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불혈인(兵不血刃) - 병사가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기다.
[병사 병(八/5) 아닐 불(一/3) 피 혈(血/0) 칼날 인(刀/1)]
양측이 싸울 때 아군의 피해를 전혀 보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적에게 항복을 받아 냈더라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아군의 피해가 있다면 온 국민에 고통을 안긴다. 이것은 孫子兵法(손자병법)을 쓴 중국 고대의 孫武(손무)를 빌지 않더라도 아는 일이다. 그러니 孫子(손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知彼知己(지피지기)하여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최상이고, 어쩔 수 없이 싸움이 벌어졌다면 적의 계획을 미리 파악하여 깨뜨리는 것이 최상의 용병(上兵伐謀/ 상병벌모)이라 했다. 이와 유사하게 병사가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 한 사람이 荀子(순자)였다. 軍不血刃(군불혈인)이라 해도 같다.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로 본명이 荀卿(순경)인 그는 性惡說(성악설)을 주장했지만 유가에 속한다. 그의 사상을 정리한 ‘순자’의 議兵(의병)편은 군사에 관해 문답식으로 논의한 내용이다. 제자 陳囂(진효, 囂는 시끄러울 효)가 전쟁이란 싸워 빼앗는 것인데 仁義(인의)를 앞세워 어떻게 할 수 있겠는지 질문한다.
순자는 전쟁은 포학함을 막고 해악을 제거하는 것이니 싸우되 빼앗는 것은 아니라며 堯舜(요순)을 비롯한 훌륭한 왕들은 모두 인의로써 천하를 누볐다고 했다. 그 결과 가까이 있는 자들은 선을 따랐고, 멀리 있는 자들은 덕을 사모하여 ‘병사들은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모두를 복종시킬 수 있었다(兵不血刃 遠邇來服/ 병불혈인 원이래복)’고 설명했다. 邇는 가까울 이.
피를 묻히지 않고 목적을 달성한 이 말은 우리나라 문집에도 제법 검색된다. 李成桂(이성계)가 太祖(태조)로 등극할 때 조선 초기 문신 權近(권근)이 평화로운 정권이양으로 표현한 이후 다수 인용됐다. 부분을 보자.
‘저자거리의 상인들은 가게를 바꾸지 아니하고, 군사들은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아니하고도 천하가 하루아침에 맑고 밝아지니, 백성들은 곧 크게 즐거워하였다(巿不易肆 兵不血刃 會朝淸明 民迺大悅/ 시불역사 병불혈인 회조청명 민내대열).’ 肆는 가게 사, 迺는 이에 내. 正祖(정조)의‘ 弘齋全書(홍재전서)’에는 金庾信(김유신)을 이렇게 기렸다. ‘병사들이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 나라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兵不血刃 許大輿志/ 병불혈인 허대여지).’
혈전을 치르지 않고 승리하는 최선의 방법이 담판과 협상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고려 장군 徐熙(서희)이다. 遼(요)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고구려를 이은 나라가 고려인데 도로 땅을 내놓으라는 三寸舌(삼촌설)로 적을 물리쳤다.
외교는 총칼 없는 전쟁이란 말이 있다. 치밀한 논리로 상대국에 밀리지 않고 국익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대립하는 당과 갖는 협상도 자당의 손해는 최소화하며 양보를 가져오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막무가내 협상으로는 정치 퇴보만 가져 온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