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바다출판사, 2013.
일본 문단의 기인으로 알려진 마루야마 겐지(1945~ ). 그는 1943년 나가노 현 이야마 시에서 태어났다. 저자는 도쿄의 한 무역회사에 근무하면서 <여름의 흐름>으로 1966년 《문학계》신인상을 받았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쓴 이 작품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 1968년 소설 <정오이다>로 귀향한 청년의 고독을 그린 후, 마루야마 겐지는 나가노 현 아즈미노로 이주해 문단과 선을 긋고, 다른 문학상을 거부하며 50년 가까이 집필 활동에만 매진하고 있다. 정의와 괴변 사이,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오가며 자신의 소신을 가감 없이 문장으로 펼치는 그의 작품은, 때로는 소설로, 때로는 에세이로 옷을 바꿔 입으며 지칠 줄 모르는 창작 에너지를 보여준다. 소설 《파랑새의 밤》 《달에 울다》 《물의 가족》 등을 썼고, 산문집으로는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길들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개와 웃다》 《세계폭주》 《산 자에게》 등이 있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따끔하고 독한 충고로 가득한 책이다. 1967년에 최연소로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받은 그가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발표한 책은 총 10장으로 되어 있다. 1장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다’부터 10장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까지 소제목이다.
저자는 젊은층에게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이는 먹을 대로 먹었는데 아직도 부모에게 부담만 주면서 게으르고 뻔뻔하게 살아도 괜찮은가.”(p.40)라는 질문을 하면서 부모에게 벗어나 신세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극복해야 할 시련이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컸으면 자립을 해서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부모에게 신세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몸이라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도전을 하든 어차피 어린애 장난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을 하든 학자의 길을 걷든, 자신에 대한 인식 없이 부모의 도움으로 쌓아 올린 것은 언젠가는 허물어지게 되어 있다. 평생을 거기에 몸 받친다 해도 결과는 껍데기뿐, 획기적인 공적은 남길 수 없다.(p.41)
-집을 떠난 후에도 부모가 보내 주는 돈으로 산다면, 집을 나간 것이 아니다. 여전히 반쪽짜리 인생일 뿐이다. 그저 혼자 사는 생활을 시작했다는 의미밖에 없으니 자랑할 일이 아니다. 자립과는 거리가 먼, 안이한 생활의 연장에 불과하다. 제 손으로 일해 먹고 살아야 비로소 집과 부모를 떠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독립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일이란 무엇인가. (p.43)
저자는 ‘청춘,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잠재적인 다양한 능력을 갖고 있고 그걸 발견해야 하는데 학교나 가정에서 진지하지 않게 교육시킨다고 말이다. 또한 학교나 가정에서는 안타깝게도 대학과 취업이라는 목표에 매진하며 “삶의 공식이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젊은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할 시간도 거의 주지 않는다”(p.178)라고 말하는데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취직준비에 시달린다.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취직한다. 게다가 그 직장에 오래 헌신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그렇게 하는 것을 불변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이 때문에 많은 젊은이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것에 강박관념 비슷한 불안을 느끼고, 무의식중에 안정을 최고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인생의 초기단계에 이미 다른 길은 봉쇄되고 만 것이다.(p.176)
-자신 속에 어떤 보물이 잠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도 모른다. 그 보석이 하나뿐이라고도 할 수 없다. 몇 개가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대단한 것이다. 평생을 들여 그 보석의 원석을 갈고닦을 수 있느냐에 삶의 진가가 있다. 그 외는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무의미한 인생이다.(p.175)
또 국가가 “국민이 국가의 정체를 단박에 꿰뚫어 볼 만큼 현명하기를 원치 않는다”(p.71)라고 했다. 너무 어리석어 평범한 일조차 못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어중간한 국민을 이상적으로 여긴다. 국가는 ‘적당한 바보를 원한다’(p.72)며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여러 가지 예를 들며 젊은이를 무력하게 만든다고 설토한다.
-학교 교육: 학교교육을 통해 아직은 부드러운, 그래서 세뇌가 그만큼 쉬운 청소년의 사고회로와 정신에 깊은 영향을 끼쳐 왔다.
-경제적인 풍요로움: 자식을 응석받이로밖에 키우지 못한 부모들 탓에 일개 독립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고 자기 주위를 맴도는 무기력을 떨쳐 내려 하지 않는 한심한 젊은이들로 성장
-부모들의 자식교육: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
-인터넷 게임류의 영향: 인터넷 게임을 정부가 나서서 제재를 가하지 않는 이유는 자유 경제를 활성화해 세수를 늘리고 호경기의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진짜 목적이 있다. (...)요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불만이 팽만하거나 폭발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텔레비전: 국민을 언제까지나 어리석음에 묶어 두기 위해, 예능이다 쇼다 하는 얼뜨기 프로그램을 줄줄이 방송하면서 사고력을 빼앗는다.
-기타 (p.71-76)
저자는 가정환경이 어떻든지, 부모가 착실한 사람이든, 병약한 사람이든, 자식은 학교를 졸업하면 당장 집을 나가 자립해야 한다고 한다. 학생 신분이 끝나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아직 정하지 못했더라도 부모에 의존하는 생활을 과감하게 떨치고 미련 없이 집을 떠나는 것이다”(p.22)라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럼에도 저자는 어찌되었던 집을 나가 자신만의 삶을 꾸리라고 설파한다.
-아직 구체적인 인생 설계가 세워지지 않았어도,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구실을 둘러대며 단 하루일망정 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때까지 목표를 정하지 못한 자는, 어찌되었든 집을 나선 후에 앞일을 생각한다.(p.23)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그때다. 자식은 집을 떠남으로써 인생을 만끽하는 데 꼭 필요한 자립과 자율의 정신을 키울 수 있고, 부모 또한 늦게나마 부모의 진정한 의무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p.25)
-집을 떠난다는 것은 제2의 탄생을 뜻한다. 제1의 탄생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부모 의지에 따른 것이지만, 제2의 탄생은 그 전권을 자식이 쥔다. 이 때문에 인생 최대의 사건이며 한없이 위대한 행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삶을 쟁취하느냐 마느냐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성인이 되었다는 표식은 집을 나가는 것이다. 요컨대 집을 떠나는 것이 성인식인 셈이다. (p.24~25)
5장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에선 고용주에게 고용되어 월급받는 직장인의 삶을 우려하며 자영업자가 되라고 권한다. 원하는 회사에 취직했다는 것에 만족하겠지만, 실제 일해 보면 “상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서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p.99)을 내린다. 그는 수입이야 많든 적든 평생 매진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면 자영업밖에는 없다고 말한다.
-타인이 주는 월급을 대신해 하는 일로는 절대 만족할 수 없다. 거기에는 자신의 의지라는 것이 전혀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주의 목적은 고용인을 만족시키는 것에 있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충족에 있다. 공무원의 세계에서도 그 점은 다르지 않다. 상사는 부하를 출세의 도구로밖에 생각지 않는다. 아무튼 직장이란 인간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p.101)
-이 넓은 세상에는 다양한 직종이 있고, 저마다 다른 삶의 모습이 있다. 그렇게 폭넓은 세상에 살면서 왜 처음부터, 어린 시절부터 회사에 취직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살아왔는가.(..) 수입이야 많든 적든, 소박하나마 성취감을 얻을 수 있고 평생을 매진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면 자영업밖에 없다. 요컨대 이 세상에 직장인이라는 직업은 없다 치고 일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p.101)
8장 ‘애절한 사랑따위 같잖다’에서 연애가 연애답게 느껴지는 것은 고작해야 서른살까지라고 하며 그 이상이 되면 이미 연애와는 다른 것이 되고 만다고 한다. 서른살 전에는 이성에 대한 순수한 관심이 정점을 찍는 시기, 뭐가 뭔지 모른 채 반이성적인 감정과 충동이 폭발하는 시기,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는 시기라고 말이다. 이런 강한 어조로인해 때론 독자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한 여지도 보인다. 때론 쓴소리도 있고 공감되는 말도 있지만 근거나 예시 없이 하는 말들이 독자들은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 책의 가치는 기존 생각을 뒤흔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부모를 버리고 회사를 다니지 말고 자신을 찾으라고 하니 말이다. 물론 그의 표현은 은유다. 은유적인 비유를 여과 없이 들으면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다. 70을 살아 온 노작가의 직설화법이 청춘에게 어떤 공감을 불러일으킬까. 청춘들이 노작가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자신찾기를 생각해보기에 충분한 책이다.
<서평-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