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비밀번호만 같이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잖아!
솔향 남상선/수필가
우수 경칩이 지나서인지 제법 봄 날씨 같은 햇살이었다. 겨울 추위에 웅크렸던 온갖 생물들이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제법이나 봄기운을 실감할 수 있는 날씨였다. 이런 날 집에만 웅크리고 앉아 있기에는 왠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만 보를 걷는다는 신념으로 도솔산 송림으로 향했다. 군데군데 벤치엔 사색에 빠져 있는 이도 있었고, 혹자는 독서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멀찍이 떨어진 소나무 그늘에선 고희쯤 돼 보이는 노파 셋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걷는 걸음이 속보는 아녔지만 불그스레한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쉬고 싶은 생각인데, 마침 세 할머니 주변에 작은 벤치 하나가 있었다. 그래 거기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세 할머니는 얘기에 몰입이 됐던지 주변에 누가 와 있는지도 모르는 거 같았다.
할머니들의 화제는 주로 자식들 얘기였는데, 며느리 얘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A할머니는 며느리 하나 있는 게 말을 잘 안 듣는다며 속상해 하시는 눈치였다.
할머니는 만난 지 오래된 손주들 생각에 며느리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에는 그 누구도 없었고 집은 비어 있었다. 며느리한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인지 전화도 받지 않았다. 할머니는 씁쓸한 마음으로 그냥 돌아왔다. 바리바리 싸가지고 갔던 열무김치며, 올망졸망 챙겨갔던 손주들 간식거리를 경비실에 그냥 놓고 왔다. 몇 년 전에 고부간 다툰 것이 화근이었는지 할머니는 할아버지 제삿날도 아들 집에 가시질 못했다. 할머니 오시는 걸 싫어하는 며느리의 눈치가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얘길 경청하고 있던 B할머니가 며느리 자랑을 하고 싶었던지 말을 꺼냈다. 한 달 전에는 서울 사는 큰며느리 집에 갔다가 마음이 뿌듯하게 돌아왔다고 했다. 아파트 현관문 비밀번호를 할머니가 사시는 집하고 똑같이 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또 며칠 전에는 멀지 않은 작은아들 집에 들렀는데, 거기 역시 현관문 비밀번호는 할머니 집 것과 똑같이 해 놓았다. 할머니가 언제 오시더라도 어렵잖게 문을 열고 들어오시라는 며느리 마음에 많이 고마워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할머니는 행복감에 설레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왔다고 하셨다.
현대는 워낙 이것저것 외울 게 많아서 머리가 아픈 세상인데, 당신을 믿어 주는 큰며느리, 작은며느리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감사하다고 했다. 할머니는 당신을 신뢰하여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같게 해준 두 며느리 덕분에 행복하게 산다고 하셨다. 말을 마친 할머니는 행복감에 젖어 만면의 미소를 짓고 계셨다.
시어머니가 오실 때,
아무 불편 없이 당신 사는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처럼,
그렇게 오라고 만든 두 아들네 집 현관문 비밀번호.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담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은 큰 걸로 좌우되는 게 아니다.
신뢰를 준 며느리의 사소한 지혜가
시어머니를 그리 든든하게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현관문의 같은 비밀번호!
그것은 세상 어느 것보다
시어머니를 마음 편케 해준 행복의 만능 열쇠였다.
고부간의 갈등이 심한 시대라 하지만
현관문 비밀번호를 같게 하여
신뢰로써 행복을 만들고 있으니 이 어찌 타산지석이 아니겠는가!
현관문 비밀번호만 같이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잖아!
믿음을 줘봐, 그러면 서로가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끊이지 않는 고부간의 갈등의 시대,
우리도 두 며느리의 배려하는 맘으로 살면 안 되는 걸까!
첫댓글 따뜻한 글입니다ㆍ
선생님, 배람합니다ㆍ
비밀번호만 같아도 감사한 마음이드는 세상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