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묘소 참배하는 딸의 순례 등반기
1978년 미국 K2 북동릉 등반대의 등정기 <The Last Step>의 저자인
미국의 전설적인 산악인 릭 리지웨이(Rick Ridgeway)는
아마존, 아프리카, 보르네오 등 여러 지역을 탐험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이기도 하다.
그는 10대 시절 남미 페루에서 미국 탐험가 론 피어를 만나 그의 일행과 와스카랑(Huascaran·6,706m)을 등정했다.
론 피어로부터 미국의 내과의사이자 산악인 크리스 찬들러(Chris Chandler)를 소개받은 리지웨이는
이후 그와 함께 캐스케이드산맥 등을 여러 차례 등반하며 등반기술을 익혔다.
그는 또한 친구 마이크와 봄가을은 요세미티,
여름에는 툴롬 메도우즈,
겨울에는 조수아트리(Joshua Tree)에서 암벽등반을 계속했다
페인트공으로 일하여 번 돈으로 등반비와 학비를 충당하여 인류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가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박사과정에 합격했을 즈음
크리스 찬들러로부터 에베레스트 등반대에 참가할 의향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미국 건국 200주년 기념 에베레스트 등반대의 팀닥터가 된 크리스 찬들러가 리지웨이를 대원으로 추천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1976년 에베레스트 BC에 도착한 크리스와 리지웨이는
아이스폴과 로체 서벽 루트 개척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2차 공격조에 선발되었다.
그런데 1차 공격조 대원 한 명이 병으로 등반을 포기하자
크리스가 대타로 투입되어 로버트 대원과 함께 등정에 성공했고,
리지웨이는 사우스콜 못 미치는 지점에서 고소증세가 나타나 하산해야했다.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기 마련이어서
박사학위와 맞바꾼 에베레스트 등정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는 그 등반대에 카메라맨으로 참가했던 조나단과 친교를 맺게 되었다.
조나단은 19세에 쿰부히말에 첫발을 들여놓은 후 거의 해마다 이 지역을 찾았고,
불교에 심취하여 당보체 사원에 여러 날 머물기도 했다.
조나단은 1979년 촬영장비를 메고 히말라야의 마터호른이라 불리는 아마다블람을 등정했는데,
첫 아이를 임신 중인 일본인 아내 게루를 생각하며
장차 이 아이를 이 산으로 데려와 인생의 진리를 체험할 기회를 주겠다고 작심했다.
쿰부히말의 풍광에 매료된 그는 아내가 딸을 출산하자 아이 이름을 ‘아시아’라고 작명했다.
리지웨이는 다시 한 번 크리스 찬들러의 추천으로 1978년 미국 K2 북동릉 등반대 대원이 되었다.
이혼남인 크리스는 체리라는 유부녀 여성대원과
불륜관계를 맺었다는 소문이 대원들 입에 오르내려 그 등반에 소극적이 되었다.
그러나 리지웨이는 존 로스켈리와 북동릉의 최대 난코스 칼날능선을 돌파하고,
공격조에 선발되어 K2 등정자가 되었다.
1980년 리지웨이는 이본 취나드, 친구 조나단 등과 동티벳의 미니아콩가(Minya Konka) 등반길에 나섰다.
이 산은 1932년 미국 하버드 생들이 초등한 이래 오랫동안 외국인들에게 폐쇄되었다가 다시 개방된 산이었다.
리지웨이, 이본 취나드, 킴, 조나단 4인은 버트레스 상에 구축된 C1을 출발하여 몇 개의 크레바스를 통과하고,
턱까지 차오르는 심설을 헤치며 전진했다.
그들은 빙탑 지대를 우측으로 우회하여 10cm 이상의 신설이 덮인 지역을 통과하고,
6,096m 위쪽까지 진출, C2 예정지에 짐을 데포시켰다.
그러나 하산 중에 갑자기 눈사태가 발생하여
그들은 빙탑이 붕괴된 얼음덩어리와 눈 속에 휩쓸려 C1 아래까지 수직고 600여m를 추락했다.
눈사태가 멈추었을 때 리지웨이는 몇 군데 멍만 들었지만
이본 취나드는 피를 흘리며 몇 개의 늑골 골절상을 입었고,
킴은 척추골절상을 입고 얼음덩어리 속에 끼어 있었고,
조나단은 눈 속에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리지웨이는 조나단을 바로 앉혀 놓고 얼음덩어리 속에 끼여 꼼짝 못하는 킴의 몸에 얽힌 자일을 풀어 주었다.
그런데 조나단은 횡설수설하더니 갑자기 호흡이 멎었다.
리지웨이는 자신의 무릎에 그의 머리를 올려놓고 수차례 인공호흡을 실시했지만 그는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가 메고 있던 배낭 속 카메라가 박살이 난 것으로 미루어
그는 얼음덩어리에 부딪혀 뇌진탕 같은 심한 내상을 입은 듯했다.
아연실색한 리지웨이는 BC로 내려와 두 명의 대원에게 비보를 전했다.
그는 한 명의 대원과 함께 조나단의 시신을 옮기고, 돌을 쌓아 무덤을 만들었다.
그들은 걸을 수 없는 킴을 들것으로 BC까지 운반했다.
동티벳의 산에 있는 눈은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
눈사태의 위험성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몰랐던 결과는 절친했던 친구를 잃어버리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영원히 등반을 포기할 생각이었던 리지웨이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기자이기도 했던 조나단이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에베레스트 국립공원 르포’를 완성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고 쿰부히말로 가던 도중
카트만두에서 제니퍼라는 미국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요트 여행 중 쓰나미에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남편을 잃고,
그 비극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 보려고 네팔을 여행 중이었다.
두 사람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만남을 지속했고,
마침내 이본 취나드의 주선으로 결혼에 골인했다.
그는 이제 등반 같은 것은 단념하겠다고 작심하고 있던 차에
미국 워너브라더스 영화사의 회장 프랭크가 좀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프랭크는 친구 디크와 7대륙 최고봉을 등정할 계획인데
그 등반과정을 다큐로 제작하려고 하니 공동 프로듀서 일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1983년 그는 임신한 아내를 혼자 남겨 두고 이본 취나드를 초대하여 프랭크 일행과 남미 아콩카구아를 등정했다.
이어 에베레스트 남쪽 BC를 두 번째 찾아온 리지웨이는 단독으로 아이스폴을 2시간만에 돌파했으나,
자신의 아내에게 또 다시 비극을 겪게 할 수 없어 고소등반은 중단하고
대신 데비드 브리셔즈를 대신 정상으로 보냈다.
프랭크는 사우스콜까지,
그의 친구 디크는 8,534m 지점까지 진출했고,
데비드 일행은 등정에 성공했다.
미국 ABC 방송국 후원을 받는 이 계획에는
보르네오 섬의 탐험이 포함되어 리지웨이는 섬 횡단 중에 열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리지웨이는 영국의 크리스 보닝턴을 포함한 프랭크 일행과 남극의 빈슨매시프를 등정했고,
1985년에는 이본 취나드, 존 로스켈리 등과 함께 부탄의 무명봉을 등정했다.
조나단의 아내 게리는 재혼하지 않고 딸의 양육과 교육에 정성을 다해
조나단이 사고를 당했을 때 생후 16개월이던 아시아는 자라서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 2학년이 되었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유명한 사진가가 되려고 사진전공도 병행한 아시아는
1999년 리지웨이에게 자신의 아빠의 무덤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리지웨이의 아내 제니퍼 또한 짧은 기간동안이나마 아시아의 아빠 노릇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했다.
리지웨이와 아시아는 조나단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쿰부 지역을 제일 먼저 찾았다.
남체바자르에서 1976년 미국 에베레스트 등반대의 사다를 했던
파상 카미의 집을 방문하여 등반대의 당시 활동을 담은 비디오를 감상했다.
조나단이 웨스턴쿰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혼이 나면서 찍은 부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당보체에서 조나단이 여러 날 머물던 사원도 방문하고,
언덕에 올라 에베레스트 정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조나단이 등정했던 아마다블람의 정상은 역광을 받아 실루엣으로밖에 바라볼 수 없었다.
그들은 창탕(Chang Tang)으로 향했다.
조나단이 생전에 리지웨이와 여행하기로 예정했던 곳이다.
그들은 도중에 거대한 흰 달걀 모양의 성산 카일라스를 일주했다.
순례객들 중에는 오체투지를 하는 여승들도 섞여 있었다.
드롤라 고개에 세워진 기둥에 여러 색깔의 기도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아시아는 탕보체 사원의 노 승려가 준 비단 스카프를 줄에 매달고 아빠를 추모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여행을 계속하여 아루 분지를 지나 크리스탈 마운틴 산군 부근에서 야영했다.
리지웨이는 조나단의 딸에게 그녀 아버지의 세계를 보여 주려고
높이 6,400m의 미답봉을 그녀와 함께 8시간만에 등정했다.
그들은 라사에 들러 조나단이 생전에 방문하고 싶어했던 포탈라궁을 찾은 다음
조나단이 잠들어 있는 미니아콩가를 찾았다.
아시아는 떠나올 때 자신의 할머니가 준 20달러짜리 지폐를 공가 사원에 시주하고 아빠의 명복을 빌었다.
그들은 1980년 BC로 사용했던 장소를 어렵사리 찾아냈다.
거기서 지난 날 찍어둔 사진을 참조하며 버트레스쪽으로 향해 150여m 오른 후
암벽에 있는 10여m 높이의 걸리를 오르니 좌측에 조나단의 무덤이 나타났다.
그 동안 세월의 풍상에 의해 무덤의 높이는 낮아졌고
무덤 한쪽으로 구멍 뚫린 바지가랑이가 드러나 있었는데
표범의 짓인지, 독수리의 짓인지 시신의 다리 한쪽이 사라졌다.
돌을 들어내니, 금방 사망한 사람 같은 조나단의 얼굴이 나타났다.
리지웨이는 친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후 아시아와 돌을 주워 무덤을 다시 쌓았다.
그러나 아시아는 계속 울고 있었다.
전문 산악인인 자신이 눈사태의 위험을 예측하지 못해 친구를 이 꼴로 만들어 놓은 데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나 아시아는 이제 한을 풀어 아빠의 시신이 빗물에 녹아 양자강으로 흘러들어도 괜찮겠다고 말했다.
원제 <Below Another Sky…A Mountain Adventure in Search of a Lost Father>.
국판 320쪽. 2001년 미국 헨리 홀트 출판사 간행. 2002년 미국 아울 출판사 페이퍼백 간행.
이창기 전 강릉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