고는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후에 그는 프랑스 파리로 가서 프레데릭 쇼팽(Frederic Chopin)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그의 F 단조 서곡 ("Overture in F Minor")는 1840년에 파리에서 초연되었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작곡자 리차즈
그의 작품으로 유명한 것은「산들이 노래하게 하라」"Let the Hills Resound,"와「웨일스의 하프」"Harp of Wales", 그리고 가장 유명한 것은「하나님이시여, 웨일스의 왕자에게 복을 내리소서」 "God Bless the Prince of Wales" (1862)이다. 1867년 4월 1일「다윗의 날」(St. David's Day)에 리차즈는 웨일스의 왕자로서 영국의 왕이 된 에드워드7세에게 이 노래를 헌정하였다.
넓은 들에 익은 곡식
(J. O. Thompson 작사 ․ J. B. O. Clemm 작곡)
《통일 찬송가, 1983》308장 : 《21세기 찬송가, 2007》589장
성결교 초기 찬송가인《신증 복음가, 1919》155장에 이장하(李章夏, c.1886~ ?) 목사 번역으로 처음 소개된 이 찬송은 제임스 톰슨(James Oren Thompson, 1834~1917)이 1885년에 작사한 가사에, 제임스 클렘(James Bowman Overton Clem, 1855~1927)이 곡을 붙인 추수감사절 찬송이다. 참으로 번역이 잘 되었다.
이렇게 번역을 잘 하여 초기 성결교회 찬송가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이장하(李章夏, c.1886~ ?)는 평안북도 의주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로 올라와서 신학문을 접하고 예수를 영접한 그는 ‘완전한 구원을 얻고 축복을 받기 위하여’ 신학을 공부하기로 하고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1905년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3주간의 항해 끝에 미국에 도착하였으나 법정 전염병인 안질에 걸려 입국을 못하고 일본으로 다시 돌아왔다.
1906년 일본 홀리네스교단의 동경성서학원에 입학하여 친구들과 함께 그 교단의 <구원의 노래>(救いの歌) 및 <福音唱歌>를 우리말로 번역 <복음가>란 이름으로 서울에서 출판하였다.
번역자 이장하 목사
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1914년에 한국성결교(당시 복음전도관)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성결교회에서《신증 복음가, 1919》를 출판할 때 위의 <복음가>가 모두 채택되었는데, 이를 어쩌나, 1912년부터 경성성서학원(서울신학대학의 전신) 남자부 사감으로 재직하면서 여자부 사감 최홍은과 요즘 말로「부적절한 관계」로 지내어 수문이 났다. 총회에서 회개하고 관계를 청산하라 지시하였음에도 그는 이에 불복하여, 마침내 1920년 성결교단에서 면직, 출교(黜敎) 당하여 해외로 나가 소식이 끊겼다. 안타까운 일이다. 바울도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는가.
ㅡ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가 버림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고전 9:27).
요즈음도 소위 「꽃뱀」으로 알려진 목사 킬러들이 도처에 횡행하고 있는데, 사탄의 졸개들이다. 조심, 조심 또 조심할 때다.
작사자 제임스 톰슨(James Oren Thompson, 1834~1917)은 1834년에 미국 메인주 월도(Waldo, Maine)에서 태어났다. 남북전쟁 중에는 메인주 제17보병연대에 군목 소위로 입대하여 대위로 제대하였다. 1866년 감독감리교회 메인연회에 소속되었다. 후에 뉴잉글랜드 남부연회 소속 목사로 있다가 1886년에 은퇴하고, 일간지 'The Mountain Echo' 를 편집하다가, 후에 웨스트버지니아 찰스톤(Charleston)으로 이사하여 농림부 장관을 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1905년에 플로리다주 피터스버그에 있는 퍼스트애버뉴(First Avenue) 감리교회로 돌아와 목회로 생을 마무리를 하였다.
후렴은 마태복음 9장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시화한 것이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가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들을 그의 추수밭으로 보내시라고 청하여라.’” (표준새번역 마 9:36-38).
《엡워스 찬송가》'The Epworth Hymnal, 1885' 255장
작곡자 제임스 클렘(James Bowman Overton Clem, 1855~1927)은 1855년에, 감리교회의 토마스 바우만(Thomas Bowman) 감독의 조카인 윌리엄 클렘(William D. T. Clem)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4촌 버지니아 클렘(Virginia Clem)은 유명한 시인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아내다. 그는 거의 일생을 키서(Keyser)에서 보냈다.
가사와 곡이 함께 실린 찬송은《엡워스 찬송가》'The Epworth Hymnal, 1885'로서 255장에 처음으로 실렸다. 후에 조지 엘더킨(George D. Elderkin)이 편집하여 매카비출판사(McCabe & Co.)에서 발행한「가장 좋은 밀」'The Finest of the Wheat: Hymns New and Old, 1890' 46장에도 Ab장조로 실려 있다. 《신증 복음가, 1919》에는 G장조 3/4 박자로 처음 소개되어 계속 그렇게 표기되었었는데, 《통일 찬송가, 1967》편찬 때, 당시 음악 위원장이었던 나운영 장로에게 내가 제안하여 6/8 박자로 바꾸었다.
논밭에 오곡 백과
(M. Claudius 작사 ․ J. Steurlein 작곡)
《통일 찬송가, 1983》309장 : 《21세기 찬송가, 2007》590장
이 독일 찬송인 이 찬송을 우리 찬송가에는 영국인 번역자 이름(J. S. B. Monsell)을 작사자로 실렸다. 1962년, 일본홀리네스교단(日本ホ-リネス敎團) 공식찬송가《聖歌, 1958》326장에서 번역하여《새찬송가, 1962》574장에 처음 소개하면서, 일본인들의 오류를 그대로 이어온 것이다.
이 찬송은 독일인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Mathias Claudius, 1740-1815)가 독일어로 작사한 찬송인데 아일랜드 런던데리 출신의 영국교회 목사 존 몬셀(John Samuel Bewley Monsell, 1811~1875)이 영역하여 그가 낸 찬송가「사랑과 찬양의 찬송」'Hymns of Love and Praise, 1866'(8/31 미국에 주문, 10일정도면 도착, 그 때까지 OK 안 놓으면 실린 장수 알려 주리다.)에 처음 실렸다.
작사자 클라우디우스
이어서 미국《감리교 찬송가》'The Hymnal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with tunes. 1878' 1085장에 실렸는데, 클라우디우스 작사로 되어 있고, 사용 곡조는「사도 야고보」'St. JAMES' 라는 곡조로서 우리 찬송가에는 전혀 없는 곡조다.
여기 이 곡조는 요한네스 슈토일라인(Johannes Steurlein, 1546~1613)이 1575년에 작곡한 세속적인 노래 'Mit Liebbin ich unfangen' 의 곡조로 처음 발표하였다. 그러나 1581년, 뉘른베르크에서 출판된 독일 찬송가《다윗의 수금에 맞춘 찬송》'Davids Himlische Harffen' 에서 마틴 뵘(Martin Böhm, 1557~1622)이 작사한 가사 'Wie Lieblich Ist Der Maien' 에 이 곡조를 입힘으로써 세속곡조가 거룩한 찬송 곡조가 된 것이다. 곡조는 옷이요 가사가 주인이다. 속된 옷도 왕자가 입으면 왕자의 옷이 되는 것이다. 나 같은 죄인이 그리스도를 옷 입으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작사자 클라우디우스는, 독일 루터교회 초대 목사의 아들로 라인펠트(Reinfelt)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았다. 1759년에 예나대학(Jena University) 신학부에 입학하였으나 몸이 허약하여 법학과 언어학을 전공하였다.
1768년 코펜하겐으로 가서 함부르크뉴스에이전시(Hamburg News Agency)에서 일하였다. 함부르크 근처 반즈벡(Wandsbeck)으로 간 그는 1771년 반즈벡케르보터(Wandsbecker Bote)지의 문예부 편집자가 되어, 여기 저기 글을 써서 유명해졌다. 1777년, 하쎈다마스타트 신문(Hessen-Darmstadt newspaper) 편집인이 되었다. 더 자세한 것은 다음 장 해설을 보라.
영역자 존 몬셀(John Samuel Bewley Monsell, 1811~1875) 목사는 아일랜드 런던데리의 부주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대학을 졸업하고, 1834년에 목사가 되었다. 코노르(Connor), 로만(Roaman) 등의 교구를 거쳐 영국으로 건너가, 에그햄(Egham), 슈리(Surrey), 성니콜라스(St. Nicholas), 길드포드(Guildford) 교구목사가 되어 1875년까지 32년 동안 목회하였다. 그는 교회보수공사를 살펴보다가 떨어진 돌에 맞아 순직하였다.
영역자 몬셀 목사
작곡자 요한네스 슈토일라인(Johannes Steurlein, 1546~1613)은 1546년 독일의 수말칼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카스파 슈토일라인(Caspar Steurlein)은 슈말칼덴(Schmalkalden)의 루터교 최초 목사였다. 법학을 전공한 그는 1850년경, 슈말칼덴과 마이닝겐(Meiningen) 중간에 있는 바숭겐(Wasungen) 교구 서기가 되었다. 1859년에는 마이닝겐의 대법관이 되었고, 1604년경에는 마이닝겐의 시장이 되었다. 법관으로 일하면서 많은 시를 쓴 그에게 루돌프 황제는 (영국의 계관시인과 같이)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저 밭에 농부 나가
(M. Claudius 개작 ․ J. A. P. Schulz 작곡)
《통일 찬송가, 1983》310장 : 《21세기 찬송가, 2007》591장
독일의 추수감사절 찬송이다. 이 찬송은 위에서 설명한 독일인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Matthias Claudius, 1740~1815)가 1782년 11월에 출판한 그의 장시집「바울 어드만의 축제」'Paul Erdmann's Fest' 에 실려 있는 농부들의 노래 'Wir pflugen und wir streuen' 이다. 클라우디우스는 시골 농부들이 부르는 노래를 적어 자기 시집에 넣었던 것이다.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한 사람은 제인 캠벨(Jane M. Campbell, 1817~1878)로서 1861년에 번역했는데, 찰스 비어(Charles S. Bere)가 출판한《노래의 꽃다발》'A Garland of Songs, 1862' 에 처음 실렸다.
《고대와 현대 찬송가》'Hymns Ancient & Modern, 1861' 383장
여기 사용된 곡조는 요한 슐츠(Johann Abraham Peter Schulz, 1747~1800) 작곡이다. 호펜스테트(A. L. Hoppenstedt)가 편집하여 1800년에 출판한 'Lieder fur Volksschulen mit Musik' 에 처음 나타났는데, 처음에는 익명으로 실렸다. 곡명「우리 쟁기」'WIR PFLÜGEN' 는 가사 첫머리 'Wir pflügen und wir streuen, Den Samen auf das Land,' 에서 따낸 것이다.
작사자 클라우디우스(Matthias Claudius, 1740~1815)는 독일 남(南) 홀슈타인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나대학에서 신학과 법학을 공부한 후 한때 함부르크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하였다. 생애의 대부분을 함부르크 근교의 시골마을 반츠베커(Wandsbecker)에서 지내면서, 1771~1775년 종합잡지《반츠베커의 사자(使者)》'Der Wandsbecker Bote' 를 발행, 그 잡지에 'Asmus' 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시문(詩文)을 모아서 'Asmus omnia sua secum portans oder Sämtliche Werke des Wandsbecker Boten' (전2권, 1775)을 출판, 후에 다시 6권을 추가하였다(1812). 건강한 그리스도교적 심정, 소박하고 청순한 정서, 자연스럽고 천진난만한 유머 등이 그의 시의 기반이다. 지금도 애송되는 것이 많다. 특히「자장가」'Der Tod' 와「죽음과 소녀」'das Mädchen' 는 슈베르트의 작곡으로 유명해졌다.
작곡자 슐츠
1786년 그는 베를린-프랑스 극장의 음악감독이 되었다. 1786년에는 라인스부르크교향악단의 악장이 되었다. 2년 후에는 코펜하겐교향악단의 악장이 되어 18년 동안 있었는데, 건강이 나빠져서 사임하고 코펜하겐 음악박물관 자료정리를 하였다.
이 가사에 이 곡조를 붙인 찬송은 영국의《고대와 현대 찬송가》'Hymns Ancient & Modern, 1861'으로서 383장에 처음 실려 있다. (악보 참조).
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
(임옥인 작사 ․ 박재훈 작곡)
《통일 찬송가, 1983》311장 :《21세기 찬송가, 2007》592장
이 찬송은 한국인이 작사-작곡한 추수 감사절 찬송이다.《개편 찬송가, 1967》538장에 처음 채택되었다. 작사자는 여류 소설가로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인(林玉仁, 1915~1995) 임옥인 권사가 하였고, 작곡은 찬송가 개편 당시 찬송가위원회의 간사로 있던 박재훈(朴在勳) 목사가 하였다. 박재훈 목사가 쓴 작곡 동기와 작사자 해설을「내 마음 작은 갈릴리」119쪽 이하에서 띄어쓰기까지 그대로 옮겨 적는다.
한국 문단에 이름 있는 여성 작가로서 신앙인으로서 굳게 서신 찬송가 작가 임옥인 여사는, 1915년 함북 길주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함흥 영생여고를 나왔고, 곧 이어 일본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 문과를 졸업했다(1939). 해방 후 서울에 온 뒤로는 건국대학교 가정대학장, YWCA 회장, 이사, 한국여류문학인협회장, 크리스천 문학가 협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왕십리교회(예장 합동) 권사로 섬겼다. 자유문학상, 예술원상 등을 수상했으며, 작품으로는 ‘후처기(1957)’, ‘문학과 생활의 탐구(1966)’, ‘지하수’ 등이 있다.
작사자 임옥인 권사
작곡자 박재훈 목사
감사절 찬송
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
골마다 흘러간다 맑은 물줄기
황금빛 논과밭에 풍년이 왔다
드맑은 하늘가에 노래 파진다 _ 1절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한국의 산야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농장이요, 또 이 땅은 기름진 축복의 땅이다. 가을이면 농부들의 풍년가가 온 동리에서 울려 나오며 흥겨운 풍장소리가 흘러 넘치는 풍경이 눈앞에 환히 펼쳐진다. 그것만이 이 노래의 끝은 아니다. 후렴에 이 모든 산천을 지으시고 거기서 열심히 땀흘리며 일하는 백성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찬송이 계속된다. 끝없이 가을 하늘에 메아리쳐 나간다.
눈이 닿는 우주공간에 손이 닿는 구석구석에
우리 주님 주신 열매 우리 주님 주신 알곡
감사하자 찬송하자 감사하자 찬송하자 _ 후렴
개편찬송가가 나온 뒤(1967) 임 여사님을 만났을 때 그분은 평생에 찬송가를 몇 장 더 쓰시겠다고 말씀하셨으나 그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여 못내 섭섭한 마음이다. (찬송가 작사자나 작곡자 옆에 1967이라고 기록된 것은 모두 개편찬송가를 만들 때 작품화된 찬송가들이다).
묘한 세상 주시고
(F. S. Pierpont 작사 ․ C. Kocher 작곡)
《통일 찬송가, 1983》312장 : 《21세기 찬송가, 2007》593장
《신정 찬송가, 1931》20장에 처음 번역 채택한 찬송이다. 80년 가까이「묘한 세상 주시고 아름다운 하늘과」라는 첫 구절로 늘 불러 왔는데, 이번에 어구 순서를 바꿔「아름다운 하늘과 묘한 세상 주시고」로 고쳤다.
이 감사 찬송은 폴리엇 피어포인트(Folliot Sandford Pierpoint, 1835~1917)가 작사하여, 올비 쉬플리(Orby Shipley)가 출판한《성찬식 찬송가》'Lyra Eucharistica, 1864' 제2판에 처음 실렸다.
여기 사용된 곡명「딕스」'DIX' 는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찬송가《고대와 현대 찬송가》'Hymns Ancient and Modern, 1861' 편집 때, 윌리엄 딕스(William Chatterton Dix, 1837~1898)가 작사한 'As with Gladness Men of Old' (합동 108장․구주 탄생하실 때)에 윌리엄 몽크(William Henry Monk, 1823~1889)의 편곡을 곡조로 쓰면서, 작사자의 이름을 따서 곡명으로 정하여 79장에 실었던 것이다.
이 곡조는 콘라드 쾨헬(Conrad Köcher, 1786~1872)이 1838년에 작곡한 곡조다.
작곡자 쾨헬
작사자 피어포인트(Folliot Sandford Pierpoint, 1835~1917)는 1835년 영국 바스의 스파빌라(Spa Villa, Bath)에서 태어났다. 1857년에 케임브리지에 있는 퀸스칼리지를 졸업하고 서머셋셔대학에서 고전문학 교수로 있었다. 이어서 배비컴대학(Babbicombe), 디번셔대학(Devonshire) 외에 여러 대학의 교수로 있었다.
작곡자 콘라드 쾨헬(Conrad Köcher, 1786~1872)은 1786년, 독일 뷔템베르크의 디칭겐(Dietzingen, Württemberg)에서 태어났다. 1800년대 초에 러시아 성페테스부르크(St. Petersburg, Russia)로 가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하였다. 1819년, 이태리 로마로 가서 더 공부하고 1820년에 독일로 돌아왔다. 1821년 그는 슈트트가르트(Stuttgart)에 교회음악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며 교회에 나가 오르간을 연주하였다.
《고대와 현대 찬송가》'Hymns Ancient and Modern, 1861' 79장, <구주 탄생하실 때> 곡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