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동 통닭집
아파트와 좁은 골목이 뒤섞여 정연하지 못한 어수룩한 송강동이란 이웃동네. 나는 이 동네를 자주 간다. 계획화된 우리 동네는 걷는 사람도 보기 힘들고 올망졸망한 떡볶이나 오뎅, 만두집 통닭집 같은 옹색한 풍경을 볼 수가 없다.
땅값이 비싸 적은 돈 푼을 만지작거려선 이문이 남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 아낙네의 웅성거림, 아이들 칭얼거림이나 구부정한 노인들이 북적이는 흔한 풍경은 송강동에서야 제대로 마주한다. 나는 그러니까 사람구경에 덧붙여 재래시장도 껴 있는 비교적 싼 물가를 찾아 이곳에 오는 폭도 된다.
즐겨가는 통닭집 또한 이 동네에 있다. 친근한 냄새와 시시콜콜한 동네 풍경이 종전 살던 동네와 닮아 늘 하는 수작처럼 익숙해서 찾게도 된다. 길 편에는 통닭집이 무려 다섯이 넘고 피자집 또한 다섯은 족히 된다. 고만고만한 영세 상인들이 오토바이 두세대 놓고 동네를 누비며 먹고 산다.
그런 요즘 통닭집 부부는 풀이 많이 죽어 있다. 신세타령을 들어봤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처음 동네가 들어설 무렵엔 무척 신이 난 그들이었다. 개발지구라고 동네 땅 값이 오르자 통닭도 덩달아 잘 팔렸었다. 나도 그때쯤 그들을 처음 만났었다. 그의 아내는 잘 나가는 그때 점포를 팔았어야 한다고 남편을 늘 몰아 부친다.
그런 그들에게 암운이 드리운 것은 지금 동네 중간쯤에 큰 유통매장이 들어서고부터다. 어디고 요즘은 신시가지에는 노란색 칠한 눈길 끄는 큰 유통매장이 꼭 생겨난다. 온 동네사람들이 어느 참 그곳에 다 모였다. 실은 나 역시도 가끔 들르는 편리한 최신식의 장소다. 큰 매장만큼 통도 남다르다. 어느 날 통 큰 치킨이 나오더니 통 큰 피자가 등장했다.
10년 터득한 바싹 튀기는 기술이라고 아무리 외쳐본들 통 큰 가격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일본만 해도 큰 매장은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동네주변은 작은 슈퍼나 재래시장이 나름 먹고들 사는데 마냥 아쉬운 노릇이다. 다수의 자존과 자립 문제는 사회구조의 큰 취약성이 아닐 수 없다.
지난 한 해 아랍권민주화나 미국 월가의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 등 그러한 문제가 어느 때보다 뜨겁게 끓어올랐다.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노름 마냥 밑돈 두둑한 치들에겐 별 수가 없다. 돈은 손이 큰 한 곳에 몰려들기 마련이고 꼴등은커녕 2등이나 3등에게도 차지가 안 돌아간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현실, 1%의 특권층에 맞춰져 있는 정치·경제적 지배구조는 심한 우려를 낳는다. 오늘도 나는 곳을 찾았다. 통닭을 튀기던 아줌마가 갑자기 고개를 밖으로 내민다. 왜 그런지 나는 익히 잘 안다. 오토바이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그 소리는 폐색 짙은 여음이다.
그래봐야 고작 몇 마리 차이 일 것인데 경쟁이 아니라 장사를 그만 두어야 할 단정으로 지금은 받아들인다. 배달을 마친 그녀 남편이 들어왔다. 황금 시간 때 밀린 주문이 그를 늘 기다렸는데 요즘은 전혀 그러하지 않다. 그렇지만 세상구조가 그러한 것을 그 누구를 탓할 것인가. 이제는 큰 유통매장을 나무랄 수도 없다. FTA 무역협정통과는 동질의 보다 큰 현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유명 매장이 들어오면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쓰나미가 일어날지 모른다.
이제는 그들과 잘 싸워 달라 부탁을 해야 할 처지이다.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 싶은데 알고 보면 돈이면 다 되는 아주 단순 명료함이 있다. 예전엔 열심히만 하면 먹고는 살았는데 요즘은 그러하지 않다.
열심히 일하는 것과 돈을 버는 이치는 같지가 않다. 참다웠던 인류의 역사는 제각기 땅을 일구고 소출을 얻은 기쁨이 충만하던 성실한 시대가 아니었을까. 생긴 지 10년을 겨우 넘긴 송강 마을이 어느 새 구닥다리가 되어 버린 요즘. 밀려나는 세상풍경 속에 선 나 역시도 어쩔 수 없이 무참하게 헐벗다 이내 사라질 것이란 두려움을 같이 느낀다. 아니 이미 밀려나 허름한 동네 어귀에서 같이 맴돌고 있기도 하다. 결국 아날로그 타입 소박한 인심은 규격화 된 대형 포장지에 밀려 이제 모두 사라질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