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민일보 2024년 5월 17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밥 한 끼 같이
하종오
부모 삼년상을 다 치르고 난 다음해부터
형제들 소식이 멀다가
한 사람이 병 깊다는 전갈이 왔다
더운 여름날 내내 저마다 땡볕을 피해
남의 원두막 지키기도 하고
강에서 멱을 감기도 하고
소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 자기도 하다가
해질 무렵에 슬금슬금 두레밥상에 모여들던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왔는지
저마다 처자식만 챙기다가
형제들 중 먼저 떠나려는 분 있어
밥 한 끼 같이 먹었다
왔던 순서대로 가는 순서가 정해지지 않는다고 위로하고
잘살고 못살고는 지 할 탓 아니라고 자위하고
핏줄에 갈래가 많아서 엉뚱한 후손이 나온다고 염려하고
이미 할아버지가 된 형들은 손자들 버릇을 자랑하고
아직 아버지의 동생들은 자녀들 나이를 걱정했다
식사를 끝내고도 일어서지 않는 까닭을
형제들은 알고 있지만
냉방 잘된 뷔페에서 너나들이가 끝없었다
누구는 부모님 덕분에 장가 잘 들었다고
누구는 부모님 성화에 높은 공부했다고
누구는 부모님 봉양하느라 고생했다고
♦ ㅡㅡㅡㅡㅡ 부모 삼년상을 다 치르고 난 다음해부터 차츰 멀어진 형제들이다, 제각기 사는 일에 바빠서 피를 나눈 형제도 친척도 일이 있어야만 밥 한 끼 먹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아침저녁으로 옹기종기 둘러앉던 두레밥상은 이제 기억에만 남아있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지금은 가고 싶은 곳 어디에든 다 갈 수 있는 세상이다. 해외여행도 소풍처럼 가벼워진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늘 결핍은 넘쳐난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다시 일인가족시대, 이제는 가족해체설까지 나온다.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을까? 무엇이 이렇게 만든 것일까?
형제들 중 먼저 떠나려는 분이 있어 모이긴 했지만, 모처럼 같이 먹는 밥 한 끼...그나마 냉방 잘된 뷔페에서 서로 너니 나니 하면서 허물없이 먹는 밥 한 끼에 감사가 그득하다. 형제들이 식사를 끝내고도 쉽게 일어서지 않는 까닭을 서로가 알고 있는 것이다.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