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俗離山구간) 2011년 4월 16일~17일, 무박
구간;늘재(49도로,370m)-밤티재(997지도)-문장대(1,029m)-신선대(1,018m)-천황봉(1.057.7m,한남금북정맥 분기점)-피앗재-형제봉(809,3m)-갈령삼거리-갈령(49도로, 443m)
16.2km 10시간
집(마두역)에서 11시20분 출발 화서 휴게소 2시 45분 도착
3시 20분 25명의 대원이 출발 한다.
산행 시작점인 늘재에서 4시 5분시작 하는데
입구도 막혀있고 시그널도 모두 뜯어 내어 긴가민가 하며 찾아갔다.
밤티재엔 5시 20분 통과 하는데 양쪽 모두 개구멍 통과나 휀스망을 넘어 나오고 들어간다.
대간종주를 양성화 시켜 물자도 절약하고 외길등산로에 야간산행 막을수 있는 등산로 개방이 시급해 보이기도 한다.
단속과 야간산행으로 더 많은 산길과 자연훼손을 부추기는 결론이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식의 동물 이동톨로.
동물이 아닌 사람도 이동이 불가능한 허울좋은 구조물에 불과 예산만 낭비한 현장인 밤티재의 모습이다.(5시 20분 통과)
문장대로 가는 도중 멋져 보이는 선바위.(594봉)
문수봉 아래의 바위군.
최치원의 詩,
돌은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돌을 멀리하려 하고
산은 세속을 여의치 않는데
세속이 사람을 여의려 하는구나.
날이 밝아 다행이지 어두운 밤길 이었다면 정말 고생했을 암릉구간.
저런곳을 이리돌고 저리돌아 빠져 나오며 개구멍 통과에 릿지까지 하며
위험하고 스릴느낀 구간이었다.
커다란 바위벽에 자라고 자란 이끼류.
문장대가 가까워지자 날씨도 완전 밝아져 주변의 바위들이 시선을 압도하는 느낌이다.
이런 바위 사이를 지날때는 많은 협동이 요구되기도 한다.
탁자없는 쇼파만 덩그런히.......
드디어 문장대 아래까지 접근했다.
본래 이름은 雲藏臺였으나 세조임금이 신하와 더불어 책을 읽고 시를 나누었다 하여 지금의 문장대(文藏臺)가 되었다고 한다.
문장대에서 내려다본 헬기장이 바로 대간길이다.
문장대에서 내려오다 바라본 바위.
문장대에서 관음봉쪽으로 보이는 바위.
저
속리산 문장대.
출입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관음봉 가는길이다.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에 걸쳐있는 속리산은 인고의 세월을 딛고 지난달 24일 국립공원지정 40돌을 맞았다.
이는 국토 중심부에서 백두대간의 허리축을 담당하며 우리나라 대표 국립공원의 명성을 안고있기도 하며
년 140만명의 탐방객이 찾을 만큼 자연경관이 탁월하고 역사와 문화 자원이 풍부한 명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1964년 사적및 명승지 4호로 지정된뒤 1970년 3월 24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건설부 공고 제 28호)대한팔경중 하나이다.
대한 8경
제 1경 백두산천지
제 2경 금강산 일만이천봉
제 3경 부전고원(개마고원의 서부, 압록강 지류의 협곡)
제 4경 압록강(뗏목)
제 5경 평양 모란봉(을밀대)
제 6경 경주 석굴암 일출
제 7경 해운대 달맞이 길(해월정)
제 8경 한라산 정상
문장대 휴게소가 있던자리.
그 휴게소자리 옆 바위벽에 자라는 건강한 소나무,
문수봉과 청법대.
신선대 정상석은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곳에 있다.
속리산에서 유일한 이 휴게소는 법주사 소유라고 하며 임대하여 사용한다고 들었다.
경업대.
일찌기 신라때 의신조사가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와서 세웠다는 법주사를 비롯 ,
임경업 장군이 이곳에서 심신을 수련했다는 전설을 안고있는 곳이다.
입석대는 임 장군이 7년동안이나 수도끝에 세운것이라 한다.
입석대.
비로봉.
암봉사이 전망대.
상주시 화북면을 바라볼 수 있다.
조릿대 구간 왼쪽(동쪽)으로 보이는 바위군,
아래사진
천황봉이 눈앞에 우뚝하다.
형제 고릴라봉을 못 보고 지나쳐 6차 종주때 찍은 사진을 소개한다.
그때도 우중이라 사진이 이렇다.
조릿대구간에서 바라본 입석.
천황석문.
이곳 역시 넘어다 볼 만한 전망대이다.
천황봉 아래 헬기장에서 문장대쪽으로 바라본 바위群,
아래 상오리쪽 계곡과 도장산(827.9m)부근의 산줄기들.
새로 세운 정상석.(속리 11 삼각점이 옆에 있다,)
산 이름을 바꾸려면 천황이 들어가는 말 자체도 모두 바꾸어야할 것이다.
옛날 세워졌던 정상석이다,(대간종주 5차때)
속리산(俗離山)은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등 8봉과 입석대, 문장대. 신선대등 8대 9석문이 있다고 하는데 언제 다 찾아보나.
한남금북정맥 분기점도 막아 놓았다.
꼭 이래야만 할까!..........,
방치해버린 천황샘,
남쪽 구병산(876,6m)을 바라보며........
725봉에서 바라본 속리산 천황봉과 그 능선들,
산행을 할 때 가끔 보이는 긴급구조 위치번호판.
나 하고는 쓸데없는 알림판이라고 그냔 보아 넘기지 말고
지나칠 때 마다 위치번호는 알고 가는것이 만약에 대비 상대방에게 내 위치를 알릴경우 아주 효과적이다.
아깝게도 이 소나무는 죽어 있었다.
못 몇개 박았다고 그러진 않을텐데.....
형제봉 앞 할배바위.
청주 백두산장 산악회에서 2007년 10월 6일 세웠다.(1시 25분 도착 후미 기다리며 휴식)
지나온 산줄기들과 속리산 연봉.
형제봉에서의 우리부부,
갈령 삼거리를 지나 하산길에서 바라본 상주시 화북면과 농암면 일대.
멀리 청화산도 보인다(다음 종주할 구간)
(산행후기)
오늘로서 백두대간도 속리산구간을 통과하게 된다.
非山非野의 중화지구대를 지나 산세가 뛰어나고 암릉의 미를 마음껏 자랑하는 속리산구간을 야간산행으로 일부구간을 통과한다는 아쉬움에 사무치는 恨이 많긴 해도 어쩔 수 없는 法의 굴레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것이 백성이다.
오늘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4대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작은 힘이나마 국가에 충성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나이를 추월한 선두대열에 나서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내 나라 내 山野를 마음대로 갈수 없다는 게 안타갑기도 한 순간이다.
여태껏 있지도 들어 보지도 않았던 둘레 길은 지방마다 雨後竹筍격으로 새로 만든다고 야단 법석들인데 왜 태초부터 있던 백두대간 길은 부분적으로 막으며 통제를 하는가 말이다.
1~2m폭 물길 내는 식으로 조금만 양성화 시켜주면 위험한 야간산행도 안하게 될 것이고 이리저리 피해 다닌다며 없던 길 새로 나지도 않을 터인데........
왜, 하나를 지키려다 둘을 잃는 줄 모른단 말인가!
대간 길 고개마다 거금 들여 대형 돌비석은 세워 백두대간은 대대적으로 알리면서 중간 중간 길목은 막고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 행정에 분통만 터지려한다.
오늘 이구간은 언제나 파수병이 있는 관계로 새벽을 이용 역주행으로 위수지역을 벗어날 계획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야간산행을 시도하는 것이다.
당초 계획은 갈령에서 시작하여 충분한 시간과 함께 자연을 만끽하며 바위전시장도 마음껏 즐기며 자연조형물을 감상하면서 쉬엄쉬엄 가련 만은 그럴 처지가 못 되어 거꾸로 어둠을 이용해 도둑산행을 하는 것이 눈뜬장님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새벽 4시가 다 되어갈 무렵 늘재를 출발한다.
화북면 쪽에서 불어오는 새벽바람이 이젠 많이도 시원해졌다.
무섭고 겁나기만 했던 새벽바람도 이제는 살갑게 느껴지는 것은 완연한 봄이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일 것이다.
629봉 바윗길을 돌아 밤티재에 내려서니 1시간 15분 걸렸다.
주저할 것 없이 입산통제를 알리는 현수막을 비집고 594봉을 향해 오른다,
무덤을(홍천 용씨, 移葬을 해갔다) 지나 약간 평탄한길을 가더니 곧 암릉길이 경고를 한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밀어주고 이끌어주며 조심조심 오른다.
밤티재를 출발한지 두시간 반이나 걸려 헬기장을 지나 문장대에 도착한다.
이제는 완전히 밝아져 랜턴도 집어넣고 몸 매무새도 고치며 위수지역을 무사히 통과한 해방감에 크게 고함이라도 질러보고 싶은 충동이다.
이제는 누구의 눈치도 간섭도 받을 필요 없이 좌우 절경을 감상하고는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천황봉까지 다시 두어 시간 여유 있게 운행한다,
산죽 속 평평한 바위에서 좀 늦은 아침식사를 했다.
산죽 밭 사이를 기분 좋게 이동할 때 어깨에 내려앉은 따뜻한 봄 햇살이 많이도 가볍게 느껴진다.
천황봉 쯤에서 아침식사를 계획 했으나 아무래도 너무 늦을것 같아 느긋하게 후미를 기다렸는데 오질 않아 또 이동 했다.
드디어 속리산의 주봉인 천황봉이다.(10시 5분)
옛날에 있었던 천황봉 정상석은 일본의 천황을 상징한다하여 어느 속 좁은 애국자가 뽑아버려 한동안 정상석이 없었는데 다시 세운 정상석은 천왕봉으로 고쳐 세워져 있었다.
일본, 너무 의식하지 말자.
대등하게 생각하며 일본을 염두에 둔 생활 하지 않았으면 한다.
조금만 느낌이 이상해도 일제잔재하면서 미리부터 끌리는 자세를 취하는 것 자체가 일본을 치켜세우는 꼴이니 좀 태연하게 대응 했으면 하는 생각 간절하다.
정 그렇다면 일본사람이 우리나라에 만든 모든 토목시설도 전부 헐어 버려야 하며 심지어는 측량 기준점인 삼각점 같은 것도 모두 뽑아 버려야 할 것인가 말이다.
살아가면서 좀 불편하면 하나하나 우리 것으로 다시 고쳐 가면 될 걸 가지고 너무 요란을 피우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천황봉 조금 아래 한남금북정맥이 분기하는 분기점을 한번 둘러보고는 산죽 길을 내려간다.
이 길마져도 막아둔 모습에 쓴 맛을 다시며 천황샘을 찾았다.
완전 버려져 있었으며 근래엔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내가 올때마다 치워놓곤 했었는데 이번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그냥 왔다.
한남금북정맥이 끝나는 칠장산에서는 다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나눠지며 산줄기는 서해의 안흥진과 문수산이 있는 강화도 앞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속리산은 이렇듯 한반도 깊숙히 자리하며 조선의 3대 名水인 삼파수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달천수(충주 달천강물), 우통수,(오대산 서대암) 삼파수(속리산 북천암)
삼파수란 천황봉에 떨어진 빗물이 동으로 흐르면 낙동강물이 되고
남으로 가면 금강으로 들어가고
서로는 남한강물을 말하는 것이다.
숲에서 느끼는 오르가즘은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마음가짐이 정직하고 순수한 자 만이 느낄 수 있는 참 산꾼이 되어야만 비로소 그 경지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천황봉에서 형제봉까지는 정말 지루했다.(1시 25분)
바윗길을 갈 때는 민첩하게 곡예사처럼 움직이지만 대신 시간은 좀 많이 걸린다.
드디어 형제봉을 지나 갈령 삼거리에 도착하니 다리에 힘도 풀리고 배도 고파 오기 시작한다.
다음 구간은 청화산 구간이다.
오늘도 제법 땀께나 흘렸는데 다음 구간에선 차츰 더위도 느껴지겠지만 무사히 마친 오늘 하루도 자축하는 의미로 모든 분께 행운을 빌어본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