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머리 / 류재희 (2021. 1.)
캡스를 해제하며 요양원의 새벽을 연다. 맑은 바람이 상쾌하다. 어둠에 묻혀있던 지난밤은 무사히 잘 지나갔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누구에게나 내일 아침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특히 노인들에게 밤은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이라 비밀의 문을 열 때처럼 살짝 긴장되기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눈다. 손을 흔들거나 혹은 어깨를 감싸기도 하고 잠깐 말벗을 하는 등 여러 몸짓으로 아침 스킨십을 한다. 이건 고통을 받는 요양원 어른들께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밤 동안의 안부를 다투어 서로 전하려 하니 시간을 적절히 안배하는 일도 놓치지 말아야 된다. 눈만 마주치면 악수를 청해 오시는 분이 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놓치면 바로 원장이 차별한다며 항의가 들어온다. 그런 경우는 인지력이 있는 분이라 오히려 안심한다.
밤새 불면증으로 잠을 설친 김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가장 큰 고통은 몸에 찾아든 병이 아니라 불면인 것 같다. 잠을 잘 자기만 해도 아침이면 새로운 기운을 낼 수 있을 것인데, 밤새워 뒤척이며 불면과 싸우느라 아침에도 영 기운을 차리지 못하시는 모습이 안쓰럽다. 곤히 잠들어 있는 윤 할머니의 방을 지나간다. 살짝 들여다보니 세상 시름 다 잊은 듯 표정이 무척 평온하다. 조심한다고 했건만 내 기척이 느껴졌는지 실눈을 뜨신다. 마주친 할머니의 눈빛은 고요하고 맑다. 이런 눈빛을 마주하면 마음이 괜히 둥실 떠오르는 것처럼 좋다. 방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하루를 여는 일상의 시작 정경이다. 창문으로 비쳐든 아침 햇살을 받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천진한 모습이 사랑스럽다. 열한 개의 방을 빠짐없이 찾아간다. 30여 명의 노인의 집이다. 매월 2회 의사의 진료를 받고, 매일 간호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지만, 어제와 같은 듯하지만, 실바람처럼 다르게 부는 바람이 있을까 표정을 살핀다. 바람 없이 갈 수 없는 구름이라는데 사랑도 없이 가는 생이 될까 싶은 생각에 긴 밤 동안 겪었을 당신들의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고루고루 어루만져 본다.
이곳에 계신 분 중 열에 아홉은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이다. 치매는 가족, 친지는 물론이고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찢고 회색의 어둠으로 물들이는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근심·걱정 다 비우고 해탈의 경지에 오른 듯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모든 기억을 잊고 새로운 곳에서 살아간다. 새로운 사람들과 생활하며 모두 다 비우고 삶을 즐기며 생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곳 요양원에는 백수를 넘긴 두 분 할머니도 계신다. 빛나는 은발로 시설을 누비며 노년의 빛을 발산한다. 어린아이처럼 마냥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곤 한다. 나이가 들면 다시 아이로 돌아간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두 분이다.
102살 전 할머니는 허공처럼 조용하다. 아픔도 슬픔도 잊어버리고 나와 눈만 마주치면 웃는다. 자녀들이 와도 반가운 기색이 없다. 들고 온 간식은 바로 내게 건네준다. 매일 만나서 그런지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더 좋다는 속담 대로다. 자주 안아 주는 나를 더 좋아하는 듯하다. 무의식의 세상에도 진실한 마음은 통하는 것인가 보다. 104살 국가유공자 박 할머니는 고운 치매다. 얼굴이 선하고 근심 걱정을 다 잊은 홍안이다. 여자이고 싶어 정갈하게 예쁜 꽃무늬 옷을 즐겨 입고 수줍게 웃는다. 어쩌다 이 나이에도 별스러운 수다를 떨 때도 있다. 구십대 중반의 유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자주 스킨십을 하려다 요양사에게 제재를 받고는 머리를 습관처럼 긁는다.
우리나라 노인복지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편이다. 노인 요양기관도 잘만 운영된다면 치매 환자 가정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은 과도기 단계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무질서한 요양원 운영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한 일이다. ‘효’라는 덕목의 가치로 예전에는 가정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았다. 하지만 주거환경이 바뀌고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치매는 특정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 모르는 일이다. 함께 관심을 가져야 안정된 진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곳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의미를 무수히 곱씹게 된다. 봄날 고운 꽃봉오리로 왔다가 쓸쓸하고 추운 겨울의 황혼 무렵이면 사랑하는 이들의 목소리조차 기억에서 삭제되는 고통을 겪는다. 말벗하고 있노라면 반짝 정신이 맑아질 때 즐거웠던 날들, 힘들었던 날들과 보람 있었던 날들을 조금씩 보여주시기도 한다. 절대자가 있어 기억의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장수사회란 말의 상찬 뒤에 가려진 갑남을녀의 삶의 갈무리가 허술하다. 귀하지 않은 생이 없을 진데 수많은 요양원, 요양병원이 황혼녘 삶의 인간다움을 담보하지 못하니 이 업의 종사자로서 아뜩해진다. 생명 연장만 하는 사육의 수용소라는 근심의 소리를 없애려면 이 사회가 한참 아픔을 겪어야 할 일만 같다.
모든 기억을 바람에 날려버리고 나면 오히려 가벼워지나 보다. 노을에 젖은 하회탈처럼 밝은 노인들의 웃음을 나는 정말 사랑한다. 황혼의 은빛 머리가 그리도 고운 것인 줄 새삼 느끼는 날들이다.
첫댓글 류재희 선생님, 늦었지만 신인상 수상하신 작품을 카페에 소개할 수 있어 기쁩니다. 자주 방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양로원 어르신과
노인복지센터 치매 어르신 대상,
봉사를 하고 있어서 더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홍윤선선생님, 카페에 작품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자주 들리겠습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페북에서 회장님 노인시설 치매어르신 원예봉사 늘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