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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상미를 보여주는 영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뭔가 적막한 느낌이 있는. 정적이 흐르는 이런 느낌 무척 좋아라 한다.
그런 적막감이 흐를 때는 글쎄다 뭐라고 해야할까. 영상이 동공에 집중된다고나 할까?
뭐 여튼 그런느낌이 좋았던 영화였다.
그런데.이 영화 제목이 그래서 그런지 '우울증'과 연관을 주로 시키는거 같던데.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건 완전 에러다.
왜 에러냐고?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요즘은 워낙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는 점을 우선 체크해야될 것 같다. 툭하면 우울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신경증'적 우울과 '정신증'적 우울을 좀 구분해야되지 싶다.
신경증적 우울은 좌절에 의해서 발생하는 우울이다. 이것은 현실문제와도 밀접하고 환경을 변화시키면 증상도 호전이 되는 우울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스트레스로 인해서 생겼으니까. 그리고 좌절로 인한 이 우울은 영화속의 '저스틴'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엄밀히 따지자면 저시틴은 우울보다 다른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클레어가 보여준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정신증'적 우울이다. 이 '우울'이 멜랑꼴리라고 불릴수 있는 '우울'이다.
여기서 우리는 프로이트가 말한 '우울'의 공식을 한번 상기해보자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는데 그것이 무엇인줄 모른다.'
라는 구절. 대체 무엇을 잃어버렸나?
*그리고 한가지 더 하자면 신경증 우울에서는 현실의 성-사춘기 이후의 성욕-과 연관이 되어 있겠지만 정신증 우울에서는 유아성-유아성욕이라고 해서 오해가 무척 많았는데 이건 섹스와는 전혀 무관하고 그냥 어떻게하면 엄마를 내 옆에 둘 수 있는지에 대한 어린아이가 만들어놓은 어떤 '논리'라고 해야한다.
그걸 어떻게 찾을 수가 없네. 젠장,
우선은 저스틴. - 개인적인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난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사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
영화 첫장면에서 저스틴은 위와같이 묘사된다. 진흙속 (더 정확하게는 흑담즙이라고 해야겠다. 이것이 멜랑꼴리라는 말의 어원이다. 그리고 히포크라테스는 이 것을 우울질로 묘사한 결과로 나타난다.) 걷는 것 처럼 걸음이 자꾸 방해를 받는다. (개인적인 견해로 흔히 '반복강박'으로 번역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은 '반복강제'가 더 옳은 내용이라고 한다.
여기서의 '강제'라는게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서 자꾸 뭔가가 남아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반복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위의 사진은 반복강제에 대해서 적절한 표현이지 않을까?)
언니인 클레어는 동생을 위해서 값비싼 비용을 들여 성에서 결혼식 이벤트를 해준다. 비용도 어마어마하지만 뭐 과정은 그렇다 치고 일단 결혼식은 망쳐진다.
도무지 자신의 결혼식에서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일들을 저스틴은 실행하는데, 어떤 식으로 행동하게 되는지 영화 본 사람들은 알 것 같다.
여튼간에 그렇게 결혼식이 망쳐지는데...이걸 언니인 클레어가 받아들이는 방식은 '아프니까'이다.
그녀의 희안한 기행에 사람들은 모두 견디지를 못한다. 심지어 새신랑마저도 떠나버린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서라도 저스틴과 엄마의 기묘한 동일시 관계는 한번 따져볼 만한 내용이다.
저스틴도 제멋대로에 저스틴의 엄마 역시도 통제할 수 없는 '제멋대로'이다.
상황에 따라 파악해볼 때, 도무지 딸의 결혼을 축하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역시도 마찬가지이고,
도무지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영화 보는 입장에서도 받아들 일 수가 없을 것 같다.
근데. 이 원인이 '우울증'이라고 말하는건 제목에 의거한 '단편적'인 해석일 뿐이라고 여겨진다.
사실 영화평들을 둘러봤을 때, 멜랑꼴리라는 단어에서 말하는 내용들은 죄다 '우울증'이라는 말 밖에 없었기 때문에
1부 저스틴의 행동의 정확한 근거를 위해서는 2부 클레어에서의 저스틴의 행동을 통해서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2부에서 저스틴은 혼자서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갑자기 '기행'들을 보여주게 되기도 하는데 자세한 것은 설명을 보류.
여튼간에 일상생활을 못하게 만드는 '증상'은 무엇이던가? 이게 우리가 말하는 '분열'의 증상으로 진행 된 것이고 그 후에 저스틴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들. 예로 들자면 '난 이치를 알고 있으니까' 라는 등의 행동을 보여주는 것에서는 편집증적 시나리오의 구성을 엿볼 수 있다.
멜랑꼴리라고 불리는 증상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행성 멜랑꼴리아의 이름이 여기에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멜랑꼴리아와 지구와의 충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 정도의 거대한 행성이 지구에 떨어진다는 것은, 그냥 '멸망'이다.
(행성간 충돌로 인한 그 파괴력으로 지구가 궤도를 이탈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건 과잉 해석일까?)
저 장면 자체의 의미가 무엇인가? 과연 정말로 다가오는 소행성에 의해서 '멸망'의 시작을 알리는 일인가?
멜랑꼴리아가 다가오는 것 덕분에 클레어의 남편은 자살한다.
그리고 어린조카는 두려워하고 클레어는 불안에 떤다.
그러나 그 와 중에 중심이 되는 인물은 누구인가? 저스틴이다.
위의 상황에서 가장 담담하고 종말을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볼 것은 이 상황에서 멜랑꼴리아가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로 확인되는 것은 조카가 만든 발명품이었고 아버지의 자살도 그와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멜랑꼴리아가 다가오고 있다는 구체적인 자료는 무엇인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라고 생각이 되고, 여기에서 객관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과연 행성의 이동경로가 있는데 그것이 지구의 중력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것이냐? 라는 점.
이점은 한번 생각해볼 만할 것 같지 않은가?
멜랑꼴리아라는 행성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라고 하겠지만 과연 다시 돌아와서 지구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 '맞는가?'라는 점이다.
만약에 다시 돌아와서 '부딪힌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영화해석에 두가지 선택지가 생긴다.
1. 진짜 물리적인 현상으로서의 지구의 멸망
2. 저스틴의 환상에서 일어난 사건
1번을 영화결과로 본다면 더는 할 말은 없을것 같다만 2번이라면?
저스틴을 두고 '조울증'으로 해석을 했었는데, 이 조울증 상태에서는 '편집증' 혹은 '분열증'이 나타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임상에서 '편집증'적인 모습은 자주 관찰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
이 영화의 1부 저스틴에서 영화해석방식과 2부 클레어에서의 해석방식은 차이가 나야 할 것 같다. 1부에서는 타인들이 등장하지만 2부에서는 저스틴과 클레어의 가족들만이 등장을 한다.
이것은 두개다 같은 방식으로 해석을 하게 되면 해석상의 오차때문에 영화에 대해서 일관된 해석을 내리게 하기는 곤란하지 않을까?
1부는 평범한 시선(클레어의 시각)이고 2부는 저스틴의 시선으로 해석을 해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행성충돌을 저스틴의 '환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세계멸망 같은건 편집증환자들의 시나리오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이라고 할수 있지 않은가? 물론 정신의학이 아닌 정신분석의 관점에서다.
비슷한 예로 들자면 블랙스완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죽어가면서 '이제 완벽해졌다.'라고 하는 바로 그 장면과 죽음앞에서 오히려 당당한 저스틴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장면에서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모르겠다.
난 그 두장면이 무척 닮아있다고 해석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 것이 원래 저스틴의 환상인데 어떻게 클레어가족에게 보이게 되었을까?
그들이 행성이 다가오는 '환영'을 보게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동일시, 투사, 전이'라는 개인 심리기제와 '집단충동, 전염, 피암시성'등의 집단 심리기제를 동원해서 설명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 가족집단으로 뭉쳐져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굳이 그럴필요는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단은 행성이 다가오는 것으로 믿어지는 바로 그 순간부터 개인적인 광기가 집단적인 광기로 전환이 된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물론 그 집단의 중심 역할은 '저스틴'이 되니까 말이다.
결국은 저스틴의 편집증적 시나리오를 연출한 것 아닐까?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를 재구축하는 것은 분명 편집증의 특징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저스틴이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