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라면 습한 날씨, 안개, 추위 등으로 인해, 헬멧 내에 김이 서리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헬멧을 통해 시야를 확보하는 라이더들에게 실드의 김서림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골칫거리다. 물론 실드를 살짝 들어 올리는 임시방편도 있지만, 추운 겨울에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실드의 김서림 앞에서는 이 역시 무용지물이다.
부동의 김서림 방지 대책, 핀록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PINLOCK(이하, 핀록)은 모터사이클 헬멧 전용 안티포그(Anti-fog) 렌즈를 개발하는 회사이다. 여기서 말하는 안티 포그란, 공기 중의 수분이 광화화적 공정을 거친 필름의 표면에 초미세 수막을 형성해 김서림을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안티포그 시스템이 적용된 핀록렌즈
이미 몇몇 헬멧 브랜드들은 핀록과 제휴를 맺고, 안티포크 실드를 기본 장착할 정도로 제품에 대한 인지도는 상승 중이다. 전 세계 33개 헬멧 브랜드의 실드에 적용할 수 있는 안티포그 렌즈들을 핀록 공식 홈페이지(www.pinlock.nl)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안티포그 실드는 비싼 원자제의 영향으로 헬멧의 원가 상승요인으로 꼽혀 브랜드마다 플래그십 모델에만 적용될 뿐, 전 라인업에 장착되지는 않고 있다. 바꿔 말하면 아직까지 안티포그 시스템은 일부 라이더들만의 혜택이라는 것이다.
▲PINLOCK FINE VISION
핀록에서 출시됐던 기존의 안티포그 렌즈는 몇몇 헬멧 브랜드들의 일부 실드에만 적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롭게 출시된 FINE VISION(이하, 파인비전) 접착식 렌즈는 핀록레디에 장착하는 타입이 아닌, 거의 모든(핀록레디가 포함되지 않은) 실드에 부착이 가능한 범용 안티포그 렌즈이다.
Clear(이하, 클리어), Dark tinted(이하, 다크 틴티드), Photochromatic(이하, 포토크로매틱) 등 세 가지 버전으로 출시된 파인비전은 각각의 사용범위와 기능이 다르다. 클리어 타입은 핀록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김서림 방지와 자외선 차단을 할 수 있는 베이스 모델이다. 다크 틴티드 타입은 블랙컬러로 코팅된 렌즈가 100% 자외선 차단은 물론, 햇빛으로 인한 눈부심을 방지해주는 역할까지 갖췄다.
포토크로매틱 타입은 빛의 양에 비례해 자동으로 색상이 변하는 렌즈로 다른 렌즈보다 자외선과 가시광선의 강약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 중 네베상사를 통해 국내에 출시된 파인비전은 유니버셜(범용) 버전으로 클리어와 포토크로매틱으로 각각 색상과 사이즈가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포토크로매틱 타입은 두께 0.75mm로 클리어 타입에 비해 0.575mm 두껍다
클리어 타입은 가로 26cm x 세로 9cm의 사이즈, 포토크로매틱는 가로 27.5cm x 세로 10cm로, 클리어 렌즈에 비해 1cm 이상의 차이가 난다. 두 제품 모두 광학 폴리카보네이트라는 연질의 재질로 만들어져, 유연성은 물론 굴절률과 자외선 차단율이 높다. 또한 클리어 타입의 두께가 0.175mm인 것에 비해, 포토크로매틱은 0.75mm로 약 0.575mm의 차이가 난다.
그 이유는 기존의 폴리카보네이트에 빛이 비추면 색이 가역적으로 변하는 화학물질의 첨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더구나 렌즈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변색되는 농도가 증가하고, 색이 변화하는 반응속도가 빠르다. 충격에 대한 강도도 강해져 긁힘이나 열에 의한 내구성이 더욱 보완되었다. 그런 이유로 포토크로매틱 렌즈는 클리어 렌즈보다 상대적으로 열 성형 가공공정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생산 단가도 비싼 단점이 있다.
▲포토크로매틱의 녹색은 시각적으로 편한 색상이다
2초 후, 달라진 시력인간의 망막에는 ‘간상체’와 ‘원추형 세포’의 두 가지 세포가 있다. 간상체는 녹색 색조만 판별하고 원추형 세포는 적, 녹, 파랑을 인식하도록 되어 있다. 그중 녹색을 인식하는 원추형 세포가 정중앙에 위치해 있어, 의학적으로도 녹색이 가장 편한 색상이다. 육안으로 살펴본 포토크로매틱 필름의 색상도 녹색을 띄고 있다. 헬멧의 투명실드에 포토크로매틱을 부착했을 때,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뿐더러 시각적인 피로가 적도록 채택한 색상이다.
▲핀록레디가 장착된 실드
핀록의 파인비전 렌즈는 부착이 편리한 장점이 있다. 양 끝에 홈이 파여 있어 핀록레디(필름고정 핀)가 장착된 실드라면 부착 부위에 상관없이 필름을 붙이면 그만이다. 다만 일반실드는 핀록 레디가 없어, 위치를 정확히 측정해 부착해야하는 수고가 따른다.
▲장착 설명서는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이해하기 쉽다
▲가시광선의 광양에 따라 포토크로매틱의 색상도 달라진다
포토크로매틱 필름을 장착하고 햇빛이 비추는 외부로 나가자, 녹색이었던 필름의 색상이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한다. 스톱워치로 확인한 결과 빛을 받은 지, 약 2초 후 색상이 파란색으로 변한다. 자외선과 가시광선의 양에 따라 색의 농도가 결정되는 포토크로매틱 필름의 특성상, 한낮의 강렬한 햇빛으로 인해 실드 바깥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게 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때 기온은 영하 10도. 헬멧 내부의 입김으로 필름이 부착된 부위를 제외한 주변부만 김이 서릴 뿐, 포토크로매틱 필름에는 습기를 찾아 볼 수 없다. 가시광선으로 인한 눈부심을 100% 차단할 뿐 아니라, 순간적으로 변색된 필름을 통해 전방을 주시하고 있으면 눈이 시원해지는 효과까지 느껴진다.
▲파란색으로 짙어질수록 사물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렇다고 전방에 있는 사물의 색상이나 형태가 왜곡되는 현상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일반 실드를 장착했을 때 보다 주변사물이 선명하게 구분된다. 그 이유는 바로 파란색으로 변할수록 콘트라스트 효과를 높여, 생생한 시야를 제공하는 포토크로매틱 필름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전한 주행을 위해서라면빛이 없는 곳으로 이동하자 짙은 파란색으로 변했던 포토크로매틱 필름이 본래의 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빛을 받았을 때의 반응속도보다 더디지만 대략 4초에서 6초 정도 사이에 완전히 녹색으로 돌아온다. 차가운 외부 기온과 달리 빛이 들지 않는 상온의 실내에서도 역시, 김서림 방지기능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 다시 빛에 노출돼도 금세 푸르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위 동영상은 카메라 플래시에 반응하는 포토크로매틱의 영상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포토크로매틱은 약간의 가시광선에도 반응해, 야간 주행에 마주치는 헤드라이트 불빛의 투과율도 현저히 낮춰준다. 즉, 파인비전 포토크로매틱 렌즈는 주야간을 비롯해, 사계절 동안 다양한 날씨의 변화로부터 라이더의 시야를 확보해낸다.
아직까지 김서림 때문에 고생하는 라이더라면 파인비전 유니버셜 포토크로매틱 렌즈를 선택해 보는 것은 어떨까? 벽안(碧眼)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