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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76년 고등학교 2학년 초로 거슬러 올라야지요.
첫사랑의 그녀가 지천명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감정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 시절 잘난 척 하고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즐겨 읽던 월간지로 '월간영어'라고 하는 잡지가 있었다.
나는 잡지의 내용보다는 솔직이 고백하자면 펜팔란에 온 관심이 꽂혀 있었다.
동네 형들이 즐겨보던 잡지로는 '선데이 서울' '주간경향' 등이
전부였을 만큼 그 시절엔 그랬다.
'월간영어' 펜팔란을 보던 중
평소에 '경상도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이 현실로 올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주소가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어메야 이게 왠 떡!!'
내가 잘한 것도 없는데 조상님이 돌봤는가 싶어
히죽~히죽~...
'경상남도 사천군(지금의 사천시) 사남면 죽천리 ㅇㅇㅇ번지'
지금의 기억에도 또렷이 남아 있는 바뀌기 전 우편번로는 620-34였다.
'ㅎ'氏의 姓을 가진 여학생을 찜 해 놓고
어쩌구~ 저쩌구~ 장문의 편지를 써 보냈다.
드뎌...
얼마 후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국에서 온 편지가
큰 오라버니가 쇠죽(소 여물) 끓일 때 불 쏘시기로 쓰고
남은 것이 내 편지라는 것을 알았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ㅋㅋ
그래도 조상님의 은덕으로......ㅎ
그녀는 글씨체며 문장력이 꽤 좋았던 친구로 기억된다.
그녀의 편지를 묶어 우리반 친구들의 연애편지 교본으로
쓸 만큼 문장력이 뛰어난 친구였다.
수업시간에 그 편지 보다가 쌤한테 걸려서
귀뽀라지 얻어 터지고... 일 주일 내내 화장실 청소하고...
에~이~샹~~~`ㅋㅋ
시간은 흘러 2년 여가 지났다.
한 번 만나 봐야 겠다는 나의 호기심이 가만 있을리가 없었다.
한 번 만나자는 내용의 편지 후에 '그러자'는 답장이 왔다.
쿵쾅 쿵쾅 설레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생각한 후에
그래도 남자인 내가 가기로 약속했다.
충청남도 청양에서 경상남도 사천까지 이렇게 여행은 시작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흑백 카메라로 찍은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토요일 수업을 마치는 둥 마는 둥...
미친 넘 마냥 공주를 거쳐 대전역으로 가서
진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지금과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중교통이 발달했지만 그 때는 삼랑진에서
갈아 타고 다음 열차를 보내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어던 것 같았다.
약속 장소인 진주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9시가 넘었다.
약속 시간도 한 참 지난 후였다.
두리번 두리번...
혹시 그녀가 기다려 줄 것 마냥.....
하는 수 없이 진주역 앞 인숙이네 집에서 그 날 밤을 보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우리는 이렇게 약속을 했다.
유일한 외출복이었던 교련복 바지에 추리닝 상의를 입고
왼손등에 하얀색 파스를 붙이기로 한 것이다.
참 그런 생각을 어찌했을까?
지금도 혼자 빙긋이 웃을 때가 있다.
아침 밥을 먹고 집에 가는 열차 시간을 확인 후
골똘히 생각에 잠겨 본다.
'그래 이거야'...ㅎㅎㅎ
진주까지 왔으니 사천까지 고고씽이다.
그놈에 잔머리는 좀 안굴렀으면 좋으련만...
완행버스를 타고 사천군 사남면 죽천리로 출발을 한다.
아싸 ~~~
그 동네에 도착해서 'ㅎ'씨 성을 물어 물어 드뎌 찿았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여기까지는 잘 하는디....
영 마무리에는 자신감이 없다.
에고..ㅠㅠ
그 잘 돌아가던 잔 대굴빡도,
이 때는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ㅠㅠ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녀의 집 문패에 쓰인 이름 석자 'ㅎ ㄱ ㅎ' 를...
용기가 나질 않아 집 주위만 빙빙 돌다가
다시 진주역으로 나 왔다.
진주역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그녀의 집에 '왔다 갔다' 는 증거가 없지 않은가?
증거를 위해 다시 죽천리로 출발했다.
그녀의 집은 새마을 창고에서 가까운 집이었다.
또 다시 그녀의 집 주위만 빙빙빙.....
새마을 창고 벽에 'ㅇㅇㅇ 왔다 간다'
그 짓꺼리를 지켜 보던 할매가 하시는 말씀이
'아까 ㅇㅇㅇ를 찾던 학상 같구먼'
그러시는 게 아닌가.
'할매 저는 기억이 안 나는대요'
'아까 ㅇㅇㅇ한테 어떤 학상이 찾는다고 말 했구먼'
천만다행이다 싶다.
진주역에 도착하여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엥~~~~~ㅠㅠ
버스 타고 왔다 갔다.
배 고파서 주전부리 하고,
동전 몇 개 달랑 달랑....
내가 원래 여자 앞에서는 바보지만
잔 대굴빡으로는 고수 아닌가? ㅋㅋ
기본 요금을 내고 열차표를 끋었다.
몰래 대전역까지 타고 갈 참이다.
마지막으로 두리번 두리번.....거린 후
손등의 흰 파스를 떼어서 휴지통에 버리려는 순간
'ㅇㅇㅇ 야'
'ㅇㅇㅇ 야'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고압선에 감전되면 이런 걸까?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 ㅇㅇㅇ야'
'너 ㅇㅇㅇ지?'
첨 보지만 오래 편지를 주고 받아서인지
용기없는 못난이 치고는 괜찮게 대처했던 것 같았다.
수줍음이 많던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줄도 모르고
가만히 조신하게(?)있는데 그녀가 하는 말
'배 고프지 않아?'
'응'
진주역 앞 분식 집에서 라면을 먹고 난 후
그녀는 '내 편지 못 받았냐' 는 것이다.
내용인 즉 '이 번주 말고 다음주에 만나자'고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통신수단이 좋지만
그 당시엔 그럴 수 밖에 없는 해프닝이었다.
배가 빵빵하니 대굴빡이 또 다시 돌고 돈다.
어찌 만든 기회인가?
열차표를 환불해서 마지막 열차로 바꿔 끋어 놓고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봇다리를 너무 많이 풀어서 주워 담지를 못 하고
마지막 열차를 못 타고 만다. ㅠㅠ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월요일부터 학기말 시험인데
어찌하면 존노?
나는 시험보다 그녀가 존 걸...
'조지쁘맀다'는 생각만이 펏~뜩~ 스친다.ㅠㅜㅠ
그 시절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었지요... 뭐...ㅠ
새벽까지 대합실에서 그녀와 꼬박 밤을 새우고
집까지는 잘 왔지만 큰 일이 안 나면 이상한 일이다.
첫 날 월요일 기말고사를 못 봤구
왜 그랬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화,수요일 이틀간 시험을 또 안 봤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똥 뱃짱이었을까?... 원~ ㅋㅋ
'이참에 학교를 그만 때려 쳐 버릴까?'
'아냐! 불쌍한 울 엄니는 어쩌고?'
학생부에 끌려 가서 디지게 맞을 생각....
담임쌤한테 또 디지게 맞을 생각...
학교에서도, 담임쌤도, 불쌍한 울 엄니도,...
모두 배신하는 것 같아 무척 괴로웠다.
학교 가서 뭐라 하지?
대굴빡이 돌지 않는다.
'그래! 썅~~ 디지몬 말지 뭐'
목요일 아침 일찍 등교를 했다.
분위기가 싸늘하다.
그래도 디지기는 싫어서 교무실로 담임 쌤부터 찿았다.
눈길도 안 주신다.
그냥 가란다... 에고야...이제는...디졌다...ㅠㅜ
아침 조례가 끝난 후
'야 ㅇㅇㅇ 교무실로 와'
오늘이 내 초상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부터 났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 차리몬 산다고...'
그 순간에도 내 대굴빡은 인공위성 보다 빨리 돈다.
쌤 왈!!
'무신일인데?....'
저.. 저... 실은 ... 하다가
갑자기 옆 집 꼬마의 홍역치레가 생각 났다.
그래 기회는 이 때다 싶어
'쌤 실은 제가 토욜부터 홍역을 하느라 죽다 살았습니다'
'뭐라고?'
'너도 홍역을 이제 했니?'
후~휴~~
예상외의 반응이시다.
'야! 임마 빨리 나가라, 나는 아직 홍역을 안 했단 말야'
잔 대굴빡의 고수답게 위기는 잘 넘겼지만...ㅎㅎㅎ
고등학교 입학 당시 성적은 내 앞에는 한 친구만 있었는데
이런 연유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꼴찌도 해 보았다.
훗 날 안 사실이지만 성인들도 홍역 치레를 안 한 분도 꽤 있다고 한다.
시간은 또 몇 개월이 지났다.
어쩌구... 저쩌구...
그녀는 우리 고향에 한 번 와 보고 싶다고 한다.
싫다고 할 내가 아니다.
오지랖은 여전 했다.
공부 좀 할려고 공주에서 하숙을 하고 있을 때쯤...
드뎌...
대전역으로 마중을 나가 개선장군처럼
하숙 집으로 모시고(?)왔다.
또 잔 대굴빡은 여전히 잘 돌았다.
하숙 집 아줌니 왈
'이 여학생은 누꼬?...'
'예 사촌 동생요'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저녁 밥을 먹고...
공주산성과 무령왕능을 구경하고 하숙 집으로 왔는데
하숙 집 아줌니 내 맴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이~ 사촌동생은 이리 와서 나랑 같이 있자'
이러는게 아닌가?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ㅋ
궁리 끝에...
'아줌니 잠시 후에 작은 아버지가 오실 거예요'
하숙 집 아줌니는
'음... 갸우뚱...'
못 믿겠다는 눈치다
잔 대굴빡 고수는 이럴 때 잘 돌아야지 싶다.
'ㅇㅇ야 작은 아버지 오실 시간 됐어 여기서 기다렸다 가라'
능청스런 내 연기에 하숙 집 아줌니도 속고
작은 아버지랑 그녀는 같이 간 것처럼 연기하고...ㅋㅋ
내 하숙방에서 긴 밤을 둘이서 보냈는데...
생각해 보슈?
잠이 오겠냐구요?
단 둘이 하숙방에서 주인 아줌니한테 들킬까봐
이불 뒤집어 쓰고 있는데 ...
잠이 오 건남유?
가슴은 콩당 콩당...
손은 벌벌벌...
마른 침은 꼴까닥 꼴까닥...
이렇게 밤 새 반복했구먼유...
대굴빡은 또 다시 돈다.
'뽀뽀를 하자고 할까?'
'아님 그녀가 잠들면 젖가슴이라도 몰래 만져 볼까?'
'왜 그녀는 잠도 없지?...'
아이고! 미치고 환장할 뻔 했쓔...
우리는 밤 새 서로를 감시하다 날 샛쓔....ㅠㅜ
동 틀 무렵 주인 아줌니한테 들킬까봐
일찍 나와서 대전의 보문산 구경하고
열차로 그녀는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 갔다.
이 때가 마지막 이별일 줄이야....ㅠㅜ
세월은 흘러 흘러 새 천년이 되었다.
먹고 노는 데 익숙치 않아서
보물섬 남해로 귀촌을 할까? 하고
독일마을 근처나 설흘산 밑 다랭이 마을 근처로
펜션부지를 알아 보던 중...
그곳에 가려면 꼭 첫사랑 그녀의 집(사천시 사남면)
근처을 거쳐야 하는 흥분된 즐거움이 있다...ㅎ
찿아가서 어디 사냐고 물어 볼까?...ㅎ
전화번호라도 알아 볼까?...ㅎ
이런 저런 생각에 남 몰래 웃는 들 뜬 존재감?...ㅎ
혼자만의 정신적 강간을 해 본다...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운전이 서툰 나로써는
운전기사 겸 여행 가이드인(?) 사랑하는 옆지기에게
남해로 가는 길에 고민 고민 하다가
미안 하지만 또 대굴빡을 굴렸다.
'저기 있잖아 자네도 알 걸?
대학선배 중에 사남면 죽천리에 살고 계신 분이 있는데....'
'누구죠?'
'저어기...긁적 긁적...'
마눌은 계속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듯....'
두런 두런...
시치미를 뚝 띠고 넉살 좋게 거짓말로
'대학 다닐 때 한 두 번 와 봤는데
아파트도 많이 들어서고 영 못 찮겠는데' 라고
객적은 소리로 그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이게 어인 일인가?
첫사랑 그녀의 집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30여년 전 그 때 보았던 그 문패 'ㅎㄱㅎ'
다리에 힘이 쫙 빠지며 정신이 혼미해 진다.
'당신 안색이 안 좋아요'
되레 마눌은 내 걱정이다
'내가 깜빡 했네. 혈압 약 가져 왔지?'
염치없는 뻔뻔함으로 마눌에게 대꾸했다......
첫 사랑을 어찌 하오리까?
-첫 사랑을 회상하며 自然人 쓰다-
첫댓글 ㅎㅎㅎ 자~알 읽었슴다~
딱히 할 말이....하지만, ㅋㅋㅋ
할 말이 없쥬?...
그 게 정상일 걸요...ㅎㅎㅎ
마눌하고 남해 여행길에 있었던 일을 'ㅇㅇ에 보냈던 글' 을 살짝 옮긴 글입니다.
까딱하면 첫사랑을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제기랄 왜 하필 마눌하고 같이 가서리.....ㅎㅎㅎ
자연인님 국문과나오셨어요? ㅎㅎ
그시절에 펜팔하던 사이가 만나
그것도 고딩이
외박을하고 뜨거운피에 침만 삼켰다는걸
누가 믿지? ㅋㅋ
버들치 님!
잘 지내시지요?
국문과가 아니고 굶는과 나왔습니다...ㅎㅎㅎ
서로 감시하다 정말로 '날 쌧쓔'...ㅎㅎ
즐거운 오후 되세요.
첫사랑이 여전히 내밀하게 자리하는거쥬? 저도 화요일에 아주 우연히 자연인님 후배일 것 같은(죽동 앞 핵교 맞아유?) 선밸 15년만에 만났는데요. 아이고..아주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됐지 뭡니까? 그 과는 원래 전통적으로 잘생긴 남정네들이 많아 작업의 정석이 난무한다는 데 참말인감요?
홍옥 님!
반갑습니다.
많은 걸 알라고 하지 마세요...ㅎㅎ
때가되면 다 알 수 있습니다....ㅎㅎ
원래 그 과는 작업정석을 전공필수로 3학점을 필해야 됩니다...ㅎ
혹시 아련한 추억 속의 그 넘이 그 넘이었던가요?..ㅎㅎㅎ
그래요..맞아요...
첫 사랑을 가슴깊이 뭍어둔 채 혼자 살짝 꺼내보고 빙긋이 웃을 수 있는 여유로 살고 시포요....ㅎㅎ
즐거운 오후 하세요.
ㅍㅎ~ 그 넘이 그 넘 아녀요. 친구분 중에 '법사'도 계신가요? 암튼 그 날의 조우가 알고보니 하도 얼키고 설켜 파안대소 했다니까요! 세상 참 좁고요. 처신 참 중요하대요.
홍욱 님 윗 글에 이어서~
엥~~~법사요?...
유발승 말이오?
보스톤대학에서 종교철학하고 나와서 목사였다가 지금 갑사쪽에 계신 스님인가요?....
그 스님이 또 세상이 궁금해서 머리를 기르셧나?....ㅎ
처신 잘 못한 것 같아서 바싹 긴장됩니다....ㅎㅎ
첫사랑 그녀 시집가서 잘 살면 배아프고
첫사랑 그녀 시집가서 지지리 궁상이면 가슴아프고
첫사랑 그녀 나하고 다시 시작하자면 머리 아프고
이런 말이 떠오릅니다.
텃밭지기 님!
머리 아프고 터지더라도 한 번 해 봤으면 조컷슈...ㅎㅎㅎ
좋은 오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