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은 즐거워 -도쿄에서 해매다-
성병조
(칠순기념 가족 여행) 예전에는 나이 육십 되면 회갑연을 벌이곤 하였다. 평균 수명이 60세도 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일 터다. 아내가 내년 일월 그 나이가 되지만 직장 가진 아이들이 상의하여 시기를 좀 앞당겼다. 일월에는 회사의 바쁜 일이 있기 때문이란다. 자녀들이 휴가를 맞추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떠들썩하게 떠 벌 일 일도 아니어서 의논하여 가족 일본 여행을 가게 되었다. 항상 여행사에 소속되다가 자유 여행을 택하고 보니 여유가 넘친다. 도쿄가 세계적으로 큰 도시라지만 자녀들은 집 마당처럼 누빈다. 공항서부터 지하철과 버스 이용, 잠자리 예약에 전혀 불편이 없다. 여행사 가이드가 자녀로 바뀌었을 뿐이다. (도쿄 K 호텔에서)
(시부야, 아는 것만큼 보인다) 이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 있을까. 이를 뒤집으면 보이는 것만큼 안다는 의미인데 이 또한 소중한 말이다. 아래 이야기는 아는 것만치 펼치는 얘기이니 혹시 미흡할지 모르겠다. 도쿄에 있는 시부야 스카이 라고 할 때 무슨 욕처럼 들렸다. 생소한 곳이니 내가 그 지경이다. 도심에 무슨 하늘? 궁금증 속에 찾은 이곳은 전 세계 관광객으로 넘친다. 줄 서서 기다리는 게 큰일이다.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지쳐 포기하기 좋다. 47층 건물 옥상 전체를 공원, 전망대로 꾸몄다. 도쿄타워는 물론 시내 전역이 한 눈에 내려 보인다. 특히 일몰 감상을 위해 많이 찾는 도심의 핫 플레이스라고 한다. (도쿄 시부야 스카이에서)
(롯본기힐즈 일루미네이션) 아는 것이 힘이라 했던가. 아이들의 여행 일정표에 롯본기힐즈 일루미네이션이란 말이 등장하기에 상상을 하였다. 롯본기란 레슬링의 무엇이라도 되는 건가. 김일 선수가 박치기한 장소? 힐즈는 언덕이요, 일루미네이션은 무슨 빛 같이 여겨지는데 과연 실상이 무엇일까. 상상 속의 장소에 가느라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탄다. 신천지가 나타난다. 환한 빛의 조화가 경이롭다. 무조건 찬양하는 건 아니다. 최고의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나무를 이토록 학대해도 된단 말인가. 들끓는 인파도 장관이다. 멀리 도쿄타워의 야경과 어우러진 일루미네이션을 찍느라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이 무슨 전쟁터 같다. (롯본기 힐즈에서)
(페라가모가 뭔 말인가?) 페라가모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처음 알게 된 것은 오세훈 서울시장 덕분이다. 유명 신발 페라가모를 신고 무슨 탕을 먹었다느니 뒷말이 무성하였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구두란다. 이런 신발이 내 옆에 있은 줄 생각이나 하였으랴. 일본 여행길에 아내가 구두가 낡았다며 바꾸려고 한다. 바로 화제의 페라가모이다. 보통 신발이 아니다. 그런 신발을 십수 년 신어도 전혀 알지 못했다. 도쿄의 중심 긴자의 대형 백화점에서 구두를 고른다. 환율로 따지면 한국보다 이삼십 만원은 싸다고 자랑하듯 말한다. 저렴하다는데 무슨 말을 더 보태랴. 자식이 사주기에 나는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도쿄 M 백화점에서)
(동경대를 찾아가다) #예전 친구가 고교 3학년인 아들을 서울대(1946년 개교)를 찾아보도록 하였다. 아이에게 희망을 심어주려 함이다. #직장생활 때 서울대 호암관에서 교육이 있었다. 평소처럼 새벽 일찍 일어나 서울대 캠퍼스를 한 바퀴 돈다. 후문에서 시작하여 정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꽤 멀었다. #이번 일본 여행 때 부랴부랴 동경대(1877년 개교)를 찾았다. 아이들이 제안했지만 나도 가고픈 곳이다. 늦은 시간, 대학병원 간이문서부터 경제부, 의학부, 기념관, 정문으로 이어지는 캠퍼스를 더듬었는데 큰 나무들이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정문이 좀 독특하다. 거창하지 않으면서 대학 간판이 안 보인다. 궁금하여 재학생에게 물어봐도 대답이 시원찮다. 명찰이 없어도 모두 알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일까? (일본 동경대에서)
(인파에 놀라고 규모에 더 놀라고) 도쿄 디즈니랜드를 생각하면 당장 떠오르는 게 미국 디즈니랜드다. 오래전 미국 출장 갔다가 들린 적 있다. 도쿄가 40주년이니 비교 가능할까. 9시 개장, 저녁 9시에 문을 닫는데 8시 무렵부터 인산인해이다. 예약제, 평일인데도 관중이 엄청나다. 아이들이 선호하는 곳이지만 우리 부부도 마다할 리 없다. 어디 가나 긴 줄을 서지만 보고 나면 흡족하다. 어마어마한 규모와 첨단 시설들의 경연장 같다. 하루 세 차례 벌이는 가로 퍼레이드의 장엄함과 각종 춤도 볼만하다. 배도 타고 기차도 탔다. 곳곳에 늘어선 유모차와 관리인이 보인다. 쾌속 질주하는 스페이스 마운틴 탔다가 식겁하였다.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일본에서 느낀다) 도쿄에서 며칠 머무르면서 일본 이야기를 한다는 게 우스울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 단편적인 생각임을 이해 바란다. 국내에서도 대구 사람보다는 서울 사람들이 대체로 세련되어 있다면 나만의 생각일까. 서울서 오래 산 적은 없어도 서울에 비한다면 동경이 보다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다음은 헷갈리는 부분이다. 아시다시피 일본 차의 운전석은 우리의 반대인 오른쪽에 있다. 따라서 차량도, 사람도 좌측으로 다닌다. 지하도로 통하는 길에서도 좌측통행이 잘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 어떤 데서는 우측통행을 제시하고 있다. 쌍방 소통을 원활케 함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분부분 세심히 살피지 않으면 실수할 수 있다.
(일본에서 생각나는 사람들) 가족이 함께하는 자유 여행이어서일까. 시간적 여유가 있고, 또 비용에 상관 않고 가고픈 곳을 맘대로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정이 거의 끝나는데 불현듯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먼저 학창 시절 한국으로 돌아온 재일 교포 여학생이다. 우리 말이 서툴러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고운 얼굴을 가진 여학생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애썼지만 끝내 일본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매사에 서툰 그들을 속인 사람이 있다는 말에 실망감이 컸다. 다음은 페이스북에서 만난 오사카 여성이다. 우리의 공통어인 영어로 페북 편지를 열심히 나누었다.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 될까 싶어 나섰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일본 마이하마 호텔에서)
(외국 여행 때 무슨 책?) 외국 여행 때면 꼭 책을 챙긴다. 여럿이 가더라도 나만의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긴 시간 비행기 안에서, 더 많은 시간은 새벽에 나온다. 버스나 비행기를 타더라도 거의 잠을 자지 않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궁금해서다. 누구와 자더라도 새벽에 일어나 혼자 지낼 장소를 물색한다. 일찍 일어나서도 옆 사람을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런 나 홀로 시간을 어떻게 보내겠는가. 여행 기간에 따라 책 종류는 달라진다. 두껍거나 무거운 책은 피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저서라면 더 좋다. 언제나 ‘가볍게, 즐겁게’가 선정 기준이 된다. 동해 상공에서 어느 여성 작가의 아담한 수필집을 읽고 있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