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련설(愛蓮說)
주돈이(周敦頤 1017∼1073) 중국 송나라 성리학자
내가 오직 연을 사랑함은 予獨愛蓮之(여독애련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出於 淤泥而不染(출어어니이불염) *
맑은 물결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濯淸漣而不妖(탁청연이불요)
속이 소통하고 밖이 곧으며 中通外直(중통외직)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기 때문이요, 不蔓不枝(불만불지)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고, 香遠益淸(향원익청)
우뚝 깨끗이 서 있어 亭亭淨植(정정정식)
멀리 바라볼 수는 있으나 可遠觀 而 (가원관 이)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不可褻玩焉 (불가설완언)
출처: 2014년7월 19일자 조선일보에서 인용 편집 보완
(* 제목의 戀자는 틀려서 연(蓮)으로 바꿨고,
둘째행 진흙 어(淤)자는 탈락되어 보충해야함)
* 연꽃을 군자의 꽃이라 말했던 주돈이의 연꽃 사랑은 각별하다.
위의 글귀가 들어있는 수필(說) 전체를 소개한다.
(뜨거운 여름이 되니 곳곳의 연못마다 연꽃 세상으로 변한다.
어디 부여 궁남지며, 전주의 덕진 연못이며, 함평의 연꽃축제뿐이랴.
불같은 여름에 물만 보아도 시원한데 거기에 피어난 연꽃을 바라보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청량함을 더해주는 즐거움이다.
둥둥 떠 있는 얼음물 위에 수박화채같은 시원함이다.
더욱이 연꽃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에 이르면 더더욱 그렇다.
꽃에도 격조가 있고 나름대로의 품격이 있나보다.
여름 한 더위를 연꽃처럼 보내고 싶어서,
연꽃에 관한 짧은 수필 한 편을 소개한다. )
애련설(愛蓮說)
주돈이(周敦頤: 1017 -1073, 중국 북송) 손광성 역
물과 뭍에서 자라는 풀이나 나무에 피는 꽃 가운데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참으로 많다.
그런데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은 그 많은 꽃 가운데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당(唐)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두 모란(牧丹)을 사랑했다.
하지만 나는 연꽃을 사랑한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아니하며,
맑은 물결에 남실남실 씻어도 조금도 요염한 빛이 없다.
속은 텅 비어 욕심을 비운 사람 같고 겉은 항상 꼿꼿한 몸가짐으로 서 있으며,
서로 얼기설기 얽혀서 넝쿨 지는 일도 없고 가지를 무성하게 사방으로 뻗어 세력을 확장하는 일도 없다.
은은한 향기는 멀수록 오히려 맑은데,
게다가 언제나 정결하게 우뚝 서 있는 모습에 위엄이 서려 있으니
멀리서 우러러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서 어루만지며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국화를 보고 세속을 떠나 숨어 사는 선비와 같은 꽃이라고 하고, 모란을 두고 돈 많은 부자와 권력을 쥔 귀인과 같은 꽃이라고 한다면 연꽃은 높은 인품을 지닌 군자와 같은 꽃이라고나 할까?
아, 슬프다. 국화를 사랑한다는 말은 도연명 이후에 들어 본 적이 드물구나. 그러니 세상에서 연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몇이나 더 있을는지. 의당 모란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많을 테지만.
<미술사가인 조정육의 글속에 원문이 있어 함께 소개한다>
연꽃을 사랑함에 대하여(愛蓮說)
주돈이(周敦頤)
물과 땅에서 나는 꽃 중에는 사랑스러운 것이 매우 많다 (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晉陶淵明獨愛菊)
이씨의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몹시 사랑했으나(自李唐來 世人甚愛牡丹)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 (予獨愛蓮之)
진흙 속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않고 (出於淤泥而不染)
맑은 물 잔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고 (濯淸漣而不妖)
속은 비었으되 밖은 곧아 (中通外直)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도 없으며 (不蔓不枝)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 깨끗하게 서 있으니 (香遠益淸 亭亭淨植)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되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 (可遠觀而不可褻翫焉)
나는 말하겠다 (予謂)
국화는 꽃 중의 은일자요 (菊花之隱逸者也)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자요 (牧丹花之富貴者也)
연은 꽃 중의 군자라고 (蓮花之君子者也)
아 (噫)!
국화에 대한 사랑은 (菊之愛)
도연명 이후에는 들은 적이 드물고 (陶後鮮有聞)
연꽃에 대한 사랑은 (蓮之愛)
나와 같은 이가 몇 사람인고 (同予者何人)
모란에 대한 사랑은 많을 것이 당연하리라 (牡丹之愛宜乎衆矣)
사람들은 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국화에는 은일자를, 모란에는 부귀의 뜻을 새겨 넣었다.
그런데 연꽃에는 그다지 내세울 만한 의미를 준 사람이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돈이(周敦頤·1017~1073)가 연꽃이 만개하는 날 붓을 들어 연꽃의 덕을 칭찬했다. 그것이 ‘연꽃을 사랑함에 대하여(愛蓮說)’이다.
주돈이에 의해 연방죽에서 이름 없는 풀꽃으로 뙤약볕을 견디던 연꽃이 ‘군자의 꽃’이라는 새로운 애칭을 얻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주돈이가 언명한 연꽃의 정의에 대해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오히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며 다투어 주돈이의 정의에 공감을 표시했다. 만약 필자 같은 무명씨가 ‘연꽃은 군자의 꽃’이라고 주장했어도 사람들의 반응이 똑같았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주돈이의 말 한마디가 태산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주돈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주돈이’라는 이름의 무게
주돈이는 북송(北宋)의 대유학자이자 송나라 유학의 비조(鼻祖)다.
그는 유교의 토대를 마련하고 체계화하였는데 성리학(性理學)의 기본이 되는 태극(太極)과, 음양(陰陽) 오행(五行)이 만물 속에서 생성발전되는 과정을 도해한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저술했다.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재창한 정명도(程明道)·정이천(程伊川) 형제와,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1130~1200)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 네 사람은 중국 송대의 4현(四賢)으로 칭송받으며 현재까지도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고 있다.
주돈이는 자가 무숙(茂叔)으로 중국 강서성의 여산(廬山)에 있는 염계(濂溪)에서 염계서당을 짓고 살아 주렴계(周濂溪)라고도 한다.
(*더운 여름날 연꽃 만발한 연지의 향원정에 앉아 연꽃의 향기를 맡아보는 정취를 누려보는 것도 피서의 멋이랄가?
향원익청(香遠益淸)이라는데.....향원정에 올라 연꽃 향기나 맡으며 여름을 날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