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1: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여기서는 예레미야의 특수 임무가 언급되고 있다. 그가 전달할 선포의 내용은 크게 파멸과 회복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그는 사역 초기에는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을 강도 높게 설교하였고, 후기에 가서는 회복에 대해 말하였다.
이방 민족에게 고하는 심판의 예언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는 모두 여섯 개의 동사가 사용되고 있는데 네 개는 파괴적인 측면을, 두 개는 건설적인 측면을 가진 동사이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 여기서 두 문장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즉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다'는 진술은 율법에서 벗어난 방법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호 카테이코메다' 가운데 관계 대명사 '호'는 '율법'을 선행사로 갖는 것이 분명하다.
비록 관계대명사 '호'는 여격이고, '투 노무'는 소유격이어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이는 '호'의 전치사 '엔'..안에'이 여격을, '투 노무'('율법')의 전치사 '아포'...로부터'가 소유격을 수반하므로 차이가 날 뿐이다. 그러므로 '얽매였던 것'은 '율법'을 설명해 주는 말이다. 율법은 사람을 얽매는 것이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죽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사람의 정욕과 율법이 조화를 이루면 이처럼 과격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율법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대표로 죽으신 것이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 바울은 '영'이란 용어를 매우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영'을 '성령'으로 해석하지만 그 한 단어로 '영'이란 용어가 지닌 의미를 완전히 드러낼 수 없다. 바울이 '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용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8장에서 '영'은 '육신'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영'이 죄에 대해서 전혀 배타적임을 가리킴과 동시에 율법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2) '영'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갖게 된 '새생명'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때에는 '영'이 '성령'과 동일시될 수 있다. (3) 본절에서와 같이 '영'은 '의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의문'이 옛 시대의 지배 원리였던 것과는 반대로 '영'은 새시대의 지배 원리이다. 물론 새시대의 지배 원리는 '성령'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지만 새시대의 지배 원리 자체와 성령은 동일시될 수 없다. 새시대의 지배 원리에 속한 것으로는 '영'과 '복음'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성령과 사람의 영이 8장에서 구분없이 사용되고 있으며,
고전 6:17에서는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 볼 때 바울이 '영'이란 용어를 사용할 때에, 어떤 곳에서는 새 생명을 주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새시대의 지배 원리에 대해 적용하기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본절은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것'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새시대의 지배 원리를 따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이 표현은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을 의미한다. 이 연합의 비밀에 대해 사도 요한은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관계로 설명했다. 새로운 피조물 - 인종과 성을 초월하여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받아들여 그리스도와 영적인 연합을 이루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여기서 '피조물'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티시스'는 창조행위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본 구절은 사람이 그리스도와 영적인 교제를 갖게 되었을 때 그에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로운 창조 행위가 일어나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창조 행위를 오해하여 새로운 질료로 만들어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상상해서는 안된다. 그는 여전히 육의 몸을 입고 있고 동일한 세계에 살고 있으므로 육체의 욕망과 죄에 굴복당할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그가 그리스도와 세계에 대하여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사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 방식과 사고 방식을 따라 살게 된다. 과거에는 그리스도를 핍박하였으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고, 과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인정했으나 지금은 그런 차별을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만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